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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청년회 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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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택부
2017. 3. 25
무선 / 488 Pages
9788936511678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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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YMCA
태동과 성장, 좌절과 재기의 발자취
 
우리나라 최초의 ‘청년들을 위한, 청년들의 조직체’
1903년 10월 28일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서울)에서 ‘황성기독교청년회’로 창설된 한국 YMCA(Young Man’s Christian Association)는 ‘청년’이란 말조차 없던 당시 청년들을 위한 청년들의 조직체로 생겨났다. 이후 성장·확장기를 거치면서 국가적·민족적 요구인 개혁과 독립을 위해 교육·계몽·선교에 주력하며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YMCA 운동은 1844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각지를 거쳐 대서양을 건너 북미 대륙에,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 여러 나라에 번져갔다. 청년들에 의한 기독교 신앙적 혁명운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도탄에 빠진 민중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애국청년과 지사들의 자주적인 독립운동으로서의 자취를 남겨 갔다. 한국 YMCA는 ‘한국인이 세계와 호흡을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문’이기도 했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서구 문물과 제도를 도입하며 민중과 교회 사이에서 통로와 인도자 역할을 하는 한편,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자주적 근대화를 위한 중요한 한 축을 이루었다. 
 이 책은 한국 YMCA 태동기인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YMCA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태동과 창설 및 사업 확장과 전국적인 조직이 갖춰지는 일련의 과정은 격변기 우리 현대사 가운데 시대의 부름에 호응하여―항일 투쟁과 민중계몽, 농촌운동, 민족 교회 육성 등―역사적 사명을 다하며 걸어온 길이었다.
 
영원한 Y맨이 담아낸 신앙운동·민족운동의 참모습
 저자 전택부 선생은 1957년부터 20여 년간 서울 YMCA에서 총무 등 여러 중요 직책을 맡아 온 ‘Y맨’으로, 총무 시절인 1970년대 초반 YMCA의 역사 집필에 착수했다. 그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의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역사’에 유념하면서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YMCA 전반기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되살려 냈다. 국내외의 방대한 문헌과 자료를 섭렵하고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문화사의 한 면을 이루는 YMCA의 활동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다.
 본문에 수록된 통계자료를 비롯한 많은 참고자료는 특히 교육과 민생 문제 해결, 전도 운동을 통한 복음화 운동 등의 참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중국 Y는 운동식, 일본 Y는 교회식인 데 반하여 한국 Y는 학교식”이라는 당시 유행어가 말해 주듯 초창기부터 가장 비중을 두고 주력해온 교육사업은 직업교육, 생활교육, 기술교육 등을 통해 청년들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며 근대화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한편 ‘온 장안을 뒤흔들어 놓은’ 집회와 방학을 이용한 강연회, 사경회 등은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불덩어리가 된’ 학생들에 의해 전국적인 조직이 확산되어 갔으며, 이와 함께 확산되어 간 신앙 운동이 도시와 농촌을 망라한 민족운동으로 이어진 과정을 소상히 살펴볼 수 있다. 
 태동과 성장기를 거치면서 일제의 탄압에 맞서고, 기독교계의 분열이 초래한 지리멸렬한 국면과도 싸워야 했던 YMCA. 이 책에는 YMCA 반세기 역사에 헌신한 국내외 많은 인물들의 증언과 행적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의 톨스토이’ 이상재(1850~1927), ‘동양의 종교적 정치가’ 윤치호(1864~1945)와 민족운동가 신흥우(1883~1959)는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이들의 활약상에는 YMCA 정신이 집약되어 있다. 
 
저자 전택부 선생은 이상재와 신흥우의 전기를 남겼는데, 홍성사에서 속간되는 〈전택부 선집〉으로도 다시 소개될 예정이다. 
 
 
※ 우리 시대의 ‘어른 소리’, 그 두 번째
―전택부 선생의 저작물을 하나로 엮다어른의 경륜과 지혜가 필요하지만 실상은 그리 주목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으려는 시대, 홍성사는 이런 세태를 바로잡고 그분들의 소리를 담아 간직하고자 그 첫 기획으로 2002~2010년 시인 구상 선생(1919~2004)의 전집(전10권)을 간행한 바 있다. 두 번째로, 2015년부터 전택부 선생이 남긴 저작물 가운데 17종을 선별하여 〈전택부 선집〉(전16권)을 내고 있다. 〈전택부 선집〉으로 간행되는 전택부 선생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토박이 신앙산맥》(전3권, 2015~2016년 출간),《한국 기독교청년회 운동사》,《한국 에큐메니칼운동사》,《한국교회발전사》,《양화진 선교사 열전》,《강아지의 항변》,《인간 신흥우》,《월남 이상재의 생애와 사상》,《고희 기념 논문집》,《Y맨의 세계일주기》,《무슨 재미로 사나》,《세상은 달라진다》,《달을 쏘는 아이》,《부부의 십계명》,《자화상을 그리듯이》(전3권·합본), 《남기고 싶은 종로이야기》,《Y새끼다리들이여》.
 
무게 782 g
크기 163 × 228 mm

저자

전택부
호는 오리吾里. 1915년 함경남도 문천 출생. 1940년 도쿄 일본신학교 예과를 졸업하고 1941년 같은 신학교 본과를 중퇴했다. <월간 새벗>과 <사상계>의 주간을 지냈으며, 소천 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서울 YMCA 총무 및 명예총무, 한글전용국민실천회 회장, 한글인터넷추진 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이후 <기독교사만필>, <토박이신앙산맥>, <양화진외인열전> 등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사건 현장을 중심으로 한 교회사 연구에 정진하였고, 한국 기독교의 수용과 성장을 토박이 신앙인의 신앙역사로 보려는 ‘토박이 사관’을 새롭게 시도하였다. 한글 운동을 한 공로로 1978년 문교부 장관 표창, 1980년 외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부부의 십계명》《가정의 뜻, 금혼잔치 베풂의 뜻》(이상 홍성사), 《월남 이상재의 생애와 사상》(연세대학교 출판부), 《두산 김우현 목사 그 신앙과 사상》(기독교문사), 《토박이 신앙산맥 1,2,3》(대한기독교서회), 《한국 기독교 청년회 운동사》《씨알머리 없는 세상》《자화상을 그리듯이 1,2,3》(이상 범우사)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발간에 부쳐/ 백낙준, 김용우 

제1부 태동기(1899~1903)_청년회 창설 전의 사회 상황과 청년 동향 
1. 국내의 사회 환경과 청년들의 요구 
2. 창설을 위한 전문가의 조사 작업 
3. 전문가의 내한과 창설의 기초 작업 
4. 미국 안의 청년운동과 한국에 끼친 영향 

제2부 창설기(1903~1906)_황성기독교청년회의 창설과 민족사적 의의 
5. 기독학생회의 창설과 그 주변 
6.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창설과 그 구성 및 정신 
7. 일본의 침략과 민족의 항거 
8. 독립협회 운동의 계승자 
9. 회관 마련과 사업의 착수 
10. 미신화된 YMCA의 신흥 세력 

제3부 회세 확장기(1906~1909)_조직의 증대와 사업의 확장 
11. 회원의 급증과 연합 세력 형성 
12. 신교육으로 사회 혁신 기도 
13. 사업 확장과 새 회관의 건립 
14. 새 지도 이념의 설정·조직·예산 및 사업 계획 
15. 일본유학생 사업과 민족 자립의 열망 

제4부 항일 투쟁기(1909~1913)_침략과 불의에 대한 민족적 항거 
16. YMCA 안에까지 파고든 침략의 마수 
17. 더 강화되는 YMCA의 힘과 슬기와 용기 
18. 침략에 대한 학생운동의 조직화 
19. 105인 사건 때의 항거 
20. 유신회 사건 때의 항거 
21. 명칭과 헌장 개정에 대한 항거 

제5부 전국 조직기(1913~1916)_전국 연합회의 조직과 학생운동 
22. 이상재 총무 취임과 공업교육 
23. 자립 운영과 청소년 사업 
24. 학생운동과 전국 연합회의 조직 

제6부 독립운동과 민중계몽기(1916~1920)_무단정치하의 독립운동과 민중계몽 
25. 윤치호 총무 취임과 체육관 준공 
26. 총독부의 교육 탄압과 일부 교육사업의 정비
27. 실업교육과 체육사업을 통한 실력 배양 
28. 민중계몽에 의한 3·1운동 기반 확립 
29. 재일 한국 YMCA와 2·8선언 
30. 3·1운동과 YMCA 정신 

제7부 국제 활동기(1920~1925)_민족자결주의와 세계 조류 속의 한국 
31. 미국 위원단의 방문과 제2차 독립운동 전개 
32. 신홍우 총무의 취임과 그 주변 
33. 지방청년회의 조직과 학생운동의 확장 
34. 한국 YMCA의 독립을 위한 해외 활동
35. 범태평양 민족 대표 파송과 국제 활동 
36. 각종 사업의 개척과 민족운동의 구축 

제8부 민족 교회 육성과 사회 운동기(1925~1931)_외래 사조 속의 민족주의 운동 
37. 이질적인 외래 사조의 등장 
38. 제1차 농촌 조사와 3대 강령 발표 
39. 농촌운동의 기본 계획과 국제 제휴 
40. 농촌사업 개시와 교계 대표자 협의회 소집 
41. 제2차 농촌 조사와 사업 확장 
42. 공산당의 파괴 공작과 신간회 
43. 민족적 각성과 독립운동 
44. 민족 교회의 육성운동 

제9부 수난과 암흑기(1931~1945)_민족 생존을 위한 결사 투쟁 
45. 정치적 탄압과 농촌사업의 수난 
46. 적극신앙단 운동을 통한 항거 
47. 홍업구락부 등 지하운동을 통한 항거 
48. 세계로 향한 유일한 창문이 닫히는 고통 
49. 태평양전쟁에 휩쓸려 

참고문헌/ 찾아보기/ 발간사 

책속에서

이 책 제목을 ‘한국 기독교청년회 운동사 연구’라 하고 싶었지만 ‘연구’를 빼고 ‘운동사’라 한 까닭은 첫째, 운동체로서 청년회의 성격을 힘주어 드러내고 싶어서였으며, 그럼으로써 이 작업이 단순한 청탁에 의하여 어떤 외부 인사의 손으로 씌어졌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조심한 것은, 흔히 한 기관의 역사가 자칫하면 범하기 쉬운 자기 자랑이나 자기도취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청년회 역사야말로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의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늘 명심하면서 쓴 것이 사실이다. _‘머리말’에서

한국 YMCA의 창설은 일찍이 미국·영국 유학중에 YMCA 운동을 직접 보고 듣고 온 한국인들과, 이보다 앞서 1899년에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운동에 자극받은 젊은이들, 배재학당·외국어학교 등에서 신교육을 받은 청년들의 자발적인 요구에 부응하여, 국내 선교사·외교관·실업가들의 협조 하에 이루어졌다. 이것이 곧 한국 역사상 최초의 청년단체이며 기독교적 국제기구가 됐다. 
이리하여 한국 YMCA는 도탄에 빠진 민중과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일어난 애국 청년들과 지사들의 자발적이며 자주적인 독립운동으로 생동하였다. ……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창립되기 4년 전에 벌써 150명이나 되는 열렬한 상류층 청년들이 YMCA 창설을 강력히 요구한 사실이 있다. 그들은 선교사들의 기대 이상으로 YMCA를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_제1장 ‘국내의 사회 환경과 청년들의 요구’에서

1년 뒤에는 체육관 사업이 새로운 양상을 보여 주었다. … 체육관은 날마다 만원을 이루었으며, 한국의 운동열은 급작스럽게 고조되었다. 추운 겨울에도 쉴 새 없이 운동을 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는 한산했지만 9월부터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몇 해 전만 해도 신사들과 그 자제들은 운동경기를 천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일변하여 모든 신사들이 운동을 즐기게 되었는데, 이는 틀림없는 YMCA의 공헌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연중무휴로 운동을 할 수 있는 데는 YMCA밖에 없었다.” 
_제27장 ‘실업교육과 체육사업을 통한 실력 배양’에서

YMCA는 3·1운동을 계기로 민족 독립과 주체성 확립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런 정신은 창립 당시부터의 일관된 정신이었다. 1903년 창립 당시 이름을 ‘황성(皇城)’ 두 자로 지은 것이라든지, 독립협회 지도자들이 집단적으로 가입한 것이라든지, 1911년 총독 살해 음모사건을 조작하여 YMCA를 파괴하려 했지만 굴하지 않고 도리어 학생 세력을 규합하여 Y 연합회를 조직한 것이라든지, YMCA는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족 해방과 민족 교회 육성에 큰 구실을 했다. 
_제44장 ‘민족 교회의 육성 운동’에서

한국 Y의 농촌 사업은 한국 기독교 선교 사업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따라서 일본 총독부 당국의 농업 정책에도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한국 YMCA가 농촌 사업에 끼친 훌륭한 업적은 역사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의 조직·운영 및 관리와, 부락인의 문맹퇴치 운동·보건 운동·농사 개량 사업 등이 총독부 당국까지 가만있지 못하게 움직인 것 등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 지적한 것보다 더 큰 공헌은 YMCA가 전제 한국 기독교로 하여금 한국 농촌의 성격을 바로 인식하게 했으며, 선교 정책과 기독교 사업을 농촌으로 유도한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_제45장 ‘정치적 탄압과 농촌사업의 수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