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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히만 씨, 당신은 왜 부자입니까

10,800

드레아스 말레사&한나 쇼트 (Andreas Malessa & Hanna Schott)
박흥식
2011.10.20
무선 / 200 pages
9788936502928

품절

독일 신발 시장 20퍼센트 점유, 독일 젊은이들이 근무해 보고 싶어 하는 기업,
경기가 어려울수록 더 채용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다이히만!
탄광촌 작은 신발수선집을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으로 만든
다이히만 사 최고경영자 하인츠-호르스트 다이히만의 나누는 부자 이야기
몇백 년 동안 자라온 커다란 삼나무도 처음엔 작은 씨앗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세계 시장을 주름 잡는 글로벌 신발 기업, 독일 신발 시장의 20퍼센트를 점유하고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이 된 다이히만도, 처음엔 광산촌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신발을 만들어 판매하고 수선해 주는 작은 신발 가게에 불과했다.
수십 년에 걸쳐 조용히 성장해 온 다이히만 사가 해마다 독일을 넘어 세계 20개국에 1억 켤레가 넘는 신발을 판매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독일 젊은이들은 왜 다이히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걸까? 신학과 의학을 공부한 정형외과 의사가 유행에 민감한 신발 사업에 매진하는 이유는? 그토록 많은 돈을 벌어 이 기업은 어디에 쓰는 걸까?
공적인 자리에서도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하는 다이히만 사의 최고경영자 하인츠-호르스트 다이히만은 그의 삶을 다룬 책 《다이히만 씨, 당신은 왜 부자입니까》(Warum sind Sie reich, Herr Deichmann?)를 통해 그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그는 단지 돈이 많기 때문에 부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부자인가? 이 책은 그것을 말해 준다!1.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 다이히만 신발 매장이 들어서 있다고 들었다. 다이히만 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1913년 독일의 에센 근처 보르벡에 아버지께서 연 신발 작업장이 우리 기업의 시초이다. 나는 신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정형외과 전문의로 일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업을 이어 신발 기업 경영에만 매달렸다. 독일 탄광촌의 작은 신발수선집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발을 위한 국민차’로 불리며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이자 독일 신발 시장의 2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다이히만 사는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내가 원해서 된 게 아니다. 나는 우리 기업이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2. 다이히만 사는 신발 기업으로 100년을 이어왔다. 다이히만 사만의 경영 원칙이 있다면?
나는 기독교인이다. 웨슬리 목사님의 말씀대로 벌 수 있는 한 최대로 벌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절약해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신발을 아주 싸게 판다고들 하지만 나는 받을 만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켤레에 몇 센트의 적은 이윤을 남기지만 많이 팔면 그 이윤이 상당하다. 박리다매薄利多賣라고 할까. 신고 싶은 신발이 비싸서 신지 못하는 경우는 없도록, 소비자도 타당하다고 여기는 선에서 가격 정책을 세우고 있다. 또한 이익은 사업에 재투자한다. 성장은 은행 부채 없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에서 단기 대출을 받는 것은 허용하지만 근본적으로 은행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3. 글로벌 기업이 되었는데도 주식 상장을 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왜 기업의 주가가 2천 명을 해고한 후 곧바로 오르는지. 해고 후에는 이전보다 비용이 적게 들므로 더 쉽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면 이 기업의 지분을 갖고 있는 자들이 이익을 얻는다. 우리는 주식을 상장하지 않은 가족-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보통의 주주들에게는 기업 자체가 가급적 단기간에 이득을 내야 하는 하나의 상품이 되는 반면, 우리는 우리 기업 자체가 하나의 가치이며 가족사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수익이 나면 그 이윤을 다시 회사로 돌릴 준비가 되어 있다. 회사가 곧 가족의 유산이기에 근검절약을 오히려 고수하게 된다. 우리는 제3자가 회사의 이해관계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회사를 존속시키고 창업자의 철학을 지켜가기 위한 장기적 전망이다.4. 인도의 한센병 환자 사역,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병원과 학교를 세워 지역 주민을 돕는 사역, 이스라엘 아랍인과 아프리카 모슬렘을 위한 사역, 독일의 노숙인과 청소년 사역 등을 펼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구호 단체 이름도 ‘말과 행동’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과 함께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이 꼭 필요하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내게 얼마나 많은 신발을 팔았느냐고 묻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는지, 복음을 전파했는지 물으실 것이다. 나는 그 일을 할 뿐이다.

5. 신학을 공부하고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했다. 차라리 의료 선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1945년 초, 전쟁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을 때, 의료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외과수술용 메스와 성경을 갖고 밀림 지역을 찾지 않았다. 신발을 들고 복음을 전한다. 에센, 인도, 아프리카에서도 나는 강단에 올라 예수님에 대해 선포한다. 내가 선교사가 아니라 기업인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가 수월할 때도 많다.

6.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 기업은 가족기업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야만 ‘인간에게 봉사하는’ 자유와 독립성을 지속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실무에서 물러났고 아들 하인리히 오토 다이히만에게 경영을 맡겼다. 그저 대외적으로 처리해야 할 큰일들을 감당할 뿐이다. 인생은 매우 짧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삶 속에 실현시킬 수 있을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 일을 해나갈 것이다.

하인츠-호르스트 다이히만(Heinz-Horst Deichmann):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 ‘다이히만’ 사(社) 최고경영자. 1926년 독일 에센 출생. 13세에 아버지를 여읜 뒤 아버지가 1913년 창업한 신발 가게 일을 도와주며 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하다가 서른 살이 되던 1956년 의사 직을 포기하고 경영에만 매진하여 다이히만을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발을 위한 국민차’로 불리는 다이히만 사는 고객이 원하는 신발을 최소 이윤만 남기고 공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벌 수 있는 한 최대로 벌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절약해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자”라는 신념 아래 수많은 지원 사역을 펼쳐 오고 있다. 인도에 나환자촌을 세워 물질적․정신적․의료적으로 지원하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는 병원과 학교를 건립해 지역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과는 사막을 농지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말과 행동’이라는 구호 단체를 설립하여 독일은 물론 제3세계의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 경영자의 나눔 정신을 이어받은 직원들은 자신의 월급의 일정액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2007년 독일의 일곱 번째 기부자로 이름을 올린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내게 얼마나 많은 신발을 팔았느냐고 묻지 않으실 겁니다. 그분은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는지, 복음을 전파했는지 물으실 겁니다.”
다이히만 사이트 www.deichmann.com/ www.deichmann.de

 

크기 153 × 215 mm

저자

안드레아스 말레사&한나 쇼트

안드레아스 말레사(Andreas Malessa, 1955~ )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82년부터 방송기자로 활동했으며, 1991년 이래 지금까지 쥐트베스트 방송에서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슈투트가르트 인근 호흐도르프에서 살고 있다.

한나 쇼트(Hanna Schott, 1959~ )

음악학, 문학, 신학을 공부했으며, 오랫동안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다. <심리치료와 목회>(Psychotherapie und Seelsorge)의 책임편집자이자 번역가 및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라인란트 지역의 한에서 살고 있다.

박흥식

1990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했고, 1999년 독일 괴팅엔 대학에서 중세 상인길드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거쳐 2003년 8월부터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중세 말기 유럽의 사회경제사, 일상생활사, 교회사 등이며, 최근 몇 년간은 흑사병이 중세 말기 유럽 사회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제국 주교, 수도원 해산, 흑사병이 성직자와 교회에 미친 영향, 루터의 95개조 논제 게시 등 기독교와 관련된 논문들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역서로 크누트 슐츠의 ≪중세 유럽의 코뮌 운동과 시민의 형성≫(길, 2013), 안드레아스 말레사·한나 쇼트의 ≪다이히만 씨, 당신은 왜 부자입니까≫(홍성사, 2011), 재닛 아부-루고드의 ≪유럽패권 이전. 13세기 세계체제≫(공역. 까치, 2006) 등이 있다.

차례

프롤로그: 몇 가지 여쭈어도 될까요? 
01 다이히만 씨, 당신은 어떻게 부자가 되셨나요? 
02 당신은 언제나 일등만 하셨나요? 
03 전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으셨나요?
04 무엇을 공부하셨나요? 
05 어떻게 그토록 성실하실 수 있었나요?
06 크게 성공하려면 가혹해야만 하나요? 
07 차라리 선교사가 되었더라면 더 나으셨을까요? 
08 세계 정복을 원하셨나요? 
09 아프리카에서는 무엇을 하셨나요? 
10 손을 떼실 수 있겠어요? 
에필로그: 하인츠-호르스트 다이히만에 대한 요하네스 라우의 회고 
옮긴이의 말 

서평

○다이히만 소개글: 김평희(KOTRA 함부르크 무역관장)

‘발을 위한 폴크스바겐(국민차)’ 다이히만 신발
독일 도시엔 유난히 신발 판매점이 많다. 뮌헨만 해도 트레터, 토마스 등 유명 브랜드 신발 매장이 많다. 그중 한 곳에 손님이 항상 넘치는 곳이 있다. 바로 다이히만 신발 가게다. 다이히만은 사장 이름을 따서 만든 상표 이름이다. 다이히만 신발은 다른 브랜드와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신발 매장은 도난 방지를 위해 신발 한 짝만 매장에 전시돼 있는데, 이곳에는 한 켤레가 전부 전시되어 있어 자유롭게 신어 볼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하다. 아무리 비싸도 50유로(약 7만 원)가 넘지 않는다. 다른 신발 가게에는 몇 배 넘는 가격의 신발이 즐비하지만 다이히만 신발은 주로 10~50유로대이다. 신사․숙녀용 고급 수요를 위한 특별 제품은 별도 브랜드를 개발해 틈새시장을 메우고 있다. 다이히만 신발은 종류가 다양하고 색상과 디자인에서 패션 감각이 넘친다. 매장과 창고 간 물류 연결이 잘되어 손님이 찾는 물건이 없는 경우가 없다. 구입 물건이 맘에 안 들면 독일 내 1천 개 매장 어디서든지 바로 100퍼센트 환불해 준다. 종업원은 늘 친절하다. 한마디로 품질 좋고 가격 좋고 서비스 만점을 느끼게 해주는 신발 가게다. 

의사 출신 사장 
뒤셀도르프 의대를 졸업한 하인츠-호르스트 대표는 정형외과 의사였다. 1913년 아버지가 창업한 신발 가게를 1954년 어머니가 물려받았고, 당초 의사의 길을 가려고 했던 다이히만 사장은 어머니 일을 틈틈이 돕다 결국 경영을 맡게 됐다. 처음 한 개의 매장에서 시작했으나 창립 50주년 해인 1963년에 16개로 불어났고, 75년에 100개를 돌파했고, 2010년 현재 전 세계 3,000개 매장을 갖고 있다. 종업원 수 2만 8,000명, 독일 신발 시장 20퍼센트 점유, 유럽 최고의 신발 업체로 성장했다. 근로자들이 뽑는 독일의 인기 있는 고용주에 항상 뽑히고, 독일 젊은이들이 한 번 근무해 보고 싶은 회사로 꼽힌다. 경기가 어려워 모든 기업들이 인력 축소를 할 때, 다이히만은 오히려 채용을 늘린다. 

나누기 위해 번다
이 회사의 상품 개발 철학은 ‘발을 위한 폴크스바겐’이다. 즉 발을 위한 국민차 같은 싸고 좋은 신발을 만드는 것이 이 회사의 상품 개발 전략이다. 다이히만의 성공비결은 뭐니뭐니해도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기업철학에 있다. “열심히 벌어 저축하고, 할 수 있는 한 많이 나누자.” 영국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이 말을 다이히만 사장은 경영의 좌표로 삼는다. 신발 하청 공장이 많이 있는 인도에서 수없이 많은 구제 사업을 벌였으며, 나환자 병원, 학교, 모자보건, 직업교육의 형태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10만 명에 달한다. 이 회사가 돕는 나라는 인도뿐이 아니다. 탄자니아에서는 위생시설 건축, 농축산진흥 프로젝트, 청소년 기술지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과는 사막을 농지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본사 소재 독일 에센에서는 노숙자 거주지를 마련해 준다. 독일의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이러한 이웃돕기 활동은 다이히만 사장이 세운 ‘말과 실천/행동’(Wort und Tat)이란 사회재단을 통해 이뤄진다. 경영자의 나누는 삶을 보고 근로자들도 기꺼이 동참한다. 자기 급여에서 이웃돕기 성금으로 일정액 공제를 자율적으로 신청하는 직원이 많다. 종업원의 자발적 구제기금 조성이 그 예이다. 나눔의 삶은 이 회사의 직원을 하나로 묶는, 다시 말해 회사 구성원의 동질성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사회봉사, 사회참여는 이 회사 종업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각 매장엔 이웃돕기 모금함이 있어 고객들도 참여케 한다. 나눔의 삶에 동참하는 동기 부여를 하게 돼 고객들이 또다시 다이히만 매장을 찾게 하는 효과도 있다. 

상품개발, 물류, 고객서비스 완벽 
이 회사는 인간 경영과 함께 현장 경영이 특징이다. 다이히만 사장은 현장에서 직원들과 대화하는 것을 중시한다. 직원들과의 대화는 상품의 문제, 새로운 상품 아이디어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된다. 70이 훨씬 넘은 노사장이지만 신발과 관련된 시장정보, 상품정보 수집엔 여전히 열심이다. 저렴하지만 다이히만 매장의 윈도우가 다양한 기능과 패션의 신발로 늘 가득 찬 이유이기도 하다. 합리적인 물류관리 역시 이 회사의 특징이다. 전 세계 2천 개 매장을 통해 부족하고 남는 재고 정보가 중앙으로 집중되어 부족한 물건은 신속하게 공급된다. 빠른 딜리버리, 글로벌 구매를 통한 비용절감은 고객에게 그대로 혜택으로 돌아간다. 게다가 밝고 친절한 판매원들의 미소는 중요한 경쟁요소로 작용한다. 다이히만 사장은 외부 고객 못지않게 내부 고객, 즉 종업원들의 복지에도 많은 투자를 한다. 
다른 회사에는 없는 지원제도가 많다. 즉 직원 결혼식 때, 은혼식 때, 근속 10년 기념 때 200~500유로(30만~80만 원)의 특별축하금을 지급하고, 퇴직 후에는 법정 연금 외에 월 200유로씩 별도로 받을 수 있도록 개인연금 보험을 가입시켜 준다. 연 200명씩 휴양을 가질 수 있도록 스위스에 휴양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회사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복지 혜택 못지않게, 맑고 따뜻하게 기업을 운영하는 다이히만 사장의 실천의 삶이다. 

윤리 경영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많이 갖고 있는 이 회사는 미성년자 근로, 복역수 근로, 최저임금 이하 근로 등 인간존중 경영원칙과 위배되는 일이 발생치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국제적 공인이 있는 감시기구 및 현지 바잉 에이전트들과 사회기준 준수 협약을 통해 철저한 관리를 한다. 
인도의 경우 공신력 있는 Carl Safety Compliance Corporation(CSCC)이 현지 공장의 사회기준 준수 감시를 한다. 사회기준협약 시행에 있어 현지 법규와 다이히만 내부 윤리경영 지침과 상충될 경우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가령 미성년자 기준이 열네 살이냐 열다섯 살이냐를 놓고 두 기준이 서로 충돌할 경우 더 엄격한 기준, 즉 열다섯 살을 적용한다. 최저임금 역시 현지법에 따르나 기본 원칙은 먹고 근로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수준의 보수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작은 신발 가게에서 유럽 최고의 신발 회사로 성장한 다이히만의 성공 비결은 어쩌면 간단해 보인다. “부지런히 벌어서 많이 나눈다.” 한마디로 뜻이 좋으니 직원들에겐 일하고 싶은 동기부여를, 고객들에게는 사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마흔을 넘은 아들에게 오래전부터 마케팅 및 국제 업무를 모두 넘긴 다이히만 사장의 삶은 단순 소박하다. 성공한 경영인답지 않게 일상이 부산하지 않다. 텔레비전이나 신문도 잘 안 본다. 인간 경영은 많은 것보다는 깊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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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픈 상황을 직면할 때마다 다이히만 박사에게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전화를 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요하네스 라우(전 독일 대통령)

하인츠-호르스트 다이히만은 나치 독재, 독일 패전의 폐허 아래에서 지금의 독일 경제 성장 스토리를 만든 주인공 가운데 한 명입니다. 경건한 개신교 가정의 공동체적 전통과 정신으로 회사의 중심 질서를 세운 그의 이야기는 한국의 브랜드가 세계를 향해 뻗어 가는 데에 좋은 지침이 될 것입니다. -박래창(한국기독실업인회 중앙회장)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500개 중소기업 중 80퍼센트가 독일 업체들입니다. 대개 동네 주민들의 유익과 일자리 창출이 그 시작의 동기입니다. 다이히만의 성공도 그렇습니다. 지역 광부들에게 값싼 신발을 공급하자는 것이 그 동기요, 매일 아침을 기도로 시작한 창업자의 믿음, 그리고 아들에게 씨앗이 되어 이어진 이웃 사랑이 그 성공의 비결일 것입니다. -김평희(KOTRA 함부르크 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