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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할까

5,950

데이비드 고든
최요한
E-ISBN 9788936514877 (0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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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열심히 설교하면 될까? 신학 교육이 문제일까?
변화된 미디어 환경, 설교 감성 부재가 진짜 문제다!
1. 감동 없는 설교의 사회적 원인
19세기 후반 설교학의 교과서 《성경 수사학 강의》의 저자 로버트 루이스 대브니는 설교의 일곱 가지 기본 요소로 ‘충실성’, ‘통일성’, ‘복음주의 어조’, ‘교훈성’, ‘역동성’, ‘영향력’, ‘짜임새’를 꼽는다.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할까》는 위의 일곱 가지 요소를 하나라도 제대로 갖춘 설교가 오늘날 드문 이유를 찾고 해법을 제시한다. TV와 전화 등 미디어를 설교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짚는다는 점에서 개인적 이유보다는 사회적, 시스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TV와 휴대폰은 우리의 일상을 점령했고, 가치 없는 이미지와 소음을 실어 나르기 바쁘다. 미디어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은 그 결과 중요한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런 문화에서는 어떤 설교자가 탄생할까? 설교자들 역시 중요한 것, 가치 있는 것을 성경에서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짜임새 없이 설교하곤 한다. 텍스트를 깊이 읽고, 글이 소통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던 때와 비교할 때 오늘날 설교는 빈곤해졌다. 저자는 성급하게 해법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오늘날의 미디어 문화를 깊이 돌아볼 것을 요구한다.
2. TV, 휴대폰, 책맹 설교자들
정보를 찾는 목적의 독서와 달리, 텍스트 읽기는 내용뿐 아니라 서술 ‘방식’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독서다. 글의 구성 방식까지 눈여겨보는 것이다. 대표적인 텍스트가 문학이다. 문학 중에서도 시(詩)는 의미를 찾아내는 감성을 기르는 데 최고의 도구다. 저자에 의하면 “시는 이미지와 소음의 안개를 뚫고, 나와 당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반 은총이다”. 텍스트 자체를 감상한다는 것은 성경이 나를 읽게끔 허용하는 것이다. 성경을 수십 번 통독했는데도 생각이 굳어진 그리스도인이 많은 것은 텍스트를 면밀히 읽지 않고, 텍스트가 나를 읽게끔 허용하지 않아서다. 텍스트를 면밀히 읽을 때 우리는 텍스트의 깊은 ‘의미’를 찾아내는 감성을 기를 수 있다.
오늘날 전자 미디어의 우두머리라 할 TV는 저자에 의하면 “가치 없는 것을 위한 매체”다. 화면은 움직이는 물체를 포착하는 데 적합한데 사랑, 소망, 믿음, 예배 등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TV는 무의미하고 대수롭지 않은 문제를 보여 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전화는 잡담을 하기 좋은 매체로 전락했고, 무슨 말부터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짜임새 있는 설교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미디어의 영향이 설교에 드러난 결과 통일성, 구성, 운율이 있는 설교는 오늘날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3.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하라
말씀과 성례의 관계를 특별하게 여긴 칼뱅에 의하면 “설교는 뭔가를 성스럽게 하려고 뜻 모를 소리를 믿음 없이 중얼대는 마법 주문이 아니다. 설교는 눈에 보이는 성례의 의미를 알게 해준다”. 저자는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대체하는 잘못된 설교 유형 네 가지를 제시한다.
1) ‘도덕주의’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부정하거나 가볍게 여기고 사람의 행실만 고치려고 하는 설교가 여기에 해당된다.  
2) ‘요령을 가르치는 설교’다. 요령만 제대로 익히면 죄인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설교인데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그리스도에게 구원의 능력이 있다는 메시지를 무시한다는 문제가 있다.
3) ‘자기성찰’의 설교다. 믿음을 전할 시간에 믿음을 자꾸 부정하고, 내 안에 정말 믿음이 있는지 끊임없이 지적한다. 마구잡이 비판으로 신앙이 자라지는 않는데도 많은 설교자들이 여기 빠져 있다.
4) 마지막으로‘사회 복음’ 혹은 ‘문화 전쟁’이다. 우리 문화에서 잘못된 점을 개인적으로나 정부의 강제력으로 개선시키려는 설교다. 흑백논리에 심취한, 애국주의에 불타는 설교자들이 이런 오류에 빠진다.
4. 설교학 이전에 설교 감성을 만들어라
설교학 과목을 수강하기 전에 설교 감성이 필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를 위해 시 감상법이나 시·비평 이론의 고전 등을 읽고 시를 감상할 것을 권한다. 신학보다 문학을 먼저 공부하라고도 한다. 편지를 쓰면서 글을 구성하는 법을 배우라고 충고한다.
‘텍스트 정독’, ‘짜임새 있는 소통’, ‘가치 있는 것 식별’ 등은 탁월한 설교에 필수적인 요소다. 책을 넓고 깊게 읽을 시간, 생을 성찰할 시간, 일기 쓸 시간도 부족한 목회자에게 성도들의 배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설교학 강의를 수강하기 전에 설교 감성을 먼저 만들어야 할 의무가 설교자에게 있다.
‘그리스도인은 왜’ 시리즈
‘그리스도인은 왜’ 시리즈는 우리의 일상과 문명이 처한 과제를 성찰하고 근본으로 돌아가 해법을 찾는 이들을 위한 시리즈입니다. 한국 교회와 목회 현장의 문제의식을 간명한 주제와 얇은 분량에 담았으며 우리의 일상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의 힘이 무엇인지 바라보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나라를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돕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책으로는 목회자들의 설교 능력 저하를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미디어 환경 변화와 읽기 능력 저하에서 찾는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할까》(2012년), 그리스도인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믿지 않으며 하나님나라는 우리를 돈의 권세에서 해방시키는 새로운 삶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증언한 《하나님은 복으로 장사하지 않는다》(2012년), 스마트폰과 해외여행 등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 문화에 맞서 수도 영성 회복을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영성이 우리를 구원할까?》(2013년)를 펴냈습니다.

저자

데이비드 고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종교학과 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버지니아 주 유니온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부터 그로브시티 대학교에서 종교학, 그리스어, 인문학, 미디어 생태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전에는 13년 동안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신약 성경(주로 바울 서신)을 가르쳤고 9년 동안 뉴햄프셔 내슈아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에서 목회했다. 현재는 아내 다이앤과 함께 펜실베이니아 주 슬리퍼리록에 있는 그레이스 교회에 몸담고 있다.

 

옮긴이-최요한

운전면허가 없어서 차도로는 못 다니는 천생 뚜벅이 ‘인도’주의자. 길을 걷고 생각을 긷고 말을 걸고 글을 옮기며 지낸다. 태국 어섬션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어학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는 《하나님의 밀수꾼》, 《하나님의 부르심》, 《신의 열애》, 《영성의 시작》, 《되찾은 영성》, 《벽장에 갇힌 하나님》(이상 죠이선교회), 《인디오의 친구 브루츠코》(복있는사람), 《질문 리더십》(흐름출판), 《땅밟기 기도》(예수전도단), 《신의 미래》(도마의길), 《사랑의 시작》(NCD), 《믿음의 여정》(터치북스), 《순수 영성》(두란노) 등이 있다.

차례

더 나은 설교를 바라며
머리말

1장 / 달라진 신학생들
2장 / 책맹 설교자들
3장 / 다시 글쓰기를 고민하자
4장 /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하라
5장 / 설교자의 세 가지 감성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TV는 시와 반대로 본질적으로 가치가 없다. 따라서 문화를 지배하는 미디어의 변화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TV에 관한 모든 것은 가치가 없으며 TV는 가치 없는 것을 ‘위한’ 완벽한 매체다.

시는 이미지와 소음의 안개를 뚫고, 나와 당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반 은총이다. 시인은 우리가 보고 넘기는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는 함께 보자며 우리에게 손짓한다. 의미를 찾아내는 감성을 기르려면 사물을 오래도록 볼 줄 알아야 한다. 

텍스트를 숙독하는 데 서툰 사람은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단어와 자명한 개념을 찾은 후 그 개념을 가르친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생각의 자극을 받지 않는다. 설교자가 (스스로 뭘 알고 있는지 확인만 했을 뿐) 특별히 텍스트에서 자극받는 것이 없는데 그가 하는 설교가 회중을 자극할 리는 만무하다.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에 의하면,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책맹률은 서서히 꾸준히, 그러나 당황스러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중략) 사람들은 텍스트, 즉 서술 방식이 주제 못지않게 중요한 책을 읽지 않는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더 이상 성경이든 일반 텍스트든 정독하지 않는다. 정보를 찾아 훑어보는 눈은 있어도 심미안은 없다. 풀어서 설명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셈이다. 우리는 글쓴이의 세계로 들어가 그가 보는 현실을 들여다보려고 텍스트를 읽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받으려고 텍스트를 읽는다. 이런 점에서 텍스트는 거울이다. 우리는 텍스트 자체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에서 우리 자신을 볼 뿐이다. 성경을 50년 동안 매일 꾸준히 읽었는데도 생각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많은 것은 부분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텍스트는 그들의 견해를 뒤집기는커녕 건들지도 못한다. 그들은 텍스트를 읽어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텍스트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들은 텍스트를 자세히 설명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 뭘 말했는지, 어떻게 말했는지 설명하지도 못한다. 다만 다른 사람의 말에서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것만 알아볼 수 있다. C. S. 루이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텍스트를 ‘사용’할 뿐 ‘수용’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텍스트를 읽지 못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전자 미디어 때문이다. 전자 미디어가 지배하는 문화는 속도 자체가 매우 빠르다. 전자 미디어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소리와 이미지를 쏟아 낸다. 우리는 소리와 이미지 각각에 일정한 영향을 받는데 전자 미디어가 형성하는 삶의 ‘속도’는 각각의 영향보다 훨씬 더 크다. 우리는 온전히 뭔가에 몰두하는 법이 없이 산만함과 멀티태스킹에 순응해 간다. 이런 속도전의 대항마는 텍스트를 면밀히 읽는 정독이다. 정독을 하려면 시간을 들여 온전히 집중해서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를 급히 읽어서는 시구의 운율과 언어의 음률을 알 길이 없다. 시는 뇌가 정보를 해석하는 속도가 아니라 혀와 귀의 속도에 맞춰서 읽어야 한다. 문학비평가 스벤 버커츠(Sven Birkerts)는 이것을 아래와 같이 명징하게 표현했다.

시를 제대로 읽으려면 습관적인 현대 생활에서 빚어진 얄팍한 의식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낱말을 덩어리로 모아서 읽는다. 눈을 쫓아오지 못하는 말소리는 테이프가 마그네틱 헤드에 긁힐 때 나는 잡음이나 다름없다. 그 잡음은 더 느려져야 한다. 처음에는 보통 속도로, 나중에는 두 배로. 그렇지 않으면 시인이 그 행에서 ‘들었던’ 정교함을 결코 들을 수 없다.
느리게 읽는 것이 힘든 사람일수록 20세기로부터 빠져나와야 하고 시를 읽어야 한다.

추천글

저자는 이 책에서 설교자에게 필요한 가장 초보적인 소양을 역설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글 읽기와 글쓰기다. 그는 오늘 미국 교회 설교자들 대다수에게 그 소양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한국 교회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성서 텍스트의 심층은 강단에서 침묵당하고 처세술적인 입담만 득세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 흔한 설교학 교재가 아니다. 평생 교회와 신학교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던 한 기독 지성인이 암 수술 뒤 투병 과정에서 동역자들에게 유언하듯 부른 애가(哀歌)이자 희망의 찬가다. 그 노래를 듣는 사람에게 복이 있으리라! 

_정용섭(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설교란 무엇인가》 저자)

*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실망스런 설교가 아주 흔한 것은 원칙을 모를 뿐 아니라 미디어 문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유익한 대중문화 연구서이기도 하고 맞춤한 성경 해석서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에 움찔할 때도 있었지만 고마울 따름이다. 

_마이클 호튼(《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저자)

*

교회가 만난 심각한 문제를 통찰력 있게 진단했다. 잘못을 꼬집어 줘서 고맙고 위기를 벗어날 길을 안내해 줘서 또 고맙다. 

_데이비드 웰스《신학실종》, 《윤리실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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