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pping Cart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세일!

나와 하나님

14,850 16,500

발행일 2004.9.23.
상세정보 / 400page
ISBN 978-89-365-0216-6

카테고리:
* 회원구매 시 정가의 5% 포인트 적립.
  3만원 이상 주문 시 배송비 무료
* 해외 주문/배송은 불가합니다.

“신학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은 ‘신앙 실천’의 해답!”

영원한 개척자 대천덕 신부가 오랜 신앙체험과 예수원 공동생활을 토대로 강의한 내용들을 발췌하여 엮은 《나와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사귐’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 신자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한다. 특히, 한국인의 눈으로는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는 한국 교회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금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회개와 실천을 촉구한다. 신학이란 추상적인 이론이나 철학이라기보다는 실험을 통해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평소 신념에 따라 상세한 이론적 설명이 아닌 철저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신앙 실천을 도모하고 있다.

1부 ‘나와 하나님’은 대천덕 신부의 신앙 간증으로서,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에 대한 확신이 없어 고민하던 이야기,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신학 공부를 하게 된 경위, 철공과 선원으로의 생활, 흑인 교회에서의 목회, 그리고 뜻하지 않은 한국행 등을 자기 고백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2부 ‘신자의 성장’에서는 대천덕 신부 특유의 성령론을 토대로 참 신자가 되는 과정을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가르쳐 준다.

3부 ‘신자의 생활’에서는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믿음으로 살기 원하지만 자꾸만 죄의 유혹에 빠져 힘없이 무너지는 신앙인들이 어떻게 하면 끝까지 경건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보여 준다.

4부 ‘신자의 가정’에서는 하나님이 처음 세우신 공동체인 가정이 어떤 모습으로 세워져야 하는지, 부부관계ㆍ자녀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여성의 입장에 서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이 책 《나와 하나님》은 1988년 예수원 출판부에서 발행한 《나와 하나님》을 대천덕 신부님 추모 2주년을 기념하여 새롭게 편집하여 발행한 것이다.

무게 480 g
크기 188 × 254 mm

저자

대천덕
[대천덕 (Reuben Archer Torrey Ⅲ) (1918 ∼ 2002)]

1918년 중국 산둥 성(山東省) 지난(濟南)에서 장로교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과 한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미국 데이비슨 대학에서 사회학과 교육학을,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건축 노동자와 선원 등으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익혔다. 후에 교파를 성공회로 옮겨 남부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했으며, 1946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12년간 목회 사역을 했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성 미가엘 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의 재건을 도와 달라는 요청으로 1957년 한국에 왔고 하나님의 뜻하심에 따라 1964년 신학원장직을 사임했다. 다음 해인 1965년 뜻을 같이하는 몇몇 동역자들 및 아내 현재인(Jane Grey Torrey)과 함께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척박한 땅 강원도 황지(현 태백) 하사미에 노동과 기도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원’ 공동체를 세웠고, 2002년 8월 6일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하였다. 할아버지인 R. A. 토리 1세로부터 시작한 성령론과 헨리 조지의 원리에 토대를 둔 경제 이론 및 공동체에 관한 가르침은 그의 치열한 삶과 함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차례

개정판에 부쳐

머리말

1부 나와 하나님

2부 신자의 성장
1. 시작하는 신자
2. 추구하는 신자
3. 열매 맺는 신자
4. 순종하는 신자
5. 성숙한 신자
6. 신앙 성장의 아홉 단계

3부 신자의 생활
1. 성육설(成肉設)의 실행
2. 새 힘을 공급받는 법
3. 헌신하는 생활
4. 경건생활의 비결

4부 가정생활
1. 여자의 생활
2. 여자의 역할
3. 부모와 자녀의 책임
4. 가족
5. 낙태

엮고 나서

책속에서

“이 책은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해마다 예수원을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객들과 수련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눈 얘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한국 교회에 이바지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신학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해답을 주는 일일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대천덕의 제자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저는 무척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할 뿐입니다. 대천덕의 제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성경대로 살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의 유일한 길이 성경대로 살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완전히 닳도록 쓰임 받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는 스승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올바로 사용한다면 성령을 따르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머리말에서

추가정보

“들은 대로 본 대로 믿은 대로 ‘해 보라!’”

대천덕 신부의 《나와 하나님》은 그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대부분은 강의한 내용을 글로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말하기 형식(간혹 저자의 독특한 어법이 엿보이는)으로 되어 있으며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실존과 다시 만나게 된다. 말하자면, 이 책은 단순히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그의 생각과 말이며 그 자신이다. 그토록 치열했던 삶의 궤적이며 소리 없는 외침이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가끔이나마 조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던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생전의 그의 육성을 듣는 듯한 감회에 젖어들곤 하였다. 대천덕 신부의 삶의 특징적 면모를 말한다면 개척자정신과 실험정신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과 사역을 규정짓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코이노니아’이다. ‘사귐’(통용)이라는 뜻의 코이노니아야말로 저자가 이 땅에서 예수원이라는 공동체를 개척하고 이를 통해서 실험하고자 했던 궁극적 가치이자 목표였던 셈이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나와 하나님’, ‘신자의 성장’, ‘신자의 생활’, ‘신자의 가정’을 통해 코이노니아의 구체적 실천과 방법론을 다룬다. 여기서의 화두는 단연 ‘토지’와 ‘성령’이다. 개척자정신과 실험정신이 저자의 일관된 삶의 자세였다면 ‘토지’와 ‘성령’은 생전의 그가 그처럼 깊이 천착했던 보다 구체적인 실천적 과제이며 동시에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토지문제는 저자가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씨름했던 미결의 과제였으며, 이제 그것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대천덕 신부는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로부터 지금의 교회(유럽과 미국)에 이르기까지 바벨론에서 비롯된 바알법(지주제도)을 따르고 있으며, 그것은 교회 구성원들(실제로 교회를 움직이는)의 상당수가 지주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회는 그들을 옹호하거나 그들의 불의를 묵인하고 있다는 고발과 함께 매우 충격적이고도 의미 있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한국 교회도 그러한 상황에 놓일 위험이 있다는 경고와 더불어. 이미 천민자본주의에 의한 고속 성장과 그에 따른 성공주의와 개인주의는 사회 전체의 공동체성 파괴를 가져왔으며 교회조차도 그와 궤를 같이하는 성장제일주의와 개교회주의에 매몰되어 가는 지금, 그의 부재는 더욱 절실하고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님의 공의와 코아노니아를 이루는 실천적 과제인 토지문제와 함께 그것을 실천 가능케 하는 새 언약으로서의 성령에 관한 저자의 가르침은 한국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오직 말씀이라는 기치 아래 시작된 개혁교회는 말씀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성령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성령이 계시지 않는다면 교회도 신자도 없다고. 그러나 말씀과 성령에 대해 균형 있는 태도를 가질 것을 권고한다. 말씀과 성령은 신자의 성장, 생활, 가정, 이 모든 영역에 걸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도록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며, 삶의 모든 문제, 즉 용서·회개·재물에 대한 태도·결혼생활·낙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의 해결자요 인도자이다.

끝으로 예수원 편집부(이 책의 성과의 일부는 당연히 그들의 몫이다)가 쓴 이 책의 후기를 읽어내려 가다가 문득 한 단어―‘해 보라’―에 눈길이 멈추었다. ‘해 보라!’ 그렇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결론이다. 결국 저자의 메시지는 하나의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해 보라는 강한 도전이었다. 이제 듣고 눈으로 보고 믿었거든 들은 대로 본 대로 믿은 대로 ‘해 보라’는 저자의 도전이 우리 앞에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

– 글/이무하(찬양사역자)

– 2004년 11월 ‘쿰회보’에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