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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

14,400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홍종락 (역)
2017. 7. 25
양장 / 188 Pages
9788936512439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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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초청에 바르게 응하는 법


“완전 선동적인…  기존 문학 비평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장 중 최고”

_New York Times, Book Review

기존 문학 비평에 던지는 의구심
고전을 해설한 탁월한 작품인 『실낙원 서문』이 국내 번역 출간된 지 2년 만에 ‘C. S. 루이스 정본 클래식’ 스물두 번째 책으로 『오독誤讀』(원제: An Experiment in Criticism)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루이스가 살아 있을 당시 1961년 출간되었는데, 같은 해 『헤아려 본 슬픔』이 출간되었고 그다음 해 『개인 기도』가 출간되었으며, 루이스는 1963년 작고했다.
그의 말년에 쓰여진 『오독』은 기존의 문학 비평 방식이 과연 정당하고 유익한지 이의를 제기하며, 새롭게 문학 비평 방식을 실험해 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처한 문제는 책을 읽기 전에 책을 먼저 판단하는 경우, 유행에 따라 그 평가가 바뀌며 대개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에 루이스는 판단의 순서를 뒤집어, 독자의 독서 유형을 먼저 살펴본다. 그래야 우리 안에 좋은 책과 나쁜 책을 분별하는 기준이 정확히 세워진다고 루이스는 주장한다. 이 실험을 위해 그림과 음악 그리고 각종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방식들을 관찰해 나간다. 

좋은 책읽기로 한걸음 나아가기
바람직한 책읽기 방법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좋은 책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게 되므로, 책을 판단하기에 앞서 읽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루이스는 강조한다. 모든 예술 작품이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항복하라는 것, 즉 ‘수용’하라는 것이다. “보라. 귀 기울이라. 받으라. 작품의 길을 막지 말라.”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작품 전체를 수용하기보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골라서 즐기거나, 교훈을 얻으려 하거나, 그 작품을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한다. 이는 모두 ‘수용’이 아니라 ‘사용’이다. 예를 들어, 비문학적인 독자들은 ‘사건’, 즉 ‘벌어진 일’을 골라내 자신의 환상, 대리 만족의 재료로 삼는다. 이야기들을 즐겨서가 아니라 다른 식으로는 즐기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온전한 문학적 경험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의 초청에 바르게 반응하는 법은 우선적으로 책 내용에 주목하고, 순종하며 사심 없이 읽는 것이다. 결국 좋은 책이란 좋은 읽기를 ‘허용하고 초청하고 강제하는’ 책이다. 우리는 《오독》을 통해 문학과 예술 작품을 제대로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되며, 마침내 자신을 초월하는 책읽기가 무엇인지 경험하게 된다.

무게 340 g
크기 134 × 202 mm

저자

C.S. 루이스
루이스 교수님은 영문학자로,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인, 작가, 비평가로 활동했습니다.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신앙을 버리고 지내다가 1929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예기치 못한 기쁨》, 《네 가지 사랑》(이상 홍성사), <나니아 연대기>(시공사) 등 여러 책과 글을 써서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지혜와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른은 물론,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어린이 독자들에게서도 많은 편지를 받아, 교수님은 거의 매일 아침 한 시간 이상을 편지를 읽고 답장하는 데 보냈다고 합니다. 1963년 돌아가셨지만 교수님의 책들은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답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 -타임지
“금세기 가장 사랑받았던 사상가이자 작가” -하퍼콜린스 퍼블리셔스

 

홍종락
서울대학교에서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에서 4년간 일했다. 지금은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으며, 번역하며 배운 내용을 자기 글로 풀어낼 궁리를 하고 산다. 저서로 《나니아 나라를 찾아서》(정영훈 공저, 홍성사)가 있고, 《성령을 아는 지식》,《루이스와 톨킨》, 《루이스와 잭》, 《교회 다니는 십대, 이것이 궁금하다》, 《개인 기도》, 《꿈꾸는 인생》, 《영광의 무게》(이상 홍성사), 《내 눈이 주의 영광을 보네》(좋은 씨앗)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2009 CTK(크리스채너티투데이 한국판) 번역가 대상>을 수상했다.

차례

ⅰ 소수와 다수
ⅱ 잘못된 특징 규정
ⅲ 소수와 다수가 그림과 음악을 대하는 방식
ⅳ 비문학적인 사람들의 독서
ⅴ 신화에 대하여
ⅵ ‘환상’의 의미
ⅶ 리얼리즘에 대하여
ⅷ 문학적 독자들의 오독
ⅸ 개관
ⅹ 시
ⅺ 실험

맺음말
부록: 오이디푸스에 대한 주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문학적인 사람들이 문학 작품을 처음 읽을 때는 종종 사랑, 종교, 사별의 경험에 비길 만큼 너무나 의미심장한 일로 다가옵니다. 그들의 의식 전체가 달라집니다. 그들은 그 작품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다른 부류의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와 같은 조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야기나 소설을 읽고 나서도 그들에게는 별다른 일이 벌어진 것 같지 않습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_‘ⅱ. 잘못된 특징 규정’ 9쪽에서


진짜 감상은 정반대의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신의 주관성을 그림에 쏟아내고 그 그림을 주관성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의 선입견이나 관심사, 연상되는 바는 최대한 제쳐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부정하는 노력이 있은 다음에 적극적 태도가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바라보되 정확히 거기 있는 것이 보일 때까지 계속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림 앞에 앉는 것은 그 그림으로 무엇인가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림이 우리에게 하는 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첫 번째 사항은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보라. 귀 기울여라.
_‘ⅲ. 소수와 다수가 그림과 음악을 대하는 방식’ 29쪽에서

우리는 예술 작품을 가지고 뭔가를 하느라 바쁜 나머지 그것이 우리에게 작용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작품 안에서 점점 더 우리 자신만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술의 주된 작용 중 하나는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게 하고, 우리를 그 고독에서 구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의 문학’을 읽으면서 좀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사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상상문학을 읽을 때는 우리의 견해를 바꾸는 것—물론 가끔 그런 결과가 따라오겠지만—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 속으로, 즉 그들의 태도와 감정과 총체적 경험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것에 관심을 보입니다.
_‘ⅷ 문학적 독자들의 오독’ 109쪽에서


위대한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저는 수많은 다른 사람이 되면서도 여전히 자신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 그리스 시에 나오는 밤하늘처럼, 저는 수많은 눈으로 보지만 보는 사람은 여전히 저입니다. 예배할 때, 사랑할 때, 도덕적 행위를 할 때, 무엇을 알 때 저 자신을 초월하게 되듯,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도 저는 자신을 초월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저 자신에게 충실한 존재가 됩니다.
_‘맺는말’ 176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