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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마르틴 루터와 그의 시대

11,400

파이트 야코부스 디터리히(Veit-Jakobus Dieterich)
박흥식 (역)
2018. 6. 5
E-ISBN 9788936512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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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는 루터 입문서의 결정판!

인간 루터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균형 잡힌 루터 입문서가 나오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루터에 관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 그와 관련된 책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루터가 종교개혁의 과업을 다 이룬 것처럼, 즉 그의 잘못이나 실수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그를 ‘영웅’으로 묘사하는 데 치우쳐 있다. 반면 독일에서 쓰인 이 책은 16세기 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서술했기 때문에 그동안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다루어졌던 루터의 모습과 달리 루터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마디로 이 책을 루터와 종교개혁에 대한 드물게 균형 잡힌 입문서라고 볼 수 있다.

시대의 맥락에서 루터를 파악한다
이 책은 95개조 반박문으로 촉발된 루터의 종교개혁을 시대적 순서에 따라 잘 정리해놓고 있지만, 루터의 생애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이 폭발적으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던 당시 유럽의 상황도 자세하게 다룬다. 이미 독일 민중 사이에 교황청의 횡포에 대한 반감이 널리 퍼져 있던 상태였고, 또한 고전과 성경의 원어 강독을 강조하는 인문주의의 발달과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 등으로 종교개혁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토양이 무르익어 있었음을 사료를 통해 충실하게 살펴본다. 이로써 루터를 그 시대의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메시지와 저항이 어떻게 거대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나아가 루터의 신학이 종교의 영역을 넘어 당시 유럽의 사회, 경제, 문화(교육, 음악, 서적 인쇄 등) 전반에 방대하게 끼친 영향도 서술했다.
 
루터의 단점까지도 낱낱이 밝힌다
또한 농민전쟁 당시 루터가 행한 반민중적 태도, 개혁세력의 분열에 대한 책임, 루터의 반유대주의 언사까지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종교개혁이라는 큰 흐름에서 루터의 역할과 한계까지도 살펴보고 있다. 특히 이와 같은 내용을 루터의 글과 발언 등의 1차 사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에 루터에 관해 실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본문 외에도 루터의 발언을 인용문으로 많이 달아두어 그의 사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아가 루터와 동시대인은 물론이고 20세기 및 21세기의 작가와 정치가 등에 이르기까지 시사적인 글이 다양하게, 루터에게 비판적인 글까지도 발췌되어 있다. 레싱과 헤르더, 니체와 토마스 만, 바르트와 본회퍼 등 독일의 전통시대와 현대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다양한 맥락에서 루터의 면모를 해석하는 글을 읽을 수 있어 ‘루터의 나라’ 독일 사회에서는 루터를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이미 2012년에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라는 이름으로 나왔으나 원서의 깊이를 다 담지 못해 중세 서양사 권위자인 박흥식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의 정확한 번역으로 다시 출간된 것이다. 초판에 담지 못했던 중요한 도판도 모두 실어 독자들에게 루터를 더 정확하게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루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모은 박스글과 부록에 있는 용어 설명과 연표, 참고 문헌 소개 등 자료가 알차게 정리되어 있어 교과서적인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루터라는 거울에 비추어 한국 사회를 바라보자
이처럼 이 책은 영웅의 초상 대신 루터가 다양한 측면을 지녔으며 때로는 모순적이기도 한 인물임을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묘사한다. 그가 일군 일생의 업적에 대한 복잡하게 얽힌 평가와 인간적인 결함까지도 낱낱이 서술해 종교개혁자 루터의 삶을 반성적으로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당시처럼 혼탁하고 진리가 땅에 떨어진 지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지만 정작 성찰이 결여된 한국 교회와 사회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시대와 개혁가 루터를 바르게 이해시킬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를 루터라는 거울에 비추어 개혁의 방향을 찾아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무게 349 g
크기 135 × 210 mm

저자

파이트 야코부스 디터리히
1952년생으로 대학에서 개신교 신학, 화학, 역사학을 공부했다. 그 후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1년간 체류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오랫동안 교회 목사 겸 직업학교 종교교사로 일했다. 다소 늦게 튀빙엔 대학에서 종교교육학 및 사회학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어 실천신학으로 교수자격을 획득한 후 대학 강사로 활동했다. 2010년 이래 루드비히스부르크Ludwigsburg 대학에서 복음주의 신학 및 종교교육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회사, 신학, 종교교육 분야에서 여러 책과 논문을 집필해 왔으며, 프란체스코 아시시,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 그리고 종교개혁가들에 대한 전기도 썼다.
현재 독일의 슈트트가르트 외곽에 거주하고 있다.

박흥식

1990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했고, 1999년 독일 괴팅엔 대학에서 중세 상인길드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거쳐 2003년 8월부터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중세 말기 유럽의 사회경제사, 일상생활사, 교회사 등이며, 최근 몇 년간은 흑사병이 중세 말기 유럽 사회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제국 주교, 수도원 해산, 흑사병이 성직자와 교회에 미친 영향, 루터의 95개조 논제 게시 등 기독교와 관련된 논문들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역서로 크누트 슐츠의 ≪중세 유럽의 코뮌 운동과 시민의 형성≫(길, 2013), 안드레아스 말레사·한나 쇼트의 ≪다이히만 씨, 당신은 왜 부자입니까≫(홍성사, 2011), 재닛 아부-루고드의 ≪유럽패권 이전. 13세기 세계체제≫(공역. 까치, 2006) 등이 있다.

차례

1. 성경 박사이며 교황의 적입니다 – 한 종교개혁가의 과업 
2. 나는 농부의 아들입니다 – 유년기와 청소년기(1483-1500년) 
3. 모든 것이 풍부한 좋은 나라 – 1500년경의 독일 
4. 기꺼이 수도사가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 대학생 시절과 수도사(1501-1517년) 
5. 면벌부 설교자의 파렴치한 발언에 맞서다 – 95개조 논제와 그 결과(1517-1520년)
6. 내 주장을 고수할 것입니다 – 보름스와 바르트부르크(1521-1522년)
7. 농부들을 모두 박살내 버렸습니다 – 개혁가와 혁명가(1522-1525년) 
8.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것 – 건설과 경계짓기(1525-1529년) 
9.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 – 비텐베르크와 세상(1530-1540년)
10. 받아 적은 모든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네 – 손님으로 찾은 루터의 집
11. 설교자는 진리를 명료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 설교자이자 교수 
12.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글이 술술 써집니다 – 저널리스트이자 개혁강령 입안자 
13.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야만 합니다 – 정치가이자 교육자
14. 구더기들에게 뚱보 박사를 먹잇감으로 내줄 셈이오 – 노년과 죽음(1540-1546년)
15. 내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 바랍니다 – 루터의 어제와 오늘 
옮긴이의 말 

부록
용어 설명 
인물 설명 
연표 
도판 출처 
참고문헌 해설 
인명 색인 
지명 색인

책속에서

1510년 11월 루터가 반년 동안 로마 여행을 떠나게 되어 수도사이자 학생으로서의 일상은 중단되었다. 순례를 겸했던 이 ‘출장’에서 루터는 바티칸까지 그보다 연장자인 형제와 동행했다. (…)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연옥의 불에서 구하기 위해 주기도문을 암송하며 라테라노 궁전에 있는 성스러운 계단을 무릎으로 한 계단 한 계단 기어서 올라갔다. 맨 위쪽에 다다르자 루터는 “이게 진실인지 누가 알겠는가?”라며 의심에 사로잡혔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믿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직 생존해 계신 것이 오히려 유감이었다. 그분들도 연옥의 불에서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4. 기꺼이 수도사가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운데(49-50쪽)

루터는 학자들과 고위 성직자들 사이의 토론을 유발하려고 논제를 라틴어로 작성했다. 이 일은 그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놀라우리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불꽃 없이 은근히 타오르던 교회에 대한 비판이 마침내 폭발했다. 루터의 논제는 곧바로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마치 천사가 심부름꾼 노릇을 한 것처럼” 14일 만에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논제는 당시까지 무명이었던 루터를 단숨에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 주지하듯이 그 논제는 면벌부를 전적으로 적대시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오남용을 반대하는 데 초점이 놓여 있었다.
– ‘5. 면벌부 설교자의 파렴치한 발언에 맞서다’ 가운데(61쪽)

다음 날 루터는 안정을 되찾았다. 바로 이 4월 18일에 그는 제국의회 앞에서 세계사의 위대한 공개 의견 표명 중 하나로 기록될 주장을 진술했다. (…) “교황이나 공의회는 자주 오류를 범하고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것이 확실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이나 명백한 이성적 근거라는 증거를 통해 설득될 수 없다면, 나는 내게서 나온 글들을 고수하겠습니다. 내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는 한,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거슬러 뭔가를 하는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가능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6. 내 주장을 고수할 것입니다’ 가운데(80-81쪽)


봉기가 일어난 튀링엔 지역을 다녀온 루터는 농민에 대한 두 번째 글에서 절제력을 상실한 채 지나치게 과격한 단어로 정부에 다음과 같이 촉구했다. 봉기를 일으킨 자들에게 은총과 자비를 베풀지 말고 미친개를 대하듯 살육하라. 왜냐하면 그들을 박살 내지 않는 자는 그들에 의해 박살 날 것이고, 나아가 온 나라가 엉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봉기의 진압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기이한 시절로, 제후는 살육함으로써 천국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이 기도하는 것보다도 훨씬 낫다.” 이 말을 들으면 루터는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된 정부에 대항하는 온갖 봉기에 대한 절제뿐 아니라, 자기 고유의 신학적 기반까지도 잊어버린 듯하다. – ‘7. 농부들을 모두 박살내 버렸습니다’ 가운데(98쪽)

루터는 교육 이론가이자 기획자였을 뿐만 아니라 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교육자로 대했으며, 자녀들에게는 사랑 많고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가 코부르크에서 네 살짜리 아들 한스에게 보낸 편지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보낸 최초의 독일어 편지라 할 수 있다. “나는 아주 예쁘고 재미있는 정원을 안단다. 그 안에 들어가서 많은 아이들은 황금빛 상의를 입고 나무에서 예쁜 사과, 배, 버찌, 자두 등을 따는구나. 아이들은 노래하며 깡충깡충 뛰고 즐거워하지. 작고 예쁜 말들은 황금 재갈과 은으로 된 안장으로 장식되어 있고, 춤출 수 있는 멋진 초원도 있어. 거기에는 황금 피리와 북도 있단다. 거기서 나는 정원에 있는 남자에게 이 아이들이 누구인지 물어봤어. 그러자 그 사람은 그 아이들이 기도와 공부를 좋아하고 신앙심이 깊은 아이들이라고 알려 주었단다.” – ‘13.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야만 합니다’ 가운데(205쪽)

독일 문어(文語)와 인쇄술 그리고 교육에 대해 이 종교개혁자가 미친 영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루터의 번역 성경과 루터의 언어는 독일에서 수 세기 동안 생생하게 남아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에게서 기원한 복음적인 노랫말과 교회음악은 파울루스 게르하르트Paulus Gerhardt(1607-1676)의 노랫말과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작곡과 더불어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루터의 영향은 신학에서도 나타났다. 그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급진적 입장에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올바른 신학을 추구한다면 루터가 제시한 기본적인 질문들을 지나칠 수는 없다. 이는 분명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에서도 적용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업적들에 대해 루터 스스로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에 대해 반복하여 자부심을 드러냈다.
– ‘15. 내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 바랍니다’ 가운데(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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