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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빈 들에 찾아오시는 하나님

11,200

정한조
2020.11.10. 
97889365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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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곳, 고독한 곳, 황망한 곳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이 부족한 곳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곳

인생의 ‘빈 들’에 선 이들에게
누가복음이 전하는 소망의 메시지

우물만을 찾던 삶에서 돌이켜
다시 하나님께로 이끄는 책!

가고 가도 끝이 없는 메마른 땅이 펼쳐질 때가 있다. 이 고비를 넘기면 반드시 우물이 있겠지 기대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네 삶은 또 다른 메마른 땅을 만나곤 한다. 이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곳,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그곳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진정한 필요는 잠시 갈증을 채워 줄 우물이 아니라 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었음을…….
오늘, 인생의 ‘빈 들’에 서 있는 이들에게 누가복음에서 찾은 소망의 메시지 《빈 들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전한다. 100주년기념교회 정한조 목사(공동담임목사, 영성총괄)가 5년간 설교한 누가복음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신약이 열리는 시대적 상황은 암담하였다. 인간의 눈에는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았다. 깊은 좌절감이 드리워진 그때에 하나님은 먼저 가셔서 놀라운 일을 예비하고 계셨다. 바로 소망 없는 인간을 위해 구원의 길을 여시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할 인물들을 택하시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이들의 행적은 당시로서는 절대 이해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예수님의 최고 파트너들이 되었다.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인물들의 삶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랐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항의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하나님의 행하심에 문득 의문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 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로 삼기 위해서 허락하신 ‘빈 들’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인다면 우리의 삶의 의미와 태도는 달라질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소외된 자 없는,
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었던 사마리아 사람, 세리장 삭개오, 독자를 잃은 나인성 과부,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은 후 향유를 부은 여인, 마리아와 마르다. 모두 누가복음에만 실려 있는 내용들이다.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다루지 않은 이방인이나 소외 계층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게다가 누가가 의사였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치료에 관한 부분이 누가복음에는 많이 있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허리를 펴지 못하고 살았던 여인을 고쳐 주신 일, 수종병(水腫病)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고쳐 주신 일, 한센병 환자 열 명을 고쳐 주신 일은 모두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누가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일들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단지 의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아주 섬세하게 주님의 사역을 살폈으며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이자 주치의이기도 했던 누가는 대부분의 동역자가 바울의 곁을 떠난 때, 그 깊은 감옥에서 바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묵묵히 지켜 주었다. 바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도 아니었고, 유대인도 아니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 중에 유일하게 유대인이 아닌 누가는 이방인이나 소외 계층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이방인을 비롯하여 세리, 병자, 죄인,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

정한조

차례

목차

서문_소외된 자 없는, 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1.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2. 데오빌로 각하에게
3. 유대 왕 헤롯 때에
4.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5.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6. 밖에서 기도하더니
7.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8.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9.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10.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11. 나를 돌보시는 날에
12. 은혜를 받은 자여
13.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14.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15.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16. 내 주의 어머니가
17.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I
18.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Ⅱ
19.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Ⅲ
20. 그 이름을 요한이라
21.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22. 돌보사 속량하시며
23.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24. 긍휼로 인함이라
25. 심령이 강하여지며
26. 빈 들에 있으니라

책속에서

P. 30~31
누가는 예수께서 직접 택하신 열두 사도들 중에 속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어떻게 이 복음서를 기록할 수 있었겠습니까?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것”을 기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격자였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낳았던 마리아,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 열두 사도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70명의 제자들, 또한 예수님이 만나 주셨던 사람들 등일 것입니다. 누가가 목격자들의 말을 근거로 하여 기록했다는 것은 자신이 써 내려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상상의 산물이거나 추론의 결과가 아니라 이 땅의 역사 속에 일어났던 사건 그대로라는 의미입니다.  
P. 115
요한이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철저히 드려져야 했고, 성령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아야 했던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돌아오게 하다’는 ‘회개하다’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으로, 세속적 가치관이라는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삶에서 그 물결을 거슬러 영원을 향해 헤엄쳐 가는 물고기와 같은 삶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최고로 여기고 욕망을 채우려고 발버둥 치던 삶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소중히 여기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걸음을 걷는 삶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P. 123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 엘리야의 영성과 내적인 힘을 갖고서 주님보다 먼저 오는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 요한을 선발대로 그리스도보다 먼저 보내어서,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태어나던 때와 엘리야 선지자가 사역했던 때는 모두 영적으로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요한이 태어나던 때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400년 동안 선지자가 등장하지 않아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아련하게 여기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가 사역했던 때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의 우상숭배 정책에 현혹되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거의 잊고 있었습니다.  
P. 183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마리아에게 들려진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일이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이것을 마리아가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뼛속 마디마디까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직업을 가진 목수와 정혼한 여인에 불과하기에, 자신에게는 하나님이 특별한 일을 위해서 택하실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P. 211~212
‘Let It Be’는 ‘순리에 맡기다’, ‘그대로 두게 하다’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모든 문제를 렛잇비 하기만 하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겠습니까? 인생이 꼬일 때로 꼬여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인생이 깊은 계곡 속에 빠져 있는 것 같고 어떻게 벗어날지 알 수 없을 때, 인생길이 칠흑같이 깊은 터널 속을 걷는 것 같아 언제쯤 터널이 끝날지 알 수 없을 때에 렛잇비 하면(순리에 맡겨 두면) 저절로 해결이 되겠습니까? 또 쾌락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 세속적 가치관에 빠져 성공이라는 목표만 붙잡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불의를 행하던 삶이 잘못임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렛잇비 하면(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면) 새 삶이 살아지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된다는 엄청난 말을 들은 ‘Mother Mary’는 렛잇비, “그대로 두지 뭐, 순리대로 맡기지 뭐”라고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말한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를 ESV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놓아두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순리에 나를 맡기겠습니다”(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첩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렛잇비’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렛잇비’ 했습니다. 그 마리아를 통해 영원 전부터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건져 주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P. 307~308
우리의 지나온 삶이 야곱의 고백처럼 참 험악한 세월이었을지라도, 또 요셉의 종살이, 옥살이처럼 파란만장하게 여겨질지라도, 더 나아가 외아들을 잃은 나인성 과부처럼 이제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여겨질지라도, 또 어쩌면 요셉의 인생 후반처럼 밋밋하고 평범하였을지라도 우리가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 있게 되고, 우리가 영생에 잇대어진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생의 순간순간마다 방문하셔서 우리 인생의 문을 두드려 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P. 351~352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내 이름이 유명해졌더라”(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라는 시인 바이런(George G. Byron)의 말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유명하게 되는 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인간의 삶은 점이 아니라 선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삶의 단절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즉 ‘오늘의 나’는 ‘어제 나의 선택과 과정의 결과’이고, ‘내일의 나’는 ‘오늘 나의 삶의 선택과 과정’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유명하게 된다는 것은 그때까지의 과정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중략)
이 세상에 무엇이든지 하루아침에 그리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심는 대로 거둠이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요한에게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의 기간이 필요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나타나는 날까지’라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간은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점입니다.  
P. 356
빈 들의 구체적인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지만, 이 ‘빈 들’에 대한 공통적인 의견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빈 들’로 번역된 헬라어 ‘에레모이스’는 ‘버림받은 곳’, ‘고독한 곳’, ‘황막한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빈 들은 우리의 삶에 정상적으로 필요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등이 부족한 곳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곳,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빈 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