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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침묵

7,000

엔도 슈사쿠
공문혜
2020.10.15.

9788936514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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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출간 20주년 기념 양장본ㆍ보급판 동시 출간!!
국내 유일의 정식 저작권 계약본

하나님, 당신은 왜 침묵하고만 계십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일본이 낳은 최고 현대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대표 작품.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재미를 곁들여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얻고 있던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신부의 선교와 곧 이은 배교(背敎) 소식, 그 배교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잠복한 제자 신부가 겪는 고난과 갈등.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죽어 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침묵만 하고 계신 하나님!

신학적으로 해결하기 난해한 문제,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라는 문제를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내면 묘사를 통해 조용하지만 가슴 뜨겁게 그리고 있다.

★초판 발행일: 1982년 5월 8일
★개정증보판 발행일: 2003년 1월 27일

개정증보판의 특징
– 양장본·보급판 동시 출간.
– 국내 유일의 저작권 계약본.
– 저자 후기와 해설 수록.
– 우리말 표기법에 따른 인·지명 통일.

저자

엔도 슈사쿠
일본의 대표적 현대 소설가. 1923년 도쿄 출생. 가톨릭 신자인 이모의 영향으로 어머니가 그리스도인이 된 뒤, 엔도도 어머니와 이모의 권유로 열한 살 때 세례를 받았다. 1949년에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장학금으로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1955년 발표한 《백인》(白ぃ人)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고 《바다와 독약》(海と毒藥)으로 일본 문학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며, 종교소설과 세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6년 사망.
대표작 《침묵》(沈默)은 그에게 다니자키 상을 안겨 준 작품으로서 오랫동안 신학적 주제가 되어 온 “하나님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신가?”라는 문제를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을 토대로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려 냈다.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치밀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차례

첫머리 이야기
1
2
3
4
5
6
7
8
9
저자 후기
해설
옮긴이의 말

추천글

‘침묵’ 너머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신앙으로 바닷물 속으로 무참히 가라앉아 가는 그들 농민들. 그러나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바다는 여전히 잠잠하고 새는 그 위를 자유롭게 날고, 하나님은 계속 침묵을 지킬 뿐이다. 과연 하나님은 존재한단 말인가? 존재한다면 어째서 이렇게 침묵할 수 있단 말인가?”를 묻는 엔도 슈사꾸의 소설 《침묵》은 이렇듯 그 내용과 주제가 범상치 않다.
때는 17세기 초엽의 일본. 조선 침략으로도 유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종래의 정책을 바꿔 가톨릭을 박해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된 일련의 순교사화(殉敎史禍)들 중, 포르투갈의 예수회가 일본의 나가사끼(長崎)에 파견하고 있었던 한 선교사의 배교(背敎) 사건을 다루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배교 사건의 주인공은 페레이라 신부. 그는 일본에 체류한 지 33년이 됐고 또한 주교(主敎)라는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피선교지의 사제들과 신도들을 통솔해 온 고위 성직자였으며, 또한 그간 어떠한 위협과 도전에도 꿋꿋하게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믿음을 지켜 왔던 ‘불굴의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그 악명 높은 ‘구멍매달기’ 고문을 받고 믿음을 저버렸다는 소식은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1635년, 이제 로마와 포루투갈에서는 각기 페레이라의 배교라는 교회의 불명예를 설욕하기 위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본으로 들어가 잠복 포교를 행할 계획을 세운 사제들의 자원이 줄을 잇게 된다. 이들은 프란시스 자비에르 이래 동양에서는 가장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일본에서, 예상과 달리 통솔자를 잃고 좌절하고 있는 신도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무장된 선별된 성직자들이었다.
소설은 이들 사제들 중 한 사람이었던 세바스챤 로드리꼬 신부의 잠입 경로를 함께 따라가 이를 추적하는 방법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바스챤 로드리꼬는 1610년에 광산으로 유명한 타스코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수도원에 들어간다. 그는 신학교 동료 2명와 더불어 잠복 포교에 자원으로 나선다.
신학교에서 일상생활은 물론 매일 책상을 나란히 해 공부했던 그들은 자신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던 페레이라 신부에 대한 추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맑고 푸른 눈과 온화하고 부드러운 빛을 얼굴에 가득 담고 있던 페레이라 신부의 인자한 모습이 일본인들의 잔인한 고문으로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를 떠올리는 일은 이들에게 그리 용이하지 않았다. 그토록 인자한 신부의 얼굴 위로 굴욕으로 일그러진 또 다른 표정을 상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오직 뜨거운 신심으로 무장한 이들의 포교 열정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고아와 마카오를 거쳐 일본으로 잠입하기까지, 무서운 폭풍과의 싸움으로 인해 한 해를 꼬박 넘겨 이듬해 여름에야 비로소 일본의 한 어촌 마을에 도착하게 되는 상상하기 어려운 난관도 능히 극복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제 이들은 ‘도모기’라고 불리우는 한 마을에서 극적으로 그 곳의 그리스도인들과 상봉하는 감격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감격을 누림도 잠시, 이들은 당국의 감시의 눈을 피해 철저히 잠복의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형편에 놓인다. 마을 뒷산에 토굴을 파서 공간을 만들고 침상 대용으로 볏집을 얽어 생활하지만 이같은 불편보다는 언제 밀어닥칠지 모르는 당국의 수색에 극도의 긴장 속에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이들에게 찾아오는 비보(悲報). 자신들을 도왔던 모찌기와 이찌소우라고 불리우는 그리스도인들이 결국은 당국에 체포되어 곧 처형될 것이라는 소식…. 결국 이들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조수가 밀려 간 뒤 나무에 묶여 매달렸다가 다시금 바닷물이 들어 옴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악랄한 방법의 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순교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순교일까요? 나는 오랫동안 성인전에 쓰여진 그런 순교를, 이를테면 그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돌아갈 때 공중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천사가 나팔을 부는 그런 빛나고 화려한 순교를, 지나치게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보고하고 있는 일본 신도의 순교는 그와 같은 혁혁한 것이 아니고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아아, 바다에는 조금도 그치지 않고 비가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마냥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들의 순교 소식을 접한 로드리꼬는 이렇게 본국에 자신의 심경을 알리는 선교 보고문을 올리고 있다.
소설의 백미는 이 로드리꼬 신부 자신이 철석같이 믿었던 기찌지로라고 불리우는 한 신도의 밀고로 결국 당국에 의해 체포돼 교묘하기 그지 없는 박해를 받는 장면에 있다. 갖은 회유와 혹독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로드리꼬 신부. 그는 이제 그 혹독한 불시험에서도 자신을 지켜주어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마음 속으로 그 어떠한 고난이 닥친다 해도 믿음을 지키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스스로를 다잡는다. 이 같은 마음으로 차가운 감옥의 바닥에 몸을 누인 로드리꼬는 자신과 함께 체포돼 옆 방에 수감된 신도들의 ‘코고는 것과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한다.
엄청난 비밀이 그 소리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토록 궁금증을 자아냈던 ‘배교자 페레이라 신부’와의 조우를 통해서였다. 로드리꼬가 깨닫게 된 사실은 ‘코고는 소리’는 다름이 아닌 `구멍 매달기’ 고문을 당하는 현장이라는 것이었다. 악랄한 우네메라는 관리가 고안해 낸 ‘구멍 매달기’는 귀 뒤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구덩이에 처박아 거꾸로 매달아 놓는 고문이었다. 이렇게 거꾸로 매달린 이들은 그 구멍과 코와 입에서 피를 조금씩 흘리면서 죽음의 고통을 조금씩 더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로드리꼬 앞에 놓인 교묘한 상황이었다. 고문의 집행자들은 로드리꼬가 예수의 초상을 발로 밟고 지나가는 상징적인 배교 행위를 거행하기만 하면 저들의 형 집행을 중지하겠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저 사람들은 지상에서의 고통 대신에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 있겠지요”라는 말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피하려는 로드리꼬에게 페레이라는 “자신을 속여서는 안 돼”라는 말로 다그친다. “자네는 자신의 나약함을 그런 아름다운 말로 속이려 하는 거야. 결코 자신을 속여선 안 돼.” 이 말을 되씹으며 로드리꼬는 대꾸한다. “나의 나약함?” “그렇지 않아요. 나는 저 사람들의 구원을 믿고 있기 때문이오.” 이제 페레이라는 핵심으로 접근한다. “자네는 그들보다 자기 자신이 더 소중한 것이겠지. 적어도 자기 자신의 구원이 중요한 것일 테지. 자네가 배교하겠다고 말하면 저 사람들은 구덩이에서 나올 수가 있어. 고통에서 구원받는 거지. 그런데도 자네는 배교하려고 하지 않고 있어. 자네는 그들을 위해 교회를 배반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야. 나처럼 교회의 오점이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지…. 나도 그랬었지. 저 캄캄하고 차디찬 밤. 나도 지금의 자네와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행위란 말인가? 신부는 그리스도를 배우면서 살아가라고 가르쳤어.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소설은 ‘형식으로만 밟으면 된다’는 관리들의 말에 로드리꼬 신부가 예수의 초상을 밟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의 의미를 이렇게 그린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겨진 것을 밟는 것이다. 이 발의 아픔. 그 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 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 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멀리서 울었다.”
책장을 덮는 순간 마음이 아렸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단원의 로드리꼬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나는 배교했습니다. 그러나 주여, 제가 결코 배교한 것이 아님을 당신은 아십니다. 어째서 배교했냐고 성직자들은 나를 심문할 것입니다. 구멍 매달기 고문이 두려웠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저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있는 농민들의 신음소리를 참을 수 없었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페레이라가 유혹한 것처럼 자기가 배교하면 저 가련한 농민들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한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칫, 그 사랑의 행위를 구실로 자신의 나약함을 정당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 모두를 나는 인정합니다. 이미 나의 모든 약점을 숨기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과 나의 주님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엔도 슈사꾸를 통해, 하나님의 침묵 너머 계시는 로드리꼬의 주님을 만나게 된다. 새로운 믿음의 지평 속에 계시는 그 주님을….
– 글/이상훈(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한국기독공보 제2325호(2001.6.30)

책에는 세 종류가 있다. 흥미거리로 읽고 지나가게 하는 책,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주는 책,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을 깊게 하고 지혜를 주는 책. 엔도 슈사쿠가 쓴 《침묵》은 세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나는 《침묵》을 세 번이나 연거푸 읽고 나서 나 자신의 신앙을 깊이 되살펴 보았다. 《침묵》은 누구든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김진홍 목사

“우리 시대 가장 훌륭한 소설”
– 그레이엄 그린

“《침묵》에는 엔도 특유의 재능인 인상적인 발단, 대담한 역사적 상황 설정, 신학으로 해결하기 난해난 문제, 거리낌 없는 성격 묘사 등이 잘 나타난다. 절제된 고전 기법으로 묘사된 등장인물들의 시련, 일본 문화와 지극히 서양적인 종교 양식의 미묘한 대립 등이 엔도가 이 책에서 그려낸 업적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엔도 슈사쿠는 매우 탁월한 소설가이다. ……평이하면서도 신앙을 부인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고뇌하는 신앙인 묘사가 강한 인상을 준다. 우리가 진지하게 묵상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책이다.”
– 샌프란시스코 리뷰 오브 북스

“깊은 감동, 강한 혼란을 느끼게 하는 책…….”
– 워싱턴포스트 북 월드

“최근 몇 년간 내가 읽은 기독교 서적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 아메리카

“이 작품의 기조(基調)는 그렇게 잔인한 박해에서도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신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반문하는 데 있다. 어째서 이러한 시련을 견뎌야 하는지 물어도 하나님은 대답이 없으시다. 하나님이 대답하시지 않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예지(叡智)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서이지만, 엔도 씨의 작품은 그 점에 얽힌 또 다른 문화사적인 해답을 제시한 문제작이다.”
– 가와카미 테츠타로우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자리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감동이고 위로인가. 순교를 하든 배교를 하든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을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고통스러워 할 때 우리만 있게 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우리보다 더 괴로워하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 소설가 이승우(기독신문 2001. 7. 24./책 읽는 기쁨―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두 극단적인 요소를 배치하여 가슴이 저미는 강렬함으로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래서 생명력이 길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침묵’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은 뭘까. 신에 대한 끝없는 질문. 그것이 이 책을 쉽게 놓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 강석근 기자(기독신문 2002. 01.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