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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이야기

11,700

임락경
2010.5.28
무선 / 288 pages
9788936508241

카테고리:

품절

“이 밥이 우리에게 먹혀 생명을 살리듯

우리도 세상의 밥이 되어 세상을 살리게 하소서”

내가 먼저 나누고 내가 좀더 손해보는 바보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강원도 화천군 화악산 부근에 한 기와집이 있다. 장애인과 ‘안장애인’이 섞여 살며, 한 살에서 아흔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병신은 많아도 병자는 없는 집’이라는 가훈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곳이 점점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 시골 목회자의 바른 상을 찾는 기자들, 복지시설을 염두에 둔 사람들, 유기농 먹을거리를 사려는 사람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까지…… 각자의 필요와 관심에 의해 시골집을 찾는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공동체도 복지시설도 유기농 교실도 아니다. 이곳엔 예수 신앙 그대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삶이 ‘이야기’가 되고 ‘신앙’이 되는 사람들이다. 잇속 차리는 경쟁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그들, 우리는 그들을 ‘바보’라고 부른다.

이 바보들이 식사를 한다. “이 밥이 우리에게 먹혀 생명을 살리듯 우리도 세상의 밥이 되어 세상을 살리게 하소서.” 기꺼이 세상의 밥이 되고자 하는 이들. 이들과 함께 땀 흘려 농사를 짓고 꿀벌을 치는 한 목사가 있다. 아니 목사라기보다는 촌놈, 농부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 그는 수맥을 짚을 줄 안다. 건강에 대한 지식도 상당하다.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해 책도 여러 권 냈다. 그만의 공부법이 있을까?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만드신 땅과 하늘 등의 만물을 늘 가까이했기 때문이란다.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원리 그대로 모든 것을 대하고 그 원리대로 사는 사람. 그는 늘 세상의 잊혀진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편하지 않다. 아프다. 쓴소리다. 하지만 그 쓴소리야말로 성경 곳곳에서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 아닌가!

어떻게 시골집이 만들어졌는지 그 시작부터 30여 년 동안 그곳에서 장애인들과 더불어 함께 지내온 이야기를 임락경 목사가 들려준다. 월간 <복음과상황>에 연재해 독자들에게 그해 최고의 글이라고 손꼽힐 만큼 걸쭉한 입담이다. 내가 먼저 나누고 내가 좀더 손해보는 이 바보들의 이야기를 가슴 아프게, 그리고 재미나게 들어보자.

크기 153 × 224 mm

저자

임락경

1945년 순창에서 태어났다. 유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7세에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자 동광원에 들어가 결핵환자들과 15년을 지냈다. 1980년부터 강원도 화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장애인 ‘안장애인’이 섞여 사는 집 시골교회(집)에서 유기농 콩을 심어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직접 꿀벌을 친다. 돌파리突破理, 즉 ‘이치를 돌파한 사람’이라 말하는 그는 정농회 회장, 북한강유기농업운동연합 초대회장, 화천군 친환경농업인연합회 초대 회장, 상지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또 감리회제2연수부에서 ‘임락경의 건강교실’을 10년째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시골집 이야기》(홍성사), 《돌파리 잔소리》,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이상 삼인),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들녘), 《흥부처럼 먹어라 그래야 병 안 난다》(농민신문사) 등이 있다.

차례

머리글

1부
훌륭한 사람들이란
외식(外食)하지 말라
지금도 몸종이 있다
‘망할 교회’ 망해 가고 있다
장애가족 벚꽃 나들이
훌륭한 의사도 있다
장애인 시설, 하고 싶어 한 것 아니다

2부
대한예수팔아장사회
유리벽
나들이
왕바보와 또라이
자원봉사자
한맹순 권사님
괴상한 예배
가짜 제주도 여행

3부
시원한 곳 두고 더위를 좇아서
군부대 봉사 활동
억지 예배
마을 안의 시설
봉사 활동 확인서
난 돈 달라고 기도 안 할 거야
같이 살아가고 있다
쌀 달라는 기도는 안하고 싶네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내 거울이자 라이벌들_이애리

 

책속에서

2003년도 일이다. 그해 추석 특집으로 기독교방송에 출연한 일이 있다. 방송 도중 사회자가 내가 속한 교단이 제일 궁금하다고 묻는다. 꼭 밝혀야 하느냐고 했더니 모두가 궁금해 하니 가르쳐 주시라고 한다. 가르쳐 주면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하니 후회는 무슨 후회냐고 한다. 이번에 확실히 알고 적으라고 했다. “내 교단은 ‘대한예수팔아장사회’입니다.” 
이렇게 했으면 방송국에서는 지워 버리고 방송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대로 방송을 해놓고 나에게 전화를 해서 한다는 말이, 목사님들에게 항의 전화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한다. …그러나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실은 나도 대한예수팔아장사회라고 해놓고 예수 팔아 장사는 못 해보고 있음이 미안할 따름이다. 어떤 이는 거룩한 책에 왜 되지도 않는 글을 쓰느냐는 의심도 하겠으나 그것은 망할 교회 목사라서 그러니 탓일랑 말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속된 것이 없으면 거룩한 것도 없다. 
_ p. 63. <‘망할 교회’ 망해 가고 있다>에서 

원석이 병명은 다운증후군으로 몽골리즘이다. 우리말로 하면 바보다. 그러나 바보 소리는 알아듣고 싫어한다. 그래서 교육시켜 부르는 병명이 또라이다. 우리 집에 봉사 와서 몇 개월간 살고 간 이형룡 씨가 있는데, 그 사람이 교육시키고 입력시킨 결과다. 얼마나 입력을 잘 시켜 놓았는지 “임원석” 하면 “또라이”한다. “원석이 바보다” 하면은 “나 바보 아닌데, 또라이인데” 한다. 
또 과가 비슷한 채봉수가 있다. 원석이보다는 한 살 위이지만 그냥 친구다. 채봉수는 한글을 터득했고 곧잘 읽는다. 봉수 바보도 바보 소리는 알아듣고 싫어한다. 그런데 형룡이라는 청년(지금은 장년이지만)이 입력, 교육시킨 것이 왕바보라고 입력시켜 놓았다. 바보는 나쁜 것이고 왕바보는 좋은 말이라고 계속 교육시킨 결과다. “채봉수” 하고 부르면 “왕바보” 하고 대답한다. “임원석” 하면은 큰 소리로 “또라이”하고, “채봉수” 하면 “왕바보” 한다. 이제 두 사람만으로도 우리 집에는 수시로 웃을 일도 생기고 사고도 생기고 재미있고 심각한 일들이 벌어진다.
_ p. 133~134. <왕바보와 또라이>에서 

꼭 복지시설 찾아온 사람들이 집에 도착하면 대표자에게 “잘 가셨느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하는 인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끝까지 고맙다는 인사를 안 하고 3년이 지났다. 3년 후에 같은 선교회에서 안 찾아 올 줄 알았으나 다시 찾아왔다. 나에게 설교를 부탁한다. …
“지난번에 찾아와서 주신 감사헌금, 나는 하나님께 드린 줄 알고 감사히 받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주시면 내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 바친 제물을 내가 받고 감사하다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면 나는 하나님의 벌을 면치 못합니다. 그리고 오늘 오신 성도님들에게 내가 감사하다고 한다면 그 제물이 하늘에 쌓이지 않고 나에게 쌓인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제물이 하늘에 쌓이도록 저는 아끼고 같이 바쳤던 것입니다.”
_ p. 217 <억지예배>에서

추천글

바보 같은 삶의 목소리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 현 김대중도서관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


희랍의 유명한 철인이 대낮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사람들은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그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그런데 그 철인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계속 아테네 시내를 돌아다녔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대낮에 등불을 켜고 사람을 찾는데도 보이지 않아!” 
이 철인이 오늘 우리 사회에 있었더라도 똑같은 말과 행동을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로 점철된 100년의 가난과 억압의 역사를 살았지만 그동안 피나는 노력으로 이제는 어느 정도 가난을 극복하고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가장 소중한 것, 곧 사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야수와 같이 싸우며 경쟁하면서도 사람을 그리워한다. 
임낙경의 시골집은 사람 그리움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샘물과 같다. 임락경은 목사지만 왠지 그를 목사라고 부르면 그의 가식 없는 순수한 촌사람 모습이 가려지는 것 같아 그냥 ‘임락경’ 하고 부르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인간적이면서도 진실한 목사다. 
그의 《시골집 이야기》는 장애인들과 더불어 30년 넘게 살고 있는 바보 같은 삶의 이야기 묶음이다. 언뜻 생각하면 책으로 낼 만한 내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책이 담아내는 삶 속으로 빠져들어가서 웃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된다. 
임락경은 정농회 회장이다. 정농회는 자연을 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농사짓는 농부들의 모임이다. 요즈음의 유기농 농사와는 철학이 다르다. 임락경은 자연농사 짓듯이 장애인들과 자연스레 섞여 산다. 그는 장애인을 대상화해서 장애별로 분류하여 부르는 것을 반대한다. 그래서 굳이 장애인복지로 말하자면 ‘섞어복지’라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참으로 놀라운 깨우침이다. 섞어복지에서 장애인은 복지와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사는 생명의 가족이자 식구가 된다. 
처음 입대한 사병들이 인성교육을 위해 시골집을 방문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사병만이 아니라 목사가 되려는 신학생들, 대기업의 신입사원들이 방문해서 며칠만이라도 같이 지내 보면 참 좋을 것 같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잃어버린 나와 사람을 되찾게 해준다. 또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 깨우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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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던 공동체, 시골집

한 주 희
농부, 춘천사북교회 목사



시골집은 모두의 고향집이다. 태어난 곳이 있으되 고향을 잃고 사는 사람들과 마음 두지 못하고 도처를 기웃거리며 떠도는 영혼들이 헤매어 찾던, 하늘을 품은 터다. 누구라도 때 되면 돌아가고 싶던 그런 동산이기에, 시골집은 아무라도 시시때때로 드나들고 머물며 함께 가족이 되어 공동체로 산다. 제아무리 사연 많고 곡절이 많다 한들 우리는 본래가 하나였으니 어디서 살다 왔느냐, 무엇을 했느냐, 왜 왔느냐, 언제 가려하느냐며 서로에게 일일이 따져 묻는 멋쩍은 어색함이 없다. 하루 이틀 시간의 흐름에 몸 맡겨 지내면서 한갓지게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흐트러졌던 마음을 조율하다 보면 어느새 그대가 형제가 되고 누이가 되고 허물없는 이웃사촌이요 식구가 되어 편안히 고른 숨을 내쉬는 만인의 집이 시골집이다. 또한 누가 누굴 위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눈치를 주거나 일부러 희생하고 애써서 봉사하는, 남들이 알만한 그럴듯한 일을 하지 않으니, 살림살이에 애꿎은 고달픔이나 억지춘향이 없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공동체로 살아온 시골집 삶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모두 담지는 못했다. 공동체의 한 부분만을 담았을 뿐이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여러 기둥 가운데 여러 차례 매체에 드러난 복지단체 또는 교회라는 면만 도드라져 보여 그것이 시골집 모습의 전부로 보일까 저어된다. 물론 시골집은 개신교 교회요, 장애인들과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한 가족이 되어 된장도 만들어 팔고 농사도 지으며 자급 자립하는 복지공동체다. 하지만 교회와 복지시설이라는 말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본래 그 명명한 이름이 지향하는 폭과 깊이를 제대로 이해할 것인가. 대개는 고착된 시각에 갇혀 그러려니 하면서 가벼이 아는 만큼 치부하고 넘겨 짚는 것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시골집 이야기》를 적은 임락경, 그의 삶에서 시골집을 읽어야 제대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는 삶으로써 말을 하는, 아니 말보다 그냥 사람으로서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가려는 도인(道人)이다. 어제와 오늘 하늘의 태양과 별과 달을 바라보며 걸음걸이가 닿았던 만큼, 내일 걸음걸이가 향할 방향에 대하여 그의 삶이 드러난 그때그때 모습이 시골집 이야기에 일부분 적힌 것이다. 
임락경은 무엇보다 어른이요 선생이다. 기록된 책이 다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지혜에서 터득한 제자다. 지혜의 제자는 값없이 조건 없이 받은 대로 나누는 섬김을 살아갈 뿐이다. 사심 없이, 내 것 네 것 구별과 차별 없이 하나인 모두에게 높은 하늘 공경하는 땅처럼 낮은 숨을 쉬며 걸어가니, 그를 길에서 벗 삼으려는 이들이 따르는 선생이 되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낮게 걸어가며 하늘을 떠받치니 당연히 임락경은 촌놈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부끄러워 않고 낮은 게 서러워 쓸데없는 자존심 부리지 않는 자, 촌놈이다. 평생을 흙 속에서 하늘 씨앗을 결실하는 천상(天上) 촌놈이다. 이런 촌놈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의 토착화신학자요 목회자라 불러야 하리라. 햇빛과 바람과 물과 불이 세상을 어루만지고 보듬고 다듬어 만물을 이루듯 세상사 갖가지 일에 도통(道通)한 돌파리(突破理)로서 좁은 길을 흔쾌히 걷는 풍류도인이니 말이다. 임락경을 제대로 만나야 시골집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독자들은 시골집에서 세상을 밝힐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임락경 삶의 한 자락만을 풀어 놓은 것임도 알게 되리라. 그래서 그 전부를 알고자 하는 궁금함이 시골집 대문을 넘게 할 것이고, 거기서 검게 그을린 얼굴에 표정 없는 웃음을 머금고 땀 흘리는 허름한 촌로를 만나서 촌놈을 찾을 것이다. 촌놈을 찾아 시골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목에 걸린 숨을 몰아쉴 즈음에야 그대는 제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촌놈을 다시 만나리라. 그리고 그 만남이 하늘의 은총임을 알고 환하게 웃음 짓는 그대에게 투박한 촌놈은 물 한 모금 떠 줄 것이다. 천상 농부의 거친 손이 물을 길어 그대의 목마름을 가시게 할 것이다. 그대가 찾던 그곳, 여기가 거기다. 



저자 인터뷰

시골집(교회)

신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부모와 고향을 그리워하고 찾기 마련이다. 고향(옛 故 시골 鄕)은 시골이다. 시골집은 옛 시골의 정을 살려 한없이 주려는 시골스러운 집이다. 한 살에서 아흔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병신은 많아도 병자는 없는 집’이라는 가훈으로 장애인과 ‘안장애인’ 들이 함께 살아가는 집이다.
새로 오는 식구의 종교를 따지지 않는다. 일어나는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도 정하지 않았고 규정된 어떤 규칙도 없다. 정한다 하더라도 불편한 몸과 마음의 병으로 어쩔 수없이 어기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집안에 강당이나 예배당, 식당도 따로 없다. 누워서 밥 받아먹는 곳이 식당이고, 기도가 시작되면 그곳이 예배당이다. 한 마을에 두 개의 십자가가 있을 수 없어 십자가와 간판도 없다. 또 따로 설교자도 없다. 온 식구들이 한 사람씩 한 주를 책임지고 예배를 인도한다. 소속 교단도 없다. ·‘대한예수팔아장사회’ 소속이란다. 
여긴, 약이 되는 좋은 음식들을 만들어 먹는다. 메주, 간장, 된장으로 사업자 등록증과 식품 제조허가증까지 받았다. 앞으로 시골집 엿, 시골집 두부, 시골집 빵도 나올 예정이다. 
잇속 차리는 삶에 지친 어느 날, 정직한 땀을 흘리고 고향의 쉼을 누리고 싶거든 강원도 화천군 화악산 부근의 한 기와집을 방문하시기를… 이곳에서 무엇이 원칙이고 무엇이 정상인지 ‘엇갈리고 헛갈리고 헷갈려’ 누가 정신병자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천진난만한 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씨앗을 뿌리고 농사를 지으며 새 생명을 일구는 농부처럼 이 그릇된 세상을 부지런히 쟁기질하는 그들을 가슴 깊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리 195
033-441-4298

임락경 목사 인터뷰

1. 시골집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처음에는 시골집이 아니고 시골교회였습니다. 시골교회도 아니고 교회 이름을 ‘망할교회’라고 정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망해야 됩니다. 망해도 빨리 망해야지요. 장애인들끼리 모여 살면서 세운 교회라서 그렇습니다. 장애인들이 가족과 같이 살거나 아니면 장애인들이 없는 사회가 와야 하기에 망할교회라 이름 지었어요. 노회에 등록하려니 노회 서기 목사가 버럭 화를 내시더군요. 지금처럼 내가 늙은 목사 위치에 있었으면 기어이 등록 했으련만 그때는 하위급 목사라서 못했습니다. 
고향에서 살 수 없는 장애인들이라 시골 향(鄕) 자를 써서 시골교회라 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시설 설립 인가를 내려니 장애인 시설 ‘시골집’이 되었지요. 그 다음 된장 간장 공장 허가 신청을 하려니 상표가 있어야 되기에 시골집 된장, 시골집 간장, 시골집 메주가 되었지요. 또 있어요. 시골집 벌꿀, 시골집 옥수수, 시골집 콩 등등이지요. 지금은 ‘망할교회’ 이름 그대로 망해가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집으로 가기도 하고, 다른 시설로 가기도 하고, 조금만 더 망하면 될 것 같습니다. 

2. 목사보다는 촌놈 혹은 농부라는 이름으로 더 불리네요? 
▶지금까지는 내 명함에 <촌놈 임락경> 이라고만 썼어요. 그것도 옛날에 청타라는 타자기로 치다 보니 ‘놈’자가 없더군요. 더 찾아보니 한정된 타자기라서 다른 말도 없어요. 하는 수 없어 ‘촌늠’ 임락경이라고 복사해서 가위로 오려가지고 다녔어요. 늠이란 놈과 님의 사잇 발음이니까요. 
촌놈 자격 따기 어려워요. 지게 질 줄 알아야 하고 새끼 꼴 줄 알고 멍석 만들 줄 알고 용마루 틀 줄 알아야 하고 쟁기질 할 수 있어야 하고, 농사 짓는 데 농사일지 쓰지 않고 외워서 파종 수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기농업 친환경 농업이라지만 부모님, 형님 농사 지으신 것 보고 배웠기에 나는 재래식 농법이지요. 그냥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농법 그대로 평생 농사짓고 살았어요. 정부에서 친환경 농법 하다 보니 정농회가 1976년에 창립되었습니다. 정농회장 직을 맡게 되니 일이 많았습니다. 
농사 지어 부자 될 수 있을까요?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농사를 택한 것은 고기는 안 먹어도 죽지 않으나 곡식은 안 먹으면 굶어 죽어요. 실은 하나님께서도 고기에 젓가락이 먼저 가셨고, 그 다음 밥 숫가락 드시려고 하셨는데 가인이 성질 급해서 아벨을 죽인 것뿐입니다. 아무튼 농사지어 부자는 안 될 것 같아 틈틈이 건축 일을 했어요. 집을 짓다 보니 내 집은 당연히 손수 짓게 되었고, 강원도는 돌이 많아 돌집을 짓게 되었어요. 돌 잘 쌓으니 나더러 ‘돌목사’라고 합니다. 그다음 지하수 찾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어요. 처음 목사가 물 찾는다, 집 터본다 하다 보니 산소 자리도 부탁하더군요. 산소는 물 나는 곳에 쓰면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요. 40년 전부터 그러고 다니니 핍박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각 신학교 다 가서 강의해 보았고 방송국에서도 강의를 해서 그런지 핍박 받지는 않습니다. 

3. 신앙이란 뭘까요? 목사님의 글을 읽다 보면 성경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우리를 돌아보게 되어 부끄럽습니다.
▶ 구약을 종합하면 10계명이 되고, 그 가운데 세 계명은 하나님 사랑, 여섯 계명은 이웃사랑이지만 예수께서 하나로,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약했지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도 사랑할 수 있어야지요. 성경 다 몰라도 신학연구 안 해도 서로 사랑하면 되는 것이지요. 나는 그렇게 못하고 있어요.

4. 공동체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주실 말씀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공동체 안 됩니다. 유럽이나 선진국처럼 정부에서 복지정책이 잘된 곳에서나 아무것도 없는 후진국에서는 가능합니다. 정부에서 병원비 학비 노후생활비를 책임져 준 국가에서는 공동체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에서 아주 어려운 사람들의 병원비와 학비와 노후 생활과 기초 생활을 어느 정도 맡아주니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공동체를 하려면 가난하게 살려는 생각만 있으면 가능하지요. 그래도 개개인이 따로따로 사는 것보다는 공동체가 더 좋지요. 
한국 교회 이대로 가면 미국처럼 건물 비어 있을 때가 옵니다. 유럽 가보아도 성당 모두 비어 있습니다. 유럽은 건물이 잘 지어져서 관광 수입이라도 있지만 한국 교회 건물 보러 모여들 사람들 없습니다. 교회마다 생각 다시 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가족 위주의 기독교입니다. 국가나 사회나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5.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은 계획해서 했던 것이 아니지요. 하기 싫을 때가 더 많았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특별한 사명도 없었어요. 더욱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도 없었고요. 살다보면 화도 나고 밉기도 했습니다. 미움은 오래가지 않고 화나는 것은 참아 와서 성질나는데 참는 것은 이력이 났어요. 지금까지 뭐 설립 목적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살아왔습니다. 다만 농사는 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어릴 적부터 변함이 없습니다. 다행인 것이, 나보다 젊은이들이 농사를 잘 짓습니다. 농장은 든든합니다. 지금까지 계획도, 사명감도 없이 억지로 마지못해 살아온 터인데 앞으로 계획은 더욱 없습니다. 하던 일 중에 농사만 지을 수 있는 고등과정 농업학교를 시작했습니다. 2011년에 신입생 20명 정도 모집하렵니다. 장소는 정읍이지요. 지금은 일을 접어야 할 때입니다. 감리교연수원에서 하는 ‘건강교실’은 유지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