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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1

8,100

발행일  2000.1.20
상세정보  무선 / 320page
ISBN 9788936504762

카테고리:

품절

기독교 문학’의 범위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기독교 신앙을 모든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을 고정 독자로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김성일은 단연 기독교계의 대표적 작가이다.
《땅끝에서 오다》를 비롯하여 기독교 신앙을 소재로 한 탄탄한 추리적 구성의 작품들을 선보였던 그는 지금까지 30권에 가까운 소설을 썼다. 이번에 출간한 《동방》(전5권)은 기독교계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대하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1990년에 낸 소설 《홍수 이후》에서 노아 홍수 이후 동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경로를 추적하면서 한민족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거니와, 《동방》은 그 이후의 역사를 작가의 독특한 사관과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낸 후속편이라 할 만하다.
가야 시대 때 아유타국의 공주를 통해 기독교가 이미 유입되었다는 것은 심심치 않게 지면에 오르내리는 설(說)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가야를 동방 기독교 신앙의 맹주로 보면서 삼국 시대의 역사를 신앙적 갈등의 문제로 풀어 나간다. 기독교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사관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방대한 사료와 치밀한 연대기적 구성, 미스테리의 긴장 등을 동원하여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간다.

무게 445 g
크기 148 × 210 mm

저자

김성일
1940년 생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61년 <현대문학>지에 소설로 등단, 1983년 한국일보에 《땅끝에서 오다》를 연재한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가고 있다. 1985년에 제2회 기독교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세대 겸임교수이며 이태원감리교회(장로)를 섬기고 있다.

[주요 저작]

○소설
대하 역사소설 동방 | 전5권 | A5신 | 각권 310면 내외
땅끝에서 오다 | 믿음의 글들 22 | A5신 | 360면
땅끝으로 가다 | 믿음의 글들 30 | A5신 | 360면
제국과 천국 | 전2권 | 믿음의 글들 44·45 | A5신 | 각권 236면
뒷골목의 전도사 | 믿음의 글들 64 | A5신 | 236면
홍수 이후 | 전4권 | 믿음의 글들 76-79 | A5신 | 각권 288-312면
땅끝의 시계탑 | 전2권 | 믿음의 글들 88·89 | A5신 | 각권 328면
다가오는 소리 | 믿음의 글들 96 | A5신 | 348면
땅끝의 십자가 | 전2권 | 믿음의 글들 121·122 | A5신 | 각권 296면
공중의 학은 알고 있다 | 전2권 | 믿음의 글들 133·134 | A5신 | 각권 412·332면
빛으로 땅끝까지 | 전2권 | 믿음의 글들 145·146 | A5신 | 각권 308·324면
아브라함 | 전2권 | 믿음의 글들 163·164 | A5신 | 각권 312·328면

○간증집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 믿음의 글들 70 | A5신 | 248면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 믿음의 글들 125 | A5신 | 280면

서평

한국일보 2000. 2. 18

한국 문학의 비중 있는 소설가 김성일 씨가 출간한 《동방》은 동방의 역사를 기독교적 시각으로 풀어낸 역작이다. 작가는 학계의 가야시대 아유타국 공주를 통한 한반도 기독교 유입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야를 동방 기독교 신앙의 맹주로, 삼국시대의 역사를 신앙적 갈등의 문제로 파악한다. 방대한 사료를 동원한 치밀한 연대기적 구성에다 미스터리를 가미한 추리소설적 긴장으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

국민일보 2000. 2. 22

소설 《동방》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던 고대사의 비밀이 아직 남아 있는 기록과 무리 없이 연결되면서 확연하게 떠오르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노아의 홍수 이후 동방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이 어떻게 나라를 이루고 그들의 역사와 신앙을 지미기 위해 어떤 몸부림을 쳤는지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기독교보 2000. 2. 26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자랑하는 《동방》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사에 위배되는(?) 작가의 한계 없는 상상력은 여차하면 후유증을 남길지도 모른다. 픽션은 픽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염두에 두고 소설의 세계에 젖어드는 게 필요할 듯.

한국기독공보 2000. 2. 26

소설 《동방》은 하나님의 나라는 칼로써 이루어지지 않고 정한 때가 와야함과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려야 함을 주제로 현대인의 강팍하고 급한 마음에 끈질김과 인내함이 본래의 민족적 근본임을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문화신문. 2000. 3. 15

우리 시대는 소설의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경박한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진지한 문학으로서의 소설이 필요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동방》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출판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

한국성결신문. 2000. 2. 26

“오히려 이 소설로 인해 역사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이 그 동안 얘기되지 않았던 이 동방의 공통된 기억을 찾아가는 운동이 일어나길 바란다.”

이성환(ID: wppman)

기독교소설 그것도 역사 소설이 이렇게 재밌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장난아니게 재미있네요. 전부터 우리나라 역사관에는 이러한 ROUGH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권까지 읽었는데 4, 5권이 기대됩니다.

최강(ID: ironchoi)

우리가 문학 시간에 흔히 들었던 작품들을 요소요소에 적절히 배치한 부분에서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각 권별로 주인공들이 있어서 따로 또 같이 어울리는 구성도 매우 좋았구요. 역사 전반에 걸쳐 쓰여졌기 때문에 다소 어려운 감도 있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재미와 감동이 있는 소설입니다.

조맹영(ID: mycho)

고대의 한 곳으로 자신을 옮겨 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우리 민족의 토속신앙은 무속과 관련지워져 있어 마음한 구석에서는 미신을 통한 민족성의 재구성이 못내 가슴 아렸으나 이제 자신있게 민족의 정서와 기독교를 잇대어 설명할 수 있음에 감회가 더하다.

최일웅(ID: dream)

이 책들은 소설입니다. 그렇지만 좀 다릅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이렇게 재조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습니다. 어려서부터 머리 속에 나도 모르게 자리잡았던 역사에 대한 것들을 깨뜨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재형(ID: hymns)

소설 ‘동방’은 홍수 이후 잊혀진 백성인 한민족을 숨겨진 믿음의 횃불로 묘사하고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항상 가지고 있던 의문(기독교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왔다고 여기고 있는 조선 말기까지 하나님께서는 한민족에게 복음의 빛를 비추지 않으셨다는 오해)들을 일거에 해결하게 될 것이다.

저자 인터뷰

“《홍수이후》새롭게 펼쳐지는 믿음의 대하드라마”

○《아브라함》을 쓰신 이후에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 오래 전부터 구상해 오던 장편소설 《동방》의 집필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한세대학교의 겸임교수로 ‘기독교 문화’에 관한 강의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1학기에는 인류의 문화를 기독교적 사관으로 해석하는 ‘기독교와 인류문화’를, 그리고 2학기에는 현대에 나타나고 있는 복잡한 문화적 현상들을 창조사관으로 대응하기 위한 ‘기독교와 창조사관’을 강의하고 있지요.

○이번에 나올 소설 《동방》은 《홍수 이후》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됩니까?

– 《홍수 이후》에서는 홍수 이후에 인류가 어떻게 분산되었으며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동방으로 오게 되었는가에 대하 이야기를 썼습니다만, 《동방》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타락한 문화와 결별하고 동방에 온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그 신앙을 지켜나갔으며, 그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를 추적해 본 것입니다.

○《동방》에 보면 우리 조상들이 고대로부터 구세주를 기다려 왔고 삼국시대에 이미 기독교가 전래되었던 것으로 쓰셨는데, 그 후에 왜 삼국의 역사가 모두 불교 일색으로 바뀌게 되었습니까?

– 우리 조상들의 전통은 경천애인(敬天愛人), 즉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평화의 정신이었습니다. 고조선의 정부에 주병(主兵)의 부서가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이지요. 하나님을 섬기며 오랫동안 구세주를 기다려 온 삼국에는 가야를 통해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왔고, 또 페르시아의 선교사들이 당나라에 전했던 경교(景敎)의 영향도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중국 쪽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위협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자위태세를 갖추어야 했는데, 신앙심이 깊은 신복들의 반대로 군사력의 강화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호국적인 무력을 인정하는 불교를 도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후한이 불교를 들여온 이후 고구려에서는 300년 만에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다시 신라에 들어가기까지는 155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당시 왕의 의견마저 거부했던 신복들의 반대가 얼마나 거셌던가를 짐작할 수 있지요.

○역사를 소설로 풀었을 때 유익한 잠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아시다시피 역사의 기록은 철저하게 문헌적이고 고고학적인 검증을 거쳐서 객관적으로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자료들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 편향적으로 기록되거나 유실된 것이 너무나 많고 이런 것들을 다 바로잡으려면 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작가가 산재해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문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과거의 상황들을 추리해 나가면, 모순투성이의 자료 속에서 균형 잡힌 우리의 정체를 찾아내는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저의 소설 《동방》이 답답한 안개 속에서 감당해야할 우리의 역할을 찾아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담/편집부(쿰회보 99.11)

추가정보

[줄거리]

《동방》은 각 권마다 각기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은 500년 가야 역사에 출현하는 다섯 명의 인물들로서, 이들을 중심으로 광활한 동방의 역사가 끊기지 않고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진다.

제1권 천명에는 노아의 홍수 이후 동방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이 어떻게 나라를 이루고, 그들의 역사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어떤 몸부림을 쳤는지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제2권 풍운에서는 기독교 국가이자 한때 동방의 맹주로 자리매김을 한 가야를 중심으로 주변국의 정세가, 제3권 배도에서는 담덕(광개토왕)의 등장으로 인한 대세의 변화와 천경(天經) 분실사건이 한반도에 미친 엄청난 파장이 숨가쁘게 전개된다. 제4권 난세에서는 신라 원종(법흥왕)이 불교를 도입하려고 할 때 신복들이 결사 반대했던 사연을 들을 수 있다. 제5권 여명에 이르러서는 가야 왕실의 후예 김유신의 일생과 승전보에 이어 그의 죽음을 유려한 문체로 적고 있으며, 당나라와 한반도의 팽팽한 대립을 실감할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김유신의 아들들의 활동상에 이어, 변해 가는 시대를 안타까워하며 새 시대의 여명을 기다리는 젊은이들의 고뇌가 충만한 가운데 소설은 끝을 맺는다

[특징]

수백 명에 이르는 인물들과 들어 보지 못한 지명들이 무수히 등장하는 까닭에 책의 앞부분에는 각권의 배경과 주요 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각권의 배경은 이 문서 마지막 장에 모아 실었다). 이것을 참고한다면, 독자들은 소설로 읽는 역사에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편소설 《동방》은 단어를 쓸 때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 소설의 실감을 위해 당시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김포는 검포로, 남경은 건업 등으로 표기했으며, 제왕들이 죽은 뒤에 붙여 주는 시호를 사용하지 않고 본명을 사용하여 광개토왕은 담덕으로, 한의 무제는 유철 등으로 표기했다. 그리고 우리 역사 대부분이 한자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감안하여 상당수의 인명과 지명에는 한자를 병기하여 그 유래와 숨은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배경]

제1부

황하의 상류 지역에 살고 있던 하화족을 지도하기 위해 아사달에서 황하의 하류 지역으로 파견되었던 동이족 소호(少昊)의 자손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지도자들의 독선적인 횡포 때문에 하화족의 반발을 사게 된다. 동이를 대적했던 진(秦)이 멸망하고, 산동의 동이를 압제하며 요서 지역에 진출하여 동이의 본국인 조선까지 위협했던 한(漢)의 시대에 황실의 외척인 왕망이 동방 3국의 지지를 업고 혁명을 일으켰으나 그의 배반으로 다시 천하는 어지러워졌다. 산동의 동이족은 배반한 왕망을 징계하기 위해 적미군(赤眉軍)의 봉기를 주도했으나 비류들과 손을 잡고 일어난 녹림군(綠林軍) 유수의 간계로 AD 27년에 붕괴된다. 유수에게 다시 큰 박해를 당하게 된 동이의 한 가족이 바다를 건너 한반도에 도착하면서 제1부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제2부

서쪽에서 들어오는 하화의 위협 때문에 고구려와 백제와 사로국은 72 거수국을 셋으로 나누어 왕국의 체제를 갖추었다. 고구려는 하북 지역에, 백제는 산동 지역에 담수(擔帥)를 파견하였고, 가야 연맹은 야철과 조선 기술로 동방의 상권과 바다를 완전히 장악하여 요서와 산동 지역 그리고 왜국에까지 상관을 설치했다. 그러나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후한의 황실이 무너졌고, 다시 그 땅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조조와 손권과 유비는 동방의 군장들을 대표하는 가야 연맹의 거등왕(居登王)에게 제각기 자신들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에 거등왕은 AD 218년 세 지도자의 자질과 그들이 세운 나라의 신뢰성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왜국에 나가 있던 둘째 아들 선견에게 급히 귀국 명령을 내리고 그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긴다.

제3부

후한의 명제(明帝) 유장이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들여왔던 부도교가 300년이 지나 고구려에 도입됨으로써 동방의 모든 나라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조조의 위(魏)를 찬탈한 사마씨의 진(晉)이 병들어 가자 동이에 속하는 선비(鮮卑)의 각부가 중국 대륙을 나누어 점거하고 있을 때 동방 각국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던 고구려가 마침내 부도교를 도입했고, 더구나 고구려 왕실에 영웅 담덕(談德) 즉 광개토왕이 나타나 그들을 대적하던 주변의 나라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그 때에 갑곶섬에 보관되어 있던 천경과 신지유기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므로 가야 연맹의 이품왕은 AD 399년 봄에 대아간의 딸 복희(福姬)를 연(燕)의 용성에 보내서 그 곳에 가 있는 지루 왕자에게 고구려에 들어가서 천경과 신지유기의 행방을 찾아 내도록 지시한다.

제4부

고구려가 부도교를 도입한 지 155년 후, 신라의 법흥왕 원종(原宗)은 중신들의 반대를 제압하여 부도교의 공행을 결정하고 동방 3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금관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킨다. 이에 열두 가야 중의 하나였던 고령국의 이뇌왕이 새로운 맹주로 나서서 가야의 재건을 추진하나 정체 불명의 괴한들에 의해 가야의 대표들이 습격당하는 등 처음부터 강력한 저지를 당하게 된다. 법흥왕의 뒤를 이은 진흥왕 삼맥(三麥)은 AD 551년에 가야의 악사장 우륵으로 하여금 낭성에서 악회를 열게 하여 동방의 새 지도자로 나설 결심을 선포하고, 이뇌왕은 산동 지역과 왜국에 큰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백제의 성왕과 협력을 시도한다. 대륙에서는 대제국 북위(北魏)를 건설했던 선비족이 분열하여 서위와 동위로 갈라지자 젊은 무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된다.

제5부

가야 왕실의 후예로 신라의 병권을 장악한 유신은 당(唐) 태종 세민(世民)과의 협력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하여 삼국을 통일하려고 하나 갑작스러운 세민의 죽음과 무후(武后)의 등장으로 국면은 점점 변질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백제를 점령한 당이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그 영토를 강점하려 할 뿐만 아니라 신라까지도 당의 세력하에 두려 하고, 고구려를 친 후에도 그런 정책이 계속되자 신라의 군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당군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AD 672년 신라군이 장수들 간의 불화로 말미암아 석문(石門)의 전투에서 대패하자 태대각간 유신은 싸움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차남 원술을 크게 꾸짖으며 가문에서 축출한다. 마침내 유신이 죽자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는 물론이고 그들의 본국마저 당에게 점령당할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강연회 스케치]

“그들은 ‘동방’의 기억을 찾으러 모였다”

-《동방》 강연회 성황리에 끝나

“오늘 여기 무슨 일 있어요?”

“여기가 ‘동방’ 강연회 하는 곳 맞나요?”

지난 2월 18일 금요일 오후 2시 10분 전. 종로5가에 있는 한국 교회 100주년기념관 1층에는 때 아닌 인파로 북적거렸다. 행사 시작 시간 30분 전부터 속속 당도하기 시작한 참석자들은 2시에 강연회가 시작될 무렵엔 이미 빈 자리를 거의 다 메우고 있었다.

민족이동설에서 시작한 김성일 선생의 강연은 열을 더해 갔고, 강연장은 달아 올랐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50분을 더 넘겨 강연은 끝났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리를 지킨 청중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 참석자들이 저자의 강연을 들으며 메모한 질문지를 수거하여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곧 이어 참석자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사은품 추첨-이 있었고, 모두 다섯 명의 참석자에게 김성일 선생의 《동방》 1질씩이 사은품으로 돌아갔다. 강연회 순서가 다 끝난 후, 강연회장 입구에서는 저자 사인회가 있었고 저마다 《동방》을 손에 든 참석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 날 강연회는 ‘작품 설명회’의 성격을 띠고 열린 자리였다. 따라서 저자가 《동방》을 구상한 계기와 집필 과정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동방》의 바탕이 되는 한반도 고대사를 저자 특유의 상상력과 신앙으로 추적한 결과에 대한 방대한 강의가 펼쳐졌다. 강연은 OHP와 슬라이드를 동원한 사진 및 사료들을 제시해 가며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은 저자의 강연을 들으며,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자의 강연에 탄성을 쏟아내곤 했다. 다만 강연이 길어져 3시간이 가까워지자, 몇몇 참석자들은 자리를 뜨거나 지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이 날 강연을 듣고 질문지에 남긴 참석자들의 반응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저자의 강연에 대한 찬사다. 즉 저자의 자료 준비와 해박한 설명에 크게 도전받았으며 무척이나 흥미로운 자리였다는 반응이다.

“저자의 방대하고 해박한 설득력 있는 내용과 추리에 대단히 감동받았습니다.” (김순철/성동구 하왕2동)

“폐쇄된 공간에 사는 동두천 학생들(젊은이들)을 위해 (강의하러) 오실 계획은 없는지요?” (유평숙/동두천시 생연동)

“역사를 성경적 시각으로 쓴 것에 대해 깊은 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반종윤/춘천시 석사동)

둘째, 이와는 달리 저자의 강연에 의문과 문제제기를 한 반응도 있었다.

“공자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말씀은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김성구/강동구 길2동)

“단일 민족의 구성과정이 모호합니다.” (신영철/마포구 망원동)

“동이족의 역사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구영선/대구시 동구 용계동)

참석자들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군산, 충남 홍성, 대구, 대전, 평택, 동두천, 춘천 등 지방에서 일부러 올라온 열혈 독자들도 적잖아 ‘김성일 마니아’층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날 강연회에는 모두 225명이 참석하여 100주년 기념관 1층 소강당을 꽉 메웠고, 저자의 저서를 다양하게 시각적 전시물로 꾸며 놓아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전체 진행 시간이 길어져 질의응답 시간이 너무 짧아 참석자들과 저자의 충분한 질의응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