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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하임의 성경의 세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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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카를 하임 (Karl Heim)

역자 박규태

발행일 2012.2.24

상세정보 무선 / 232page / 143×202(mm) / 302g

ISBN 9788936502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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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당신이 우리를 데려가는 목적지가 대체 어디입니까?

그 목적지가 삶을 바쳐도 될 만큼 가치 있습니까?”

-절망에 빠진 현대 지성에 전하는 카를 하임의 복음주의적 변증-

자연과학은 눈부시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인간의 지성도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바벨탑을 쌓아 올린다. 역사는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과 사상에 의해 진보하는 듯하다. 이런 시대에 과연 신앙이, 자연과학과 지성에 ‘폭력’을 가하지 않고 인간의 타락, 구원, 계시를 말할 수 있는가?

《카를 하임의 성경의 세계상Die Weltanschauung der Bibel》은 카를 하임이 1919년 초여름 베스트팔렌 뮌스터 개신 교회 장로회의 요청으로 강연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카를 하임Karl Heim(1874-1958)은 현대 문명이 표방하는 세계상과 사상들이 무너뜨린 기독교를 더 확고한 토대 위에 세우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긴 독일 신학자다.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1차 대전은 독일 국민들에게 허무와 절망만을 안겨 주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고 탄식하던 시편 기자처럼 독일 국민들은 신과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제기했다. 역사 속에 하나님이 과연 존재하시는지, 온 세상을 창조한 신이 왜 악을 허락하시는지, 불확실한 현실에서 인간의 운명은 어찌되는지, 혼란에 휩싸였다.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카를 하임은 이런 독일 국민들에게 성경이 제시하는 세계관, 인생관을 명확하게 설파한다. “오히려 신을 믿음으로써 전쟁과 빈곤 문제들이 벌어진다”고 하며 신이 없음을 주장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에 뚜렷이 반박할 대답을 갖추지 못한 우리에게도 그것은 적실하다.

카를 하임은 총 네 편의 강연을 통해 확고한 성경적 세계상을 제시한다. 먼저 1장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과 함께 나를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에서는 하나님이 세상과 온 인류를 창조하심이야말로 학문이 반박할 수 없는 확신임을 이야기한다. “그 영이 생각하는 형상은 곧장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 영이 생각하는 형상은 스스로 만들어진 재료로부터 창조되고 만들어지며 건설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곧 행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창조에 관하여 단지 더듬거리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입니다”(37쪽).

2장 <타락 그리고 죄의 유전>에서는 피조물의 원原타락을 설명하며 비극적 운명에 처한 인간이 절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소망을 품을 수 있음을 설파한다. “이 순간, 운명의 속박이 끊어집니다. 이제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삶에 일어난 위대한 전환입니다. 이 순간, 그는 진정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제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굴복하려고 했던 이전보다 훨씬 더 위대합니다”(84쪽).

3장 <십자가의 말씀>에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막아버린 돌무더기들을 치울 힘이 전혀 없음을 뼈저리게 파헤친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생각과 비유는 여기서 단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리스도가 행하셨다”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타락은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 깊은 협곡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협곡으로 당신 자신을 내던지셨습니다. 그 뒤로 모든 죄인은 아버지의 품으로 자유로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식으로는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110~111쪽).

4장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소망>에서는 어떻게 임할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날 그날을 소망한다. “우리의 현존 형태가 완전히 바뀌면 틀림없이 모든 경쟁 관계가 피조 세계에서 제거될 것이며, 생존 수단을 둘러싼 싸움 때문에 한 존재가 다른 존재의 발전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존재는 끝없는 창조 활동 속에서 자신을 펼쳐갈 수 있고, 자신의 현존재가 지닌 깊이를 한껏 퍼 올릴 수 있습니다”(156쪽).

이렇듯 카를 하임은 창조, 타락, 구속 그리고 마침내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까지,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를 단호한 어조로 설파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경은 우리가 향하고 있는 새 땅의 모습 전체를 확실하게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극히 높은 망대에 선 예언자도 다만 멀리서 빛나는 해안을 볼 뿐”인 것이다. 모든 것을 말해 줄 것 같지만, 인간의 탄생 근원과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 결코 말하지 못하는 허약한 지성과 과학에 카를 하임은 확고하고도 명확한 진리로 답한다. 그러기에 이 책은 절망에 휩싸여 갈 바를 알지 못하던 독일 국민에게만이 아니라 “색깔 하나하나, 선 하나하나를 구별해 낼 수 있는 형상이 아니”기에 진리가 무엇인지 불확실한 현실의 우리에게도 인생의 방향키를 재조정하도록 해주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부록에 실린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 5장 10절 강해인 <죽음 뒤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긴장시키는 세상사 속에서도 무엇을 붙잡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조용히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현대 문명에 맞서 빗장을 닫아걸기보다 현대 문명과 대화하며 성경을 토대로 기독교의 확실성을 설득력 있게 변증한 한 복음주의 신학자의 가슴 울리는 변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카를 하임

Karl Heim(1874-1958)

현대 문명이 표방하는 세계상과 사상들이 무너뜨린 기독교를 더 확고한 토대 위에 세우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긴 카를 하임은 1874년 독일 작센안할트주 비텐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앙의 확실성을 변증하고 자연과학과 신앙을 이어 주는 대화 통로를 개척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대표작 〈개신교 신앙과 현대 사상 Der evangelische Glaube und das Denken der Gegenwart〉(전6권)에 이러한 그의 업적이 잘 담겨 있다.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십 대에 자유주의 신학의 거성인 알브레히트 리츨 학파의 영향을 받지만, 이후 경건주의를 기초로 대각성 운동을 주도했던 독일 신학자 엘리아스 슈렝크를 만나면서 인생의 진로를 바꾼다. 이후 스물셋의 나이로 깅엔 안 데어 브렌츠에서 목사로 사역하며 주로 알코올 중독자들을 돌보았는데, 이때 절망적인 현실을 목도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일찍이 튀빙겐 대학 신학부가 주최한 논문 공모에서 <신앙과 역사>로 1등을 차지할 만큼 탁월한 학문적 역량을 지닌 그는, 1907년 <미래의 세계상: 철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신학의 대립>이라는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얻는다.

1914년 가을에는 뮌스터 대학 신학부가 신설한 조직 신학 담당 교수직에 초빙 받아 대학 강단에 서게 된다. 1차 대전이라는 시련기를 보낸 뒤, 스승 테오도르 폰 헤링의 뒤를 이어 튀빙겐 대학 교수로 취임한다. 이때 저명한 신약 학자 아돌프 슐라터가 그를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그는 이성에 기초한 자연과학의 세계관에 맞서 신앙의 확실성을 변론했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데에도 큰 자취를 남겨, 나치가 지배하던 시절(1933-1945) 기독교를 변질시키려는 나치에 맞서 단호하게 저항했다. 마르틴 니묄러와 디트리히 본회퍼 등이 주도한 독일 고백 교회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의 신학은 이 지도자들의 신앙과 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루터파 신학의 대가 카를 홀, 아돌프 슐라터, 저명한 교리 사학자요 교의학자 라인홀트 제베르크, 카를 바르트, 유명한 신약 학자 율리우스 슈니빈트 등과 더불어 본회퍼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후학들은 그가 남긴 업적을 기려 탄생 100주년이 되던 1974년에 카를 하임 학회를 설립하고 기념관을 건립했으며, ‘카를 하임 상’을 제정해 신학과 신앙의 거성이 걸어간 자취를 지금까지 기리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이 큰 세력을 이루었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중반의 독일에서는 보기 드문 경건주의 신학자였으며, 현대 문명에 맞서 빗장을 닫아걸기보다 현대 문명과 대화하며 성경을 토대로 기독교의 확실성을 적극 변증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자의 선구자로 꼽힌다.

 

역자

박규태

고려대학교 법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6년 3월 교회 사역에서 물러난 뒤 번역과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묻혀 있는 신학 고전과 신앙 고전들을 발굴하여 번역,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쉼》(좋은씨앗)이 있고,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홍성사),《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국제제자훈련원),《주 예수 그리스도》(새물결플러스)를 비롯하여 20여 권의 역서가 있다.

차례

머리말

1장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과 함께 나를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2장 타락 그리고 죄의 유전
3장 십자가의 말씀
4장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소망
부록 죽음 뒤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고린도후서 4:17-5:10 강해)

옮긴이 주
옮긴이 글

 

책속에서

이 순간, 우리는 우리 운명의 짐을 자신의 어깨 위에 짊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됨을 느낍니다. 어느 누구도 이 하나 됨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전환입니다. 이제 다시 인류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제는 믿음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너무나도 좋았을 아버지 집을 버리고 떠난 탕자이다. 우리는 아버지를 저버리고 떠났지만, 아버지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했지만, 하나님의 세력권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2장 타락 그리고 죄의 유전, 82~86쪽>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드려진 것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단 한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증거는 기독교 신앙 전체가 진실임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증거일지 모릅니다.……우리에게 영원한 대제사장이 계시다는 깊은 확신, 그리고 사방에 포탄이 떨어져도 방공호로 피신한 사람은 안전하듯 이 대제사장이 완수하신 사역에 머무는 사람은 영원히 안전을 보장 받는다는 확신이 영혼 깊이 들어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 기이한 일을 밝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가진 강력한 경험 증거입니다. 이 증거가 순교자들의 시대 이후로 우리 신앙에 세상을 이길 힘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한, 세상 학문이 온통 득세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3장 십자가의 말씀, 112~113쪽>

우리가 바울처럼 날마다 죽더라도, 아니면 우리 생애를 아주 안락하게 꿈같이 보내며 허비했더라도, 우리 모두 결국 같은 목적지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살아가는 삶 전체는 굽이굽이 길고긴 길을 돌아가도 결국에는 모든 이가 함께 복을 누리고 만물이 제 위치를 찾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과 같겠지요. 만일 이 말이 옳다면, 예수가 부활하신 뒤에 곧바로 세상에 종말이 와야 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을 통해 하나님께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자유로이 결단해야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하기만 하면 영원히 하나님을 등질 수 있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 그리고 장차 임할 세계의 영광과 영원히 인연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경 마지막 장은 무서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4장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소망, 150~151쪽>

옮긴이 글

옮긴이 글


과학과 기독교 신앙은 영원히 앙숙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근래에 신은 없다고 선언하여 무신론의 기수로 떠오른 스티븐 호킹 박사나 역시 무신론을 주창하여 장안을 떠들썩하게 한 리처드 도킨스 박사 사례를 보면, 과학과 기독교 신앙이 화해할 길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18세기 철학자인 칸트는 “하나님이 계시는가?” 같은 문제를 형이상학 문제로 보고 이성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의 후예들인 이 시대 과학자들은 대선배의 교훈을 무시하고 형이상학에도 이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니, 과학과 기독교 신앙은 더욱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연히 기독교 신앙은 이런 과학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큰 과제입니다. 

근래 이런 과제를 해결하려고 적극 나선 인물이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입니다. 맥그라스 교수는 도킨스 교수 같은 무신론자와 대화하면서 이성의 한계를 지적한 칸트의 말을 가져다가 과학이 하나님이 계시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무신론자들이 교만을 부린다고 비판합니다. 뿐만 아니라, 과학이 그동안 몰랐던 경이에 접근할수록 더 큰 신비를 만나는 게 현실인데, 도킨스 교수 같은 사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그런데 이런 맥그라스 교수보다 이미 한 세기나 앞서 과학과 대화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려 했던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카를 하임Karl Heim입니다. 

(중략)

새삼 반세기가 지나 여러분 앞에 소개하는 이 책은 카를 하임의 주저主著는 아니지만, 그가 거닐었던 신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저서입니다. 우선 《성경의 세계상》은 1차 대전 직후 패전의 고통과 절망에 시달리는 독일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묶어 펴낸 것입니다. 카를 하임은 이 책에서 인간 이성과 과학을 향한 신뢰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1차 대전이 증명해주었다는 것을 먼저 역설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이 이성과 과학이 인간에게 낙원을 제공해 주리라 믿었지만 도리어 파멸을 가져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일깨워 줍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이 의지하고 기다려야 할 것은 새 하늘과 새 땅, 역사가 완성되고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영광을 누릴 그 날이지 현세에 인간의 손으로 이룰 낙원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가 기다려야 할 그 역사의 완성과 영원한 영광을 반드시 이루시리라는 확신을 품고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죽음 뒤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사실 《성경의 세계상》과 무관한 별개 저작이나, 루터파의 내세관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이런 내세관에 근거하여 현세에 견지해야 하는 신앙 자세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성경의 세계상》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 저작에서 카를 하임이 그리스도의 음부 강하, 그리고 과거에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자들에게도 구원을 받을 기회가 열려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제시하는 입장은 루터파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기에 신학사적 측면에서도 흥미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저작 가운데 《성경의 세계상》은 이미 1980년에 강한표 교수님이 번역하시고 고 전경연 교수님이 편집하셔서 《성서의 세계관》이라는 제목으로 내놓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다시 번역하여 소개하는 이유는 번역 작업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던 시절에 귀중한 작품을 발굴하여 소개해주신 선학先學들의 열정과 헌신을 새로운 번역으로 새롭게 이어 가는 것이 그 분들의 헌신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옛 번역은 아무래도 번역하신 분들이 살아오셨던 역사 정황을 반영한 결과인지 일본식 번역어가 여러 곳 있었고(가령 햄릿을 하므렛으로 적으신 경우처럼) 소소한 오역도 있었습니다. 새 번역, 다듬은 번역으로 고전에 새 옷을 입히는 일이 결국은 고전을 쓴 저자와 이를 번역 소개하신 역자의 마음을 이어 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이 책 원제는 독일어로 Die Weltanschauung der Bibel입니다. 단어 자체만 놓고 보면 《성경의 세계관》으로 번역함이 옳겠으나, 칸트가 《판단력 비판》(1790)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이래 세계와 역사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통일된 시각을 가리키는 말로 써왔던 ‘세계관’이라는 말이 근래에는 개인 중심의 말이요 주관성이 강한 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기에, 이보다 더 객관성을 지녔다고 말하는 ‘세계상Weltbild’을 대신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세계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으로서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분명 객관성을 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 교수는 과학자들이 이성으로 판단하는 차원을 넘어 믿음으로 하나님과 성경을 영접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과학이 다룰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역설합니다. 대저 귀가 있는 자는 들을 것이요 눈이 있는 자는 볼 것입니다. 따라서 귀가 없고 눈이 없는 자는 정말 들리는 게 없고 보이는 게 없기에 더 무시무시한 공격을 기독교 신앙을 향해 퍼붓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아테네 한 가운데서 학식과 지혜를 자랑했던 아테네 시민을 상대로 복음을 변증한 바울 사도를 본받아 우리도 마땅히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믿는 분이 어떤 분인지 변증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한 세기 전에 그런 길을 열어 놓은 선구자 카를 하임이 이 책을 계기로 다시 평가 받아 그가 남긴 많은 저작들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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