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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목사 가정 이야기

22,500

클라우스 핏셴 (지은이),이미선 (옮긴이)
2019-08-20
원제 : Pastors Kinder (2013년)
380쪽
150*210mm
523g
ISBN : 9788936513788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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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가족의 삶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마르틴 루터와 처음 목사 가정을 그리다

1525년, 41세 독신 수도사였던 마르틴 루터는 남편이자 가장이 되었다. 종교개혁의 장본인이자 성직자로서 첫 결혼은 이후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루터가 거주지로 하사받은 수도원은 루터가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면서 ‘목사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처음 텅 비어 있던 이곳은 이제 가족들로 채워졌고, 신도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이후 목사의 결혼이 보편화되면서 목사 가족은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의 삶은 일반 시민들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닮아야 할 모델이자, 윤리적 모범상이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목사와 그의 가족은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이 운명적으로 주어졌든, 자의로 선택했든 쉽지 않은 길임은 분명하다.
독일의 개신교 교회사학자이자, 라이프치히대학교 신학부에서 근‧현대 교회사 교수로 재직 중인 클라우스 핏셴은 1세대 목사 가족의 시간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개신교회사에서 목사 가족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의미를 발견한다. 핏셴의 시곗바늘은 16세기 종교개혁에서 멈추었다 다시 각 시대를 지나간다. 그는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추적하며 사회, 경제, 예술, 문화 등에서 목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 보여 주었던 영향력과 흔적들을 발견해 간다. 특히 목사 가족의 역할이 지금까지 어떻게 개신교를 이어 올 수 있게 했는지를 증명하며 개신교회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전해 준다.

앙겔라 메르켈, 헤르만 헤세, 카를 구스타프 융 등
역사가 주목한 목사의 자녀들 51인의 전기 수록!

종교개혁 이후 구교와 신교의 혼재 속에 목사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졌다. 각 지역에서 종파를 획일적으로 통일할 때 중요한 중재자의 역할을 했고, 사회 변화에 적응해 가는 많은 시민들의 교육을 앞장서 이끌어야 했다. 18세기 경건주의와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며 목사와 그의 가족은 이끄는 역할자로서 더욱 성장의 궤도에 들어선다. 경건주의와 계몽주의는 목사의 새로운 생활 양식, 새로운 자의식을 가져왔다. 특히 계몽된 목사는 마을 주민에게 이성, 절제와 절약을 가르쳤고, 과일 재배 방식과 농업을 개혁했으며, 천연두 예방 접종을 도입했다. 계속해서 이 책은 신분사회와 근대의 사이에서 역할 갈등하는 19세기 목사의 모습과, 이후 목사 가정이 세계대전과 나치 시대를 겪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이상 유리관 집에서의 삶을 환영하지 않으며, 생생한 현실 속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목사 가정을 보여 준다.
이 책은 목사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자녀들의 삶에도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목사의 조력자 역할에 갇혀 매우 보수적인 여성상이 요구되던 목사의 아내가 점차 교회와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장해 가고 변화되어 가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묘미는 각 시대마다 소개되는 대표적인 목사 자녀들의 전기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비롯해 헤르만 헤세, 니체, 카를 융 등 목사 자녀로서 태어나 자라온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 이 책에 등장하는 목사의 자녀들
아주 다양한 인물이 목사 가정에서 배출되었다. 저자는 본문에 다음과 같은 목사 가정 출신 유명 인사의 짧은 전기를 수록하였다.
요한 발렌틴 안드레: 교회역사학자, 신학자
요한 아른트: 신학자, 신비주의자
고트프리트 벤: 작가
요아힘 에른스트 베렌트: 음악 기자, 재즈 전문가
알프레트 브렘: 동물학자, 자연과학자
헨리에테 슈라더 브라이만: 교육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문화사학자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시인
크리스토프 디크만: 언론인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 역사학자
구드룬 엔슬린: 테러리스트
파울 펠겐하우어: 종말 예언자
쿠노 피셔: 철학자
파울 플레히지히: 두뇌 연구자
에른스트 포르스트호프: 법학자
프리드리히 프뢰벨: 교육자
클라우스 푹스: 핵물리학자
요한 크리스토프 고트셰트: 작가, 문학이론가
안드레아스 그리피우스: 바로크 시인
루이제 헨젤: 시인
헤르만 헤세: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게르트루트 횔러: 시사평론가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얀: 독일 체조협회 창시자
카를 구스타프 융: 심리학자
요헨 클레퍼: 작가
아르눌프 클레트: 법학자, 슈투트가르트 시장
카를 람프레히트: 역사학자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작가, 계몽주의자
카를 폰 린데: 기술자
마르쿠스 메켈: 정치가
앙겔라 메르켈: 정치가
프리드리히 니체: 철학가, 문헌학자
한스 오스터: 장교
미하엘 프레토리우스: 작곡가
요하네스 라우: 정치가
크리스티안 고트힐프 잘츠만: 교육자, 계몽주의자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 건축가, 화가
레초 슐라우흐: 정치가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 작가, 번역가
프리드리히 슐레겔: 작가, 언어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철학자, 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 고고학자
카타리나 슈바베디센: 정치가
알베르트 슈바이처: 의사, 노벨상 수상자
엘케 좀머: 배우, 화가
닐스 죄니히젠: 의사, 면역학자
게르하르트 슈톨텐베르크: 정치가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 작곡가
마리 토아호르스트: 교육자, 정치가
알프레트 베게너: 극지 연구가
호르스트 베셀: 나치 돌격대 중대장

저자

클라우스 핏셴 (Klaus Fitschen)
1961년 출생. 라이프치히대학교 신학부에서 근·현대 교회사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회사 관련 저서를 다
수 저술하였다. 독일 개신교 교회사학자인 핏셴은 이 책에서 종교개혁 이후 탄생한 목사 가정을 중심으로 독일 사회를 설명하고, 각 시대마다 시민 가정의 롤 모델이기도 했던 목사 가정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특히 그들이 오늘날까지 경제, 예술, 문화에 끼친 영향을 추적하고, 목사 가정에서 자라나 현재 독일을 대표하는,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비롯한 ‘목사의 자녀들’을 조명한다.

 

이미선

홍익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대학교에서 독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는 『꾸밈없는 인생의 그림』, 『불순종의 아이들』, 『천사가 너무해』,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 『수레바퀴 아래서』, 『소송』 등이 있다.

차례

이 책에 등장하는 목사의 자녀들
서론

1. 16-17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탄생한 목사 가정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의 가정생활
가톨릭 사제의 결혼이 합법화되다
관심의 표적이 된 직업, 개신교 목사
목사직의 열악함과 새로운 과제들
목사의 교육 부족에 대한 고민
역할 모델로서 목사 가족

2. 18세기 계몽주의와 경건주의 시대를 이끈 목사들
구 프로테스탄티즘과 경건주의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목사의 특권
목사 부인의 근본적 역할
목사 계층의 자기보존 계획
농촌 목사, 농부인가 시민인가?
후대가 기억하는 18세기 목사 직업

3. 신분사회와 근대의 사이에서, 19세기 목사의 역할 갈등
국가와 밀착된 목사의 신분
목사, 공무원이 되다
직업 역할에 대한 정체성 찾기
목회 이외의 부수적 활동들
이상적으로 각색된 목사 가족
가정과 세상 사이의 목사 자녀들
목사 가문의 각인력
목사 후보자의 삶
도시 목사와 농촌 목사의 생존 방식
현대화의 중재자이자 미풍양속의 파수꾼인 농촌 목사
교회와 멀어지는 도시
사회적 문제들 앞에 선 목사의 역할 갈등
보수에서 진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목사들

4. 1918-1989년, 목사 가정의 위기와 변화
나치즘과 목사
동독 정부의 탈 기독교화
일차대전 후 목사의 자녀들
목사 가족 구조의 변화
목사 부인을 위한 새로운 직업상
교회 개혁 프로젝트

5. 오늘날의 목사 가정
교회, 폭풍 치는 바다에 빠지다
목사직, 사회 조절 기능을 잃다
여성 목사와 직업이 있는 목사 부인
세속화 시대에 목사를 바라보는 관점
오늘날의 개신교 목사관
목사의 역할 논쟁
교회 이탈 현상
드라마 속 목사의 현실
목사도 고독할 수 있다
결혼 위기에 처한 목사
집 없는 목사?
개신교적인 생활 양식

맺음말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부록
참고 문헌

책속에서

P. 29
개신교 목사관의 원형은 수도원이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의 영주인 선제후選帝侯 현자賢者 프리드리히Friedrich der Weise(1463-1525)는 1524년 이 개혁가에게 비텐베르크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거주지로 하사했다. 루터가 이 커다란 집을 넘겨받았을 때,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루터처럼 얼마 전까지 이곳에 살던 수도사들은 집을 떠났고, 쓸 수 있는 가재도구들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루터는 거의 텅 빈 업무용 건물을 거주지로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급여가 크게 오르지 않았더라면 건물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도원이었던 이곳은 루터가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목사관이 되었다.
_ ‘1장. 16-17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탄생한 목사 가정’에서  
P. 109
농촌 목사는 농부이자 시민이었다. 반면 도시에 있는 그의 동료들은 이 이중적인 삶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이 시대의 특징을 ‘시민화’라 할 것인지 ‘농부화’라 할 것인지 묻는다면, 답은 다양할 것이다. 계몽주의나 경건주의 아니면 그 중간적 성향을 지녔건 상관없이, 많은 목사들은 농촌의 시민이자 그의 이웃보다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농촌 귀족이나 부농과는 다른 계층에 속했다. 새 목사가 부임해야 할 경우, 후원자인 농촌 귀족은 주로 경건주의 목사를 선호했으나, 목사들과 사회적 친분 관계를 맺으려 하지는 않았다. ‘낮은 계층 사람들’은 목사를 귀족 주인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귀족 주인과 목사는 사회적 차이가 있었다. 귀족의 아들들은 목사가 되는 것을 소명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목사 고유의 직업의식 및 신분의식은 정해진 사회적 한계 안에서만 형성될 수 있었고, 늘 그렇듯 이런 의식은 각 목사관의 물질적·사회적 여건에 좌우되었다.
_ ‘2장. 18세기 계몽주의와 경건주의 시대를 이끈 목사들’에서  
P. 156~157
목사 부인의 활동 장소는 대부분 목사관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는 시민 여성들에게 제공된 사회 여러 분야에서 목사 부인들도 활동할 수 있었다. 주로 전도를 위해 수예협회를 조직하거나 다른 부인들과 함께 구제사업 영역에서 일할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목사 부인들이 점차 사회복지·초등교육 분야 직업에서 교육할 수 있게 갖춘 능력이 이런 외부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농사의 부담이 덜어짐으로써 목사 부인은 농촌에서도 남편과 함께 ‘시민화’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목사의 정원을 경작해야 해서 농사를 짓기는 했지만, 이제 목사 부인은 농부에게 유능한 시민적 살림살이의 수호자가 되었다. 충분한 인력을 쓸 수 없다고 종종 불평하기는 했지만, 목사관에는 농촌에서건 도시에서건 고용인, 즉 하인과 하녀가 여전히 살림을 돕고 있었다. 목사관이 목사 부인에게 부여한 한계는 여전했다. 즉 목사 부인은 남편의 이상적인 조력자였고, 부지런하고 경건하며, 집과 아이들을 돌볼 책임이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예배에 책임이 있어 노래를 하기도 했고, 남편이 아프거나 과도한 부담을 느낄 때면 남편을 위해 일해야 했다. 환자 방문을 맡은 것처럼, 목사관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돌봐 주거나 꼭 필요한 것을 장만해 주어야 할 때면, 사회복지기관으로서 봉사할 수도 있었다.
_ ‘3장. 신분사회와 근대의 사이에서, 19세기 목사의 역할 갈등’  
P. 159
목사 자녀는 이 모든 것에서 부모의 교육 이상, 다른 아이들의 일상적 삶, 집과 농장에서의 놀이와 책임 사이의 잠재된 갈등에 놓여 있었다. 목사 자녀는 일반적으로 교육 때문에, 혹은 결혼으로 마을을 떠나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을 아이들은 아니었다. 목사 자녀들을 ‘평범한 사람들’의 아이들과 놀게 두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물이 드는 것은 아닌지 등 의견이 분분했다. 그리고 이때 목사 자녀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모범 기능을 이용하는가 하는 관점에서도 의견이 다양했다. 목사 자녀들 중에서 모범적 기능을 보일 수 있는 아이가 있다 해도, 그는 언젠가는 근처에 있는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반면 마을 아이들은 직업의 길로 나섰다. 마을에서 목사 자녀는 다른 지방 명사의 자녀들처럼 공적으로 특별한 지위에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이나 학교에서 앉는 서열에서 이러한 지위가 드러났다.
_ ‘3장. 신분사회와 근대의 사이에서, 19세기 목사의 역할 갈등’  
P. 213~214
나치즘이 대두되고, 나치의 지배가 관철되자 많은 사람들은 더욱 희망을 가졌다. 나치 정권이 교회와 기독교의 뛰어난 역할과 결속하겠다는 그럴듯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개신교 목사 중 많은 사람들이 나치즘에 동조했다. 때문에 자동적으로 모든 목사를 나치주의자라 할 수는 없지만, 일부가 동조한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치즘 동조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물론 금방 명백해졌다. ‘교회투쟁’은 처음에는 나치의 이데올로기와 그 교회 정책을 수락할 것인가에 관한 내적 분쟁이었다. ‘교회투쟁’은 목사들을 서로 반목시켰고, 두 파로 갈라지게 만들었다. 분열된 두 파는 ‘독일 그리스도인들’과 ‘고백교회’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파벌을 옹호했다.
고백교회의 목사관은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한 도피처가 되었고,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물론 이런 역할을 하는 목사관이 많지는 않았다. 목사가 체포될 경우에는 목사의 아내가 이런 임무의 일부를 떠맡았다. 많은 목사들이 평범한 군인 혹은 군목으로 일해야 했던 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목사관은 하나의 섬이었다. 당연히 위협받는 섬이었다. 나치국가가 부당한 간섭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사는 박해받았고 추방당했으며 체포되었고, 목사관은 수색당했고 파괴당했다. 특히 ‘유대 기독교’ 목사들, 즉 조상이 유대인인 목사들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박해받았으며, ‘독일 그리스도인들’의 지지자들에 의해 모욕당하고 목사 지위에서 쫓겨났다.
_ ‘4장. 1918-1989년, 목사 가정의 위기와 변화’  
P. 269
1963년에 만들어진 노래 가사 한 편이, 그 후 많은 예배에서 불리게 되었다. 이 노래는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을 배에 비유했다. “교회 신도라는 이름의 배 한 척, 이 배가 시대의 바다를 지나간다.”이 노래에서는 폭풍과 위험, 선원들의 단결과 배의 목적지, 즉 하나님의 영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 5년 뒤인 1968년 독일 개신교회 기관지라고 할 수 있는 〈교회연감〉 첫 장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실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강력하고 광범위하며 근본적인 변화의 과정에 있다. 교회의 배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항해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풍과 홍수에 내맡겨져, 얼마나 견뎌내는지 혹독한 시험을 받는다.”
_ ‘5장. 오늘날의 목사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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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던 것들을 흔들고,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며, 껍데기를 들추어 속을 비추고, 방향감각을 흔들어 새로이 방향 잡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은 책의 기준이라면, 이 책은 이 수준에 매우 탁월하게 올라선다. 우린 여태껏 목사관을 당연히 있어 왔던 교회 부속품 정도로 여겨 왔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자는 종교개혁 시대부터 찬찬히 짚어 간다. 목사와 목사 부인, 그리고 그 자녀들이 지난 500년 동안 어떤 애환을 갖고 어떤 환경에 노출되어 살아왔는지 그리고 시대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지에 대해, 저자는 감정 대신 구체적인 정보와 사건을 통해 담담히 글을 전개해 나간다. 이 책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 우리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목사 가정 이야기이며, 또한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최주훈
개신교의 산물인 목사관이 시대별로 미친 영향과,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변화된 기대와 역할 등을 조명해 주는 이 책은 점점 위축되어 가는 듯한 오늘날 교회의 사회적 위상을 진단하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 준다. 전통적인 교회론이 아니라, 목사와 목사 가족이 사회에 주는 인상 및 영향의 변화에 대한 관심은 교회의 미래를 설정하는 새로운 단초를 마련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박일영 (전 루터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