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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홀 일기 6

38,250 42,500

로제타 홀(Rosetta S. Hall)
김현수, 문선희 (역)
2017. 7. 20
양장 / 340 Pages
9788936512651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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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슬픔은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계속 기억된다. 아이를 잃은 슬픔이 그런 슬픔이다.” –《데이비드 하럼》
1900년 5월 23일 일기에서
 
가슴에 묻은 눈물, 이 땅에 심은 사랑
 
<로제타 홀 일기> 시리즈 완간
한국에서 2대에 걸쳐 77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홀 선교사 가족 중 가장 먼저 한국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육필일기 그 여섯 번째가 출간되었다. 이로써 2015년 9월 《로제타 홀 일기 1》이 출간된 이후 2년 만에 전6권(선교일기 네 권, 육아일기 두 권)이 완간되었다.
선교일기는 로제타 홀이 한국에 오기 위해 미국 뉴욕에 있는 집을 떠난 날부터, 자신의 뒤를 따라 한국에 온 남편 윌리엄 홀 선교사가 순직하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선교 현장에 대한 1차 자료들, 예를 들면 김창식 목사(1857~1929.1.9)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1876~1910.4.13)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들도 포함되어 있다. 육아일기는 홀 선교사 부부의 두 자녀, 셔우드 홀과 에디스 마가렛 홀의 출생과 육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로제타 홀은 일기들 속에 많은 사진과 각종 자료를 스크랩하여 첨부해 놓았다. 특히 육아일기에는 두 자녀의 생일 때면 아이의 머리카락을 붙여놓고 손가락을 실제 크기로 그려놓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수록해 놓았다. 초창기 내한 선교사들의 삶과 자녀 양육에 어려웠던 점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심장 박동처럼 울려퍼지는 생생한 기록과 사진들
《로제타 홀 일기 6 – 에디스 마가렛 홀 육아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에디스가 태어난 1895년 1월 18일부터 약 2년 반 동안 미국에서 생활한 내용, 둘째, 로제타 홀과 셔우드, 에디스가 다시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출발하는 1897년 10월 27일부터 에디스의 죽음(1898년 5월 23일) 및 양화진에 묻힌 아빠의 곁에 묻히는 1898년 5월 26일까지의 내용, 셋째, 이후 2년 동안 딸의 생일과 기일을 맞아 로제타 홀이 깊은 상념을 풀어 놓은 1899년 1월 18일부터 1900년 5월 23일까지의 일기다. 
에디스는 남편을 잃은 엄마에게 위로자와 같은 존재였다. 가끔 병치레를 했지만 비교적 건강했고, 가족들의 사랑을 이끌어 내는 천사 같은 아이였다. 또한 에디스는 로제타로 하여금 한국에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이어가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병으로 고생했고, 엄마의 임지인 평양에 도착한 직후부터 심한 이질에 걸려 아파하다 1898년 5월 23일, 3년 4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책에는 특히 에디스의 치료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병상기록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배 안에서 시작되어 서울에 도착한 이후 약 40여 일 동안 앓은 폐렴 치료 기록, 1898년 2월에 걸린 홍역 치료 기록,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 1898년 5월 1일부터 23일까지의 이질 치료 기록은 매 시간마다 에디스의 증세와 그에 따른 처치, 그리고 엄마의 애끓는 마음이 분 단위로 기록되어 있다. 100여 년 전 한국 의료선교의 실제적 상황을 마치 역사 기록처럼 보여 주는 소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어둠에서 빛을, 절망에서 희망을
로제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먼저 데려간 데 대해 기독교인이자 선교사임에도 갈등을 겪는 것에 못마땅해 하면서, 치유되지 않는 아픔에 힘겨워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대신 그 상처를 가슴에 품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고자 힘겨운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로제타 홀 일기>는 어쩌면 슬픈 이야기로 비칠 수 있다. 선교일기는 남편 윌리엄 홀 선교사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고, 육아일기 역시 어린 딸 에디스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일기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로제타 홀의 믿음이 성숙해지는 모습을 만날 수 있고 생명과 한국인들을 향한 그녀의 진심어린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로제타 홀 일기 1-4》의 각 권 구성은 1부에서는 일기 원본 사진과 함께 우리말 번역을 실었고, 2부에서는 로제타 홀이 쓴 일기를 영문 활자화하여 실었다. 이 같은 편집을 통해 로제타 홀의 의료사역은 물론, 일상 모습 속에서 그녀의 인간 됨과 신앙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육아일기인 《로제타 홀 일기 5-6》은 편집을 달리하여 1부에서는 영인본, 2부에서는 한글 번역문을 실었고 판형도 이전 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했다. 이와 더불어 전반적으로 한 여성으로서의 면모가 잘 간직되도록 디자인했다. 
 

<로제타 홀 일기> 시리즈 소개

[선교일기]
로제타 홀 일기 1 _로제타 홀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1890년 8월 21일 뉴욕을 떠나 경유지인 일본에 도착한 9월 24일까지의 기록.
로제타 홀 일기 2 _1890년 9월 24일부터 1891년 5월 17일까지, 로제타 홀이 중간 기착지인 일본 각지에 머무는 동안과, 한국에 도착해 서울에서 첫 7개월간 사역한 모습.
로제타 홀 일기 3 _1891년 5월 15일부터 1891년 12월 31일까지, 어느 정도 한국에 적응하여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
로제타 홀 일기 4 _1892년 3월 8일부터 1894년 10월 1일까지, 로제타를 뒤따라 한국에 온 윌리엄 홀 선교사와의 결혼, 평양 선교 개척 이야기, 남편과 사별하기까지의 과정.

[육아일기]
로제타 홀 일기 5 _아들인 셔우드 홀이 태어난 1893년 11월 10일부터 셔우드가 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1900년 11월 10일까지의 기록.
로제타 홀 일기 6 _에디스 마가렛 홀의 출생부터 이질로 인해 떠나보내는 과정, 이후 딸에 대한 진한 그리움의 기록.

 

 

저자

로제타 홀
1890년 의료선교사로 내한. 1892년 6월 윌리엄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과 서울에서 결혼했다. 윌리엄이 평양에서 의료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아내 로제타 홀은 여성 전문병원인 서울 보구여관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했다. 
윌리엄 홀은 평양에서 청일전쟁의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불철주야 전념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1894년 11월 24일 소천한 뒤 양화진에 안장됐다. 이후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로제타 홀은 189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듬해 유복녀로 태어난 딸 에디스(Edith M. Hall, 1895~1898)를 아버지 곁에 묻어야 했다. 
로제타 홀은 평양에서 약 20년 동안 헌신하면서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병원과 여성을 위한 광혜여원을 설립하여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법을 개발하여 광혜여원에서 맹인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고, 1917년부터는 서울 동대문병원에서 일하면서 여자의학원을 설립하여 나중에 경성의학교로 발전시켰다. 이 학교는 훗날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성장했다. 
1935년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미국 뉴저지에서 소천한 로제타 홀은 화장되어 남편이 묻힌 양화진에 합장되었다.

김현수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애리조나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미국 하버-UCLA 메디컬센터에서 내과 전공의, 하버-UCLA 메디컬센터와 에머리 의과대학에서 혈액학·종양학 전임의와 인디애나 주 그레이터 라파예트 종양학연구소 주치의를 역임했다. 현재 콜로라도 스프링스 로키마운틴 암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의료선교사의 소망을 가지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전 세계를 찾아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평양에 의과대학을 세우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 생활 중 알게 된 선교사 후손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이 보관하고 있는 선교 자료들이 유실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2010년 에스더재단을 설립했다.

문선희

연세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연세대 대학원에 서 교회사를 전공하여 신학석사(Th. M.) 및 신학박사(Ph. D.) 학위를 받았다신학석사 과정을 마친 후 미국 캘리포니아산호세로 이주하였고, 2000년부터 한인 2세를 비롯해 미국에서 생활하는 이민자들을 위해 설립된 코너스톤교회(Conerstone Church of Silicon Valley)에서 교육봉사자로 섬기는 한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부터 에스더재단 이사로 참여하여 한국 교회 초창기에 파송된 미국 출신 선교사들의 기록을 우리글로 옮기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옮긴 책으로 《로마서 주석》(공역로고스 출판사), 《켈트 성인들 이야기》(공역기독교문서선교회), 《헤럴드 램의 칭기스칸》(코리아닷컴등이 있다.

차례

1부_ 영인본 
2부_ 번역본 

주 
해설 
발간사 
감사의 말 
역자 후기

책속에서

■ 에디스의 카타르성 폐렴 진료 기록
10월 6-9일–세인트 폴에서 벤쿠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백일해에 노출됨. 
8일부터 12일까지 가벼운 이질 증상. 
12일 하루 종일 배멀미로 아무것도 먹지 못함. 한동안 소화가 안된 변을 보았지만 더 이상 출혈은 없음.
11월 7일과 9일–황해에서 배멀미. 9일경 병에 노출됨. 8일과 9일 그리고 10일에 심한 코감기와 약간의 기침.
11월 10일–제물포에 도착. 온종일 칭얼댐. 저녁 7시에 잠. 춥다고 하고 잠시 후에는 저녁 먹은 것을 토함. 밤새 열이 나고 자지 못함.
11월 11일–오전에 열이 조금 내린 듯함. 코피를 조금 흘림. 졸려하면서 안 먹으려고 함.
오전 11시 체온 103.4도, 호흡 50, 심박수 150.
오후 2시 체온 101.8도, 호흡 44, 심박수 138.
오후 5시 체온 102.4도, 호흡 44, 심박수 150.
_1897년 10월 11-28일 일기에서 

■ 그림 속에서 에디스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나는 어린이들과 어머니들에게 왜 우리가 이날을 축하하는지, 또 생일 선물이었던 돈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1년 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지금 우리가 모인 이 좋은 건물을 주셨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에디스가 좋아했던 찬송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과 <행복한 나라가 있네>(There is a Happy Land)를 불렀다. 오늘 오후 우리가 가진 이 모임이 모두의 사기를 북돋워 준 듯하다. 
_1900년 1월 18일 일기에서

■ 엄마는 엄마의 마음을 진찰해 보려고 했으나 자신의 병을 진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는 이러한 손실이 최선이었다고 느끼고 싶은 곳까지 엄마 자신을 이끌어 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멀리 떨어져서 이 시처럼 느껴보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주께서 내 보물 창고에서 내 손을 비우셨네 그리고 주의 언약의 사랑을 나타내셨네 내 아픈 마음에는 상처가 없었네 주의 호흡의 향기로 치유되었네” 그러나 아직 엄마는 이러한 상처들이 아물기를 바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어리석어 보이고 나중에 엄마에게조차도 틀림없이 근시안적으로 보이겠지만 엄마는 그 상처들을 안고 치유받기를 거부하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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