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pping Cart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세일!

침묵(沈默)-보급판

10,800

엔도 슈사쿠
공문혜
2003.1.27

무선 / 312 Pages
9788936506391

* 회원구매 시 정가의 5% 포인트 적립.
  3만원 이상 주문 시 배송비 무료

한국어판 출간 20주년 기념 양장본ㆍ보급판 동시 출간!!
국내 유일의 정식 저작권 계약본

하나님, 당신은 왜 침묵하고만 계십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일본이 낳은 최고 현대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대표 작품.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재미를 곁들여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얻고 있던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신부의 선교와 곧 이은 배교(背敎) 소식, 그 배교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잠복한 제자 신부가 겪는 고난과 갈등.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죽어 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침묵만 하고 계신 하나님!

신학적으로 해결하기 난해한 문제,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라는 문제를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내면 묘사를 통해 조용하지만 가슴 뜨겁게 그리고 있다.

★초판 발행일: 1982년 5월 8일
★개정증보판 발행일: 2003년 1월 27일

개정증보판의 특징
– 양장본·보급판 동시 출간.
– 국내 유일의 저작권 계약본.
– 저자 후기와 해설 수록.
– 우리말 표기법에 따른 인·지명 통일.

저자

엔도 슈사쿠
일본의 대표적 현대 소설가. 1923년 도쿄 출생. 가톨릭 신자인 이모의 영향으로 어머니가 그리스도인이 된 뒤, 엔도도 어머니와 이모의 권유로 열한 살 때 세례를 받았다. 1949년에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장학금으로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1955년 발표한 《백인》(白ぃ人)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고 《바다와 독약》(海と毒藥)으로 일본 문학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며, 종교소설과 세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6년 사망.
대표작 《침묵》(沈默)은 그에게 다니자키 상을 안겨 준 작품으로서 오랫동안 신학적 주제가 되어 온 “하나님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신가?”라는 문제를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을 토대로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려 냈다.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치밀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책속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두 종류가 있습니다. 즉 강한 자와 약한 자, 성자와 평범한 인간, 영웅과 용렬한 자. 그래서 강한 자는 이와 같이 박해받는 시대에도 신앙 때문에 불에 태워지고 바다에 던져져도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약자는 이 기치지로처럼 산속을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느 쪽 인간이냐? 만약 사제라는 자존심이나 의무감이 없다면 저 또한 기치지로와 똑같이 성화를 밟았을지도 모릅니다. -122~123쪽

•“저는 신부님을 전부터 쭉 속여 왔습니다. 들어 주시는 겁니까? 신부님이 저를 경멸하셨다면…… 저 역시, 신부님도 동료 신도들도 미워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성화도 밟았습니다. 네, 밟고말고요. 모기치나 이치소우는 강하지요. 나는 그렇게 강하지 못한 걸 어쩝니까?”
파수꾼이 견디다 못해 몽둥이를 쥔 채 밖으로 나오자 기치지로는 도망가면서 계속 소리쳤다.
“그렇지만 제게도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밟은 자에게도 밟은 자로서의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제가 즐거워서 밟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밟은 이 발은 아픕니다, 아파요. 나를 약한 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강한 자 흉내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건 억지이고말고요.” -177쪽

•그는 인간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나라에 왔던 것인데, 사실은 일본인 신도들이 자기 때문에 잇달아 죽어 갔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행위란 오늘까지 교리에서 배워 온 것처럼, 이것이 옳고 이것이 나쁘고 이것이 선하고 이것이 악하다는 식으로 정확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8쪽

•신부는 발을 들었다. 발에 저린 듯한 무거운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형식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멀리서 울었다. -267쪽

•그 성화 위에 나도 발을 놓았다. 그때 이 발도 움푹 들어간 그분의 얼굴 위에 있었다. 내가 수없이 생각한 얼굴 위에. 산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옥사에서 언제나 생각해 내며 따뜻한 위로를 받았던 그분의 얼굴 위에, 인간이 생존해 있는 한 선과 아름다움 그 자체인 얼굴 위에. 그리고 평생을 사랑만을 베풀려고 했던 그분의 얼굴 위에. 그 얼굴은 지금 성화판의 나무판자 속에서 닳고 패어 버린, 그리고 슬픈 듯한 눈을 하고 이쪽을 보고 있다. “밟아도 좋다”라고 슬픈 듯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간들과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2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