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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교회사 다시 읽기

16,200 18,000

최종원
2020. 9. 21.
무선 / 412쪽 / 믿음의 글들 371
9788936503719 (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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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기’ 시리즈 그 두 번째, 중세교회를 다시 읽는다!
바울·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루터·칼뱅
그 사이에 놓인 ‘천 년’의 공백을 메우는 강의!

중세는 단절된 1,000년이 아니다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는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2018)로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최종원 교수의 ‘다시 읽기’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중세는 476년 서로마 멸망에서 시작해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까지를 가리킨다. 흔히 이 시기는 ‘암흑기’, ‘교황 지배 시대’로 여겨지며, ‘면벌부’와 ‘십자군’이라는 상징으로 주로 기억된다. 즉 부정되고, 개혁되어야 할 대상으로 천 년이 규정되어 왔다.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는 이러한 평가가 계몽주의 시대에 생겨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임을 밝힌다. 지금 역사학계는 중세를 암흑기로 보지 않으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벗어나 독자적 그리스도교 문화를 형성하여 르네상스와 근대 형성의 기초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는 중세 전반과 중세교회를 재평가한다. 중세와 종교개혁 그리고 근대를 연속선상에 놓고, 교황제뿐 아니라 아래로부터 중세를 형성한 수도회와 외부에서 중세 형성을 추동한 비잔틴과 이슬람 문명 등의 기여도 다시 평가된다.
교회사는 교회와 사회의 상호작용을 기록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지론은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와 함께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까지 일관된다. 중세교회를 통해 이어져 온 유의미한 성취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는 바울 및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루터와 칼뱅 사이에 놓인 1,000년 이상의 역사 인식 공백을 메우는 시도이자, 신학적·사회적으로 경직된 한국 교회를 이끌어 갈 상상력으로의 초대이다.

추락과 상승을 반복한 중세 교회
중세교회의 대표적 권력이라 할 교황은 중세의 변화를 가로막기만 한 것이 아니라 추동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반도를 침입한 훈족 지도자 아틸라와 협상을 벌여 로마 파괴를 막은 이는 황제가 아니라 당시 교황 레오 1세였다. 교황 지배의 시대라는 이미지를 만든 대표적 교황인 인노켄티우스 3세는 세속 군주들과의 투쟁 가운데에서 교황권의 전성기를 성취했으며, 그는 지금까지도 가톨릭 체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제4차 라테란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도 있었다. 중세 그리스도교의 사상적 기반과 영감의 원천은 주변부라 할 수도회였음을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는 밝힌다. 여기에는 이슬람, 비잔틴과 구별되는 유럽의 정체성을 형성한 켈트 수도회와 베네딕투스 수도회가 있었다. 또한 제도 교회의 하향식 개혁에 반작용으로 제도 교회 밖 운동이 일어난다. 이는 제도 교회가 수용하지 않은 카타리파(알비파)와 발도파 등 이른바 이단 운동과 도미니크회, 프란체스코회 등 제도 교회가 수용한 탁발수도회로 나타났다.
대립 교황이 서로 정당성을 다툴 때 전 교회 공동체를 대표하는 공의회가 교황보다 우위에 있다는 공의회주의가 대두되었다. 세속 권력의 주도, 교황에게 다시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한계가 있었으나 공의회주의는 중세 말 가톨릭교회 개혁의 모델을 제시했고,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한 형태를 예시했다. 중세 1천 년은 교황 지배와 십자군, 면벌부로 다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다양한 힘과 사건들이 형성해 간 시간이었다.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의 예시를 통해 한국 개신교가 중세교회에서 배울 바가 있음을 설파한다.

‘다시 읽기’ 시리즈 두 번째 책
2018년 출간된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는 그해 〈국민일보〉 최고의 책, CTK(크리스채너티투데이) 지평 확장 특별상을 수상하며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지은이는 “한국 개신교가 과도한 교리적·신학적 틀로 정체성을 확인해 온 흐름에 대한 답답함을 반영한 것 같”다고 첫 책이 관심을 받은 이유를 짚었다.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은, 강고한 벽에 둘러싸인 한국 개신교 전반의 역사인식”과 “이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회의적 마음”이 큰 어려움이었다는 지은이는 그러나 “여전히 이 시대는 종교에 길을 묻고 있으며, 유럽 천 년 동안 교회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회의 요구에 응답”했다며 소회를 밝혔다. ‘다시 읽기’ 시리즈는 《종교개혁사 다시 읽기》로 2021년 마무리된다.

 

책속에서

중세 유럽이 교황 지배의 시대였다는 것은 유럽의 군주, 제후 세력들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교황이 최상위 군주 권한을 행사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하면 안 된다. 교황이 그러한 권한을 행사한 기간은 2백 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상징적으로는 그런 지위였다 하더라도 교황은 프랑스 국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사이에서 끝없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했다. _19쪽, ‘1. 중세사와 중세교회’에서

그 시대를 비판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어떻게 그 어둠을 벗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진화할 수 있었는가 생각해야 한다. 이교 문화와 혼합되었다는 비판에 머무르지 말고, 그리스도교가 적극 민중들 속에 파고들어 갔다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문명이 생성되었다는 것은 종교에 녹아 있던 불순물이 정화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_49쪽, ‘2. 무너진 서로마’에서

중세 가톨릭교회는 위로는 교황제, 아래로는 수도회가 조화를 이루며 존속했다. 가톨릭이 시대마다 개혁이라는 탈바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교황 중심제였기 때문이 아니라, 거대한 제도 교회를 견인할 아래로부터의 개혁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_80쪽, ‘4. 아래에서 형성되는 힘’에서

무슬림 사회 속에 살던 그리스도인을 ‘모사라베’라고 했는데, 그들은 개종을 강요받는 대신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보호받는 계약을 무슬림 통치자와 체결하였다. 이 계약에 따라 그들은 독자적인 사법권을 소유했고, 종교 행위를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코르도바, 세비야, 그라나다, 발렌시아, 톨레도 등 주요 도시에 정착했다. 대체로 농업이나 상업 활동에 종사했지만, 관직에 오르거나 무슬림 군대의 용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슬람의 생활양식과 그리스도교의 생활양식 모두를 알고 아랍어와 라틴어를 말할 수 있었다. _160쪽, ‘7. 문명의 공존과 충돌’에서

종교는 사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것이라는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인식이 고도로 교권화된 성직 체계를 흔들었다. 더 나아가 이단 운동들은 교황이 보유한 세속의 권세는 사도 베드로가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 두 운동[이단 운동, 탁발수도회 운동]은 과도한 성직자 중심주의와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세력화된 교회를 비판하고, 사도적 삶(vita apostolica)과 사도적 청빈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_276쪽, ‘11. 교권 강화의 반작용’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시작된 각 지역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오래된 분열의 마침표일 뿐이다. 그 내리막길은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정치적 패배와 1309년 아비뇽 유수부터 길게 이어졌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국가’가 되었다. 국민국가의 출현과 성장으로 하나의 가톨릭교회는 각 국가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국가교회로 분화되었다. 피사 공의회의 소집과 실패는 교황청의 문제에 세속 군주들 사이의 합의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_322쪽, ‘12. 가톨릭교회, 분열되다’에서

종교의 가치는 선언함으로써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공감하고 수용할 때에 비로소 확인된다. 중세의 끝자락이 스콜라학의 퇴행이라는 쇠락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새로운 정신의 탄생을 예고했다면, 지금 교회가 애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인다. _368쪽, ‘에필로그’에서

차례

프롤로그 ― 독자적 그리스도교 문명을 만든 유럽

1. 중세사와 중세교회 ― 중세 유럽의 형성
2. 무너진 서로마 ― 서유럽 선교와 가톨릭화
3. 교황제, 전통을 창조하다 ― 교황제의 형성
4. 아래에서 형성되는 힘 ― 켈트 수도회와 베네딕투스 수도회
5. 두 외부 세력 ―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동서 교회 분열
6. 세속권력과의 투쟁과 교황권 ― 클뤼니 개혁 운동과 서임권 논쟁
7. 문명의 공존과 충돌 ― 콘비벤시아와 십자군
8.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다 ― 12세기 르네상스와 대학의 탄생
9. 가장 큰 빛, 가장 짙은 그림자 ― 인노켄티우스 3세와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0. 종교적 공포와 대중의 욕망이 만나다 ― 연옥과 면벌부
11. 교권 강화의 반작용 ― 대중 이단과 탁발수도회
12. 가톨릭교회, 분열되다 ― 아비뇽 유수와 교회 대분열
13. 주도하는 세속 권력 ― 콘스탄츠 공의회와 공의회주의
14. 한 세기 앞선 미완의 종교개혁 ― 위클리프와 롤라드 운동

에필로그 ― 낯설지만 열린 마음으로

중세교회 연대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최종원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유럽중세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인문주의 정신의 존중이 한국 교회 회복의 출발이라고 믿는 인문주의자이다. 기존의 신학적 담론을 넘은 인문학적 시각과 통찰로 교회 역사를 읽어 나가는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홍성사, 2018)와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비아토르, 2019) 등을 썼다. 페이스북 글쓰기를 통해 한국 독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캐나다의 대자연 속에서 캠핑과 카약킹을 즐기는 자연주의자이기도 하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jongwon.choi.58726823

저자 인터뷰

교회사는 교회와 사회의 상호작용입니다

Q: 2018년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가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그 두 번째 시리즈를 내셨습니다. 전작이 관심을 받은 만큼 후속작 집필에 부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A: 한국 개신교가 과도한 교리적·신학적 틀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던 흐름에 독자들이 답답함을 느낀 것 아닌가 싶습니다. 독자들의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중세교회가 제 전공분야이기에 전작보다 충실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컸던 부담은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은, 강고한 벽에 둘러싸인 한국 개신교 전반의 역사인식입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이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회의적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춰버리자 차분히 마무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여전히 이 시대는 종교에 길을 묻고 있으며, 유럽 천 년 동안 교회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회의 요구에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Q: 제목이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입니다. 중세교회는 암흑기, 타락의 시대였다는 인상이 강한데 ‘다시 읽는’ 중세는 어떤 모습일까요.
A: ‘암흑기’는 계몽주의 시대의 평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역사학계는 중세를 암흑기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벗어나 독자적 그리스도교 문화를 형성한 중세 문명은 르네상스와 근대 형성의 기초가 되었다고 봅니다. 중세 전반의 재평가는 중세교회 재평가와도 연결되어야 합니다. 교황 지배 시대, 타락의 시대였다고만 한다면 중세교회를 통해 이어져 온 유의미한 성취를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제 작업은 중세와 종교개혁, 근대를 연속선상에서 바라볼 것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중세와 교황제를 단선적으로 연결하기보다, 아래로부터 중세를 형성한 수도회, 외부에서 추동한 비잔틴과 이슬람 문명 등의 기여를 가감 없이 기록했습니다. 교회사의 핵심은 교리 형성사가 아니라, 교회와 사회의 상호작용 기록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중세교회가 사회와 상호작용해 왔는가 기록한 셈입니다.
Q: 중세교회를 이해할 때 제도 교회 흐름, 수도회 흐름, 이단 흐름을 동시에 조명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이 세 흐름은 어떻게 적용 가능할까요?
A: 아쉬운 편견 하나는 중세와 교황제 동일시입니다. 제도 교회의 성취와 한계, 타락만으로 중세를 읽으려는 것이지요. 가톨릭 제도를 천 년간 지탱한 것은 교황을 정점으로 한 제도교회의 힘만은 아니었습니다. 중세교회 개혁은 예외 없이 수도회를 통한 개혁이었습니다. 중세 말로 가면서 대중 이단 운동이 등장하지요.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친 이단들도 존재했지만, 존 위클리프나 얀 후스 등 교회 개혁을 외친 인물도 이단으로 파문당했습니다. 이들은 루터 종교개혁의 선구적 역할을 했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과 부를 가진 제도 종교는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 흐름을 바꿀 힘은 내부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새로운 사상과 운동을 펼칠 주변의 힘이 모아질 때,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주류 교회의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신학적·사회적으로 경직된 한국 교회를 이끌어 갈 문화적 상상력을 독자들이 고민했으면 합니다.
Q: 캐나다에서의 생활과 앞으로의 집필 계획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캐나다도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대면 활동이 거의 멈추었습니다. 제가 소속된 학교에서는 가을학기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 사람들을 만나 교제할 수 없는 아쉬움이 크지만, 더 성찰하고 공부하는 데 시간을 들이고자 합니다. 이제 ‘다시 읽기’ 시리즈의 마지막인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 작업과 몇 가지 저술 작업을 진행합니다. 코로나 19의 어려움 속에서도 독자 여러분의 행복과 건강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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