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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서쪽 하늘 붉은 노을

7,500

유승준
2014. 4. 10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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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 붉은 노을 – 주기철 목사와 주순교자의 가족이 겪어 낸 질곡 그리고 회복의 은총!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본다. 아버지의 무엇이 다른 사람과 달랐던 것일까?”

1. 위대한 순교자 아버지, 그리고 남겨진 아들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은 주기철 목사의 숭고한 순교 정신과 아울러 남겨진 가족이 겪은 고난의 자취를 주기철 목사의 4남 주광조 장로의 시선으로 조명하였다. 주기철 목사를 연구한 학술서나 어린이책 등은 여럿 있지만 일반 성인 독자를 위한 책은 드물었다. 폭넓은 취재와 현장 답사, 유족들의 협조와 대중적 글쓰기가 결합된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은 주기철 목사 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되어 더욱 뜻 깊다.

주기철 목사는 한국 교회 순교자의 대명사로 여겨져 왔다. 그의 업적과 설교, 그리고 순교 과정의 이야기들은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남겨진 가족의 이야기는 제대로 고백된 경우가 드물다. 주광조 장로는 주기철 목사의 막내아들로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그에 대해 가장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이후 한때 교회를 떠났으나 하나님께 돌아온 이후 아버지의 순교 신앙을 힘써 증언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은 아버지의 순교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주광조 장로가 겪어야 했던 배고픔과 좌절, 원망 그리고 신앙의 위기와 돌아옴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순교자 가족이 겪은 고통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줄 것이다.

2. 전문 작가와 주기철 목사 후손들의 만남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은 2014년 주기철 목사 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전문 작가의 심층 취재와 대중적 글쓰기, 유족들의 적극적 협조가 어우러져 완성되었다. 저자 유승준은 편집주간과 출판사 대표로 일하며 많은 책을 만들어 온 베테랑 출판인이자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이다. 저자는 주기철 목사와 주광조 장로가 걸어간 길을 좇아 전국을 누비며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만났다. 방대한 참고 도서와 함께 주광조 장로가 남긴 기록, 생전의 증언을 토대로 주광조 장로의 동반자 구귀학 권사와 주변 인물의 평가 등이 책 곳곳에 수놓아져 있다. 특히 구귀학 권사가 소장하였던, 주기철 목사, 주광조 장로의 사진은 여느 책에서 볼 수 없었던 귀중한 자료다.

이 책은 주기철 목사의 삶과 죽음을 집중 조명한 1부,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주광조 장로가 겪어야 했던 한국전쟁, 신앙의 위기, 구귀학 권사와의 만남 등이 증언된 2부, 하나님께 돌아온 이후 아버지의 순교 신앙을 한국 교회에 증언하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부록으로는 주기철 연보, 주광조 연보, 가계도, 참고문헌과 도움 주신 분들의 이름을 수록하였다. 광조 장로 이야기

저자

유승준
1964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와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정신세계사, 디자인하우스, 청림출판 편집주간 등을 거쳐 가나북스 대표로 일하며 오랫동안 책을 만들어왔다. 직접 쓴 책으로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요리와 그것이 상징하는 세계를 탐구한 《사랑을 먹고 싶다》, 원작자와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문학과 음식의 관계를 인문학적으로 들여다본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 영화와 소설 속에 그려진 아빠와 자녀들의 관계를 바탕으로 부성애에 관해 조명해 본 《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 유교·불교·무속의 고장인 안동을 예수 마을로 만들어온 교회 공동체 백 년의 역사를 기록한 《안동교회 이야기》, 슬로시티로 지정된 남도의 낙원 증도와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일대기를 취재한 《천국의 섬, 증도》, 생명을 걸고 조선 교회의 순결을 지켜낸 위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그 후손들의 삶을 추적한 《서쪽 하늘 붉은 노을》, 그리고 재일교포 사업가로 성공한 후 조국에 돌아와 인재를 남기는 삶을 살다 간 중앙대 전 이사장 김희수 평전 《배워야 산다》 등이 있다. 특히 《천국의 섬, 증도》는 2009년 12월 CBS TV에서 〈시루섬〉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으며,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2015년 12월 25일 KBS 1TV를 통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방영된 뒤, 2016년 3월 〈일사각오〉라는 제목의 영화로 개봉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차례

프롤로그
“여보,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이 먹고 싶소.”

1장 가난한 목사 주기철의 아들로 태어나
의인의 자식으로 태어난 운명 | 첫돌 갓 지난 막내를 두고 천국으로 떠난 생모 | 오산학교, 그리고 남강 이승훈과 고당 조만식 | 창원 웅천교회와 평양 장로회신학교 | 부산 초량교회와 마산 문창교회 |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여인 | 평양 산정현교회와 위기의 조선 교회 | 예배당 건축과 사라진 축음기 | 신사참배 반대와 일사각오 |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사참배 찬성 결의 |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 오종목의 나의 기원 | 서쪽 하늘 붉은 노을 | 평양노회의 목사직 파면과 산정현교회 폐쇄 | 골목길에서의 마지막 설교 | 도망자가 되어 뿔뿔이 흩어진 형들 | 경찰서 면회실에서 마주한 아버지의 밥그릇 | 눈앞에서 목도한 아버지에 대한 처참한 고문 |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올려드린 큰절 | 돌박산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

2장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아들이라는 꼬리표
아버지의 투쟁과 승리가 삶의 목적이었던 어머니 오정모 | 한마음으로 신앙의 정절을 지켜 낸 산정현교회 | 해방 때까지 이어진 유랑생활과 열세 번의 이사 | 나를 위해서 기념을 하나도 하지 말라 | 손양원 전도사와 주기철 목사 | 김일성이 보내온 선물 | 아버지 덕 볼 생각 말라던 어머니의 유언 | 광복 이후의 한국 교회 |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가다 | 평양 장현교회에서 시무하던 큰형의 순교 | 미8군 쓰레기장에서 일하며 연희대 경제학과에 진학 | 되찾은 조국에서도 여전히 죄인이었던 아버지 | 순교자의 아들이라는 갈채 그리고 방황 | 가난하고 병든 남자에게 자신의 미래를 건 여자 | 주기철 목사님 아들이면 선도 안 보고 딸을 준답니다 | 아버지에 대한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와 국립묘지 안장 | 기업에 들어가 산업전사가 되다 | 아내의 손에 이끌려 다시 돌아온 탕자

3장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살다 간 주광조 장로
영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하용조 목사와 임마누엘 모임 |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과 주영해 장로 | 명동에서 왕십리까지 한걸음에 실어 나른 전축 |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을 통한 복음전파사역 |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북녘 땅에도 복음이 메아리치기를 | 김상복 목사와 함께 주기철목사기념사업회를 만들다 |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연합과 연대 | 두고 온 교회, 두고 온 피붙이들 | 67년 만에 이루어진 평양노회의 주기철 목사 복권과 참회 | 신사참배 70주년을 맞아 종로 한복판 달빛 아래 모인 사람들 | 아버지를 죽인 원수들한테 왜 밥을 주는 겁니까? | 여전한 한국 교회의 우상숭배 | 고난과 십자가의 자리를 대신한 영광과 축복 | 어머니께 드리는 눈물의 편지 | 아버지 같은 바보 목사가 그립다 | 67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 품으로 | 순교, 영원히 사는 길

에필로그
“아버지, 발은 다 나으셨어요?”

부록 | 주기철 연보, 주광조 연보, 가계도, 참고 문헌, 도움 주신 분들, 사진 제공

책속에서

광조를 면회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으니 면회실 문밖에 세워둔 후 문을 활짝 열고 천천히 들어가면 주기철 목사가 밖에 있는 광조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는 2월 면회 때 이미 남편과 약속을 해놓은 일이었다. 그녀는 광조에게도 똑같이 일러두었다. 드디어 면회가 허용되자 오정모 집사는 면회실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느리게 걸어 들어갔다. 광조는 면회실 안쪽을 들여다봤다. 멀리 푸른 죄수복을 입고 머리를 박박 깎은 채 웃고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광조는 얼떨결에 차렷 자세로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내가 3년 가까이 아버지께 큰절을 하지 못했으니 오늘 큰절을 올려야겠다.’
90도로 절을 한 뒤 고개를 들어 보니 철문이 닫혀 있었다. 그가 머리를 숙이는 순간 안쪽에서 “뭐야, 문 닫아!”라고 외치는 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문이 닫힌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 게 약 3초가량이었다. 이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_131~132쪽,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올려드린 큰절

*

“주 목사님은 일제와 맞서 싸운 위대한 혁명투사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화국의 김일성 장군님께서 주 목사님의 숭고한 항일 투쟁 정신에 감복해 이 하사품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들은 보자기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남산동의 적산가옥 문서와 강서군에 있는 논밭의 토지문서, 그리고 현금이 가득 담긴 상자가 들어 있었다. 오정모 집사 곁을 지키고 있던 광조는 깜짝 놀랐다. 집과 땅과 돈, 그것만 있으면 이제 호강하며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고생이 끝나고, 앞으로 마음껏 공부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가슴이 설렜다.

_173쪽, 김일성이 보내온 선물

*

아버지가 순교하셨을 때, 자식들을 위해 남겨둔 물질적 유산은 아무것도 없었다. 순교자의 후예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었던 배고픔과 원망과 좌절만이 남겨졌을 따름이다. 그로부터 3년 후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을 때, 그분으로부터 내가 물려받은 유산은 성경 속에서 뽑아 낸 말씀 한 구절이 전부였다. 그것이 바로 시편 37편 25절, 26절이었다.

주광조의 고백처럼 주기철 목사와 오정모 집사는 아들들에게 단 한 푼의 돈도, 단 한 평의 땅도, 단 한 채의 집도 물려주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들이 삶으로 보여 준 순교 신앙과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줬을 뿐이다. 의인의 자식은 하나님께서 그 삶을 책임져주신다는 이 믿음의 유산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큰 지상 최대의 유산인 셈이었다.

순교자의 아들은 강해야 한다. 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벌써 잊은 거냐? 훗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네 아버지 덕 볼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광조는 어머니가 남긴 말씀을 떠올렸다. 그것이 자신에게 남긴 유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 광조가 그것만으로 살아가기엔 해방 정국의 소용돌이가 너무 거칠고 험난했다.

_180~181쪽, 아버지 덕 볼 생각 말라던 어머니의 유언

*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났다. 주광조는 어딜 가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서리집사 직분을 맡으면서 그에게 많은 일이 주어졌다. 주광조 집사는 성가대장으로, 구귀학 권사는 환경부장으로 봉사를 하게 되었다. 주광조가 음악을 좋아하고 구귀학이 집 꾸미는 일을 즐겨했으니 누구보다 주어진 일에 열심을 냈다. 예배 때 기도도 시키고 기도회 때는 통성기도도 시켰다. 주기철 목사의 아들이고 며느리니 오죽 잘하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어딜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이들에게는 주기철 목사의 자손이라는 후광이 자동적으로 따라다녔다.
주광조는 그게 거북살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남다른 사람이라 교회에서 하라는 일은 다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무겁게 짓눌려 있었다. 특히나 남들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싫었다. 평양에서 아버지가 감옥에 계실 때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통성기도를 했지만 결국 아버지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것을 본 후 다시는 소리 내서 기도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탓이었다. 게다가 어릴 때 걸렸던 실어증의 영향으로 항상 말이 느렸고 어눌했기에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_242~243쪽, 기업에 들어가 산업전사가 되다

*

만 60세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던 주광조 장로에게 여러 기업체에서 와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정유업계에 오래 몸담으며 전문경영인으로 일해 온 그의 경력을 높이 산 것이다. 퇴직하고 손주들 재롱이나 볼 나이에 현역 때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체의 제안을 뿌리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광조 장로는 모든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에게는 가야 할 길이 따로 있었다. 그는 현역에서 물러나면 한국 교회를 위해 일하면서 아버지 주기철 목사의 순교 신앙과 정신을 전파하는 일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_280~281쪽,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을 통한 복음전파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