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pping Cart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세일!

고통의 문제(보급판)

5,850 6,500

발행일  2005.9.30
상세정보  양장 / 263page
ISBN  9788936506964

카테고리:

품절

특별보급판으로 나온 C. S. 루이스의 명작 3종 중 한 권!
청년대학부/선교단체 필독 교재용으로 저가 보급!
가볍고 손에 잡히는 휴대성 높은 판형과 디자인!

“C. S. 루이스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20년이 훨씬 넘은 일이지만, 제대로 읽히게 된 건 5년 남짓할 따름이다. 오랜 기간 동안 그는 난해하고 어렵기만 한 작가로 오해받았고, 2000년 1월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시리즈의 첫 권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출간되면서 비로소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의 교회와 독자들에게 루이스의 사상을 더 널리 더 깊이 알리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 추천 컬렉션을 특별보급판으로 펴낸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부디 이 책이 한국 교회 청년 세대의 지성을 부요하고 명징하게 할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영성과 사상을 풍요롭게 하는 작은 밀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추천 컬렉션을 펴내며’에서

고통이 제기하는 지적(知的) 의문에 대한, 명쾌하고 강인한 신학적 답변!
“하나님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왜 자신의 피조물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하시는가?”

“하나님이 선하다면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완벽한 행복을 주고 싶어할 것이며,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그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피조물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존재이거나 능력이 없는 존재, 또는 선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 “하나님이 선하고 전능한 존재라면, 왜 자신의 피조물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하시는가?”
이것은 고통이 야기하는 지적인 의문으로, 기독교인들이 수세기 동안 고뇌해 온 문제이며 ‘고통’에 관해 풀리지 않은 지적 난제이기도 하다. 《고통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적 의문에 대해, 영국의 영문학자이자 사상가요 비평가이면서 한때 확신에 찬 무신론자였던 C. S. 루이스가 명징하고 강인한 신학적 답변을 시도한 책이다.
《고통의 문제》는 C. S. 루이스가 신학 주제를 다룬 최초의 저술로, 하나님의 전능과 선, 인간의 자유의지와 타락, 천국과 지옥, 인간과 동물의 고통 등 신학의 핵심 주제들에 관한 루이스의 명철하고도 예리한 논증과 기지에 찬 답변을 보여 주고 있다. “루이스는 자신을 ‘평신도’라고 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로 시작하는 아마존 독자서평처럼, 그는 자신을 아마추어라고 소개했지만 결코 아마추어리즘에 머물지 않는 신학적 깊이를 《고통의 문제》를 통해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책은, 누군가 언급한 대로 ‘고통에 관해 사색하는 이 시대 사상가들이 공히 찬탄하는 고전(古典)’이다!

무게 193 g
크기 153 × 224 mm

저자

C. S. 루이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꼽히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시인, 작가, 비평가, 영문학자.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출생. 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 모들린 대학에서 개별지도교수 및 평의원으로 있었으며, 1954년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는 1929년 회심한 후,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정신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대표작으로《순전한 기독교》,《스크루테이프의 편지》,《고통의 문제》,《예기치 못한 기쁨》,《네 가지 사랑》(이상 홍성사), 《나니아 연대기》(시공사) 등이 있다. 1963년 작고.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 -타임지
“루이스는 20세기 복음주의계의 어거스틴” -J. I. 패커
“20세기의 존 버니언” -콜린 두리스, 미국 IVP 편집자
“금세기 가장 사랑받았던 사상가이자 작가” -하퍼콜린스 퍼블리셔스
“지난 40년 동안 미국 복음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저술가” -크리스채니티 투데이

이종태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장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미국 버클리에 있는 GTU(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기독교 영성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시편 사색》, 《네 가지 사랑》, 《인간 폐지》(이상 홍성사),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이상 IVP),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복있는사람)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차례

머리말

제1장 서론
제2장 하나님의 전능
제3장 하나님의 선함
제4장 인간의 악함
제5장 인간의 타락
제6장 인간의 고통 I
제7장 인간의 고통 II
제8장 지옥
제9장 동물의 고통
제10장 천국

부록

책속에서

이 책의 목적

이 책을 쓴 유일한 목적은 고통이 야기하는 지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임을 덧붙여야겠습니다. 꿋꿋함과 참을성을 가르치는 것은 이보다 훨씬 더 차원 높은 과제이지만 저는 스스로 이 일의 적격자라고 나설 만큼 어리석지도 않을 뿐더러, 고통을 겪고 있을 때에는 많은 지식보다 작은 용기가, 큰 용기보다 적은 인정(人情)이,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가장 작은 사랑이 더 도움이 된다는 확신 외에는 독자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12쪽 머리말

‘우리 마음에 드는’ 하나님

오늘날 하나님의 선함은 거의 예외 없이 사랑이 많다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이 문맥의 사랑을 친절(kindness)―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해한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마음에 드는 하나님이란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너만 만족을 느낀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말해 주는 하나님일 것입니다. -59쪽 하나님의 선함

시각 교정이 우선 

인간의 고통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조화시키는 문제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에 하찮은 의미를 부여하며 인간이 만물의 중심인 양 만물을 바라보는 한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시지 않습니다. -70쪽 하나님의 선함

동정심/연민의 악 

동정심 같은 좋은 감정도 사랑과 정의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분노를 거쳐 잔인함에 이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이 저지른 잔혹 행위의 소식에 자극을 받아 또 다른 잔혹 행위를 저지릅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연민 또한 도덕법 전체와 분리될 경우, 지극히 자연스런 과정을 거쳐 공포 정치의 끝없는 만행으로 나아가 버립니다. -98쪽 인간의 악함

고통은 하나님의 메가폰 

고통은 고집스럽게 우리의 주목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141쪽 인간의 고통Ⅰ

두려움과 연민의 유익 

우리가 두려움과 연민의 도움을 받아 순종과 자비의 삶으로 돌이키게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입니다. 사랑스럽지 못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즉 원래 어떤 식으로든 우리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일―을 좀더 쉽게 만들어 주는 연민의 효과를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또 두려움이 주는 혜택에 대해서는 우리 대부분이 이번 전쟁을 불러온 ‘위기’의 시대를 겪는 가운데 이미 배운 바 있습니다. -160쪽 인간의 고통Ⅰ

금욕적 자기 수행과 시련 

어떤 금욕주의자들은 자기 학대를 수행의 한 방법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평신도인 저로서는 그것이 과연 신중한 방법인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학대의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시련과 상당히 다른 것이라는 점만큼은 강조하고 싶습니다. 뜻하지 않게, 또는 돈이 없어서 저녁을 거르는 것이 금식과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170쪽 인간의 고통Ⅱ

고통을 피하는 합법적 수단 

우리 모두가 고통을 피하는 일에 지나치게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적당한 한도 안에서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즉 시련의 구속적인 역할을 고려하여 만든 피조세계의 전 작동 체계―에 부합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처음보다 ‘낫게’ 만들어야 할―심지어 현세적인 의미에서 볼 때에도―우리의 의무를 강력하게 강조하는 기독교의 태도와 고난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이 서로 배치된다고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172쪽 인간의 고통Ⅱ

고통은 무균질의 악 

모든 악 중에 오직 고통만이 살균 소독된 악입니다. …잘못은 그 본성상 또 다른 잘못을 낳게 되어 있습니다. 논증의 첫 단계가 틀리면, 다음 단계들도 전부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죄도 원래의 유혹이 지속됨으로써 재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죄 또한 그 본성상 죄짓는 습관을 강화시키고 양심을 약화시킴으로써 또 다른 죄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고통도 다른 악들처럼 첫번째 고통을 일으킨 원인(병이나 원수)이 여전히 작용함으로써 재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에는 그 본성상 증식하는 성향이 없습니다. 고통이 끝났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끝난 것으로서,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기쁨이 뒤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일단 종료된 고통은 더 이상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합니다. 반면에 바로잡지 않은 잘못과 회개하지 않은 죄는 그 본성상 새로운 잘못과 새로운 죄를 끊임없이 흘려 내보내는 원천이 됩니다. -176쪽 인간의 고통Ⅱ

지옥1 

구원받지 못한 영혼의 특징은 “자기 자신 외의 것은 무엇이든지 거부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 속에 그려 낸 이 이기주의자는 자기가 만나는 모든 것을 자아의 식민지 내지는 부속물로 삼으려 했습니다. 타자에 대한 기호(taste), 즉 선한 것을 즐기는 역량 자체가 소멸되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외부세계와 어느 정도 초보적인 접촉은 합니다. 그러나 죽음과 함께 그 마지막 접촉점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마침내 자기 소망―전적으로 자아 안에만 머물면서 거기서 얻는 것에 만족하겠다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결국 그가 얻는 것은 지옥입니다. -188쪽 지옥

지옥2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땅에서 살 때보다 더 인간다워진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은 인간성을 박탈당한다는 뜻입니다. 지옥에 던져지는(또는 스스로 뛰어들어가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잔해’입니다. -191쪽 지옥

천국 

우리는 천국이 미끼는 아닐까, 천국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때 사심 없는 사람이 못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은 대가만 바라는 사람이 갈망하는 것들을 하나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들만이 하나님을 보고 싶어할 테니 말입니다. -224쪽 천국

서평

“고뇌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놀라운 통찰력과 자유를 선물하는 책”

“감히 하나님을 거절하고 죄를 선택할 수도 있는 인간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그 인간으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사랑을 받기 원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변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분명히 믿고 있지만 이 세상의 현실을 볼 때 과연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이러하리라고-수많은 고통으로 뒤엉켜 몸부림치리라고-예상하셨을까? 또 그렇게 예상하셨다면 왜 이 세상을 만드신 걸까? 더 나은 세상은 없었을까? 등의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자칫 나의 신앙이 흔들려 버릴 것 같은 위기감 때문에, 초월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이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한마디로 덮어 버리곤 하였다.

C. S.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이러한 문제를 겸손하게 그러나 철저하게 탐구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모순된 행동은 할 수 없다는 전제로,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의지를 주면서 동시에 그 선택의 결과를 그때마다 뒤엎는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고통을 없애 줄 수는 없다는 그의 설명은 참으로 매혹적이고 압도적이다. 지금의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세상 중 하나가 아니라 가장 완전한 세상이며 사랑하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기 위해서 이러한 세상을 만드는 모험을 단행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대가-고통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만드는-를 치르고서라도 우리를 한낱 하나님의 손에 조종되는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랑의 대상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숭고한 인간으로 우리를 창조하셨고 존중하셨으며 사랑하시기로 결정하셨다. 감히 하나님을 거절하고 죄를 선택할 수도 있는 인간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그 인간으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사랑을 받기 원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변증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사람일지라도 타락한 종인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할 수 없기에 고통이라는 메가폰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고통은 우리에게 타락한 종에서 새로운 종으로의 형질 변환을 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준다. 하나님은 자신이 고통의 세상에 개입하셔서-예수 그리스도-이 형질 변화의 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중생-새로운 종으로의 형질 변환-을 통하여 비로소 어려운 난관을 헤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에게 자신을 쏟아 붓기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을 자신에게 종속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끝없는 욕망을 처음으로 거역하는 위대한 사랑의 시작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순간순간 이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그를 거부하고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 루이스는 한순간의 작은 선택도 결코 무시될 수 없다고 말한다. 100년도 채 못 되는 이 땅의 인생이 끝이 아닌 무한한 우주와 같이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존재로 ‘나’를 창조하셨고, 이 땅에서의 70-8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의 순간순간의 선택이 영원히 살게 되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사는 존재인 인간, 현재의 삶과 단절된 전혀 다른 ‘나’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재료(육)는 없어지고 그 선택을 했던 나의 경향성과 노력으로 빚어진 영혼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게 된다는 루이스의 해석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선택이 내가 영원히 살게 될 모습을 결정지어 가는 과정이라는 그의 통찰력은, 여전히 죄된 속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왜 오늘도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고 또 격려해 주고 있다. 우리의 이러한 힘든 선택과 노력은 우리의 육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날에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그날에 우리는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의 겉모습(육)은 사라지고 진정한 ‘우리(자아)’가 드러날 때 우리의 생각과는 엄청나게 다른 모습의 ‘우리’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본디 좋은 성격으로 태어난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온 선행보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사람이 애써 마음을 열고 힘들게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낸 것이 더 칭찬받을 수 있다는 루이스의 설명은 이 엄청난 차이를 어느 정도는 가늠해 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통찰력은 성격이 예민하고 쉽게 짜증을 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하나님은 꿰뚫어 보신다!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노력하는 나의 몸부림에 박수치며 기뻐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 얼마나 힘이 나던지. 그러면 과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생의 소망, 천국은 정말 갈 만한 곳인가? 다시 말해서 그곳이 어떤 곳이기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 되는 것인가? 사실 나는 천국에서 어떤 기쁨을 누리게 될지, 그곳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해 주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천국의 소망은 나의 현 삶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사실 나의 진정한 소망이 되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루이스의 천국에 대한 통찰은 천국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큰 위안과 소망이 됨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여전히 죄성(육)을 갖고 있기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 기쁘면서도 고통스러운 이 모순된 삶이 끝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쾌락이 되는 그 순간, 내 안으로만 파고들고 싶어하는 자아의 숨막히는 죄성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되는 그 경지, 하나님과 나의 완전한 하나 됨의 춤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가장 큰 기쁨으로 나를 하나님께 드리고 또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그분으로부터 받아 영원히 다스리며 자유하는 영혼의 삶, 그것이 바로 진정한 ‘나’의 모습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불완전한 인간관계의 완전한 회복과 참된 위로가 있는 그 땅,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 가림이 없는 유쾌한 나라가 바로 우리의 소망인 천국이다. 물론 지옥은 자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먹어치우던 비참한 영혼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잔인한 곳이 될 것이다.

C. S. 루이스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열정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이 변증서를 통해서 지금도 고뇌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놀라운 통찰력과 (그것이 주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선물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창조물인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분을 사랑하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고, 언젠가 나의 사랑이 아름다움의 극치로 울려 퍼질 그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좁은 길을 웃으며 걸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존경하는 C. S 루이스에게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또한 나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겸손하신 사랑 앞에 경외와 사랑을 올려 드린다. -글/김인경 사모(신일교회)


<추천평>

“많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명쾌하고 힘있게 쓴 책”
-Times Literary Supplement

“한 권의 책을 아무 거리낌 없이 칭송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고통의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Guardian 

“루이스는 자신을 ‘평신도’라고 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아마존 독자서평 중에서

 

[신문 기사]

“고통과 화를 푸는 책”

“하나님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왜 피조물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하시는가?” 고통을 겪을 때마다 던지는 질문이다. 하나님이 선하다면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완벽한 행복을 주고싶어 할 것이며,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그 소원대로 할 수 있을 것인데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의 고통을 방치해두고 있느냐는 것이다. 

《순전한 기독교》의 저자로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의 명교수였던 클라이브 스테플레스 루이스(1898~1963)는 인간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보이는 ‘고통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풀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그는 고통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깨우기 위해,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악하면서도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무언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 자신이 우주의 법칙에 따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고통은 개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제공하며,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신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2002.4.19


[독자 포인트]

3개월의 번역 기간, 5개월의 편집 기간, 세세한 원문 대조를 통해 모두 여섯 차례의 교정을 거친 ‘정식 한국어판’으로, 루이스의 상식을 동반한 논증과 뛰어난 기지를 엿볼 수 있다.


[독자층]

목회자, 신학생, 평신도 리더, ‘고통’에 관해 고민해 온 모든 그리스도인


[C. S. 루이스에 바쳐진 찬사]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 
-타임지

“지난 40년 동안 미국 복음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저술가” 
-크리스채니티 투데이

“루이스는 20세기 복음주의계의 어거스틴”
-J. I. 패커, 《하나님을 아는 지식》《성령을 아는 지식》 저자

“20세기의 존 버니언”
-콜린 두리스, 미국 IVP 편집자

“금세기 가장 사랑받았던 사상가이자 작가”
-하퍼콜린스 퍼블리셔스

[C. S. 루이스에 대한 또 다른 소개]

친구들 사이에선 “잭 Jack”이라 불린 클리브 스태플스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는 1898년 11월 29일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3년 먼저 태어난 형 워런 Warren은 역사학자였고 그의 평생에 걸친 절친한 친구였다.) 9살 때 어머니 플로라 Flora 여사를 암으로 여읜 루이스는 기숙사가 딸린 학교들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커크패트릭 W. T. Kirkpatrick이라는 가정 교사에게로 보내졌는데, 엄격한 이성주의적 무신론자였던 그에게서 엄밀한 논리적 사고 훈련을 받았으며, 본래 성공회 배경을 가졌던 루이스는 이 무렵 확고한 무신론자가 된다. 

그가 옥스퍼드 대학 재학생이었을 때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 중위로 참전한 루이스는, 엉덩이에 영국군 포탄의 파편 조각이 박히는 부상을 입어 요양캠프에서 치료를 받다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와 학업을 계속한다. 루이스는 장교훈련 기간 중 알게 된 패디Paddy라는 친구가 전사하자, 약속한 대로 그의 어머니 무어 부인 Mrs. Moore을 자신이 평생 보살폈다. 

1923년 옥스퍼드를 세 부문 최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에서 잠시 철학을 강의했으며, 1925년부터 모들린 대학 Magdalen College에서 30여 년간 영어와 문학을 가르친다. 1954년부터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로 재직했는데, 이 무렵 《실락원 서문 A Preface to “Paradise Lost”》 《사랑의 알레고리 The Allegory of Love》 등 뛰어난 영문학 학술서적들을 여러 권 저술한다.

“회의자를 위한 사도” 명성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접근을 늘 의식하고 있던 루이스는, 1929년 어느 날 밤 마침내 신 앞에 항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날의 회심은 ‘복음적 신앙’으로의 회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유신론’으로의 회심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31년 어느 가을 밤, 옥스퍼드의 동료 교수이자 가톨릭 신자인 톨킨 J. R. R. Tolkien과 성서와 신화를 주제로 나누었던 긴 대화를 통해 마침내 기독교 신앙의 핵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루이스는 자신의 소명은 교회 밖(언저리)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교파에 국한되는 교리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 온 기독교의 정수―“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를, 전문 신학 용어가 아닌 현대인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노력했고, 그러한 분투는 결국 그에게 “회의자를 위한 사도”라는 별명을 안겨준다. 

루이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루이스보다 열여섯 살 연하였던 조이 Joy Gresham이다. 그는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들을 발표한 미국 작가로서, 애초 무신론자였으나 기독교로 회심하는 과정에서 루이스의 저술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재치와 지성미를 갖춘 여인이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던 루이스는 58세에 조이와 결혼을 하는데, 이때 조이는 이미 불치의 골수암에 걸린 상태였다. 4년만에 결국 사별로 끝나고만 이 아름답고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는 훗날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 연극 대본을 기초로 하여 영화 ‘섀도랜드 Shadowlands’가 제작된다. 

루이스가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글인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 홍성사)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가명으로 출판된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같은 날, 루이스는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가 남긴 주요 저서로는 전세계적으로 읽히는 동화 《나니아 나라 이야기》(시공사)를 비롯,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다룬 《순전한 기독교》, ‘악마의 편지’라는 우화 기법을 통해 정작 ‘인간의 삶과 본질’을 새로운 각도로 보여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이상 홍성사),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번역돼 나올 Miracles, Till We Have Face 등 다수가 있다.


[출간 뒷얘기] 

《고통의 문제》와 저작권의 고통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이거, 우리가 계약 한 책 아니예요? 이게 왜 여기서 나왔어요? 서점 나가서 보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고통의 문제》 편집이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해 10월말, 영업부 식구가 부랴부랴 책을 한 권 들고 숨가쁘게 뛰어들어왔다. 상기되어 있는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들고온 책을 받아보고는 덩달아 ‘황당’해졌다. 아니, 시쳇말로 ‘벙-쪘다’고 해야겠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도서는, 우리가 국내 에이전트를 거쳐서 정식 계약을 하고 한참 편집중에 있는 책이 아닌가! 그 뒷얘기는 일일이 시시콜콜 옮길 필요는 없겠다. 

현재 C. S. 루이스의 저작권은 영국 ‘C. S. 루이스 협회’(The C. S. Lewis Company Limited)에 있다. 그 모든 권한은 하퍼콜린스퍼블리셔스(HarperCollinsPublishers, U.K.)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국내 에이전시로는 한국저작권센터(KCC)가 저작권 계약을 대행하고 있다. 그리고 홍성사는 KCC와 하퍼콜린스를 통해 C. S. 루이스 협회와 이미 정식 계약서에 서명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ㅋ 출판사에서 《고통의 문제》가 나왔으니, 우리로선 적이 당황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ㅋ 출판사와 홍성사 대표이사 간에 직접 통화가 있었고, 한국기독교출판협의회(KCPA, 기출협)에 중재를 요청하여 이 문제를 대화와 설득을 통해 해결하려 애써 왔다. 그러나 여전히 ㅋ 출판사에서는 계약하지 않고 낸 《고통의 문제》를 거두어들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번역 기간 3개월, 편집 기간 6개월이 걸린 한국어판 《고통의 문제》 출간 후, 사전에 보도자료와 소식지를 통해 알렸음에도 일부 기독교 서점에서는 “왜 똑같은 책이 나왔느냐”며 도리어 의구심과 문제제기를 해 올 정도로 기독교 출판사와 서점의 ‘저작권 인식’은 낮은 형편이다. 

이 문제는 홍성사가 영국 하퍼콜린스 측에 법적 소송을 위한 제반 권리 위임을 요청해 놓았으며, 그간 이미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충분히 입었으나 여전히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