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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11,700

맹의순
남대문교회 (엮음)
2017. 7. 14
무선 / 280 Pages 
9788936503468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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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8개월의 삶을 
하나님께, 이웃에게 바치고 떠난 청년, 맹의순!
 
기록되지 못한 의인의 삶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마지막 고백을 남기고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서 26년 8개월의 삶을 마친 청년, 맹의순. 석방될 기회를 마다하고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세상을 뜬 그의 삶은 지금까지 몇 편의 기록과 소설 그리고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 왔다. 《십자가의 길》은 맹의순의 삶을 더듬어볼 수 있는 기록집으로 맹의순의 육필일기와 그에 대한 해설을 묶은 것이다. 세상을 뜨던 해에 3개월간 썼던 일기를 고화질로 영인한 내용(1부), 한자, 일본어, 영어가 뒤섞인 내용을 날짜마다 현대 한국어로 다시 옮긴 부분(2부), 맹의순의 삶을 정리하여 학계에 알린 남대문교회 신재의 장로의 논문(3부)으로 구성된 《십자가의 길》은 맹의순의 일기장을 간직하고 있던 이원식 목사(국일교회 원로목사)가 남대문교회에 자료를 기증하면서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전쟁이라는 격변과 아픔의 시기에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뜻과 이웃사랑으로 불태워 바친 한 청년의 삶을 증언하는 기록이다. 
 
성인 그러나 성정이 같았던 인간… 
맹의순은 1926년 1월 1일, 평양 장대현교회 맹관호 장로의 차남으로 태어난다. 연희전문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가 남대문교회 중등부 교사로 섬기던 그는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1947년 조선신학교에 입학한다. 영어, 일본어, 헬라어가 능숙했고, 피아노도 수준급으로 쳤던 맹의순은 사랑과 음악적 재능을 통해 남대문교회 중등부를 200명, 300명으로 성장시키기도 한다. 
스무 살이 되기까지 누님, 형님, 여동생,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도 결국 납북되는 아픔을 겪은 맹의순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삼각산에서 내려와 피난을 떠났다가 인민군에게 붙잡히고, 탈출 후 다시 미군에게 붙잡혀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늘 전도의 기회로 활용한 그는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광야교회를 세워 예배를 주관하게 된다. 영어 통역이 가능하여 미국인 의사들의 통역 일을 하면서 교회 일, 중환자 돌보기, 새벽기도와 예배 등 과로로 늘 피곤한 상태에 수면부족과 추위에 시달렸지만 배고파하는 이가 있으면 자신의 밥을 나누어 주며 사랑을 실천한다. 
그의 일기에는 첫사랑 여인 재금, 김순봉 대위를 향한 마음, 자신의 부족함 한탄, 수용소 내의 인간적 갈등, 자신을 제거하려는 음모 사건 주동자의 정체를 안 이후 괴로워하는 내용 등 인간적이고도 솔직한 내면의 기록이 담겨 있다. 억울하게 포로가 되어 좌절하기도 하였으나 포로수용소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성찰하고 따르고자 했던 그는 석방될 기회마저 거부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석방 사흘 전 뇌암(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난다. 
 
무게 521 g
크기 152 × 220 mm

저자

맹의순
1926년 1월 1일 평양 장대현교회 맹관호 장로의 둘째 아들로 출생.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평양공립제2중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마치기 전 누님과 형님이 먼저 세상을 뜨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해에 어머니와 여동생마저 세상을 뜬다.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조선신학교에 입학하였다가 학부 3학년 재학 중 6·25전쟁을 맞아 피난길에 오르던 중 인민군으로 오해를 받아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지만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수용소 내 광야교회를 세워 사랑을 실천한다. 1952년 8월 11일 석방 사흘 전 뇌암(뇌막염)으로 소천.
남대문교회
1885년 제중원 신앙공동체에서 태동한 남대문교회는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 근거지가 되었고, 해방 후에는 3백만 구령운동 진원지이자 실향민들의 안식처가 되었으며, 산업화 시대에는 소외된 자의 위로자 역할을 담당해 왔다. 6·25전쟁 당시 모든 것을 내어주며 포로들에게 헌신한 맹의순은 남대문교회의 ‘남문밖 정신’을 표상한 인물이다. 궁지에 몰린 난민들, 실패한 사람들, 강자의 오만에 내쳐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에 교회가 함께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65년 만에 맹의순의 육필일기를 번역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차례

1부_ 영인본 
2부_ 날짜별 일기 
3부_ 십자가의 길 ― 맹의순의 삶과 포로수용소에서의 선교(글쓴이 : 신재의)


※ 3부 세부 차례

들어가며 
1장 맹의순의 삶 
가. 맹의순의 가정과 신앙교육
나. 중등부 교사
다. 인간의 사랑
2장 포로수용소에서의 선교 
가. 광야교회 설립과 활동
나. 새벽기도회와 설교
다. 전도와 중국군 포로 선교
라. 이념과 이웃 사랑 사이에서
3장 십자가의 길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영문초록 
맹의순 약력 

책속에서

크리스찬의 기도는 무사무념(無思無念)의 지경에 들어가는 자기의 명상도 아니고, “머 해주시오. 머 해주시오” 하고 제 소원을 하나하나 줄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요, 이상한 것을 보거나 또는 듣는 것도 아니요,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 흘리며 비신 그리스도의 기도, 오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위해 비시는 신의 기도 소리가 내 심령에 울리어서 비로소 내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것이 기도요, 이 기도를 통하여 신의 마음의 계시를 받으며, 이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그의 성지(聖旨)에 복종하는 감격적이고 황홀하고 신비로운 은혜의 시간이다. 

_93면, 1월 27일 일기에서

*

새벽에 누가 와 깨우기에 일어나니 황 형과 박 형이 왔다. 황 형의 이야기가 이번에 우리 수용소에서는 대음모사건이 발각되었는데, 이런 변이 천하에 어디 있단 말인가. 놀라지 마시라. 라기욱 선생님이 주모자라니!?!? 자다 벌떡 일어나 앉아 나도 모르게 땅이 꺼지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교회에 나오던 조 군이 주모. 교회 체면도 체면이거니와, 라 선생 자신을 생각할 때 참으로 인간미 있고 어질고 얌전하고, 올바른 교육자인 줄만 알았던 그가, 설마?! 그가 오늘까지 찬양대 하고, 청년면려회 지육부장을 보고, 기도를 하고, 설교를 하던 모든 것이 가면이었단 말이냐? 나는 아무리 믿으려야 믿어지지가 않는다. 게다가 악질 숙청분자로 내 이름과 황 형의 이름을 맨 위에다가 써놓고, 김진구 선생을 독약으로 죽이려는 음모를 계획했다니!
새벽기도회는 초비상경계로 중지하고, 낮 예배에는 ‘인격’이라는 제목으로 설교. 교인은 적었다. 한때 200명씩 모이던 때와는 천양지차가 있다. 조는 사람이 많았다. 저녁 예배에는 마태복음 15, 16장을 가지고 성경 공부하였는데 필하고 나니까, 약 한 시간 했다고들 지루했다고 야단. 참 미안하다.
밤에 초비상경계는 계속. 

_165면, 3월 2일 일기에서

*

‘왜 당신은 그리스도를 믿는가?(Why do you believe in Christ?)’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여 “마호메트교는 현세적 쾌락(carnal pleasure), 유교는 윤리도덕(moral), 불교는 갈등(confliction)이나, 기독교는 이 아무것도 아니고, 죄악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하였다. 또한 맹의순은 다른 설교에서 “수난의 그리스도에게서 신의 무한하신 영광과 권능과 새 생명을 볼 때 우리는 새로 지음 받은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신의 영광을 보는 빛을 우리에게 비추셨다” 하였다. 
또한 1952년 6월 25일 맹의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자는 설교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 참다운 설교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맹의순은 류형기 목사 편저 《성경주석》을 문명철에게 주면서 “설교자는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기도로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 참다운 설교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_242면, ‘3부 십자가의 길’ 중 ‘2장 포로수용소에서의 선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