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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몇 살입니까

6,000

이세두
2019. 6. 1
eISBN9788936513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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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의 변곡점을 찾는 그리스도인에게
빛나는 잠언과 지혜가 담긴 성숙론
 
분별과 성숙이 필요한 시대 
‘책임’, ‘분별’, ‘성숙’은 이 시대 사회와 교회에서 찾기 어려운 덕목이 되어 버렸다. 책임지지 않는 목회자, 분별하지 못하는 교인, 미성숙한 교회…. 성추행, 절도, 횡령 등 문제가 터질 때면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말을 쉽게 듣지만, 책임을 제대로 지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무책임을 무책임이라 깨닫는 지혜가 ‘분별’이라면, ‘성숙’은 분별력과 함께 자신의 책임을 자신이 지려는 자질이라 할 수 있다. 《몇 살입니까》는 지방의 가정교회 목회자가 내놓는 성숙론이자 한 몸 된 교회를 이루고자 싸우며 얻은 지혜를 담은 잠언서이다. ‘몇 살입니까?’라는 여섯 번의 질문이 개인의 나이를 넘어, 온전한 개인의 최소 관계를 이루는 가정과 공동체로까지 확장되어 나아간다. 
 
여섯 번의 질문과 지혜의 추구
《몇 살입니까》에는 교회공동체 생활의 지혜와 공부, 일상의 통찰이 엮여 있다.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했지만 왜 성숙이 없을까? “신앙생활 기간과 종교생활 기간은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고, “신앙을 ‘신’과의 관계라 한다면 종교는 ‘신적 문화’와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인지 미성년인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면? “욕망을 채우는 방법을 선택하는 자”가 성인이고, “지금에 대한 집착으로 만족의 시기를 고정”하는 자는 미성년이다. 참된 관계를 지금 맺고 있는 걸까 절실하게 묻는다면 “진리가 기초되지 못한 곳은 두 기준을 필연적으로 갖게” 되므로 일관성 있는 관계가 그 기준이 됨을 알 수 있다. 
‘몇 살입니까?’라는 여섯 번의 질문은 단순히 나이를 묻기도 하고(연대기적 나이), 성에 대한 책임(생식기적 나이)을 묻기도 한다. 종교적 나이와 신앙의 나이, 개인적 나이와 관계적 나이, 관계의 기초 단위가 되는 가정의 나이, 나아가 한 몸의 나이를 묻는다. 개인의 성숙을 넘어, 가정과 한 몸 된 관계에까지 거듭되는 질문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울 것이다. 
무게 267 g
크기 120 × 190 mm

저자

이세두
영남신학대학교와 동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배웠다. 전도사 시절 조직과 제도를 배우고, 현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한국독립교회 선교단체연합회 소속) 담임목사로 신앙을 배우며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차례

들어가며

1장 연대기적 나이와 생식기적 나이
연대기적 나이 / 생식기적 나이 / 절제로 본 생식기적 나이

2장 종교적 나이와 신앙의 나이
종교적 나이 / 종교행위와 종교적 나이 / 신앙의 나이 / 앎과 신앙의 나이

3장 개인적 나이
감정의 나이 / 열정의 나이 / 행동의 나이 / 기대의 나이 / 의지의 나이 / 경험의 나이

4장 관계적 나이
태도와 배려의 나이 / 지배와 희생의 나이 / 착취와 나눔의 나이

5장 가정의 나이
가정에 대한 이해 / 부모됨의 나이 / 자녀됨의 나이 / 부모·자녀 관계의 나이 / 대물림되는 공통분모 / 기초 가정 이해 / 부부관계 / 남편됨의 나이 / 아내됨의 나이 / 부부관계의 나이

6장 한 몸의 나이
교회의 나이 — 먼저됨 / 교회의 나이 — 확장됨 / 공동체의 나이 — 먼저됨 / 공동체의 나이 — 확장됨 / 한 몸의 나이 — 교회의 자기 주장 / 두 기준의 부조화 / 기초적 삶을 제시하는 교회와 공동체 / 공동체의 상태 확인

나가며

책속에서

젖먹이가 여인의 가슴을 만지는 것을 두고 누구도 성추행이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추행을 일삼은 목회자는 스스로를 젖먹이라고, 혹은 범죄자라고 인정해야만 한다. 사회도 이런 목회자를 범죄자나 젖먹이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스스로를 범죄자라 인정한다면 성숙되지 못한 부분에서 미성년자임을 밝혀야 한다. 50세 목회자라 할지라도 성숙되어야 할 부분이 차고도 넘침을 인정해야 한다.
_1장 ‘연대기적 나이와 생식기적 나이’ 중 ‘연대기적 나이’에서

*

신앙생활이란 신앙의 능동적 활용이 아닌, 신앙에 의한 수동적 이끌림이다. 신앙을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미성년 상태가 성인으로 인정된다. 신앙을 활용하지 않는 모습이 신앙의 성인의 모습이다. ‘신앙을 위한 삶’이 아닌, ‘신앙에 의한 삶’이 신앙생활의 성인이다.
_2장 ‘종교적 나이와 신앙의 나이’ 중 ‘앎과 신앙의 나이’에서

*

교회가 교인을 지배함으로 얻는 결과와 앵벌이를 요구하는 아비의 결과가 비슷하다면 교회와 아비는 같은 상태라 보아도 될 것이다. 자녀의 앵벌이로 부를 축적하는 아비와 교인의 헌금으로 부를 축적하는 교회의 모습이 비슷하다면 교회의 돌봄은 아비의 착취와 다를 바 없어진다. 교회가 아무리 아비의 위치를 강조하며 돌봄을 이행하고 있다 주장하여도 그것은 자녀를 앵벌이로 내모는 미성년의 상태인 아비의 모습일 뿐이다.
_4장 ‘관계적 나이’ 중 ‘착취와 나눔의 나이’에서

*

아내나 남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할 때 배우자는 근심이 가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연대기적 성인이고, 사회적으로도 성인 상태라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배우자의 얼굴에는 결혼관계에서 내 상태가 드러난다. 배우자의 얼굴이 행복하다면 결혼관계에서도 성인 상태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_5장 ‘가정의 나이’ 중 ‘부부관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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