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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신앙

12,600

이재철
1999. 07. 08
무선 / 272 Pages
152*224
978893651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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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동기의 회복,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회복, 성령 충만의 회복, 참믿음의 회복, 참사랑의 회복, 사람됨의 회복 등 ‘믿음’에 관한 여섯가지 주제를 명쾌한 주해와 감동적인 예화로 풀어 나간 추천 셀러. 왜곡된 신앙 행태를 바로잡고, 탈선한 믿음의 개념을 올곧게 세우는 신앙훈련서로 부족함이 없다.

저자

이재철
한국 교회의 대표적 설교자, 한국의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목회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49년 부산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뒤, 1974년 홍성통상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주목받는 경영인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나 회사와 개인 삶에 닥쳐온 위기를 계기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다. 1985년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 공부와 목회 수련을 거쳐 1988년 주님의교회를 개척했다. 개척 초기의 약속대로 10년 임기가 끝나자 사임한 뒤 스위스 제네바한인교회에서 3년간 섬기면서 여러 해외 한인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2001년 귀국하여 개인 복음전도자로 말씀을 전하며 집필에 전념하던 중,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의 부름을 받아 2005년 7월 10일부터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회복의 신앙》, 《회복의 목회》, 《사랑의 초대》, 대담집 《지성과 영성의 만남》(이어령 공저)(이상 전자책도 출간), 《새신자반》, 《성숙자반》, 《사명자반》,  《인간의 일생》, 《비전의 사람》, 《내게 있는 것》, 《참으로 신실하게》, 《매듭짓기》(이상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출간),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 로마서 설교집 <이재철 목사의 로마서>(전3권), 요한복음 설교집 <요한과 더불어>(전10권), 사도행전 설교집 <사도행전 속으로>(출간 중)가 있다. 이 책들은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에 치우치지 않고 기독교 진리를 끊임없이 삶과 관련지어 ‘지성과 신앙과 삶’의 조화를 꾀한다. 또한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을 강조하며 풀어내는 명료한 논리와 특유의 문체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새신자반》은 몽골어와 베트남어로,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와 《비전의 사람》은 중국어로 번역되어 현지 교회의 선교 사역에도 쓰이고 있다.

차례

저자와의 대담 : 회복 없는 신앙은 미래가 없다

1. 왜 믿을 것인가? / 2. 무엇을 믿을 것인가? / 3. 무엇으로 믿을 것인가? / 4. 어떻게 믿을 것인가? / 5. 어떻게 살 것인가? / 6. 무엇이 될 것인가?

책속에서

새날, 새 시대는 결코 밖에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캘린더가 바뀌거나, 연도의 단위가 새로워진다고 해서 새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날이란 오직 인간 내부에서 그리스도를 힘입어 가꾸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에 ‘올곧은 신앙’보다 더 확실한, 새 천년을 위한 준비는 없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보십시오. 어두운 인간의 역사에 진리의 빛을 발했던 사람들은 늘 올곧은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회복의 신앙》이란 올곧은 신앙 본질에 대한 준비입니다 -본문 중에서

서평

“걷기 연습을 가르쳐 주는 책”

오늘 점심시간, 동료들과 맛있는 새우볶음밥을 먹고, 사무실 근처의 연금매장에 들렀다. 같은 건물에 있는 우체국에서 편지도 부치고, 매장 1층의 서점에서 신간서적에 눈길을 붙들어 매다가 시계를 보고 터벅터벅 매장을 걸어 나왔다. 그런데 어쩐지 뭔가가 허전했다. 순간, 멈춰서서 생각했다. 내가 여기 ‘왜’ 왔더라?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긴 듯, 잠시 암전 상태로 있던 내 머리에서 드디어 몇 분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약국에서 피로회복제를 사야겠다고 지갑을 챙기던.

그랬다. 여고시절, 동생 신발과 자기 신발을 한 짝씩 바꿔 신고 왔던 같은 반 친구를 놀렸던 내가 서른의 나이에 이르기도 전에, 요즈음 “내가 여기 왜 왔더라?”를 반복하곤 한다. 그런데 나와 같은 이를 교회에 가서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내가 여기 왜 왔더라…….”
“내가 기도를 왜 하더라…….”

얼마 전, MBC의 만민중앙교회 사태 보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신앙은 ‘맹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의 신앙인들에겐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어떠한 물음표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예수를 왜 믿는지,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모두 다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오히려 방법론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드높아 간다. 기도 응답은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하는지, 제자훈련은 어떻게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기독교 서적 코너 앞에서 서서 신간서적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느껴왔던 안타까움이다.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가 삶의 지난한 고민으로 다가오고, 그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내면화되어 자기고백으로 이어질 때, 굳건한 신앙인으로 척박한 이 땅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지 않을까? 요즈음 신앙인들은 마치 걷기도 전에 뛰는 연습부터 하는 조급한 어린아이 같다.

그런 면에서 이재철 목사의 《회복의 신앙》은 우리들에게 걷기 연습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또한 ‘내가 여기 왜 왔더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왜 믿을 것인가, 무엇을, 무엇으로, 어떻게 믿을 것인가’와 더불어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될 것인가’라고 우리들 마음 한가운데를 향해 본질적인 질문이 시위를 던지고 있다. 그 예리한 시위가 마음에 꽂혀, 우리들의 양심과 지성을 깨우고, 진지하게 자신의 신앙을 되짚어 볼 시간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저자의 이러한 메시지는 ‘개혁’이라는 과녁이 아닌, 본질에의 ‘회복’이라는 과녁을 겨냥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하나님의 형상이 흔적조차 짐작하지 못할 만큼 심하게 일그러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신앙인의 우선적인 과제는 ‘개혁’보다는 원래 모습으로의, 원래 관계로의 ‘회복’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삶의 여정을 통해 내면화된 자신의 빛깔과 음성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통찰력 있게 제시하는 이재철 목사, 그이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다 보면 조금씩 하나님의 형상으로, 참된 신앙인으로 회복되어 가는 우리들의 ‘얼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노수진(주간기독교 기자, 쿰회보 99.08-09)

저자 인터뷰

“회복 없는 신앙은 미래가 없다”

※ 《회복의 신앙》은 미국 남가주 주님의교회(96년)와 남서울교회(98,99년)에서 전하신 메시지를 편집부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참믿음’에 대해 여러 곳에서 되풀이 설교하시는데, 어떤 계기나 구체적인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제가 만약 스위스에 오지 않았더라면 책으로 집필하려던 주제들입니다. 그러나 스위스로 오면서 집필 기회를 상실하는 듯했는데, 이처럼 홍성사 편집부에서 관련 테이프들을 찾아 책으로 편집해 주심을 먼저 감사 드립니다.

‘참믿음’을 되풀이하는 데에는 분명한 까닭이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제가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믿음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당신은 단순히 교리적인 단답이 아니라, 한 인간의 심령을 눈뜨게 할 만큼 깊은 영혼의 답을 갖고 있습니까?

○ 왜 《회복의 신앙》인지요? 오히려 회복보다는 신앙의 ‘정진’이나 ‘전진’이 중요한 게 아닌가요? 사실, ‘회복’이라는 말 자체에서 아무래도 과거 지향적인 느낌을 받게 됩니다.

-‘회복’보다 ‘정진’이나 ‘전진’이 더 중요하다거나, 혹은 ‘회복’은 과거 지향적이라는 것은 이 단어들을 방향의 의미로 이해했기 때문이겠지요. 즉 회복의 방향은 뒤쪽이고, 정진이나 전진은 앞쪽인 것으로 말입니다. 이와 같은 방향의 의미 속에서는 확실히 회복보다는 정진이 더 유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복의 목회》에서도 상세하게 밝혔듯이, 저는 방향이 아닌 본질의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이 단절된 관계의 회복에 있습니다. 이 회복이야말로 참된 신앙의 동기요 과정인 동시에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정진과 전진이란 회복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회복의 완성을 위한 인간의 의무라 할 수 있겠지요. 뿐만 아니라 이 회복 위에서만 진정한 미래가 보장될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놓고서야 아무리 정진한들 그 미래가 계속 어긋나기밖에 더하겠습니까?

○ 새 천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그런 점에서 《회복의 신앙》은 어떤 영역의 준비입니까?

-새날, 새 시대는 결코 밖에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캘린더가 바뀌거나, 연도의 단위가 새로워진다고 해서 새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날이란 오직 인간 내부에서 그리스도를 힘입어 가꾸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올곧은 신앙’보다 더 확실한, 새 천년을 위한 준비는 없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보십시오. 어두운 인간의 역사에 진리의 빛을 발했던 사람들은 늘 올곧은 신앙인들 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회복의 신앙》이란 올곧은 신앙 본질에 대한 준비입니다.

○ 이후에는 어떤 주제의 책을 쓰실 계획이신지요? 역시 ‘회복’을 키워드(key word)로 쓰실 것인지요?

-스위스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면 쓰고 싶은 책들이 참 많습니다. 그 모든 주제가 믿음의 본질에 관한 것인 만큼 ‘회복’이란 대전제는 변함없는 키워드가 되겠지요.

-대담/편집부(쿰회보 9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