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김교신 알아가기 1’은 그동안 열린 학술대회와 강연, 기념강연 등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 저자들은 김교신 선생과 무교회주의(교회)를 연구하는 분들로, 선생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그의 삶과 신앙, 무교회주의와 한국 교회의 관계, 한국 교회사에 남겨진 김교신의 위치 등을 규명하고 있다. (중략) 이 책 제목을 ‘김교신, 한국 사회의 길을 묻다’로 한 것은, 시리즈 첫 권부터 김교신 선생께 물어가는 자세를 갖겠다는 의지를 표명함과 동시에 ‘당신’ 같으면 분단과 갈등의 혼미한 한국 사회를 두고 뭔가 말씀하셔야 한다는, 양면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독자들께서는 이런 점들을 양지하시고 첫 권부터 눈여겨보아 주시기를 기대한다. _12면, ‘책을 내면서’에서
◀다재다능하였던 김교신, 그는 근면하고 성실한 지식인이었다. 그 자신의 말을 빌려 보더라도 항상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었다. “(나는 〈성서조선〉의) “주필 겸 발행자 겸 사무원 겸 배달부 겸 수금인 겸 교정계 겸 기자 겸 일요강사, 그 외에 박물교사 겸 영어 겸 수학교사(열등생도에게) 겸 가정교사(기숙생도에게) 겸 농구부장 겸 농구협회 간사 겸 박물학회 회원 겸 박물연구회 회원 겸 지력(地歷)학회 회원 겸 외국어학회 회원 겸 직원 운동선수 겸 호주 겸 학부형”이었다. 물론 위에 나열한 허다한 그의 직무 가운데서도 가장 김교신다운 일은 〈성서조선〉을 통한 신앙의 교사요, 양정학교의 선생님이었다. 교사는 곧 그의 천직이었다. _20면, ‘자율적 근대를 향한 김교신의 고뇌’에서
◀김교신은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인가, 얼마나 진실된 사람인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자신을 비워 내고 비워 냄으로써 자신이라는 ‘질그릇’ 속에 ‘보화’를 채우는 것에 전념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이 사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역사의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초조감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성서조선〉의 속간이 어려운 지경에서 깊이 고민할 때도 그는 궁극적으로 ‘성서가 존속’하고 ‘길가의 돌들로 외치게 하는 여호와 하나님’이 있는 한, 자신의 잡지의 속간 여부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며 안식할 수 있었다. _61면, ‘김교신의 일상성 속의 신앙과 예언자적 역사의식’에서
◀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나 김교신 모두 기독교 역사에서 성서적 진리가 외면당하고 교회의 전통이나 특정인의 신앙적 경향이 우선시되는 것을 비판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에서 성서 이외의 다른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성서만이 그들의 유일한 표준임을 강조했다. 김교신은 성서를 책 중의 책, 가장 고귀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전 신앙, 전 생명은 그 동정(動靜)을 성서와 함께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책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성서만 있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았으며, 성서만 읽어도 기독교 진리를 파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성서는 그에게 생명의 동력을 공급하는 책이었다. _135면, ‘무교회주의가 복음주의라고?’에서
책을 내면서/ 이만열(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전 숙명여대 교수)
자율적 근대를 향한 김교신의 고뇌/ 백승종(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
김교신의 일상성 속의 신앙과 예언자적 역사의식/ 양현혜(이화여대 교수)
일본의 무교회와 김교신/ 모리야마 코지(한일청년우화회 대표)
김교신과 가나안 성도/ 양희송(청어람아카데미 대표)
한국 교회 비주류 신앙운동의 비판정신의 본질/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지사적 그리스도인 김교신/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무교회주의가 복음주의라고?/ 전인수(그리스도대학교 교회사 교수)
한국 교회사에 남겨진 김교신의 자취/ 박찬규(도서출판 익두스 대표)
주
부록-김교신의 삶과 사상/ 이만열(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전 숙명여대 교수)
(2014. 11. 29.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창립 기념 강연)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일지
필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