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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서울까지 47년

5,850 6,500

발행일  1996.6.15
상세정보  무선 / 348page
ISBN  978893650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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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에 평양에서 반탁운동 혐의로 체포당한 이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7년간의 포로생활, 러시아에서의 유배생활과 정착, 한·소 수교 후 47년 만에 마침내 서울에서 극적인 가족 상봉을 하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간증집.

저자

김선혁, 김귀혁

차례

이 책을 내면서

추천의 글

1. 잊지 못할 그 날 / 2. 평양에서 / 3. 유형의 길 / 4. 망향의 세월 / 5. 꿈 같은 소식 / 6. 가족들의 47년 / 7. 서울까지 / 8. 75명의 동포 / 9. 호소문

책속에서

‘내가 지금 서울로 가는 거 맞겠지?’ 혼자 마음속으로 자문자답을 했다.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17세에 평양을 떠났는데, 이제 환갑이 넘어서 내 나라를 다시 찾게 될 줄이야. “선혁이가 돌아오는 걸 보고야 눈을 감을 수 있다.” 늘상 입버릇 처럼 말씀하셨다던 어머님이 지금 저 서울에서 이 불효자식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터지는 듯,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본문 중에서

추가정보

[저자의 글]
“특별한 일생과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의 일생을 살다가 죽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덕택으로 살게 되고 다음에는 학교, 사회, 국가의 덕택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들은 세상으로부터 받은 덕택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조금씩 더 좋아져서, 우리 자손들이 우리보다 더 잘 살고, 더 정직하게 살고, 더 튼튼한 믿음으로 살게 되겠지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일생을 통해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동안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볼 때마다 사실 부끄럽습니다. 생각했던 만큼 좋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나의 일생은 특별한 생활, 특별한 고생, 즉 특별한 일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내게는 튼튼한 믿음이 있었고, 조금도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힘쓰며 살았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큰 위로를 받습니다.

존경하는 어버님에게서 신앙심과 민족정신을 배우고 자라 17세 나이에 반탁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죄수 아닌 죄수의 몸이 되었습니다. 시베리아에 끌려가서 강제노동과 유배생활을 겪으며 모진 목숨을 이어오다가 47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어머님과 고국을 찾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기적의 역사입니다.

재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형님께서는 그 동안 내가 살아왔던 과정을 녹음으로 남겨두라고 하셔서 바쁜 일정 속에서도 녹음테이프 15개에 지나온 발자취를 남겨 놓았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많은 분들께 내가 살아온 한평생을 담담히 알려드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47년 동안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던, 영원히 저주받은 지옥의 땅 시베리아 강제 노동소 생활과 이국(異國)에서 살아온 여정(旅程)을 이렇게 책으로 엮어 내놓게 되니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특별히 젊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꼭 믿는 사람이 되고,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이 더 튼튼해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평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우리나라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열심히 살기를 원합니다.

틈틈이 적어놓은 기록은 있었지만 그 동안 내 나라말과 글을 쓰지 못해 표현력이 부족하고 서투른 점이 적지 않습니다. 멀리 러시아까지 오셔서 밤새워 나의 서툰 말을 받아 적으시고 훌륭하게 정리해 주님 귀혁 누님이 아니었으면 이 책은 도저히 완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끊임없이 저를 격려해 주시고 힘을 주신 기혁 형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글/김선혁(저자, 쿰회보 96.06)

[독자의 글]

처음에는 표지에 ‘한 청년의 시베리아 강제 노역기’라고 적었으니 이 주인공이 시베리아에서강제 노역에 시달렸겠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젊은 총각이 눈물방울을 떨구어가면서 책을 읽었다면 믿을는지 모르겠다.

첫 배경은 1946년 평양이다. 해방 이듬해였기에 물리적인 힘이 난무하는 무법사회였고, 애국과 반역이 수시로 뒤바뀌던 때였다. 김선혁은 반탁운동에 앞장섰다는 죄목으로 소련군 형무소로 압송된다. 취조 끝에 반소운동을 했다는 서명을 받아낸 소련군은 군법재판소에서 정치범으로 7년형을 선고한다.감옥의 12월 평

균기온은 영하 63도였고, 소련군의 통제는 이보다 더 혹독했다. 짚을 엮어 만든 거적대기 하나에 양말은 고사하고 굶주리며 채석장 일과 벌목 일을 해야 했다. 기상 후 취침 때까지 눕거나 눈을 감으면 매맞는 것이 ‘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7년을 만기한 그에게는 ‘정치범’이라는 이름으로 평생 유배형이 주어졌다. 그후 40년 동안 온갖 노역에 시달리며 어머니와 고국을 그리는데…….

1993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47년만에 가족이 상봉하는 장면에서는 책을 덮었다. 가슴이 너무 벅차서 잠시 쉬지 않고서는 다음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선혁은 그와 함께 끌려갔던 애국청년들 대부분의 행방을 지금도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깝다고 한다. 지금도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나 모임들은 많다. 그러나 선한 의지와 신앙의 뿌리로 역사의 질곡을 헤쳐 나온 청년의 47년은 6.25 47주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글/정성수(편집부, 쿰회보 9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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