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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사람들 라르슈

5,850

발행일  1999.2.18
상세정보  양장 / 120page
ISBN  9788936506247

품절

우리 영혼을 비추는 맑고 깊은 희망의 영성

“나는 여러분에게 자신있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장 바니에가 다가오도록 길을 열어 두고 그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어느새 달라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헨리 나웬(Henri J. M. Nouwen)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슈’의 설립자로서, 헨리 나웬을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바니에의 영성이 깊이 배어나는 저서. 가장 작은 자들과 함께 살아온 바니에의 짧은 자전적 기록과 라르슈 이야기가 40여 장의 사진과 어우러져 있는, 작지만 깊은 책.

무게 285 g
크기 145 × 203 mm

저자

장 바니에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 라르슈(L’Arche) 설립자. 1928년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스위스에서 출생. 13세의 나이로 캐나다 해군에 입대하여 장교로 복무하며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 1950년 해군을 제대한 뒤 프랑스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트라피스트 수도원, 파티마 수도원 등을 거치며 수도생활을 하고 철학을 공부한다.

토론토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중 새로운 부르심을 발견하고 교수직을 그만둔다. 1964년 프랑스의 트로즐리 브뢰이에서 정신지체 장애인 두 사람과 함께 라르슈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헨리 나웬을 비롯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긍휼의 영성을 퍼뜨리고 있다.

저서로는 《공동체와 성장》(성바오로), 《희망의 공동체》(두란노) 등이 있다.

차례

머리글

예수를 따르는 삶 / 공의를 행하는 삶 / 인자를 사랑하는 삶 /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삶

책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난함과 상처와 연약함을, 우리의 모든 능력과 부요함과 권력, 심지어 다른 이들에게 후하게 베푸는 행위로써 숨기려고 합니다.

~*~*~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은 절망의 경계선 아주 가까이에 살고 있거나, 모든 열정과 창의력을 가로막는 일종의 슬픔에 매우 근접하여 살아가곤 합니다. 우리 안에는 죄악이나 영적, 도덕적 가난으로 말미암아 깨어진 형상(image)이 있습니다.

~*~*~

긍휼은 고통을 없애 주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은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것입니다.

~*~*~

가장 작은 사람들을 제외시키는 축제는 더 이상 축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아이들과 노인들, 가장 연약한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춤과 놀이를 찾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축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이들의 축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

마음과 마음의 만남은 감상주의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덧없는 감정이나 낭만주의로 되는 것도 아니며, 성적인 경험도 아닙니다. 그것은 깊은 만남이자 약속이고 나눔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입니다. 그 만남은 세심한 마음과 용기, 다른 이에 대한 신뢰와 그의 은사에 대한 인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서평

[역자의 글]

장 바니에의 글을 번역하면서 역자이기보다 먼저 독자가 되어 때론 가슴이 찔리기도 하고, 때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린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제 주위엔 실제로 정신지체 장애를 겪고 있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면서 저 자신의 무력함과 함께 그분들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 인해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그러나 장 바니에는 오히려 그분들 가운데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장 바니에는 우리에게 참 하나님 그분의 모습과 그분의 따스함과 그분의 친절하심을 우리의 온 마음과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그 삶을 통하여 진실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큰 위로의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메시지를 우리 독자들과 나누게 되어 여간 기쁜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에서 벗어나 빛의 근원으로 들어가도록 용기를 주니까요.

“너는 용기를 내어 사랑할 수 있고 손을 내밀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리석은 짓도 하게 되겠지만 염려하지 말아라. 너의 불성실함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결국 너를 통과하는 것은 나의 성실함이기 때문이다.”

《희망의 문》이 우리의 삶 속에서 제시해 주고 있는 아름다운 교훈들도 무척 소중합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지혜를 주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자들은 우리 주변에 늘 있어 왔습니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 육신이 연약한 사람들, 절망에 사로잡혀 희망을 알지 못하는 이들. 삶이 고단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외면해 버린 일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의 문》은 우리에게 마음 문을 열고 우리에게 있는 아골 골짜기로 들어가 보도록 권합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반전입니다. 가장 꺼리고 가장 묻어 두고 싶고 가장 용서가 되지 않는 일들 가운데로 주님의 손길이 임한다니…. 주님이 그 곳에서 희망의 문을 여신다니….

글과 함께 실린 라르슈 가족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천국의 이마쥬(image)를 보았다면,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다면, 아마도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글/김은경(번역자, 쿰회보 99.04)

[독자의 글]

겨우내 땅속에 숨어 있던 노란 수선화가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봄은, 따스한 주님의 손길인 듯 다가 왔습니다. 이 구석진 바다 마을에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 못지 않게 기다려지는 것은 홍성사의 신간 책입니다. 시간 책이 나로 때마다 저자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 저자들을 통하여 살아 역사 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바니에 이 분은 어떤 주님을 만났을까?

이 책을 통하여 주님은 나에게 어떤 주님으로 다가 오실까?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넘겨 가다가 “이노상뜨” 소녀의 눈동자, 그 미소에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소홀히 했던 이들의 모습이 하나 하나 떠오르면서 마음이 저려 오듯 아팠습니다.

입술로만 주님과 동행했을 뿐,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없었습니다. 장바니에, 이 분은 과연 주님과 동행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녀가 어찌 자녀라 할 수 있겠는가? 내게 주신 것 중에서 나룰 수 있는 삶, 베풀 수 있는 삶을 살겠노라고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외롭게 지내는 독거 노인들, 결손 아이들, 어두운 골방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하는 이웃들이 아주 가까이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작은 책 한 권이 나를 한 순간에 다른 모습의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호2:15)

-글/바다 마을에서(海里) 조양순 사모

[독자의 글]

“장 바니에의 《희망의 문》을 읽고”

너무 좋았다! 책이 얇고 가벼워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내용은 짧고 간략했으되, 글의 무게와 진정성은 정말 깊고도 진했다. 한 문장 한 문장 밑줄을 그어가며 감동을 음미했다. “우리 안에는 죄악과 영적 도덕적 가난으로 말미암아 깨어진 형상이 있다”는 구절에서 내 모습을 돌아보았고, “가난한 자들과 연약한 자들 가운데 숨어 계신 예수님을 따라가라”는 바니에의 말에, ‘예수님을 따른다’거나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정말 너무 쉽게 해 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장마다 실려 있는 사진을 보며 책 읽는 재미와 감동이 더했다.

이 책을 읽으며 고통받은 자들과 ‘함께하는’ 삶에는 ‘도움’이라는 말이 필요 없다는 걸 알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신혜영/주부 동대문구 이문2동

이 책은 내게 인간성 회복을 촉구하는 목소리였다. 갈수록 인간이 하나의 대상물로 전락하는 시대에, 인간 그 자체를 하나님이 선하게 지으신 피조물로서 귀히 여기는 눈을 열어 주는 좋은 책이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사진은 정신지체 장애인의 모습 그대로를 보게 함으로써 나를 더욱 ‘긍휼의 마음’으로 이끌었다.
-김병년/IVF(한국기독학생회) 학원사역부 대표간사

자고 나면 너무 많이 밀려오는 새로운 것들의 홍수 속에서, 아무것도 손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나날 속에서, 비 갠 후 만난 무지개를 보듯이 다가온 것은 바로 장 바니에의 《희망의 문》이었다. 발견과 감사와 희망의 환호성을 찾아가는 한 줄 한 줄의 고백은 뜨거운 여름날의 갈증을 한순간에 해결하는 얼음 냉수로 다가온다.
복음서를 깨닫지 못했다면, 아니 지신에게 향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희망의문’을 두드리기 바란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이 바로 ‘희망의 문’의 입구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신자/숭덕여고 교목

-쿰회보(1999. 05)

[독자의 글]

“존재의 가치를 전하는 책”

‘복음과상황 독서클럽’ 회원들이 읽은 《희망의 사람들, 라르슈》

이 책은 기독교를 ‘약자들의 종교’라고 했던 니체의 선언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를 진실의 문으로 끌어당기며 여러 생각들로부터 무장해제시켜 주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평가하는 세상의 눈에서 벗어나, 땅 속에 숨어 나무에게 생명을 전달하는 뿌리와 같은 연약하고 가난한 자 그리고 불행한 자를 찾아가라 한다. 그들을 동정하지 말고, 그들의 고통 속에 함께 거하라고 말이다. 그것이 예수를 따르는 길이라고.

나는 내 삶에 이런 부르심이 반복적으로 들리는 것이 감사하다. 또한 장 바니에와 헨리 나웬이 읽히는 시대에 사는 것이 즐겁다. “인간이 인간을 짓밟는 야욕과 증오심”이 가득한 세계를 살아가는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의 본질적인 바람이 ‘함께 머물며 관계를 맺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이 행동의 시대에 존재의 가치를 물어 준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유은하/고려대 국문학과 대학원, 학복협 간사

바니에의 언어에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삶 속에서의 눈물과 땀이 있고, 침묵을 통한 묵상과 공동체의 다른 이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스스로를 진솔하게 돌아보는 데서 맺어지는 열매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세희/가톨릭대 심리학과 대학원

빠듯한 시간과 해야 할 일들 속에 깊이 묻어 놓고 인식도 하지 않다가 가끔씩 꺼내어 좌절하고 푸념하는 나의 연약함을 마주 대하고, 그 상처를 안고 다시금 예수님께 나아갈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의 글을 통해, 진정한 희망이란 고통의 근원 속으로 마주 대하여 생기는 새로운 용기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된다.
-고한나/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희망의 사람들, 라르슈》에 언급된 내용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똑같은 내용으로 서술된 책이 많을지라도 그것이 주는 감동과 은혜가 다른 이유는, 이 책 속에는 복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인 정신지체 장애우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장 바니에가 느껴 가고 체험해 가는 삶의 자락이 참으로 아름답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 속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선욱/법문사 편집부

우리가 그저 함께 있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사랑이며 섬김이다. 고통을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지는 것이다. 이 짧은 책에는 그것은 오래 전부터 성경을 통해 전해져 왔고, 2천년 전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그리고 지금까지도 신비와 비밀로 남겨진 인생의 비밀과 신비가 숨어 있다.
-남상곤/연세대 사회학과

함께 존재하는 기쁨,
함께 존재하기의 절실함과 소중함,
함께 존재하기의 어려움,
그리고 함께 존재했을 때의 힘이 느껴진다.
-이현옥/남서울산본교회

-정리/편집부(쿰회보 2002. 03)

 

저자 인터뷰

[가상 저자 인터뷰]

우리가 들어갈 ‘희망의 문’은…

○정신지체 장애인을 섬기는 라르슈 공동체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현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 라르슈는 1964년 시작되어 현재 28개국에 103개 공동체로 확산되었습니다. 라르슈의 시작은 전적으로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명하신 주님의 부르심 때문이었으며, 사회에서 버림받은 정신지체 장애인들과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위해’일하지 않아요. 그들과 ‘함께’ 살아갈 따름이지요.

○자신의 소명을 언제, 어떻게 발견하게 되셨는지요?

– 저는 원래 해군이 되고 싶은 열망이 있어서, 캐나다 해군에 입대하여 장교로 복무했어요. 그 생활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그것은 진정 제 삶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점점 제 내면에서 기도와 영적인 일들에 마음이 끌리는 충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주님은 제가 해군을 떠나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전쟁보다는 평화를 위해 일하라고 부르셨던 거지요. 사직서를 낸 뒤 프랑스 파리 근교의 장애인 공동체에서 힘없고 나약한 그들을 만났을 때, 이전까지 제가 전혀 모르던 고통받는 자들의 내면의 외침에 깊은 충격을 받게 되었어요. 그 만남이 제 인생을 뒤바꿔 놓았던 겁니다.

○오늘날 한국에도 수많은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회적 관심 바깥에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두려워하는 걸까요?

– 사실상 그들을 정신 병원이나 수용소의 창살 뒤에 갇힌 채 지내게 하는 것이 바로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구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세계는 지금 마치 ‘밀레니엄 특수’를 기대하는 상업주의적 욕망으로 술렁거리고 있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이 같은 세계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이 세상에서 버린 바 되어 철저히 격리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저는 이 시대의 흐름이 고역과 경쟁, 야망의 본능을 강화하고 돈과 안락과 권력의 욕망을 부추기기 위해 긍휼과 나눔의 잠재력을 철저히 무시해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리스도의 정신과 정반대 되는 흐름이지요. 이 시대가 회심하기 위해서는 에스겔 선지자가 말한 ‘새 마음’과 ‘새 영’으로 불타는 새로운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질적 부와 대가족의 안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드려 가난과 고통이 극심한 나라에 가서 진리와 화평과 사랑의 영을 전할 새로운 세대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신부님이 두려워하시는 전지구적 문제들 속에서 과연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요?

–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겠다”(호 2:15)고 말씀하십니다. 이 시대의 아골 골짜기는 우리가 멀리하고 회피하고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거부하고 은폐하려 애쓰는 가난한 자와 불행한 자와 절망한 자들의 현장 말이죠.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환대하고 받아들인다면, 아골 골짜기로 희망의 문을 삼아 주리라 하신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위 내용은 장 바니에의 저서를 바탕으로 삼아 가상으로 꾸민 인터뷰임을 밝힙니다.

-글/편집부(쿰회보 9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