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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의 밤 – 제2부 길갈 (하)

4,050

발행일  2002.2.18
상세정보  무선 / 167page
ISBN  9788936506209

카테고리:

품절

대학생선교단체의 분열을 배경으로 한, 기독 청년의 영적 방황과 홀로서기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가 조성기 장편소설. 어느 대학생선교단체의 내적 분열을 배경으로, 한 청년의 영적 방황과 홀로서기를 그렸다. 세속적 가치와 초월적 가치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음의 고뇌와 실존, 영적 성장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로, 주인공 성민의 갈등과 방황은 이 시대 모든 젊은 날의 고백록이자 성장기이다. 절대자 앞에서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 주인공의 실존적 상황들이 진지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책읽기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

제2부 길갈 (상ㆍ하)
광야를 거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아름답고 광대한 땅, 가나안의 입구인 ‘길갈’에 이른다. 길갈은 ‘굴러간다’는 뜻이다. 무엇이 굴러가는가. 강대국 애굽 밑에서 당한 약소민족으로서의 모든 수치가 굴러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는 영적 여정의 새로운 분기점을 의미한다.
<야훼의 밤> ‘제2부 길갈’에서는 주인공 성민의 제대 후 복학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성민이 좀더 적극적인 회원이 되어가는 대학생선교단체의 내면적 모순과 갈등, 분열과 함께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성민 자신의 내적 방황과 성장을 향한 정신적 여정이 씨줄과 날줄을 이루면서 극적 긴장감과 흥미를 고조시킨다.

무게 212 g
크기 135 × 203 mm

저자

조성기
현실을 관통하여 신앙의 본질을 길어 내는 이 시대의 영성 문학가 조성기. 그는 1951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하였고, 부산중과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71년 <만화경>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고시와 종교의 갈림길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절대자 앞에 선 인간의 실존을 탁월하게 형상화하여 기독교 문학의 진수를 보여 주었으며, 삶과 종교의 본질 그리고 사회 문제에 깊이 천착한 작품을 발표해 왔다.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85년 《라하트 하헤렙》으로 문학 활동을 재개한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집필 활동으로 넓고 깊은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 《라하트 하헤렙》으로 제9회 오늘의 작가상, 《야훼의 밤》으로 제4회 기독교문화상, 중편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제1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산울교회를 섬기고 있다.

서평

“헌신과 맹신, 세속과 초월의 경계선에서…” 

공감과 반추! 그것이 이 책을 집어 들고 눈을 떼지 못하게 한 원인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대학생 선교단체의 내적 분열을 배경삼아, 한 청년의 영적 방황과 정신적 홀로서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겪는 젊은 날의 신앙적 여정과 고뇌는 나의 심연의 깊은 공감과 함께 지나온 내 20대 젊음을 돌아보는 반추의 시간을 제공하였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앓았던 병은 이제껏 내가 경험했던 조직과 개인,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갈등에 대한 종교적 열병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랄까! 
작품적으로 볼 때 영성 위주의 외국 번역본만이 물결을 이루는 기독교 출판의 현실에서 소설이라는 낯선 장르로, 그것도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을 피부로 조명할 수 있는 책이 재출간된 것은 국내 많은 기독인들에게 커다란 유익이라 생각된다. 비록 내 눈이 막눈(?)이라 감히 소설을 논할 수 있으리오마는 이 소설에 대한 느낌은 오늘날 기독교 문학이라는 틀을 달고 나오는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선입관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굳이 기독교적 소재와 이미 도출된 성경적 결론으로만 끌고 가려는 기독교 문학의 교조적(敎條的) 한계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 책은 기독교적 소재로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동시대 기독인들이 겪을 수 있는 신앙적 불안과 그 여정을 실존의 구조로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좋은 작품으로 생각된다. 
이 책의 작가 ‘조성기’씨는 현재 산울교회에도 시무하고 있으며 서울대 법대 시절인 1968년 UBF를 통해 예수를 믿고 그곳의 ‘목자’가 되었다. 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85년 〈라하트 하헤렙〉이라는 작품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야훼의 밤〉은 고려원과 민음사를 거쳐 올해 초 홍성사에서 재출간된 책으로서 작가의 젊은 날 헌신했던 선교단체의 분열과 문제점을 개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은 1쪾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의 ‘갈대바다 저편’에서는 주인공 성민의 초쪾중쪾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 캠퍼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힘겨웠던 가정사적인 배경과 그 그늘을 벗어나는 서울 상경, 그리고 대학 입학, 이성과의 연애, 다양한 만남과 사건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갈대바다 저편’은 흔히 성경에서 ‘홍해’로 번역되어 있는 바다로서, 종살이로 애굽을 벗어난 자유의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주인공 성민이 성장하여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구도의 길을 모색하는 정신적 여정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2부 ‘길갈’에서는 성민이 제대 후 복학하면서 선교단체의 핵심 멤버가 되어가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선교단체의 대립과 분열, 개인의 내적 방황과 고통이 교차하면서 이야기의 극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길갈’이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도착한 가나안의 입구로서 ‘굴러간다’는 뜻이 있으며 성민의 영적 여정의 새로운 분기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소설 〈야훼의 밤〉은 지도자의 그릇된 리더십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게 되는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성민의 고통과 번민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도자의 억압적인 1인 지도체제 속에 들어 있는 절대적 카리스마 역시 한국 기독교에 만연한 특권의식 내지 그릇된 권위주의를 보여 주기도 한다. 더욱이 한국 교회의 부패한 모습을 비판하며 상대적 우월감과 정통성을 주장하던 그 선교단체 역시 그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하여 스스로 하나의 기형적인 교단이 되어 버린 오늘날 모습은 한국 교회뿐만이 아니라 여타 선교단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주변에서 심심찮게 보여지는 ‘헌신의 강요와 그릇된 중독성’(종국에는 결국 탈진하여 신앙의 짙은 회의감으로 연결됨)을 분별하고, 헌신과 맹종의 위치를 가늠하는 자신의 신앙적 성찰에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야훼의 밤〉은 장편소설로 4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글자의 높낮이와 읽기 쉬운 판형, 중질지에서 느껴지는 책 무게로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내용면에서도 박진감을 제공한다. 〈야훼의 밤〉은 이러한 갈등 속에 있는 기독인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기독인들에게 반드시 권하고 싶은 책으로, 최근 ‘뉴스앤조이’에서 출판된 〈아둘람으로 가는 길〉과 함께 선교단체의 분열을 개인의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좋은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설 말미에 문병 온 지도자에게 참다못해 던지는 성민의 마지막 욕설이 내 정수리를 비집고 들어온다. 그릇된 권위 앞에 숨죽였던 나의 지난날은 없는가? 

-글/심규용(청년매거진 ‘새벽이슬’ 기자, pilgrim21@hosanna.net)

홍성사, 쿰회보(2002년 5월호)에서 


[책을 읽고 나서]

“<야훼의 밤>에 대한 순 개인적인 감상..” 

꽃잎 흩날리는 
늦봄의 햇살 속으로 
천연덕스럽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각양각색
혹세무민의 
종교집단 광고포스터들.
현수막에 사진전에 공개설명회에… 
자기의 존재 규명에 대한 갈구를 미끼로
알쏭달쏭한 문구들을 나부끼는
캠퍼스 곳곳의 유혹 

젊음, 그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로 
다가오시는 분인가. 
하나님께 간다는 것은 치열함과의 결별인가. 

조성기의 장편소설 야훼의 밤에는 
젊음이 가지는 삶에 대한 치열한 탐구가 묻어난다. 
기독교의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로의 입문을 강요하는 픽션도 아니다. 
그저 일반적인 우리 삶에서 부딪치는
존재에 대한 
고민의 적나라한 
한 단면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임에 충실하게
아무런 해답도 없이, 
그 고민의 경로만을 담고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조직에서 집단성이 빚어내는
복잡다단한 권력구조의 모습들이 흥미로웠다.) 

꽉 짜여진 종교적 메세지들에서 벗어나
일상의 삶 속에서 겪게되는 
솔직한 고백들을 접하면서 공감과 함께
그 공감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씩 아주 상식적인 수준에서 내 삶 속에 들어와있는
하나님과 내 세계관을 
찬찬히 더듬어 보고 싶을 때, 
그리고 그러한 시간이 너무 없이 
일상에 너무 짓눌려 있거나 방만하게 퍼져 있을때,
주변의 종교적 분위기가 너무 고지식하게 
스스로를 짓눌러올 때, 
이 소설이 어떤 전환점이 되어줄 수도 있을것 같다. 

전문적인 작품분석을 떠나서 
그저 소박한 독자의 입장에서, 
존재에 대해 그리고 신앙에 대해 삶에 대해 
민감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머리도 식힐겸… 
부담없이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으니깐…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말이다. 
특히, 나름대로 이성적인 사고로 무장되어 왔다는 
강한 자의식으로인해 하나님에 대해 망설이지만 
역시 삶에 대해서는 지독하게 고민하고 있는
초신자 비스무리한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더욱 뒤숭숭해지기만 하는
요즘, 혹세무민의 기타 집단들이 (종교적이든 아니든)
순수한 열정을 간직한 친구들의
젊은날들을 탐욕스럽게 낱낱히 집어삼키고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세상 어딘가에 툭 뱉어내는 
그 안타까움 속에서 

젊은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는 물론이고
비기독교인인 친구들과 
어떻게 이 날들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가. 
터무니없이 단순한 해결책의 강요가 아닌
앞으로의 삶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져야할 
삶에 대한 치열함의 그 바람직한 모습들을
함께 찾아나가기 위한
우리의 문제의식은 무엇이어야 하고
무엇을 향해야하는지. 

소설 속에서 
거창한 선교적 비전의,
하나님에 대한 그 현란한 탐구의 잔치 속에서 
결국 기도 응답이 이루어졌던 사람은
이야기의 주류에도 속하지 못하고 
늘 주류에서 비껴난 한켠에 조심스럽게 등장하곤하던
주인공의 외할머니 
단 한 명이었던 것처럼 (적어도 내겐 그렇게 읽혔다)
하나님과 그가 주신 삶에 대해 
터무니없이 소박할 수도 있는
가장 겸손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각각
어떤 치열함 속을 늘 달려나가야 하는 것일까.

-글/ID: 지상(홍성사 홈페이지 게시판 게시물)

저자 인터뷰

“고시ㆍ문학ㆍ종교… 끝도 없이 방황하던 시절의 초상”” 

젊음 혹은 청춘은 미래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득찬 시기입니다. 그리고 아직 닥쳐오지도 않은 문제들을 끌어안고 미리 고뇌하는 시기입니다. 카뮈가 《시지프스의 신화》의 첫머리에서 말한 대로 ‘자살이냐 종교냐’ 하는 것이 제 대학생활의 화두였습니다. 카뮈는 자살도 종교도 아닌 부조리를 택했지만, 저는 결국 종교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고시와 문학과 종교, 그 가운데서 끝도 없이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방황이 깊어질수록 여성에 대한 동경과 갈증은 더해갔습니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 용어를 빌리면 ‘아니마(Anima)’의 영향이 저의 인격과 생활을 지배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것에 대한 갈증과 통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와 같이 엄청난 말씀을 하시는 분을 저는 마침내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을 주겠다니. 그리고 그 물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니.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대망상증 환자이거나 정말로 그런 물을 주실 수 있는 분이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정말로 그런 물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분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제 대학생활 전체와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젊은 날의 정신적인 갈등이 소설의 줄기를 이루고 있으므로 젊음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나 청춘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지금도 이 소설을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야훼의 밤> 제1부 ‘갈대바다 저편’은 대학생활을 중심한 제 젊은 날의 초상인 셈입니다. 그리고 제2부 ‘길갈’은 동일한 주인공의 정신적인 편력을 그린 작품이긴 하지만 제1부와는 사뭇 그 분위기가 다릅니다. 제1부가 개인적인 갈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제2부는 사회의 모순에 눈뜨는 아픈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는 주인공이 속해 있는 종교단체를 가리킵니다. 아마도 주인공은 자기가 속해 있는 종교단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종교단체가 분열되어 여러 가지 모순을 드러낼 때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맞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특정 종교단체에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 어느 사회, 어느 단체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종교단체에서 성경공부를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를 만나고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것을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제임스 애셔 박사는 어느 사회 어느 단체나 문제가 없는 곳이 없다는 전제하에, 그 문제가 ‘녹색지대’에 있을 때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고 그 문제가 ‘황색지대’를 지나 ‘적색지대’로 이동했을 때 비로소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적색지대로 이동된 문제를 황색지대로 보내고 또 거기서 녹색지대로 보냈을 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교단체의 문제가 녹색지대로 옮겨져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다시 그 종교단체의 문제가 적색지대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소설의 주인공처럼 또 다시 방황할 수많은 형제 자매들을 생각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무쪼록 한국의 여러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문제가 적색지대로 옮겨지기 전에 서로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화합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지금도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와 교회들에게 이 소설을 쓰디 쓴 해독제로 내어놓습니다. 

-이 글은 ‘작가의 말’을 발췌하여 요약·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