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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7,470

발행일 1994.8.20
상세정보 280page
ISBN 9788936501259

품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바울의 이 한마디는 훗날에 두고두고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로 시작하는 김성일의 두번째 신앙고백서이다. 1988년부터 6년 동안의 세월 동안 고통과 절망의 골짜기로 몰아넣으시며 연단하신 내용을 적고 있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참으신 이유가 사랑이었음을 밝히고 싶었고, ‘자유’라는 기업의 새로운 지평으로 진입하기 위해 전신갑주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

김성일
1940년 생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61년 <현대문학>지에 소설로 등단, 1983년 한국일보에 《땅끝에서 오다》를 연재한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가고 있다. 1985년에 제2회 기독교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세대 겸임교수이며 이태원감리교회(장로)를 섬기고 있다.

[주요 저작]

○소설
대하 역사소설 동방 | 전5권 | A5신 | 각권 310면 내외
땅끝에서 오다 | 믿음의 글들 22 | A5신 | 360면
땅끝으로 가다 | 믿음의 글들 30 | A5신 | 360면
제국과 천국 | 전2권 | 믿음의 글들 44·45 | A5신 | 각권 236면
뒷골목의 전도사 | 믿음의 글들 64 | A5신 | 236면
홍수 이후 | 전4권 | 믿음의 글들 76-79 | A5신 | 각권 288-312면
땅끝의 시계탑 | 전2권 | 믿음의 글들 88·89 | A5신 | 각권 328면
다가오는 소리 | 믿음의 글들 96 | A5신 | 348면
땅끝의 십자가 | 전2권 | 믿음의 글들 121·122 | A5신 | 각권 296면
공중의 학은 알고 있다 | 전2권 | 믿음의 글들 133·134 | A5신 | 각권 412·332면
빛으로 땅끝까지 | 전2권 | 믿음의 글들 145·146 | A5신 | 각권 308·324면
아브라함 | 전2권 | 믿음의 글들 163·164 | A5신 | 각권 312·328면

○간증집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 믿음의 글들 70 | A5신 | 248면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 믿음의 글들 125 | A5신 | 280

차례

책머리에

아침이 오기 전에 / 잃어버린 불기둥 / 광야의 바람소리 / 땅끝의 시계탑 / 바위 틈에 / 가두시고 / 건너가게 하소서 / 가시덤불 속으로 / 물과 불을 지날 때 / 땅끝의 십자가 / 사랑은 오래 참고

서평

[독자의 글]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를 읽고”

김성일 장로님의 첫 번 간증집(믿음의 글들 70번) 여러 권을 구입하여 사용했다. 그 분의 어떤 책보다 위력이 컸던 책.
이번 두 번째 간증집은 서론부터 내게 위로가 됐다.
주님의 특혜를 받은 이분도 긴 어두운 터널이 있었구나!
가정이 단출하고 일이 적어 에너지를 교회 일에 쏟았던 여러 해. 병약한 몸으로 전도, 설교, 기도, 봉사 등 많은 걸 했던 시간들이었다.
94년 4월 구내염(입병)이 심해지며 차츰 소화불량에 두통, 치통, 가슴의 뜨끔거리는 증세까지 겹치며 실로 불안과 공포의 나날들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딸 경(卿)은 직장서 사회공포증에 시달리고 나는 병마에 짓밟히는 짐승 같은 삶이 연속되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새벽기도는 계속되었고 기도는 할 수 없었지만 그 분량들은 감당해 내었다. 어쩌면 작가의 그 심장병을 그대로 겪었던지.
아파서 천천히 걷는 걸 주님께선 ‘너 데이트할 때 빨리 걷는 사람 보았느냐?’ 또 출애굽기 33장의 그 기막힌(늘 부러웠던) 모세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고난으로 표현한 글들은 주께서 내게 주시는 응답이셨다.
고난이 올 땐 한꺼번에 오며 그분은 침묵하신다.
그 역경의 심각성도 점점 커지기에 버림받은 고아 같은 두려움이 나를 지치게 했다 세상 일하다 아팠다면 회개라도 한다지만 그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루 기도 시간을 세 시간까지 끌어올렸던 높은 영적 성장의 나래를 활짝 펴리라 기대했던 것이 무너지며 휘몰아친 삭풍! “오직 예수!”만으로 버티던 내가 양약, 한약에 운동까지 다니게 되다니 이 무슨 뜻인가?
병마 20여 년이면 되었지 얼마나 더 연단 필요하시단 말인가? 이러다 끝나는 거 아닌가?
그러나 고난은 그분이 나를 덮으시는 순간들? 과연 그런 것?
모든 것은 그분의 주권이다. ‘희락의 영’ 받은 기뻐하는 신자가 있는가 하면 ‘탄식의 영’ 받은 나는 예레미아 같이 울며 기도드리며 하루만에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나에게는 적절한 말씀이었다. 작가의 마음 졸이는 긴장의 나날들. 늘 하나님을 의식하는 신자로서의 강박관념. 하나님께 따지는 듯한 모습. 그리고 그분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자신 등은 고난 중에서만이 믿음을 볼 수 있다는 결론을 굳게 해 주었다.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잠 24:10).
성도들이여!
무서운 길에 들어선 십자가 군병들이여!
신자에겐 의외의 고난이 많다. 그냥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기보다는 말씀을 크게 선포하며 대적하면 효과가 크다. 외우지 못하면 써서 갖고 다니며 기도 중에 사용하라. 나도 가장 심각한 그 ‘가슴으로부터 오르락내리락’하는 실체는 말씀으로 싸워 이겨내었다.
혼자 어려우면 기도의 용사들을 초청하여 함께 싸워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글/김경(쿰회원, 쿰회보 94.10)

추가정보

[저자의 말]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이후 수년간 고통과 절망의 골짜기에서 받은 연단을 담았다.“나의 이 작은 고백이 지금도 영문 모른 채 하나님의 호된 연단 과정 속에 들어가 계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 수 있다면 그에게 더 큰 기쁨이 없겠다.” -‘책머리에’ 중에서

[저자의 글]
“공포와 스릴의 터널 속에서”

지난해의 성탄절에 나는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가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나서 어린이 대공원 뒤에 있는 현대미술관으로 차를 몰았다. 중국 집안(集安)에 가서 촬영한 고구려 고분 벽화를 공개한다는 <아 고구려…… 전>을 하고 있기도 했지만 오래간만에 미술관 뒤뜰이라도 거닐며 아내와 함께 호젓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차가 어린이 대공원을 지나면서 나의 그러한 낭만적인 기대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공원 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두고 걸어가시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적어놓은 안내판을 무시하고 미술관 쪽으로 차를 몰다보니 어느새 차가 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끝없는 차량의 행렬이 한가로울 것으로 생각했던 미술관 가는 길을 꽉 메우고 있었다.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만한 거리를 차로 1시간 30분이나 걸려 기어 들어가면서 나는 앞뒤와 옆의 차들을 바라보다가 문뜩 줄지어 들어가는 승용차들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앞자리에는 젊은 부부가 타고 있고 뒤에는 어린아이가 하나씩 앉아 있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미술관은 어린 아이들과 그들을 데려온 부모들로 온통 초만원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네 아이들에게 고구려 벽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몰려온 부모들이었던 것이다.

아직 고구려의 역사나 문화를 이해할 만한 나이도 아닌 다섯 살이나 여섯 살짜리 꼬마들에게 ‘광개토대왕’이나 ‘소수림왕’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 주고 있는 아빠들의 그 교육열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들 속에서 나를 교육시키느라고 애쓰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신다. 그것도 좋고 안락한 것은 천국에 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이 지구에서만 볼 수 있는 고통스럽고 무서운 것들을 되도록 많이 보아두라고 권고하시는 것이다. 이번에 나는 아내와 함께 미국 여행을 하면서 그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디즈니 랜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구경거리가 있는 관람장마다 아이들의 손을 잡은 채 줄을 서 있는 부모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아이들에게 좀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들은 그토록 뜨거운 뙤약볕 아래 끈질기게 줄을 서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무서운 것일수록 인기가 있었다.

해적들의 전쟁이라든가 유령의 집 그리고 공중을 날아가는 타임머신이라든가 지진으로 무너지는 지하철 또는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킹콩 같은 것들이 나타날 때마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부모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무서운 것들을 많이 보게 하시고 어려운 일들을 겪게 하시는 것 같다. 어두운 모험의 터널로 들어가서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가슴을 졸이기도 하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또 아쉽게도 햇빛이 찬란한 출구에 도착해 있고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모험을 원하시며 줄을 서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기쁨은 바로 이런 것이다. 공포의 터널 끝에는 반드시 빛의 출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지난 6년간 내가 겪었던 고통의 나날들을 이렇게 감사함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나는 그 무서운 터널을 지나는 동안 하나님께서도 나의 성장을 위하여 그토록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고 계셨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기록을 들고 다시 독자들 앞에 나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간증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형제들이 내가 겪은 고난과 모험을 간접으로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행군하여 가는 그 험난한 길에서 이 간증의 글이 작으나마 위안과 격려가 될 수 있다면 그에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글/김성일(저자, 쿰회보 94.08)

[독자의 편지]

“‘믿음의 글들’은 나의 설레임”

평안하신지요!
전 9월부터 ‘믿음의 글들’을 받게 된 이 혁이라고 합니다.
제가 처음 믿음의 글들을 접한 것은 군 입대전 《침묵》이라는 책을 선물로 받은 때였습니다 그 책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는지, 그러나 그런 고약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하고 계신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물론 세상 속에서 나약하게 흔들리고 있는 자화상을 보며 기분이 좋지 못하고 죄스러웠지만 아직도 그런 식으로라도 내게 말씀해 주시며 작은 용기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 후 군에 입대하고 김성일 씨의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조금만 걸어도 다다를 거리에 교회가 있지만 졸병시절에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고참 몰래 말씀을 읽을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자유로움이 주어질 때가 왔습니다. 그때 잠시 외출을 나갔다가 갈급한 마음으로 일반 서점을 찾았습니다. 혹시나 신앙 서적이 있을까 해서였지요. ‘믿음의 글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래서 김성일 씨를 글 속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디서든 똑같이 놀라우신 방법으로 우리를 감동시키시며 일깨우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믿음의 글들’이 군생활에서 연약해지는 믿음에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주일예배를 정기적으로 참석할 수 있는 영광을 얻어서 정말 기쁩니다. 하지만 아직 일주일 중 대부분의 시간은 믿음을 갖지 아니한 여러 사람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또 많은 갈등과 시험이 있습니다. 이번에 보내주신 100번째 글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을 읽으면서 또 한번 감사하며 또 한번 깊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6개월 남은 이 광야생활 같은 군생활 동안 아마 매달 ‘믿음의 글들’이 동행할 것 같습니다.
그 남아 있는 기간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시험과 고통이 있을까 생각하면 앞이 아득하고 까만 하늘뿐이지만 이 모든 것을 물리치는 조그마한 설레임이 있습니다. 아마 그 조그마한 설레임이 왜, 무엇인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주님 안에 평안하십시오!

-글/이혁(쿰회원, 쿰회보 9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