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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야 변한다

7,200

발행일 2004.9.24.
상세정보 / 288page
ISBN 978-89-365-0668-4

카테고리:

품절

한국 교회와 천만 성도 변혁을 열망하는 어느 평신도 교사의 쓴소리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소통’ 중인가?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삼창’으로 뜨거웠던 60-70년대 부흥회를 기억하는가.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한반도 전역을 강타했던 한국형 전도 집회인 ‘부흥성회’를 통해 한국 교회는 경제 발전에 버금가는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 결과로 80년대에 대형 교회라는 새로운 형태가 자리 잡았으나…… 부흥회의 뒷심이 부족했던 탓일까. 90년대 이후로 한국 교회는 성장을 멈추고 교인들의 수평이동만 있을 뿐이다. 이런 정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일한으로 한국 교회가 선택한 것은 바로 ‘세련된 교회’ 컨셉이다. 화려한 조명, 완벽한 음향 시설,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성가대, 짧고 세련된 설교, 경력 화려한 목회자…….

그러나 그 결과로 남은 것은 무엇인가. 겉으로는 화려하나 안으로는 세상 못지않게 썩은 정치판과 교회 세습과 목회자들의 성적 타락. 쉬쉬하며 덮어 두는 것도 한계를 벗어나 어느새 한국 교회는 일반 언론에서까지 매스를 들이대는 ‘뜨거운 감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여 뒤늦게 자성의 목소리들이 여기저기 들려오고 그야말로 한국 교회의 부흥이 아닌 ‘부활’을 꿈꾸는 이들의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이번엔 또 어떤 컨셉으로 바꿔볼지 고민하는가. 여기 그 컨셉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변해야 변한다》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계속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당신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교회든 신앙이든 겉모양 치장하기에만 바빠, 정작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저 멀리 내팽개쳐 버린 한국 교회를 향해 하나님이 던지시는 질문인 것이다. ‘너의 열심은 과연 무엇을 위함이냐.’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화려하나 속은 썩어 가고 있는 한국 교회를 향해, 저자가 제시하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절대적인 물음이자 해답은 이것이다. ‘하나님과의 소통.’ 현재 한국 교회는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는가. 하나님과 소통이 막힌 채 버둥대는 개혁이나 변혁은 모두 헛것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변하라’고 외칠 게 아니라 바로 나부터, 내 신앙부터 변해야 교회가 변하고, 교회가 변해야 진정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설파한다. 조용하지만 단오하게 그리고 간곡하게 던져지는 그 질문 앞에서 고민하며 이 책을 읽어 나갈 때,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교회 개혁의 첫 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무게 418 g

저자

유성오
1960년 서울 출생. 1979년 덕수상고 졸업 후 대림산업에서 3개월간 근무했다. 1981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85년 졸업, 같은 해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이후 예일여고, 정릉여상, 대일고, 대일외고를 거쳐 휘문고등학교 도덕·사상 담당 교사로 재직 중이다.

차례

1부_진리를 찾아서

2부_교회여, 하나님의 교회여

3부_마음으로부터의 혁명

4부_세상을 향하여

책속에서

하나님은 죽었다. 왜? 교회가 하나님을 죽였기 때문이다. 부의 축적에 몰두하는 교회, 크고 화려한 건물 짓기를 경쟁하는 교회, 담임 목사의 성적 스캔들을 은폐하는 교회, 목사를 높이고 신성시하고 우상화하는 교회, 교회를 값나가는 비품으로 치장하고 목사를 잘 대접해야 복 받는다고 외치는 교회.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본다면 니체는 무어라 말할까. “아, 신은 살아 계시군요. 제가 실언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조소에 찬 눈빛으로 “자네는 아직도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모양이군”이라고 빈정대며 혀를 찰 것인가.

하나님은 죽었다. 그 살해범은 니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오만과 거짓과 탐욕에 의해 무시당하고 있다. 세상일에만 욕심을 내는 교회가 입으로만 하나님의 영광을 읊조리면서 되풀이하는 거짓된 행동들 때문에 하나님은 죽었다.

그러나 실상 죽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다. 하나님은 교회가 없어도 상관없는 분이시지만 하나님 없는 교회는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죽었다. 하나님을 죽인 교회는 더 이상 살아 있는 교회가 아니다.

이 책은 교회가 살해한 하나님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쓰여졌다. 돈과 권력으로 치장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내다보고 눈물지으셨던 예수께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참모습을 되살려 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이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다. 제사장이나 율법학자의 입술이 아니라 나사렛의 평범한 청년 목수의 삶 속에 살아 계시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평범한 이들의 삶 속에 살아 계심을 믿으며, 이것이야말로 돈과 권력에 중독되어 화석화되어 버린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는 희망의 불씨라 생각하기에 나는 교회의 미래에 희망을 품는다. -‘머리글’에서

서평

[추천의 글]

“믿는 바를 넘어서”

미국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그곳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다가 몇 해 전에 이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제일 먼저 들른 곳이 서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우리말로 글을 쓰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고 또 한국 역사, 그 가운데서 ‘기독교 역사’를 전공 분야로 하는 나는 당연히 역사와 기독교 관련 서가 앞에 섰습니다. 그 이후에도 한 달에 한두 차례 서점을 들러 역사와 종교 관련 서적들을 살펴봅니다.

서점을 다니면서 저는 한국 기독교의 위기를 느끼게 되고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니 우리의 기독교 공동체에 분노를 품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관련 서적의 대부분은 치열하게 진리를 찾는 학술서도 아니고 말씀에 터한 깊은 명상과 사색으로 쓰인 글들도 아니었습니다. 진실로 ‘진부한’, 설교라는 이름으로 낸 책들이었습니다. 목사들이 책을 출판했다고 교인들에게 자랑하려고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책을 위한 책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일반 사람들은 물론 기독교인들조차도 이런 책들을 스쳐 지나갑니다. 이들은 불교 스님들이나 천주교 수녀님들의 글을 찾습니다. 그만큼 기독교 관련 서적은 이들의 지적 궁핍함을 채워 주지도 못하고 영적 공허함을 메워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에 홍성사에서 유성오의 ‘변해야 변한다’ 원고를 보내 주었습니다. 나는 이 원고를 읽으며 아직도 우리 기독교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 공동체에 가진 나의 분노도 가라앉고 우울증도 사라졌습니다. 이 책이야말로 ‘말씀’에 터한 치열한 지적 고민, 그리고 깊은 명상과 사색으로 걸러진 글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진리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적셔 주고 지적으로 궁핍하고 영적으로 곤궁한 마음을 채워 주는 글입니다. 우리 기독교 공동체에 이러한 지성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책은 나의 생각, 나의 이념, 나의 신학, 나의 습관이라는 ‘좁은 믿음’에 갇혀 노예가 된 이들에게 그 ‘좁은 믿음’을 넘어서 ‘더 넓고 높은 믿음’으로 향하라는 ‘엑소더스’(해방)의 글입니다. ‘내가 믿는 바’를 절대화시키는 우리 기독교 공동체를 향해 질러 대는 외로운 광야의 소리입니다. ‘내가 믿는 바’를 우상화하는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을 향해 내려치는 모세의 분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것’을 가르쳐야 하는 교회가 ‘세상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고발하는 교회 개혁의 깃발입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만의 ‘끼리끼리의 공동체’가 된 우리를 향해 그 울타리를 넘어 ‘낯선 이웃들’을 향해 나아가라는 참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으스대는 자리에 올라서는 것, 뽐내고 사는 것,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가르치는 이기적 기복신앙의 무리가 되어 버린 우리 교회를 향해 토해 내는 질타입니다. 이 땅의 기독 공동체를 위해 드리는 간절한 기도요 회개의 눈물입니다.

한국 교회를 향한 이 사회의 시각이 곱지 않은 요즈음, 안에서 스스로 옷매무새를 고쳐 잡자는 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화두로 모두들 고민하고 있는 이때에 다른 사람들이 읽기 전에 우리 교회 지도자들, 기독교 지성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 기독교 지성이라는 이들이 변해야 우리 기독교인들도, 우리 교회도, 그리고 우리 사회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글/박정신(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뉴스앤조이 편집인)

추천글

[언론사 기자들의 추천평]

김지홍 : <기독신문> 문화담당 기자
“정말 이상한 일이다. 저자는 신학자도, 목회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이다. 한데, 그런 그가 말하는 성경 이야기가 가슴을 두드린다. 깊이 공감하고, 많이 고민하게 만든다. 의아해하다가 무릎을 쳤다. 그의 성경 이야기는 다름 아닌 우리 일상에 뿌리내리고 있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여기, 서로 다투고 미워하며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러면서도 사랑하고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한 구석에서 희망처럼 보듬어 낸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선이 ‘틀에 갇힌’ 오늘의 한국 교회에 서늘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데에 비로소 공감하게 되었다.”

박명철 : <기독교사상> 기자
“한국 교회는 어느 목사님의 표현처럼 ‘예수와 그리스도가 싸우는 오케이목장’ 같은 곳인지 모르겠다. 교단의 명칭을 잘 살펴보면 이런 표현이 이해가 된다. 이 말은 곧 진보와 보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고, 그 골이 의외로 깊음을 의미한다. 이쪽은 저쪽을 모르고 저쪽은 이쪽을 모른다. 급기야 서로 무관심이다. 유성오의 글은 드물게도 이 둘을 아우른다. 그 뿌리는 성경에 제대로 뻗어 있으며, 군더더기 없는 글은 한국 교회에 대한 애정으로 촉촉이 젖어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시대 이 땅의 성도로서 지녀야 할 아름다운 지성을 발견하였다.”

양희송 : <복음과 상황> 편집장
“좋은 그리스도인은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저 들고만 있는 사람이 3급이고 번갈아 읽는 사람이 2급이라면, 성경을 보는데 세상이 읽히고 세상 사는데 성경이 배어 나오는 게 일급이다. 일급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태형 : <국민일보> 종교부 기자
“유성오의 글 속에는 화석화된 한국 교회에 가해지는 준열한 비판과 함께 영원과 본질을 향한 구도의 숨결이 있다. 사실 한국 교회 안에 상식이란 이름으로 가해지는 비상식이 얼마나 많은가. 비상식의 부조리에 처한 한국 교회의 가슴 아픈 현실 속에서 저자는 ‘교회여, 하나님의 교회여!’라며 절규한다. 그의 절규는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절규다.”

추가정보

[편집자 노트]

요한복음과 함께 읽기를 권한다!

《변해야 변한다》는 크게 4부로 나뉘어, 각 부마다 십여 개의 칼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각 칼럼은 요한복음의 성경구절로 시작되는데 특별히 예수의 공생애 마지막 부분을 중점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칼럼들은 ‘한국 교회 변혁’이라는 주제를 이천 년 전 예수가 몸소 보여 주신 참교회의 모습에 차례차례 투과시키면서 잘못들을 지적하고 나아갈 대안과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원고가 처음 디자인되었을 때, 각 칼럼의 성경구절들이 제목 바로 밑에 작게 구성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세련되어 보였지만, 자칫하다간 성경구절이 읽히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고심과 회의 끝에 세련된 디자인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조금은 덜 세련되더라도 성경구절이 꼭 읽힐 수 있는 디자인으로 수정하였다. 이것은 각 칼럼의 내용이 성경구절과 함께 어우러질 때 내용의 완성도를 100퍼센트로 끌어올릴 수 있음에 대한 편집자의 확신 때문이었다.

완성도가 높은 책이란, 독자가 저자의 의도에 부합되게 행동하거나 행하고자 결심하게 되는 책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변해야 변한다》는 100퍼센트 완성도를 지닌 책이다. 성경구절과 함께 칼럼을 읽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성경을 향하고, 성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의 소통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으로 성경을 펴고 억지로 몇 장 읽어 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소통이 무엇인지 깨닫는 지혜를 얻게 된다.

한국 교회 변혁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되기를 열망하는 모든 이들에게《변해야 변한다》는 성경으로 통하는 문이 되어 줄 것이다.

-글/한수경(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