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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택부 선집 7-양화진 선교사 열전

18,900

전택부
2018. 11. 30
무선 / 240 Pages
9788936513184(94230)

9788936505448(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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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전택부가 쓴 선교사들의 이야기

선교 유적지 양화진과 전택부 선생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대교 북단에 위치한 이곳에는 구한말 우리나라에 와서 풍토병과 과로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젊음을 바쳐 복음의 열정을 뿌렸으며, 죽어서까지 이 땅을 떠나지 않고 한 줌 흙으로라도 남기 바랐던 선교사들과 가족이 묻혀 있다. 하지만 이곳은 세인들의 무관심 속에 오랜 동안 폐허나 다름없이 방치되었으며, 더욱이 서울시에서는 1978년 ‘제2한강교(양화대교) 진입로 및 전철 2호선 공사 계획’에 이 외국인선교사묘원이 걸림돌이 된다 하여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전택부 선생은 2년여에 걸쳐 신문에 ‘양화진 외인열전’을 연재하는 한편,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의미가 깃든 이곳이 보존될 수 있도록 무던히도 애를 썼다. 결국 서울시는 도시 계획을 전면 수정했고, 이후 기독교계의 관심이 모아지면서 양화진 선교사 묘원은 역사가 깃든 의미 있는 장소로 보존됨은 물론 한국 기독교계의 중요한 선교 유적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치열한 선교 현장, 한국 기독교 역사의 발자취
전택부 선생이 심혈을 기울여 연재했던 ‘양화진 외인열전’은 1986년 홍성사에서 《이 땅에 묻히리라》로 출간되었다.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들며 양화진 선교사 묘원과 절두산 순교 성지를 잇는 성지 공원이 새롭게 조성되는 시기에 개정판을 내었으니, 바로 《양화진 선교사 열전》(2005)이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베델, 헐버트, 벙커, 베어드, 무어, 홀… 미지의 땅 조선, “그곳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정을 바친 많은 선교사들이 있다. 그들은 교육과 의료 사업을 비롯하여 언론 활동, 사회 사업 등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민족운동에 주춧돌 역할을 하였고, 성서 번역· 선교 활동을 통해 영적 각성과 복음화에 헌신하기도 했다. 전택부 선생은 이 책에서 격동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한민족과 함께한 선교사들 가운데 열네 명을 사진자료들과 함께 소개한다. 그들의 삶과 행적, 특히 치열한 선교 현장을 체감할 수 있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발자취가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전택부 선집 7권으로 펴내는 《양화진 선교사 열전》은 2005년 출간된 개정판을 토대로 했으며, 일부 인명, 지명에 관한 약간의 변동 사항을 반영하고, 인용 자료에 관하여 확인되지 않았던 점들을 보완했다.

크기 165 × 228 mm

저자

전택부(全澤鳧, 1915∼2008)
호는 오리(吾里). 함경남도 문천 출생. 1940년 도쿄 일본신학교 예과를 졸업하고 1941년 같은 신학교 본과를 중퇴했다. 〈월간 새벗〉과 〈사상계〉의 주간을 지냈으며, 소천 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서울 YMCA 총무 및 명예총무, 한글전용국민실천회 회장, 한글인터넷추진 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이후 〈한국 기독교회사 만필〉, 〈토박이 신앙산맥〉, 〈양화진 외인 열전〉 등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사건 현장을 중심으로 한 교회사 연구에 정진했고, 한국 기독교의 수용과 성장을 토박이 신앙인의 신앙역사로 보려는 ‘토박이 사관’을 새롭게 시도했다. 한글 운동을 한 공로로 1978년 문교부 장관 표창, 1980년 외솔상을 수상했다.

차례

개정판을 내며
머리말
추천사 1 _한경직
추천사 2 _김재준
추천사 3 _호러스 G. 언더우드

프롤로그 _양화진 역사
1. 병자들의 친구 헤론
2. 한국 선교의 아버지 언더우드
3. 근대 교육의 개척자 아펜젤러
4. 한국의 친구 헐버트
5. 항일 언론 투사 베델
6. 백장 해방운동의 지도자 무어
7. 민족운동의 동역자 벙커
8.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치
9. 성서 번역의 주역 레이놀즈
10. 평양 선교의 개척자 홀
11. 성공회 토착화의 주역 터너
12. 숭실대학 창설자 베어드
13. YMCA 부흥 운동가 브로크만 형제
14. 민중의 봉사자 구세군 가족

발간사 _전국재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표기하지만, 〈전택부 선집〉에서는 저자의 원래 표기대로 ‘하느님’이라 표기했다.

책속에서

더욱이 이 책을 쓰시게 된 동기가 묘지의 역사적 가치를 몰이해한 관원들을 깨우쳐 양화진에서 묘지를 옮기지 못하도록 한 데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은택을 직접·간접으로 입은 수많은 현대인이 함께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이 책에 열거 수록된 헤론, 언더우드, 아펜젤러, 베델, 헐버트, 벙커 등의 정신을 계승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로 뻗어나가 그곳의 전택부 장로님과 같은 역사의 증인들에 의하여 영광스럽게 기록되는 그날이 오기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_한경직, ‘추천사’에서

내가 지금 끙끙대고 있는 작업이 한 폭의 거대한 군선도(群仙圖)를 그리는 데 목적이 있다면, 이제까지는 겨우 이 군선도의 구도를 잡고 밑그림을 그려 놓은 셈이다. 아니면 이제 겨우 배경을 그려 놓은 셈이다. 이 배경이란 양화진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의 작업은 이 양화진에 묻혀 있는 수많은 외국인 열녀와 열사들을 더듬어 찾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그림 위에서 돋보이게 하는 일이다. 우선 초대 선교사 헤론의 모습을 그려야겠다. 헤론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헤론이 양화진에 묻힌 최초의 선교사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양화진 외인묘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_1. ‘병자들의 친구 헤론’에서

이처럼 영국 고등법원은 일본의 강압에 몰려 어쩔 수 없이 베델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3주간의 금고형(상하이로 보내어), 6개월간의 근신을 명했다. 베델은 상하이에 끌려가서 3주간 금고형에 처해 있다가 다시 서울에 찾아왔으나, 오랜 일제의 탄압과 경영난에 멍든 몸을 가누지 못하고 병상에 눕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1909년 5월 1일 서대문 자택에서 숨을 거두니, 37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죽기 직전에 그는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_5. ‘항일 언론 투사 베델’에서

소다 가이치는 가마쿠라 보육원을 인계받은 뒤부터 8·15해방까지 천여 명의 고아들을 수용했다. 그 기간 동안의 고생과 역경은 이루 다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 소다 내외가 거리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안고 이 집 저 집 유모를 찾아다니던 일, 그러다가 구박받던 일, 아기가 너무 울어서 밤잠을 자지 못하던 일 등 그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소다 옹은 한국의 ‘하늘 할아버지’, 우에노 여사는 ‘하늘 할머니’라고 불렸다. 반면 악질 일본인이나 한국인들은 소다 옹을 ‘거지’ 또는 ‘위장한 자선가’ 등으로 비방했다.
_8. ‘고아들의 아버지 소다 가이치’에서

흔히 초대 교회는 선교사들이 경영하고 모든 경비도 선교사들이 전담하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터너는 이를 반대했다. 한국 교회는 한국인 스스로가 운영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했다. 다시 말해서 한국 성공회는 터너 주교 때부터 토착화의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각종 경비, 즉 학교 교사와 전도사의 월급, 교회 건축비, 신설 학교 운영비, 고아원 등 사회사업 단체 운영비, 병원 사업비 등을 한국인들이 감당할 수만 있다면 선교사들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터너의 목회 이상은 한국 교회의 자립에 있었다.
_11. ‘성공회 토착화의 주역 터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