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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홀 일기 4

46,800 52,000

로제타 홀 (Rosetta S. Hall)
김현수, 강현희 (역)
2016. 11. 29
양장 / 428 Pages
9788936511913

카테고리:

품절

“이곳 한국 땅에서 오랫동안 주님의 사역을 위해 쓰임 받기를 나는 소망한다.”
_1893년 3월 28일 일기에서
한국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첫 의료선교사 
로제타 홀의 사역 여정을 담은 일기 전4권 완간!  

초창기 선교사들의 행적을 담은 중요 사료의 가치를 더하다

한국에서 2대에 걸쳐 77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홀 선교사 가족 중 가장 먼저 한국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 <로제타 홀 일기>는 로제타 홀 선교사가 한국으로 파송된 1890년부터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이 소천한 1894년까지 약 5년 동안의 기록을 담고 있다. 120여 년 전 한국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의 삶과 당시 한국의 선교 상황을 잘 보여 주는 이 육필일기에는, 그녀가 행한 사역의 구체적인 내용뿐 아니라 한국인이 서양 의사의 의술과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진, 주고받은 편지 등이 실물로 첨부되어 있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로제타 홀이 일기 내용을 보완하거나 정정하는 메모가 덧붙여 있다. 각 권 제1부는 이 같은 일기 원본 사진과 함께 우리말 번역을 실었다. 로제타 홀이 필요에 따라 일기 중간 중간에 붙여 둔 스크랩도 일기 원본 사진과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제2부는 로제타 홀이 쓴 일기를 영문 활자화하여 실었다. 이 같은 편집을 통해 로제타 홀의 의료사역은 물론, 일상 모습을 통한 그녀의 인간 됨과 신앙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120여 년 전 이 땅에서 헌신한 로제타 홀의 숨결을 되살리다

로제타 홀은 1890년 10월 14일 선교 목적지인 서울에 왔고, 이후 현지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의료 활동에 진력했다. 제1권부터 제3권까지는 미국을 떠나 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내한 이듬해에 이르는 자취를 담았다. 제1권은 그녀가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1890년 8월 21일 뉴욕의 집을 떠나, 경유지인 일본에 도착한 9월 24일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제2권에는 1890년 9월 24일부터 1891년 5월 17일까지, 약 8개월 동안의 자취가 담겨 있다. 로제타가 중간 기착지인 일본 각지에 머무는 동안의 생활,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오기까지 한 달간의 여정, 서울에서 첫 7개월간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제3권은 그녀가 어느 정도 한국에 적응한 뒤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 동료 선교사들 사이의 갈등과 우정, 그리고 한국에 온 약혼자 윌리엄 홀과의 재회가 그려져 있다.

 

결혼과 평양 선교, 남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번에 출간된 《로제타 홀 일기 4》는 그녀가 서울에서 맞은 세 번째 해인 1892년 3월 8일부터 1894년 10월 1일까지, 약 2년 7개월 동안의 행적을 담고 있다. 로제타를 뒤따라 한국에 온 윌리엄 홀 선교사와의 결혼, 평양 선교 개척 이야기, 남편과 사별하기까지의 과정, 스크랜턴과 에스더 등을 비롯한 동료 선교사와 한국인 조력자 사이에서 겪은 경험들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로제타와 윌리엄 홀 선교사는 1892년 6월 27일 서울에서 결혼했다. 윌리엄 홀은 결혼 3개월 만인 9월 평양 개척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후 약 1년 동안 윌리엄은 평양에서, 로제타는 서울에서 사역을 감당해야 했다. 로제타 홀은 1893년 11월 10일, 첫아들 셔우드를 낳았다. 출산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로제타와 윌리엄 홀 부부는 모두 평양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결혼 1년 반 만에 부부가 함께 평양에서 사역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평양 개척 사역에 대한 윌리엄 홀과 한국 담당 감리사였던 스크랜턴 사이에 적잖은 견해차와 갈등이 있었으며, 갓 태어난 셔우드가 자주 아파 로제타 홀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김창식 목사와 에스더에 대한 기록들

《로제타 홀 일기 4》에는 김창식 목사(1857~1929.1.9)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1876~1910.4.13)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을 따라가 보면 그들의 믿음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엿볼 수 있다. 1894년에 일어난 ‘평양 기독교인 박해 사건’도 로제타 홀이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은 내용으로 실감나게 기록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윌리엄 홀과 마펫 선교사의 조사로 함께 평양에 갔던 김창식의 행동에 대해 ‘순교자와 같았다’고 쓰여 있다. 1894년 5월 11일 일기에서 로제타 홀은 그를 ‘한국의 바울’이라 평하기도 했다. 후일 김창식 목사가 이 같은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이 일기에서 비롯된 듯하다.  
로제타 홀이 서울 보구여관에서 사역하게 된 직후 보조자로 만난 에스더는 그 후 우리나라 최초 여성 의사가 된다. 제4권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에스더인데, 처음 만난 순간부터 평양 사역에 동행하기까지 주고받은 대화와 편지가 상당수 수록되어 있다. 선머슴 같았던 김점동이 김에스더를 거쳐 박에스더가 되는 신앙 역정이 로제타 홀의 애정 어린 마음과 함께 가슴으로 전해진다. 
 

윌리엄 홀의 순직으로 마치지 못한 일기

《로제타 홀 일기 4》의 마지막 일기는 1894년 10월 1일자 일기다. 그런데 그 내용이 미처 마쳐지지 못했다. 로제타는 스물아홉 번째 생일인 1894년 9월 19일 일기에서 에스더 부부로부터 생일 축하 편지를 받고 윌리엄 홀로부터는 비취 조각이 달린 예쁜 베갯모 선물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평양에서 청나라와 일본의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없다면 곧바로 평양으로 갈 거라며 일기를 마쳤다. 그러다가 드디어 청일전쟁이 시작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고향의 가족들로부터 우려의 편지를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윌리엄 홀은 마펫 목사와 함께 10월 1일 다시 평양으로 떠나 6일에 평양에 도착했으며, 8일 서울에 있는 로제타에게 편지를 보냈다. 10월 1일 일기는 이 내용을 적은 뒤 끝난다. 
청일전쟁이 치열해지고 평양에 있던 선교사들이 서울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윌리엄 홀은 전염병에 걸리고 만다. 그리고 서울에 온 지 1주일 만인 11월 24일 순직하게 되는 급박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로제타 홀의 일기는 미완성으로 끝나고 만다. 그녀는 10월 13일 자신에게 도착한 윌리엄 홀의 편지를 손글씨로 옮겨 적어 일기 뒤에 붙여 놓았다. 이렇게 로제타 홀 일기는 남편 윌리엄 홀의 편지로 그 끝을 장식하고 있다. 
독자들은 로제타 홀이 힘든 여건 속에서 어떤 자세로 선교 사명과 자신의 삶을 감당해 
나갔는지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로제타 홀 일기>는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던 초기 역사에 관심 있는 평신도뿐 아니라, 한국 교회사와 선교 사역을 연구하는 학자 및 신학생, 한국 근대사와 관련한 여러 기관들에 귀중한 자료가 되어 준다. 로제타 홀이 두 자녀(셔우드와 에디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한 육아 일기(전2권)도 2017년 출간될 예정이다. 
  

무게 1070 g
크기 210 × 288 mm

저자

로제타 홀
1890년 의료선교사로 내한. 1892년 6월 윌리엄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과 서울에서 결혼했다. 윌리엄이 평양에서 의료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아내 로제타 홀은 여성 전문병원인 서울 보구여관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했다. 
윌리엄 홀은 평양에서 청일전쟁의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불철주야 전념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1894년 11월 24일 소천한 뒤 양화진에 안장됐다. 이후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로제타 홀은 189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듬해 유복녀로 태어난 딸 에디스(Edith M. Hall, 1895~1898)를 아버지 곁에 묻어야 했다. 
로제타 홀은 평양에서 약 20년 동안 헌신하면서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병원과 여성을 위한 광혜여원을 설립하여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법을 개발하여 광혜여원에서 맹인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고, 1917년부터는 서울 동대문병원에서 일하면서 여자의학원을 설립하여 나중에 경성의학교로 발전시켰다. 이 학교는 훗날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성장했다. 
1935년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미국 뉴저지에서 소천한 로제타 홀은 화장되어 남편이 묻힌 양화진에 합장되었다.

역자

김현수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애리조나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미국 하버-UCLA 메디컬센터에서 내과 전공의, 하버-UCLA 메디컬센터와 에머리 의과대학에서 혈액학·종양학 전임의와 인디애나 주 그레이터 라파예트 종양학연구소 주치의를 역임했다. 현재 콜로라도 스프링스 로키마운틴 암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의료선교사의 소망을 가지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전 세계를 찾아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평양에 의과대학을 세우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 생활 중 알게 된 선교사 후손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이 보관하고 있는 선교 자료들이 유실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2010년 에스더재단을 설립했다.
강현희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였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현재 미국에서 공인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에스더재단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미국 내 저소득층과 노인들의 회계 및 세금 문제를 도와주는 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차례

동반구에서의 삶 9
부록/색인/약력/출판물 245
Life in the Eastern Hemisphere 271
Appendix/Index/Timeline/Publication 389
해설 416

책속에서

■ 집안 일을 아무리 간단히 해도, 이 일과 병원 사역 틈새에서 한국어 공부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다. 글을 읽거나 쓸 시간은 더더욱 없다. 이곳 아펜젤러 씨의 서재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 10년 전에 내가 지금처럼 이 책들을 접할 수 있었다면 읽지 않고는 몇 주도 못 배겼을 것이다. 내가 무척 읽고 싶어 했던 호손의 책들과 앨리스와 피비 캐리의 시들, 그리고 내 마음을 즐겁게 했을 여러 가지 다른 책들도 있다. 당장이라도 그 책들을 읽고 싶지만 포기해야 한다. 
_1892년 10월 17일 일기에서 

■ 의사 선생은 창식을 보러 갈 때마다 그 광경이 너무 처참하여 울고 만다. 그들이 창식을 오 씨나 한 씨보다 더 심하게 때리고 위협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불응하고 있을 뿐 아니라 풀려나면 복음 전파를 그만 두겠느냐는 물음에도 계속 전파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바울’(Korean Paul)로 인해 주님께 찬양을 드린다! 
_1894년 5월 11일 일기에서

■ 지난 한 해 동안 이 소녀에게 일어난 영적 성장은 실로 놀랍다. … 에스더는 성경 공부도 하는데, 성령께서 스승이 되어 그녀를 가르치시는 것이 분명하다. 이해도 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무척 잘한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서 분별력이 있고 현명하다. 그런데 그것이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이 씨 부인까지도 그녀의 뛰어난 능력을 질투하기 때문이다. … 에스더의 인격의 깊이는 그녀를 잘 아는 사람만 공감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외모나 태도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는 절대로 깊은 인격의 소유자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는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 
_1893년 3월 28일 일기에서

■ 평양은 거의 죽은 도시 같구려. 한국인들이 막 돌아오기 시작했소. 그들 모두가 이곳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기뻐하고 있으며, 우리는 사역에 큰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오. 땅이 부드러워져 옥토가 되었기에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믿고 있소. 주님을 위한 우리 사역에서 지금보다 더 희망적으로 보인 적이 없소.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게 기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줄 믿는다오. 
_1894년 10월 8일 윌리엄 홀의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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