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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숙고

20,700

저자 C. S. 루이스

역자 양혜원

발행일 2013.2.15

상세정보 양장 / 340page / 145×210(mm) / 503g

ISBN 9788936503086

품절

C. S. 루이스의 인문학적 교양이 담긴 에세이집

C. S. 루이스는 학생 시절부터 인문학에 두각을 나타냈다. 10대 시절 고전 문학과 시를 즐겼고 15세 때 고전학 장학생으로 칼리지에 입학하여라틴어와 그리스어문법과 수사학을 공부했다. 16세 때부터는 2년 7개월간 탁월한 개인교사의 집에서 살면서 변증법을 배우고그리스어라틴어프랑스어독어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 단테와 밀턴을 포함한 여러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옥스퍼드에도 고전학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영문학부를 1등으로 졸업했다무신론자 시절에 익힌 인문학은 그가 유신론자가 되면서 꽃을 피워 루이스를 “20세기 가장 많이 읽힌 기독교 변증가”<타임>요 작가비평가영문학자로 만들었다루이스의 사상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열 권의 책에 속한 《유신론과 인문주의》에 대해 저자 밸푸어Arthur J. Balfour는 자신의 책을 이렇게 요약한다. “아름다움이나 선함이나 지식에 관련하여 인간의 문화에 대해 우리가 가장 탁월하게 사고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하며유신론이 뒷받침되지 않은 인문주의는 그 가치의 절반 이상을 잃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기독교적 숙고》는 문학문화윤리역사철학신학에 관한 루이스의 인문학적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주로 학회와 전문 잡지에 실렸던 글들이라 독자가 공부한 분야가 아니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순전한 기독교》,《고통의 문제》,《기적》 등으로 루이스의 사상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도전해 볼 만한 루이스 산이다.

숙고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C. S. 루이스의 선물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신앙을 버리고 완고한 무신론자가 되었던 루이스는 30대 초에 회심한 후,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꼽힌다. 《기독교적 숙고》는 영문학자, 작가, 비평가, 사상가로서의 루이스의 재능이 집약된, 숙고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책이다.

◎ 문학가들을 위해 : 문학, 문화, 언어에 관한 지성적 접근
◎ 철학자들을 위해 : 허무, 주관주의, 진보주의, 역사주의에 관한 명쾌한 논증
◎ 신학자들을 위해 : 종교, 윤리, 성경 비평에 관한 예리한 변증과 답변
◎ 신앙인들을 위해 : 교회음악, 시편의 탄원시, 기도, 보는 눈에 관한 정직한 질문과 논의

기독교의 분열보다 공통 기반을 주목하고 변호하다

C. S. 루이스는 기독교의 분열된 모습을 보기보다, 기독교 안의 방대한 공통 기반을 주목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이웃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섬김은, 시대를 초월해 모든 기독교인에게 공통된 신앙, 즉 그가 ‘순전한 기독교’라고 표현한 ‘방대한 공통 기반’을 설명하고 변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철저한 초자연주의자로서 창조, 타락, 성육신, 부활, 재림을 믿었고, 종말과 관련해 죽음, 심판, 천국, 지옥이 있음을 믿었다. 그는 기독교의 가장 취약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을 변호했고, 청중에 맞게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이 책 《기독교적 숙고》에서 그러한 사실이 잘 나타난다. 이 에세이집은 정기간행물에 기고한 글들과, 옥스퍼드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과 관련된 여러 학회에서 발표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C. S. 루이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꼽히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시인, 작가, 비평가, 영문학자.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출생. 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 모들린 대학에서 개별지도교수 및 평의원으로 있었으며, 1954년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는 1929년 회심한 후,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정신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대표작으로《순전한 기독교》,《스크루테이프의 편지》,《고통의 문제》,《예기치 못한 기쁨》,《네 가지 사랑》(이상 홍성사), 《나니아 연대기》(시공사) 등이 있다. 1963년 작고.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 -타임지

“루이스는 20세기 복음주의계의 어거스틴” -J. I. 패커

“20세기의 존 버니언” -콜린 두리스, 미국 IVP 편집자

“금세기 가장 사랑받았던 사상가이자 작가” -하퍼콜린스 퍼블리셔스

“지난 40년 동안 미국 복음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저술가” -크리스채니티 투데이

 

양혜원
1970년 생으로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수료했다. 한국 라브리(L’Abri)선교회 협동간사로 6년간 섬겼으며, 1994년부터 통역과 번역 일을 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이디스 쉐퍼의 라브리 이야기》, 《대천덕 자서전 – 개척자의 길》, 《예수원 이야기 – 광야에 마련된 식탁》,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모자》, 《쉐퍼의 편지》(이상 홍성사) 등을 번역하였다.

차례

1장 기독교와 문학 7
2장 기독교와 문화 26
3장 종교: 실재인가 대체물인가? 71
4장 윤리에 대하여 83
5장 허무에 대하여 106
6장 주관주의의 독 132
7장 위대한 신화의 장례식 150
8장 교회음악에 대하여 174
9장 역사주의 184
10장 시편 210
11장 종교의 언어 238
12장 청원 기도: 해답 없는 문제 262
13장 현대 신학과 성경 비평 279
14장 보는 눈 307
편집자의 글 325

책속에서

◉ 좋은 수난극이나 경건한 시를 쓰기 위한 규칙은 일반적인 비극이나 시를 쓰는 데 적용되는 규칙과 동일합니다. 즉 세속 문학의 성공을 보장하는 문장 구조, 긴장, 변화, 용어 선택 등의 가치를 따른다면 경건 문학도 성공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기독교 문학의 범주에 경건한 주제를 다루는 문학뿐 아니라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위해 쓴 모든 것을 포함한다면, 기독교적인 요리법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만 기독교 문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기독교와 문학’에서(7-8면) 

◉ 영적인 세계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근거를 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한다면, 우리가 영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당연히 환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옳다면, 영적인 경험이 제일의 실재이고 우리의 자연적 경험은 차선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관점을 받아들이건, 단순한 감정은 우리의 신념을 계속 뒤엎으려 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둡시다. -‘종교: 실재인가 대체물인가’에서(78면) 

◉ 본질적으로 기독교는 도덕을 발견했다고 선포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오직 회개하는 사람들, 이미 알고 있는 도덕법에 순종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기독교는 도덕법을 어긴 것을 용서해 주고, 그 법을 지킬 수 있도록 초월적인 도움을 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법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예수님이 명령하신 말씀은 모두 랍비들이 먼저 말했던 것들입니다. 자신의 종교를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은 단호히 이 점을 들어 불신자들의 공격을 비웃습니다. -‘윤리에 대하여’에서(88면) 

◉ 선이란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라고 믿는 한 우리는 지도자들에게 ‘비전’, ‘역동성’, ‘창조성’과 같은 자질을 요구합니다. 만약 우리가 객관적 견해로 돌아간다면 덕, 지식, 부지런함, 노련함처럼 훨씬 드물면서도 훨씬 유익한 자질을 지도자들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비전’을 사라고, 비전을 판다고 사방에서 난리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루하루 정당한 소득을 위해 일할 사람, 뇌물을 거절할 사람, 없는 사실을 지어 내지 않을 사람, 자기 일에 숙달한 사람이 아쉽습니다. -‘주관주의의 독’에서(149면) 

◉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나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일, 혹은 둘 다를 직․간접적 목표로 삼지 않는 일은 행동으로든 노래로든 말로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물론 좋은 예배에 문화적 가치도 있긴 하지만, 예배가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낯선 곳에서는 교회가 나침반의 방위를 잡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이것을 목적으로 교회가 지어진 것은 아니듯이 말입니다. -‘교회음악에 대하여’에서(174면)

◉ 신약성경 원문과 그 원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깊이 파고드는 데 청년기와 성인기를 바친 사람은 오히려 신약성경에서 자명한 것을 놓치기 쉽다고 저는 봅니다. ……그런 사람이 제게 복음서에 나오는 어떤 내용이 전설 혹은 소설이라고 말해 준다면, 저는 그가 복음서 연구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는지가 아니라, 전설과 소설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그 독특한 맛으로 전설과 소설을 감지해 낼 만큼 그의 문학적 미각이 잘 발달되었는지를 알고 싶을 것입니다. -‘현대 신학과 성경 비평’에서(283면)

서평

세례 받은 이성을 사용한 C. S. 루이스의 기독교 인문학 

종교와 관련해서 지금도 유효하게 받아들여지는 편견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깐깐한 사람은 믿음이 없다”,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믿음이 건강하지 못하다”, “많이 배운 사람은 의심이 많아서 믿음이 좋을 리 없다” 등등. 그러나 이런 표현이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편견을 뒤집어엎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C. S. 루이스다. 
루이스는 재론할 필요 없이 20세기에 등장한 기독교 변증론자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여러 방면에 쓰시기 위해 다양한 달란트를 주셨다. 그는 교수요 방송인이요 문학가였고, 그의 글쓰기는 학술서에서 아동문학, 환상문학, 시에 이른다. 가히 전방위적이라 하겠다. 그런 그의 삶과 내면에서 우러나온 글 모음이 《기독교적 숙고》다. 깐깐하지만 믿음이 모태이고, 따지지만 건강한 믿음을 증거하며, 많이 배운 것이 든든한 믿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루이스는 자칫 교만해질 수 있는 ‘이성理性’을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적극 활용하여, ‘세례 받은 이성baptized reason’이 어떤 선한 일에 쓰임 받는지 보여 준다. 
이 책은 1940년 이후 루이스가 여러 주제에 관하여 쓴 글을 편집한 것이다. 여러 주제에 관해 천착, 비평하고 있지만 글 내면에 흐르는 세계관은 복음 앞에서 지성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보여 준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기독교적 숙고》는 ‘기독교 인문학’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길을 제시한다. 말씀에 순종하고, 섭리에 머리 숙이며, 현상을 냉철하게 직시하라는 것이다. 세례 받은 이성의 사유는 신앙을 훼손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앙을 든든히 세울 수 있는 저력이 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여기서 오래전 함석헌 선생이 부르짖은 말이 떠오른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루이스는 “덮어놓고 믿으라”는 맹종과 궤변을 거부하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우리 앞에 파도치는 현상을 하나하나 진단해 보라고 한다. 《기독교적 숙고》는 자칫 따분해 보일 수 있는 신앙적 담론을 루이스식 재치와 유머가 가미된 글에 담아 맛깔스러운 대화의 장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기독교적 숙고》와 같이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책을 짧은 지면에서 논하는 것은 힘든 작업이다. 이 책이 한국 기독교와 교회에 어떤 파장을 던질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게 좀더 실질적이리라. 첫째, 루이스는 특정 교단의 교리에 입각한 신학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기독교를 관통하는 복음의 입장에서 현상을 대한다. 교단별로 구획 짓고, 신학의 독선과 신앙의 독재에 빠질 위험에 처한 한국 교회에 경종을 울린다. 둘째, 체험 위주, 신바람 나아가 신비주의적 신앙에 치우치는 한국 성도들에게 경고한다. 신앙은 감성만이 아니라 이성과 논리도 겸비해야 균형 잡힌 신앙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루이스의 경우, 따질수록 믿음이 더 굳건해진다는 역설 아닌 역설을 보여 준다. 셋째, 다원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한국 교회는 복음의 순수성을 주장하다 다양성, 융통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교회의 게토화가 ‘당신들의 천국’으로 희화되지 않으려면 복음을 사유하는 지평을 넓혀야 한다. ‘기독교 인문학’이 그 대안일 수 있는데, 루이스는 이러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교회의 권력 아래서 자행되는 기독교의 비인간화는 악마의 전술일 뿐이다. 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복음은 이성의 건강한 사유를 촉구한다. 오늘에도 루이스의 존재가 유효한 것은 《기독교적 숙고》에 보이는 루이스적 이성 사용설명서가 한국 교회의 영적 성숙에 어떤 길잡이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추천글

“《기독교적 숙고》는 준비된 독자들에게 루이스의 천재성을 보여 준다. 영원한 진리에 충실한 루이스는 불확실한 ‘토론들’로 오염된 대기에 깨끗하고 상쾌한 바람으로 다가온다.” ―Moody Monthly

“이 책을 읽고 나면 영적․지적인 삶이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Christian Home and School

“이 책은 허무주의자, 결정론자, 무신론자들에게 특히 유익할 것이다.” ―The Chicago Tribune

평론

차정식 교수, 동서신학평론 3집에서 C. S. 루이스 작품 평론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가 최근 발간된 동서신학포럼(이사장 이기복 감독)의 ‘동서신학평론 3집’에서 C. S. 루이스의 최신간 <기독교적 숙고(홍성사)>에 대해 “신앙고백적 배경 아래 작성된 성경의 종교적 언어가 지닌 고유한 특징들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차 교수는 “성경의 종교적 언어는 과학적 언어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데, 루이스의 구별에 따르면 그것은 ‘일상의 언어와 시적 언어 사이의 어디쯤 존재하는 언어’이고, 일상의 언어가 그 외피를 두르고 있다면 이면에는 신학적이고 시적 언어로 짜여 있는 것이 바로 종교 체험을 표현하는 언어라는 것”이라며 “제가 보기에 이 책의 가장 흥미롭고 유익한 장점은 바로 이러한 성경을 대하는 저자의 안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루이스는 불트만 등 역사비평가들이 성서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법에 근본적인 회의를 던진다고 차 교수는 지적했다. 현대 신학자들과 성경비평가들은 간단히 말해 ‘문학적 판단력이 부족하며, 자신들이 읽고 있는 텍스트 자체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 교수는 “욥기와 요나의 독특한 문학적 성격이 있듯, 복음서의 문학적 성격과 신학적 목적, 나아가 역사적 삶의 자리는 명확하다”며 “이것을 쪼개고 해체하여 내부에 세밀한 구조적 연관성이 없다는 식의 비평은, 복음을 알맹이 없이 형해화하여 마치 ‘겨자씨를 본다면서 대낮에 10m쯤 떨어져 있는 코끼리는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는 격”이라고 했다.
이밖에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의도가 후대 케리그마로 감염돼 잘못 투사됐고 현대 비평작업에 의해 제대로 발견됐다는 역사비평가들의 주장이나, 오늘날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현대 신학자들의 입장 역시 루이스의 비판적 질타의 대상이라고 차 교수는 전했다. 이런 비평작업을 통해 각자 연구하는 텍스트의 기원을 재구성하려 하지만 그 결과는 고작 ‘그 책을 기록한 상상의 이야기들’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며, 그만큼 신빙성 없는 작업을 비평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는 것.
그는 “이처럼 루이스는 특히 20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번성해 간 역사비평이라는 이름의 성경 회의주의에 근원적 의문을 제기한다”며 “루이스에게 그들의 학문은 가설을 덧붙이는 식으로 무모하고 취약한 모래탑을 쌓는 작업처럼 보였던 것인데, 성경학자로서 이런 식의 고전적 역사비평에 익숙했던 내게 루이스의 따끔한 일침은 지당한 듯하면서도 신선한 또다른 관점을 열어 보여주는 계몽의 힘을 담고 있다”고 적었다.

“루이스의 이성 중시, 윤리 존중하는 신앙적 규범 지지로 나타나”
‘심사(深思)가 숙고(熟考)로 익어가는 변증’을 제목으로 평론한 차정식 교수는 “루이스는 이 책에서 ‘기독교’라는 종교를 구동축으로 문학과 문화, 윤리, 허무, 주관주의, 신화, 교회음악, 역사주의, 시편, 종교언어, 청원기도, 성경비평, 우주시대의 신앙적 안목이라는 다양한 주제들을 접목시킨다”며 “이러한 주제들을 기독교의 단순한 진리라는 관점에서 조명하는 저자의 시선은 매우 차분하게 상식 수용적이지만, 종종 비평적이며 더러 도발적”이라고 덧붙였다.
또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는 ‘혼의 가치’가 지닌 한계에도, 그는 기독교의 진리됨을 방어하는 무기로 이성의 위엄을 퍽 중시한다”며 “그의 이성 중시 성향은 자연스레 윤리를 존중하는 신앙적 규범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그는 “루이스는 전통적 도덕개념을 부정한 사르트르의 전위적 입장을 비판하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공동체의 미덕을 추구하는 긍정의 윤리가 전통적 도덕 개념에서 산출되는 평범한 이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며 “마찬가지 맥락에서 그는 인간이 허무의 실존을 과장하여 지나친 회의주의를 유포하고 긍정적 희망의 비전을 놓치는 오도된 세태와 인간이 선과 도덕이라는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주관주의의 해독을 냉정하게 진단한다”고 전했다.
그는 “깊이 생각하여 그 사색의 결을 농밀하게 고르고 밀도 있게 숙성시켜 나가는 루이스다운 변증의 힘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기독교적 숙고> 중 역사주의와 탄식시편, 청원기도를 논하는 대목과 성경의 역사비평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대목”이라고도 했다.
차 교수는 “루이스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담백하게 인정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는 점에서 회의론자보다는 불가지론자의 입장에 가깝고, 자신의 변증이 지닌 강점과 한계를 잘 아는 꼼꼼하고 정직한 지식인”이라며 “그는 이런 인간의 무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강조하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향한 정직한 발견의 중요성을 흔쾌히 긍정한다”고 정리했다.
그는 이러한 루이스의 신학적 사색이 지닌 장점에 대해, “자신이 좋아하는 ‘지적 정직성’에 따라 치열한 앎을 추구하고 상상하며 그 한계에서 겸손해지는 배움의 길과 통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