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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주의

13,500 15,000

허련순
2012.9.12
무선 / 396 Pages
97889365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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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 자본주의자도 아닌 사랑주의자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동북아 정세, 테러로 얼룩진 동서 대립은 과연 풀 수 없는 매듭인가?
이념과 사상의 벽을 뚫고 중국과 북한에 학교를 세운 유일한 사람, 여전히 공개적으로 평양을 넘나들고 아랍권을 바라보며 평화를 부르짖는 김진경 총장의 삶에서 동북아 번영을 넘어, 세계 평화를 위한 길을 찾다.

김진경 총장의 삶, 드디어 책으로 만나다
개혁개방 정책으로 경제적 급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사상과 이념의 높은 벽으로 가로막힌 중국 대륙,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 대립과 반목이 더해만 가는 북녘 땅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회주의 체제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학자에게 교육 부문을 맡긴다는 것은 스스로 전복되길 바라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 그런 중국과 북한에 김진경 총장은 외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사립학교를 세우고 명예시민권까지 받았다. 그가 세운 옌볜과기대와 평양과기대는 오늘날 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하는 국제대학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급변하는 21세기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 북한, 중국을 잇는 대화 창구와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그간 김진경 총장에 대한 언론 기사는 많았으나 그의 삶과 철학 전반을 다룬 책은 없던 터, 《사랑주의》는 중국과 북한을 넘어 테러로 얼룩진 아랍의 문도 열기 시작한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중국 1급 소설가가 쓴 살아 있는 평전
이 책의 작가 허련순은 중국 1급 소설가이자 옌볜작가협회 부주석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다수의 작품을 냈으며 전국소수민족준마상, 윤동주문학상, 동북3성금호상, 도라지문학상 등을 받은 바 있다. 그녀는 1992년 옌볜과기대 개교기념 행사에 초대받고서 이 책의 집필을 결심했는데, 공동묘지이자 화장터, 사형장이던 죽음의 땅에 배움의 전당을 세워 희망의 새 생명을 부활시키려는 김 총장의 연설을 들으며 ‘어떤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힘과 압도적인 기운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러나 김 총장의 거절로 불발에 그쳤던 집필이 우여곡절을 끝에 2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집필 기간 2년 반, 밀착 인터뷰, 탄탄한 고증, 유려한 문장 등은 김진경이 걸어온 자취와 시대 및 사회적 배경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김진경에 대한 오해와 진실, 비하인드 스토리 망라
총 4부의 본문 가운데 1부 ‘인생은 새로운 길을 찾는 여행’에서는 교육가이던 아버지 김수만 선생, 한국전쟁을 겪으며 자란 김진경의 어린 시절 이야기, 유럽 유학을 택한 이유 등이 소개되고, 2부 ‘생각하고 꿈꾼 것을 즉시 실천하라’에서는 중국과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 참된 교육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난관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터를 잡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3부 ‘세계적인 국제대학, 옌볜과기대의 기적’에서는 옌볜과기대에서 함께 일할 인재를 모으던 일, 교직원이 순직하면 골회를 교정에 뿌려 추모하는 옌볜과기대의 교풍校風과 교육 철학,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던 여러 에피소드가 담겨 있고, 4부 ‘한반도 평화의 허브, 평양과기대의 비전’에서는 북한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극적으로 풀려가기까지 긴박했던 순간들과 비하인드 스토리, 죽음을 넘어 평양과기대를 설립한 일, 이에 얽힌 오해와 입장, 앞으로의 과제 등을 언급한다. 각 부 끝엔 삶의 여러 순간에 찍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고, 책 말미에 부록으로 2012년 2월 2일 미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평화에는 대가가 따른다’라는 제목으로 한 연설문이 실려 있어 김진경 총장의 열정과 비전을 확인할 수 있다. 
 
제2, 제3의 ‘러비스트Loveist’를 기대하며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북한에 외국인이 국제대학을 세울 수 있으리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불가능하다, 어리석다고 했다. 숱한 오해와 감당하기 힘든 배신도 따랐다. 그러나 김진경은 좌절과 비웃음을 등에 업은 채, 생사를 담보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주말이나 명절도 잊고서 국경 넘나들기를 수천 회, 마침내 유엔도 하지 못한 일들이 차가운 땅에서 움터 나왔다. 이 모든 것이 김진경의 핵심 가치 ‘사랑주의’에서 피어났다. 지금껏 김진경이 자신을 숨기면서 그 대신 너무도 드러내고 싶어 한 사랑주의는 오래된 정치적 이념은 물론, 민족, 종교, 예술, 철학 등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또한 서로를 짓밟고 일어서려는 상쟁相爭의 관계를 화해와 협력을 통한 상생相生으로 이끄는 확실한 구원의 대안이다. 즉 인류 사회의 흐름을 바꿀 보편 원리이자 실천 개념인 것이다. 올해로 옌볜과기대는 개교 20주년, 평양과기대는 개교 4주년을 맞았다. 이념과 사상, 불가능의 벽을 뚫고서 얼어붙은 땅에 기적의 깃발을 꽂은 김진경 총장의 삶은, 남북과 동서 교류를 증진시키는 데 힘쓰고 있는 정부 부처 관계자, 민간단체, 학계 및 교계 종사자, 동북아 정세와 미래를 전공하는 학생들, 여러 루트를 통해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분명한 길과 방향을 제시한다.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동북아 번영과 세계 평화를 위해 뛰는 이들에게 살아 있는 희망과 만져지는 기적을 보여 줄 것이다.       

무게 588 g
크기 148 × 210 mm

저자

허련순 許蓮順
중국 1급 소설작가. 옌볜작가협회 부주석. 장편소설 《바람꽃》(범우사),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온북스), 《뻐꾸기는 울어도》(한국학술정보), 소설집 《바람을 몰고 온 여자》(문원북), TV드라마 <여자란 무엇입니까> 등 여러 작품을 썼다. 김진경의 삶을 가슴에 품은 지 20년, 펜을 든 지 2년 반 만에 《사랑주의자 김진경》을 탈고했다.

김진경 金鎭慶
“나에게 나이와 고향을 묻지 마오.” 영적 나이, 지적 나이, 감성적 나이가 아닌 생물학적 나이는 그의 관심 밖이다. 마음에 담고 있는 고향은 늘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자신의 집은 어디에도 짓지 않는다. 그래야 언제든 도움을 바라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나갈 수 있으니. 바람처럼 거침없는 그가 다니는 길은, 조건과 대가를 따지지 않고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다.김진경 연보1935년 9월 16일 경남 의령군 출생.

1943년  마산 성호국민학교 입학.
1948년 4월  창신중학교 입학.
1950년 6월 30일 (창신중학교 3학년 때) 학도병으로 한국전쟁 참전.
1951년 4월  창신중학교에 복교.
1951년 7월 20일 창신중학교로부터 학도병 참전 공로상 수상.
1954년  마산고등학교 졸업.
1954~1958년  숭실대학교 철학과 입학, 졸업.
1958~1960년  보성여자고등학교 독일어 교사 재직.
1960~1963년  영국 클리프튼 신학대학원 입학, 졸업.
1963년  고신대학교 전신 고신대학교 대학부 설립, 초대 학부장 역임.
1964년 10월 23일 박옥희와 결혼.
1974년 10월 23일 미국 베리언 크리스천 칼리지에서 <공자 철학의 사회학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취득.
1976년  가족이 미국 플로리다 주로 이민.
1976~1988년  미국에서 개인 사업.
1985년  미국 시민권 취득.
1986년  중국 첫 방문.
1987년  북한 첫 방문.
1987~1991년  중국사회과학원 초빙교수 역임.
1988년  산동성 사회과학원 특임교수 역임.
1989년  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 인민정부 경제고문으로 임명. 중국 옌지시 정부와 옌볜조선족기술대학 설립 계약서 체결.
1992년 9월 16일 옌볜과학기술대학 총장 취임. 옌볜과학기술대학 부속 산업기술훈련원 개교. 중국 옌지시 명예시민권 취득.
1993년 9월 9일 옌볜과학기술대학 본과(4년제) 및 전과(2년제) 정식 개교.
1995년 8월 15일 서울 명예시민증 취득.
1998년 4월 17일 중국 시민권 취득.
1999년  숭실대학교 명예 철학박사.
2000년 12월 25일 북한 나진시에 어린이집 개원.
2001년 3월 1일 평양과학기술대학 건립 승인. 평양과학기술대학 총장 임명.
2002년 6월 12일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 착공식.
2002년 10월 9일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2003년 12월 20일 평양과학기술대학으로 교명 변경.
2004년 8월 26일 국립충북대학교 명예 교육학박사.
2009년 9월 16일 평양과학기술대학 개교 및 총장 취임.
2011년 8월 25일 북한 정부로부터 평양 명예시민증 및 교육학 명예박사증 수여.옌볜과학기술대학교 www.yust.edu
평양과학기술대학교 www.pust.kr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www.nafec.or.kr

 

차례

머리말_ 놀랍고도 특별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1부 인생은 새로운 길을 찾는 여행
1. 운명의 십자가 2. 어린 시절의 기억 3. 유럽 유학을 택한 이유 4. 하늘이 내린 복, 가정을 이루다 5. 친구의 배신

2부 생각하고 꿈꾼 것을 즉시 실천하라
6. 중국에 발을 딛다 7. 어리석은 사람과 선각자의 차이 8. 그를 움직인 힘 9. 중국을 향한 마음

3부 세계적인 국제대학, 옌볜과기대의 기적
10. 기적을 낳는 것은 오직 사랑뿐 11. 좋아서 사랑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12. 우리는 양심에 투자한다 13. 내게 온 아이들은 모두 내 자녀다 14. 희생 없이는 신앙도 없다

4부 한반도 평화의 허브, 평양과기대의 비전
15. 북한에서 받은 사형선고 16. 죽음을 넘어 평양과기대를 세우다 17.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주의자

맺음말_ 동북아 번영과 세계 평화를 위한 길
부록_ 김진경 연보 / 미국 국가조찬기도회 연설문

책속에서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신의 경지를 체험했다.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는 기쁨은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자가 빛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은총임으로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_머리말

그를 심문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들어와 종이를 주면서 그에게 유서를 쓰라고 했다. 죽는 사람에게 유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는 산 사람에 대한 예의인 듯싶어 그는 펜을 들었다. 그에게는 동고동락해 온 사랑하는 아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 그리고 분신과 같은 대학, 뜻을 모아 함께 고생해 온 동지 교수들과 직원들, 그리고 제자들이 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살아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이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그가 이승에서 해야 할 마지막 일인 듯했다.
그는 모두 넉 장의 유서를 썼다. 하나는 학교에 보내는 편지였다. “총장이 죽었다고 절대 곡哭이나 장례식을 하지 말고 천국으로 가는 송별식을 하고 풍악을 울리라”는 당부였다.
두 번째로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과 정리할 부분들에 대하여 썼다.
세 번째로 미국 정부에 썼다. “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북한에 보복하지 말라. 나는 오해로 죽지만 민족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다가 천국으로 갔으니 보복하지 말라. 만약 보복을 한다면 사랑을 실천하다가 죽은 내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라고 당부했다.
끝으로 북한 당국에 썼다. “내 육신은 평양의과대학에 기증해 달라. 나의 육신은 아직 크게 앓아 본 적 없는 아주 건강한 몸이다. 내가 죽으면 내 장기臟器를 필요로 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이식해도 좋다.”
유서를 다 쓰고 나서 그는 그날의 기분을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날개 아래 쉬다. 새털과 같은 이 부드러움, 평화롭구나.”
_301쪽


평양과기대는 50년 동안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사장 곽선희 목사)에서 운영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은 비영리 단체로서 본부를 서울, 미국 로스앤젤레스, 호주 시드니, 캐나다 토론토에 두고 있다. 재단은 평양과기대의 건축 비용과 함께 매년 6백만 달러의 운영 비용을 모금해야 한다. 옌볜과기대가 중국에서의 기적이라면, 평양과기대는 북한에서의 기적이다. 북한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이 학교를 세우는 것을 허용한 사례다.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반적인 논리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 일을 회고하면서 김진경은 이렇게 말했다.
“억류되었던 시간이 없었다면 그들이 어찌 나를 알 수 있었겠습니까. 유서까지 쓰게 하면서 고문하였던 과정이 바로 그들이 나를 믿게 된 과정입니다. 그러니 내가 겪은 모든 시련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서 당연히 넘어야 하는 관문이었습니다.”
_325쪽


조찬기도회에는 모두 160여 나라의 대표들이 참석했는데 각국 총리들과 대통령 부인들도 있었다. 그의 연설은 모든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특히 회교권 대표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그가 연설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오자 회교권 대표들이 그에게로 모여 왔다.
“우리가 돈을 낼 테니 우리나라에 와서 중국과 북한에서 세운 것과 같은 국제대학을 세워 주십시오.”
너무도 의외였다. 회교권에서 ‘사랑주의’에 대해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보일 줄은 천만 뜻밖이었다.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이것이 기회라 여기고 김진경 총장은 물었다.
“그렇다면 내 사랑주의 철학에 근거해서 대학을 세워도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 동의합니다.”
그들은 선뜻 승낙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희망이었다. 한 소망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사랑하며 평화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_373쪽

저자 인터뷰

“사랑주의밖에 없습니다”

1. 총장님의 삶과 철학을 담은 책이 처음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감회가 어떠신지요?
책이 나오기 전까지 나 자신을 책을 통해 세상에 알린다는 것이 무척 쑥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책이 나오고 보니 많은 분들이 좋은 의견을 주셔서 참 기쁩니다. “‘Loveism’, ‘사랑주의’라는 것을 몰랐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책을 읽고서 다른 무엇보다 사랑주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혼돈의 세상 속에서 사랑주의자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과 소망과 미래를 준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2. 요즘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독도와 댜오위다오를 두고 한중일 간에 긴장감이 흐르는데,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유럽이 EU라는 이름으로 국가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개별 국가가 정체성은 있지만 영토의 한계가 없어진 것입니다. 공동체가 되기 전 유럽은 섬 하나를 놓고도 여러 나라가 싸웠습니다. 이제 한국, 중국, 일본, 몽골, 극동 러시아 곧 동북아시아에도 공동체가 필연적으로 형성됩니다. 한국과 중국이 FTA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FTA를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경제 공동체가 생기게 됩니다. 그다음 사회 공동체가 오고 그다음 정치 공동체가 옵니다. 그때가 되면 섬 하나로 오늘날과 같은 분쟁을 벌이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한국 국민들에게 하고픈 말은, 독도에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 국민이 지키고 있으니, 일본이 아무리 떠들어도 불합리한 이야기라는 것을 세계가 알므로 그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댜오위다오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가 되면 모든 자원을 공동 관리하게 됩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눈을 멀리 내다보고서 소모적인 데 힘을 쏟지 말고, 언론도 작은 것을 크게 부풀리는 일을 자제해야 합니다.

3. 평양과기대 총장으로서 북한을 드나들며 요즘의 북한 정세는 어떠한지, 그리고 대선을 앞둔 남한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한 말씀 바랍니다.
북한은 미래가 있는 나라로 점점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평양에 갔고 다음 주에도 평양에 갑니다. 북한, 중국, 한국을 한 달에 한 번은 꼭 방문합니다. 요즘 북한에 가면 위기감은 안 느껴져요. 같은 민족, 사랑하고 싶은 사람,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경계심도, 거리감도 없습니다. 자꾸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정치적인 것으로 인해 거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북을 사랑하니 그들이 당연히 감동받고 나를 지켜 주는 것입니다. 그런 나를 존경하고 위해 주는 것입니다.
대선 주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고 그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정치는 모두 상대적인 것으로, 저는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사랑주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되실 분에게 하나 부탁드리는 것은, 국외에 있는 민족도 내 민족이고, 오천 년을 함께한 내 가족 내 친구임을 잊지 말아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 간은 영원한 부모 자식 간입니다. ‘남북은 한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대북정책을 세워 주셨으면 합니다.

4. 최근 이슬람과 미국의 관계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요, 총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 미국에서 가진 조찬기도회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행한 제 연설을 듣고 아랍권 대표들이 저를 초청해 주었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들도 평화롭게 살길 원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전하는 사랑주의에 감동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과거에 이슬람 종교와 국가에 회의를 느꼈는데, 실제로 만나 이야기해 보니 우리와 다른 게 없었습니다. 삶의 방법, 종교의 방법이 다를 뿐이었습니다. 그 방법은 자신이 죽더라도 적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복수에 지쳐 사랑주의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가졌고 함께 일하고픈 사람이라 여겨 주었습니다. 여러 일들로 바빠서 아직 그들의 요청에 응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머지않은 시점에 남은 생을 아랍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2012.10.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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