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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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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2007.08.21.
무선 / 304page
ISBN  978893650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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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25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신앙일반 부문> 우수 도서 수상!

‘한恨’을 딛고 ‘한계’를 넘어 새 시대의 여명이 된 사람들!

값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의 과감한 행동에, 그 주위에 섰던 남자들이 놀라며 그 여인을 책망했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여인의 용기를 칭찬하시며 세상 어디든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그 여인의 행한 일도 함께 전파될 것이라 하셨다(막14:3-9).

예수께 칭찬 들었던 그 여인처럼 우리 신앙의 옛 어머니들의 삶도 그러하였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가 주는 자유와 해방을 온전히 받아들인 조선의 여인들은 과감히, 유교의 구습으로 점철된 가부장 문화의 족쇄를 끊고 일어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새 역사의 물꼬를 트는 주역들이 되었다.

남편의 외도에 속수무책 속앓이만 하던 전삼덕은 예수를 만난 뒤 이북지역에서 맨 처음으로 휘장 세례를 받은 주인공이 되었으며, 보쌈 위기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김세지는 기독교 진리를 만난 뒤 보호여회와 과부회 회장으로 활약하는 여성 리더가 되었다. 또 “밥 먹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김점동이 예수를 만나 거듭난 뒤에는 미국 유학을 하고 돌아와 한국인 최초로 여성 의사인 김에스더가 되었으며, 어려서부터 ‘무당집 딸’로 손가락질 받으며 결국 미쳐 버리기까지 했던 주포기는 예수를 만나 온전한 진리를 안 뒤, 해주지역 개척 전도부인으로 활약하는 주룰루가 되었다.

그 외에도 결혼 3일 만에 과부가 된 여인,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가 된 여인, 양반집 규수로 태어나 한 번도 집 밖에 나가 본 적 없는 여인, 읽을 줄도 쓸 줄로 몰랐던 까막눈의 여인들이 복음을 통해 무지에서 눈을 뜬 후, 가정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혁하며, 나아가 비운에 처한 나라와 교회를 위해 몸 바쳐 투쟁하는 여성 리더들이 되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방의 복음을 받아들여 민중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렸던 신앙의 옛 어머니들 이야기는 복음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함께 전파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 이후 이덕주 교수의 두 번째 책
성실한 연구와 탁월한 글쓰기로 한국 교회사 분야의 거목으로 자리 잡은 이덕주 교수는 작년 5월에 출간된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를 통해, 그간 교회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던 ‘이덕주 마니아 층’을 일반 평신도까지 포괄ㆍ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대부분 한국 기독교인들은 교회사에 관심이 적고, 관련 책을 찾는 독자도 드물다고 하기 때문에, 초기 교회사를 다룬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를 읽고 그 깊이와 글맛에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자진하여 입소문을 내 준 덕분에, 출간 초기의 우려는 거뜬히 씻어낼 수 있었고 오히려 이덕주 교수의 다음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문의를 자주 받아야 했다.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은 이미 16년 전 기독교문사에서 한 번 출간된 적이 있지만, 2쇄를 끝으로 절판되었기 때문에 그 뒤로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이제 오랜 시간 묻혀 있던 책의 먼지를 털어내고, 16년간 심화된 연구의 깊이를 더한 뒤, 부족하고 거친 부분을 보완하여 다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번에 새롭게《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을 개정하게 된 배후에는, 비록 무명의 여인들이지만 그 행한 일만은 믿음의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알려지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마음이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본다.

저자

이덕주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신학박사)하고, 기독교문사 편찬실장을 역임했으며, 서울 신암교회와 광서교회에서 목회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로서 한국 교회사와 아시아 교회사를 강의하면서 (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이상 홍성사), 《초기 한국 기독교사 연구》, 《한국 토착 교회 형성사 연구》,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개종 이야기》, 《스크랜턴: 어머니와 아들의 조선 선교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Ⅰ. 복음을 받아들인 처음 여성들
1. 휘장 세례의 주인공 전삼덕 2. 평양 전도부인 김세지 3. 보호여회와 진명여학교 창설자 여메례
4. 한국인 최초 여성 의사 박에스더 5. 해주지방 전도부인 주룰루 6. 이화학당 최초 한국인 교사 이
경숙 7. 평양ㆍ강서지방 선교 개척자 노살롬 8. 한국인 최초 미국 대학 문학사 하란사Ⅱ. 민중과 교회를 위해 몸 바친 여성들
9. 여류 자선사업가 왕재덕 10. 정화여학교 설립자 김정혜 11. 한국인 최초 해외 선교사 최나오미
12. 절제운동의 선구자 손메례 13. 13. 독립운동과 여전도회 지도자 김성무 14. 성결교 순교자 문준
경 15. 여류 시조시인 장정심 16. 전주 고아원 설립자 방애인Ⅲ. 민족과 나라를 사랑한 여성들
17. 애국부인회 지도자 김마리아 18. 여류 무장 독립운동가 남자현 19. 맹산호굴독립단장 조신성
20. 대한애국부인회 총재 오신도 21. 독립운동과 유린보육원 설립자 어윤희 22. 요절한 처녀 독립운
동가 김경희 23. 선천 독립운동과 여성운동 선구자 강기일 24. 자수를 통한 민족혼 수호자 장선희

 

책속에서

전삼덕은 오랜 봉건적 체제의 굴레 속에 묶여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한국 여성의 ‘한限’과 ‘한恨’을 기독교 신앙을 통해 극복하고 초월하여 자유와 해방이 주는 창조적 삶을 살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전통사회의 끊임없는 방해가 있었지만 그것을 몸으로 깨뜨리며 앞서 나간 선구자의 삶이었기에 전삼덕의 도전과 모험은 더욱 빛났다. ……여성에게 한없이 냉랭했던 가부장적 사회의 굴레 속에서 신앙으로 한번 데워진 ‘성신의 화덕’은 열기를 잃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 뜨거움을 전하고 있다. (30쪽)

경상도 마산, 이름 모를 곳에서 태어나 기독교를 통해 자신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교육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던 여메례. 그는 말년을 이름 없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농촌교회를 찾아 봉사하다가 결국 이름 모를 무덤에 묻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姓이 셋이었을 만큼 파란만장했던 그의 일생은 다만 부강교회에서 세운 ‘여메례전도사기념비’를 통해 후세에 전달되고 있을 뿐이다. (56쪽)

김점동, 김에스더, 박에스더에 이르는 이름의 변화는 곧 삶의 변화였다. “밥 먹는 것밖에 모르며 하나님이 계신 줄조차 모르던” 김점동이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 되어 육신과 영혼의 질병에 찌든 이 땅의 여성들을 위해 짧으나 고귀한 삶을 바치기까지는 두 번에 걸친 이름의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의 변화 때마다 그의 인생을 안내한 벽안의 선교사들이 있었다.(66쪽)

어릴 때 이름은 주포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배고픔의 설움을 겪고, ‘무당집 딸’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불행한 시집살이 끝에 결국 미친 여인이 되어 버림받았던 주룰루. 그가 변화되어 학교 선생이 되고 전도부인이 되어 교회를 세우고 놀라운 전도의 결과를 일으키게 된 것은 그의 표현대로 “내 생활의 피난처”인 예수 때문이었다. 신앙인 주룰루는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모든 고통이 의미 있는 것임을 깨닫고, 신앙의 힘으로 닥쳐오는 모든 고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그만의 고통이 아니라 그 당시 이 땅을 산 모든 신앙의 어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었다. 그 고통의 뿌리 위에 오늘 우리 후손들은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84쪽)

과연 그는 ‘거리의 여장부’였다. 백발을 날리며 민족 계몽과 전도를 위해 헌신하는 70대의 그의 모습은 바로 1919년 3월 9일 재령읍 거리에서, 그리고 1920년 3월 1일 밤 선천 거리에서 만세시위대 앞머리에 서 있던 30대의 모습과 변함이 없었다. (173쪽)

목포에 머물러 있었으면 살았을지도 모를 문준경 전도사는 ‘교인을 죽게 버려 둘 수는 없다’는 목회자의 양심으로 적치하에 찾아들었고 결국 그 희생제물이 되고 말았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다[善牧者爲羊捐命]”는 목회정신이 그를 순교자의 자리에까지 이끌었던 것이다. (182쪽)

서평

【편집자 노트】

지난 5월,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 편집을 시작할 무렵, 저자이신 이덕주 교수님께서 책 앞 머리에 들어갈 ‘여는 글’ 원고를 보내 오셨는데, 그 글을 읽다가 그만, 울컥 눈물이 나고 말았다. 교수님이 쓰신 바, 감사의 글에 등장하는 나는 ‘나태한 오늘의 신앙 회복에 활력을 주는 것을 문서선교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여성 편집인’으로 그려져 있었다. 

늘 일정에 쫓겨 정신없이 하루하루 지내며 어느새 칭찬보다는 질책에, 감격보다는 반성에 길들여져 기죽어 지내던 내게 ‘사명을 갖고 일하는 여성 편집인’이라는 문구는 참으로 눈물겨운 칭찬이고 격려였다. 
하지만 ‘타는 목마름에 샘물처럼 시원하던 그 격려’의 감격도 잠깐일 뿐, 어느새 나는 ‘일상에 찌들고 무뎌진 마음으로’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을 무감동 속에서 읽고 또 읽고 하였다. 그렇게 여러 번 교정을 보고 사진을 고르고 카피 문구를 쓰느라 정신없이 지내며 일을 끝낸 뒤, ‘저자 인터뷰’를 정리하기 위해 녹음되어 있던 교수님의 인터뷰를 듣다가 그만, 또 한 번 눈물을 뚝 흘리고 말았다. 

서른다섯에 홀로 되셔서 삼 남매를 눈물과 기도로 키우셨다는 교수님의 어머님 이야기, 그리고 이 책을 쓸 무렵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이 책의 여인들의 자료를 뒤지는 그 가운데서 위로를 받으셨다는 교수님의 고백을 들으며, 그제야 나는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을 교정하던 때, 강철보다도 냉정하고 무뎌진 내 가슴 속으로도, 끝내는 비집고 들어와 잔잔히 여운을 남기던 그 감동의 원인이 여기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교수님의 어머님뿐 아니라 내 어머니 아니 울 엄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눈물로 나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 아뢰시는 엄마 모습이 떠올라 또 눈물이 났다. 

귀한 책을 쓰셔서, 독자들이 과거의 묻혔던 역사를 새롭게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신 이덕주 교수님께 감사드릴 뿐 아니라, 그것이 눈물로 기도의 탑을 쌓으신 교수님의 어머님 덕분이었음을 깨닫고 그분께도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기도해 오셨고, 앞으로도 기도해 주실 나의 어머니께도 다 표현할 수도, 다 갚을 수도 없는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우리 모든 어머니들의 기도를 들어오셨고 지금도 듣고 계시며 말없이 응답해 오신 하나님께, 오늘은 엄마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싶다. 

저자 인터뷰

【저자 인터뷰】

가르기보다는 포용하고 질책하기보다는 싸매 주는 모성(母性)의 역사

1. 처음 이 책을 쓰시게 된 동기, 그리고 16년이 지난 이후 다시 개정판을 출간하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10여 년 전에 출판됐던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이 그간 절판돼서, 간간이 책을 찾는 독자들이 구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홍성사에서 새롭게 개편 의뢰를 해 와서 개정 출간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개정을 결심하고 다시 보니, 자료가 빈곤한 상태에서 썼던 10여 년 전 글이라 부족한 면이 많이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 자신도 그 사이 역사를 보는 인식이나 안목이 조금 바뀌었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출간하면서 자료와 내용을 수정ㆍ보완하고 글도 매끄럽게 다듬었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두 가지입니다. 한국 교회 여성들의 역사,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발굴해서 이 땅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 한 가지 이유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여성신학과 관련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 신학계에 여성신학이 유행하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만, 처음 여성신학이 한국에 소개될 때는 대부분 서구 여성신학자들의 책과 개념, 방법론을 그대로 베끼는 듯했습니다. 그 내용이나 주제에는 동감하지만 방법론이나 표현에 있어서는 한국 사람들에게, 특히 한국 여성들에게 맞지 않거나 심할 경우 충돌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착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여성신학도 한국 여성을 주제를 삼는 것이 어떨까’, ‘한국 여성신학자들이 외국의 것만 그대로 답습하지 말고 우리 것으로 여성신학을 정립해 가면 좋겠다’는 희망에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2. 특별히 무명의 여인들을 선택해서 글을 쓰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한국 교회사나 일반 근대사에 여성으로서 이름을 크게 낸 분들이 있습니다. 유관순, 김활란, 임영신, 최용신 등 이렇듯 유명 여성들에 대해서는 교회사에서뿐 아니라 일반 역사에서도 이미 많은 평가와 연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여성들 중에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마 거의 처음 접하는 분들일 것입니다. 저도 처음 만난 여성들이니까요. 
유명한 여성들은 무명의 여성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유명한 여성들의 배경에는 수없이 많은 헌신적이고도 희생적인 무명의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유명인 중심으로만 역사를 쓰기보다, 이렇듯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복음에 자신을 맡겼던 무명의 여인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끼친 수고와 헌신으로 오늘의 한국 교회가 발전할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저는 계속 무명의 여인들, 무명의 교인들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을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3. 현대의 여성들이 우리 옛 어머니들의 리더십에서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의 리더십은 예수의 영적 권위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섬김이었습니다.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대접하라.’ ‘높은 자리보다는 낮은 자리를 택하라.’ 낮은 자의 자세, 섬김의 삶. 그것이 바로 권위와 리더십의 근거였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쓰는 동안 ‘한국 교회 여성들의 리더십과 지도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고민했을 때, 대답은 바로 ‘예수의 마음, 예수의 리더십’이었습니다. 
이북지역에서 맨 처음 예수를 믿은 전삼덕이나 김세지 같은 여성들은 모두 부유한 양반집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된 후 그들은 모두 섬김의 모습을 실천했습니다. 가마를 버리고 걸어 다니며, 방물장수처럼 시골 구석구석까지 들어가 성경책을 팔고 복음을 전하고 어려움에 처한 여인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변에서 “양반집 여편네가 뭐가 부족해서 책을 팔러 다니느냐” 비난할 때도, 그들은 “예수께서 내게 보여 주신 삶, 보여 주신 은총이 이렇게 큰데 어찌 내가 가만히 앉아서 대접을 받고 있겠나”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오늘의 한국 교회 여성 지도자들의 리더십도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낮아지고 더 비우는 것,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 한국 여성들이 우리에게 보여 준 모델이고 교훈이며 질책인 것입니다. 

4.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이 책을 읽는데 도움 될 만한 귀띔이 있다면?
제가 이 책을 처음 쓸 당시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서른다섯 살에 혼자 되셔서 삼 남매를 눈물의 기도로 키우신 분이었습니다.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정,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이 책에 수록된 여인들의 자료를 찾으면서 위로받았고, 그 여인들의 이야기를 읽어 갈 때, ‘이게 바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여성들이 느꼈던 슬픔과 외로움, 공포와 감격과 평안을 우리 어머니도 그대로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책 속의 여인들을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라기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 자신의 어머니, 할머니를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오시고 어떻게 우리를 키우셨으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셨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신앙의 대’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남성 중심의 가계보다는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훨씬 풍요롭고 감동적입니다. 한국 교회도 그런 측면에서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가르기보다는 포용하고 질책하기보다는 싸매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분쟁과 갈등의 역사가 아니라 화합과 포용의 역사를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모성의 역사, 어머니의 역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단지 이 책의 주인공들만 위대했다고 느낄 것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도 위대했고 우리 할머니도 위대했고 우리 누이들이 위대했다고 고백하게 되길 빕니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가 만났던 주님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리: 편집부 한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