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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으로 고백하는 하나님 사랑

9,720 10,800

조성욱
2008.4.30

무선 / 272 Pages
9788936507817

카테고리:

품절

고난 중에 함께하신 하나님 고백
저자 조성욱은 누군가 말한 유학의 조건 세 가지―머리가 좋거나, 돈이 많거나, 건강하거나―중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고 이스라엘로 유학을 떠났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고 허약했으며 너무 가난하여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히브리대학 첫 수업 시간에 알아들은 히브리어는 샬롬과 예루살렘, 두 단어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여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성경학 박사가 되어 돌아왔다. 공부에 대한 엄청난 좌절, 외로움과 소외감, 경제적 곤궁 등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알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시편을 묵상하면서 그 모든 과정에 함께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찬양한 내용을 실었다.

시편으로 날마다 큐티하기
김양재 목사가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라면 조성욱 목사는 ‘히브리어로 큐티하는 남자’다. 《시편으로 고백하는 하나님 사랑》은 그가 3년 동안 히브리어 성경 원문을 묵상한 내용 중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하여 ‘복 있는 사람’으로 끝나는, 시편 1-41편까지를 묶어 낸 책이다. 성경학 박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다.

히브리적 사고로 시편 읽기
저자의 감성적인 인생 고백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독자는 이따금 나오는 히브리어를 거리감 없이 대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히브리어에는 우리의 사고로 이해하기 어려운 히브리적 사고가 녹아 있다. 따라서 원어 감각으로 시편을 연구하는 책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각 장 마지막에는 마음에 새길 만한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을 우리말 발음과 함께 넣었으므로 히브리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이 암기하기에 좋다.

무게 354 g

저자

조성욱
숭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M.Div.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성경학Ph.D.을 공부했다. 1988년 목사고시에 합격했으나 더 연구하고 훈련받기 위해 안수를 미루고 이스라엘로 유학을 떠나 히브리대학에서 10년 반, 영국에서 7년간 성경 연구와 목회를 하다가 200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현재 충신교회 부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신대원 강사, 이사야중동문제 연구소 소장이다.
히브리대학 박사 논문 <The Cultic Image of Seraph and Nehushtan in the Bible in light of Ancient Near Eastern World> 외에 《이사야와 차 한잔을》(성서학연구소)을 저술했다

차례

책속에서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비트후 엘 아도나이, 시 4:5).
이스라엘에 있을 때 ‘절대 재기하지 못할 거야’라며 나의 처지를 비웃던 소리가 있었습니다. 경제적 곤궁, 외로움, 첩첩산중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시련의 계곡들, 도저히 받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박사학위! 어려울 때마다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하염없이 광야에 계셨던 예수님을 회상하며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니 주님은 외로웠던 나와 함께하셨습니다. 멋진 승리의 손을 들어 주셨고 머리를 다시 들게 해 주셨습니다. (22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아마라이, 시 5:1).
고등학교 시절
보충수업을 마치고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밤늦은 시각 아무도 없는 교회 안이었지만
무서움을 이겨 내며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기도를 계속하던 어느 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곁에서 제 이름을 부르시던 주님 때문에
소아마비에서 자유케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23면)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에르함카 아도나이 히즈키, 시 18:1).
시편 18편 1절에서는 어머니의 자궁(레헴)의 사랑을 뜻하는 라함(에르함카)을 사용합니다. 마치 어머니가 태아를 자궁에 품고 사랑하듯이 하나님께 그러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고백은 구원을 체험했을 때뿐 아니라 주님을 향해 철이 들어 가면서 드릴 수 있는 고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1면)

하나님을 신뢰하였나이다(바아도나이 바타흐티, 시 26:1).
이스라엘에서 딸 하나와 함께 살던 작은 아파트에 중국 동북 산성 출신 동포 여섯 명이 찾아온 일이 있습니다. (중략) 나는 보따리를 들고 불쑥 찾아 들어온 형제들을 보내신 주님을 잠깐이나마 원망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지쳐 사는 홀아비와 어린 딸의 작은 보금자리에 한 명도 아니고 여섯 명이나 되는 장정을 보내시다니 좀 너무하십니다. 잘 정돈되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으로 보내시지 그러셨어요.” 곧이어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짐을 보내겠니? 천사를 보내지.” (75면)

여호와, 주님께서 나의 빛을 발하게 하실 것입니다(아타 타이르 네리 아도나이, 시 8:28).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마치 골동품처럼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어둠 속에 묻혀 있어도, 주님은 찾아내어 보혈로 씻고 성령의 기름을 붓고 믿음의 심지를 넣고 말씀의 불을 붙여 타오르게 하실 분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숨어 기다릴 수 있습니다. (77면)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실 것이다(야안카 아도나이 베욤 짜라, 시 20:1).
야곱의 ‘하나님’이 너를 높여 주신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여 주신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름을 안다는 것은 누구를 잘 안다는 말입니다. 모세도 소명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담보로 요구합니다. 그 요구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가 주님을 안다는 것은 막연한 신의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고 야곱의 하나님, 즉 구체적인 나의 하나님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체험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질문해 올 때 내가 만난 하나님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91-9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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