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pping Cart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세일!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

9,900 11,000

발행일 2008.7.10
상세정보 반양장 296p
ISBN 9788936502584

* 회원구매 시 정가의 5% 포인트 적립.
  3만원 이상 주문 시 배송비 무료
* 해외 주문/배송은 불가합니다.

2008년 제25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목회자료 부문> 우수 도서 수상!
주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일용할 의욕을, 일용할 능력을 주옵소서!

전쟁 같은 세상이다. 당장 폭탄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보다 더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한다. 미얀마의 사이클론 피해, 중국 쓰촨성 사태, 일본에서 발생한 강진, 미국의 한 마을을 모조리 휩쓸어 버린 토네이도. 자연 재해만이 아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 값에 사람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이고 세계 곳곳이 난리에 난리를 거듭하고 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하는 기도가 무색해지고, 의문만이 쌓여 간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모든 일을 허락하시는가.

기도가 멈춰질 때 다시 시작하는 주기도문
1944-45년 패망을 눈앞에 둔 독일, 기도는 사라지고 절규만이 가득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누구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 사태를 허락하시는가.’
그때 독일의 도시 한복판, 폐허가 된 교회 안에서 설교가 시작되었다. 독일의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저명한 설교자인 헬무트 틸리케가 나치의 눈을 피해 가며 전한 ‘주기도문 설교’가 바로 그것이다. 언제 또 공습과 폭격이 시작될지 몰라 불안에 떨며,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잠잘 곳이 절박한 사람들에게 ‘주기도문’은 과연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자신의 생명을 걸고 설교를 전한 헬무트 틸리케와 방공호를 전전긍긍하며 이 설교를 경청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알알이 박히는 주기도문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에게 평화로운 시절 나른한 예배 끝에 주문呪文처럼 외우던 주기도문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헬무트 틸리케가 한 구절 한 구절 풀어 가는 주기도문 속에는 2000년 전 그 기도를 처음 가르쳐 주시던 예수의 뜨거운 심장이 녹아 있으며,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이 그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다. 전쟁으로 훼파된 각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주기도문, 어그러진 무릎을 일으켜 세울 용기가 되는 주기도문. 그래서 다시금 입을 열어 주기도문으로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에게 절실한 ‘일용할 양식과 일용할 의욕과 일용할 능력’을 가득 채우시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제 반세기가 훌쩍 지나 버린 오늘날, 전쟁과도 같은 세상 속에서 좌절하며 기도하기를 멈춰 버린 우리 모두에게도 헬무트 틸리케의 주기도문 설교는 왜 세상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다시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와 지침을 명확하게 짚어 준다. 이 책을 통해 만나는 주기도문은 실로 절망과 시련으로 뒤범벅된 인생길에서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며, 하나님과의 막힌 관계를 시원하게 뚫어 주는 구원의 통로가 될 것이다.

무게 385 g
크기 203 × 143 mm

저자

헬무트 틸리케
신학자이자 철학가. 1908년 12월 4일 독일 부퍼탈-바르멘에서 태어났다. 1932년 에를랑겐 대학교에서 《윤리적인 것과 미학적인 것의 관계》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1934년에는 유명한 신학자 파울 알트하우스(Paul Althaus, 1888-1966)의 지도 아래 《역사와 실존: 신학적 역사신학의 기초》라는 논문으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듬해인 1935년 《계시, 이성, 그리고 실존: 레싱의 종교철학 연구》라는 논문으로 에를랑겐 대학교 교수로 초빙되지만 고백교회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로 나치가 방해공작을 펴는 바람에 교수직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193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가 된다.
고백교회에서 활동하면서 계속해서 나치를 비판했는데, 이를 예의 주시하던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그를 소환하여 여러 차례 심문한 끝에, 1940년 교수직을 박탈하고 설교권마저 금지해 버린다. 그러나 독일 교회에 영향력을 갖고 있던 뷔르템부르크 란트 교회 감독인 테오필 부름(Theophil Wurm, 1868-1953) 목사의 도움으로 라벤스부르크에서 목사직을 맡는다. 1942년에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신학 강의도 했는데, 나치에 반대하는 입장 때문에 자유로이 활동할 수는 없었다.
1944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슈투트가르트는 폐허가 되었으나, 틸리케는 1945년까지 그곳에서 설교와 가르침을 계속하였다. 그때 행했던 주기도문 설교가 스위스에서 익명으로 출간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전선에 있는 병사들과 연합군에게 잡힌 독일군 포로들의 손에 들어갈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읽히며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7년에 튀빙겐 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1951년에는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1954년에는 함부르크 대학교 신학부 설립을 주도하였으며, 그곳에서 교수와 총장을 역임하였고 아울러 함부르크의 성 미카엘리스 교회에서 설교 목사로 섬겼다. 1956년부터 세계 각국의 초청을 받아 여러 대학과 공동체에서 수많은 강연 활동을 했고, 1977년에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개혁파 신학과 윤리학을 접목한 대작인 《신학적 윤리학Theologische Ethik》, 예수님의 비유를 다룬 《하나님의 그림책Das Bilderbuch Gottes》, 인생의 고난을 보시고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상고한 《하나님의 침묵Das Schweigen Gottes》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작을 남겼다. 1986년 3월 5일, 함부르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박규태
고려대학교 법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6년 3월 교회 사역에서 물러난 뒤 번역과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묻혀 있는 신학 고전과 신앙 고전들을 발굴하여 번역,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쉼》(좋은씨앗)이 있고,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홍성사),《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국제제자훈련원),《주 예수 그리스도》(새물결플러스)를 비롯하여 20여 권의 역서가 있다.

차례

머리말 4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 ….1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2 ….37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63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 89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11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133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 …. 157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2 …. 179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 205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 235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265

책속에서

우리가 연약하거나 지치거나 미련하고 둔감한 채로 기도할 때, 예수께서는 그분의 손으로 우리의 연악하고 지쳐 버린 기도의 말을 세워 주십니다. 예수의 이 손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입 속에서 연약하고 지쳐 버린 우리 기도는 올바른 기도가 됩니다. 의심이라는 강력한 세력이 에워싸거나 영혼을 엄습하는 커다란 고독이 우리 입술에 올릴 말을 소멸시켜 버립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철저히 벙어리가 되어 버리지만, 그때에도 예수께서는 신실한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변호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죽어 가는 자의 탄식마저 이해하십니다. 그분은 그 탄식에 아름다운 장신구와 예복을 입혀 주시는 분입니다. 그럼으로써 그 탄신을 지극히 귀한 기도의 반열에 올려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이 기도를 가져다주셨던 바로 그 분이 우리와 더불어 기도하고 계십니다.(58-59쪽)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짧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주기도는 우리에게 널리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한다는 점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에게 오늘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주님은 우리가 미리 저만큼 앞서 생각하고 계산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내일은 내일 염려와 더불어 이미 아버지의 손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내일 일이 바로 이 아버지의 손에서 유래한다는 확신을 우리 자신에게 심어 주는 것뿐입니다.(153-154쪽)

그분의 말씀이 곧 영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 삶의 모든 여정을 통째로 알려 주지 않습니다. 또한 삶의 여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모든 어려움을 통째로 위로해 주지도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발의 등불이요 우리 길의 빛”입니다. 말씀이라는 그 빛은 우리가 지금 걸어가야 할 한 걸음 한 걸음만을 비춰 줍니다. ……우리는 어둠속을 걸어가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분의 손을 잡고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현재와 우리의 오늘만을 맡기면 됩니다. 미래와 세상 마지막 날은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154-155쪽)

나는 기도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수의 교회가 달콤한 삶이나 꿈꾸는 곳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교회가 저 잃어버린 자들에게 깊숙이 몸을 굽혀 그들을 보호해 주는 어머니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교회가 권력을 쥔 자들의 영광을 흘낏흘낏 훔쳐보며 그 영광을 좇아가는 추종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교회가 증오와 복수가 판치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진정 사랑받는 위로의 기념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런 세상을 구원하고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교회는 심판을 설교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 국민에게 커다란 재앙이 임할 것을 전하면서 무서운 시대의 징조를 밝히 알려 주어야만 합니다.(263쪽)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