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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

9,900 11,000

저자 송인규
발행일 2009.4.17
상세정보 무선 312p
ISBN 9788936502669

품절

교회생활을 오래할수록
더욱 고민되는 12가지 주제

-복에서 상급까지 성경․신학적으로 짚어 준다!
“예수 잘 믿으면 물질적 복은 거저 온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므로 집을 팔아서라도 지어야 한다?”
“목사는 제사장이므로 성도는 절대 복종해야 한다?”
“십일조는 성경이 정한 법이니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 어려움이 따른다?”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새신자를 비롯해 아직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 혹은 이성적 질문 없이 믿기만 하는 신자들은 별 의심 없이 “아멘” 하겠지만, 본인이 믿는 바가 정말 성경적인지 질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석연치 않은 주장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느냐고,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느냐고 물을 만한 마땅한 대상이 없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거나, 심지어 두 가지가 상반된 것이라고 생각하여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자신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거나 틀리게 알거나,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어떤 주제에 관해 내용을 꼼꼼히 기술하고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신앙적 앎을 추구하는 작업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에 꼭 필요한 것이다.
신학자로서 평신도를 위한 대중적 글쓰기를 꾸준히 해 온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송인규 교수는 이번에 펴낸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에서 ‘아는 것’과 ‘믿는 것’의 관계를 규명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논란이 되거나 오해와 편견을 틈타 혼란을 끼치는 신앙적 주제 12가지―복, 성전, 제사장, 십일조, 안수, 영성, 거짓말, 고난, 선행, 예정, 심판, 상급―를 선별하여 성경․신학적으로 명료하게 짚어 준다.
전체 3부 가운데 1부에서 다루는 네 가지 주제, 즉 복, 성전, 제사장, 십일조는 ‘구속사적 발전’이라는 신학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있는데, 이를 읽고 나면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을 새로이 깨달아 현재 교회 안에서 그릇되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주제들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알 수 있다.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은 ‘송인규 교수의 신앙카페’ 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첫 권은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이다) 저자와 출판사가 협의하여 2007년 5월부터 2008년 7월까지 <복음과상황>에 12회에 걸쳐 “쉽지 않은 주제, 풀어야 할 숙제 12가지”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뒤 여러 차례 수정 보완하여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이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무게 437 g
크기 223 × 152 mm

저자

송인규
1949년생으로 건국대 축산과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대원, 미국 칼빈 신학교, 씨라큐즈 대학교에서 신학, 변증학, 분석철학을 공부했다(Ph.D.). IVF(한국기독학생회) 총무를 지낸 바 있으며, 복음주의 문서운동의 요람이 된 IVP와, 기독의대생과 의사들의 모임인 CMF(한국누가회)의 기초를 놓았다. 복음주의권을 대표하는 전문 저술가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차례

1부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01 복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호의
02 성전 성령께서 거하시는 공동체
03 제사장 참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04 십일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2부 모호함에서 명확함으로
05 안수 친교를 위한 특별한 교제
06 영성 그리스도인이 견지하는 ‘신령한 상태’
07 거짓말 악의적 거짓말, 희생적 거짓말
08 고난 영적 유익을 주는 의로운 고난
09 선행 공의를 행하고 긍휼을 사랑함

3부 창세 전부터 영원 후까지
10 예정 구원을 베푸시려는 선택
11 심판 구원받은 이들을 위한 응징
12 상급 땅에서 행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책속에서

기복 신앙은 생각보다 훨씬 깊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침투해 있다. 이러한 신앙 경향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그 폐해는 우리 각 개인과 공동체에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삼위 하나님께서 그리도 중요시하시는 구원의 복,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주시고자 했던 복을 값싸게 여기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게 된다. 구원의 복을 등한시하면 이와 긴밀히 연관된 다른 신앙적 면모들 또한 우리 신앙생활에서 현저히 약화되고 급기야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구원의 복을 마다하면 곧 이어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항목들―주로 경제적 번영, 세상에서의 성공, 사업의 번창, 안락한 삶 등의 물질적 은택―을 복의 핵심으로 여기게 된다. 물론 이러한 물질적 은택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선물임에는 틀림없다(약 1:17 참조). 하지만 이것들은 복의 핵심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결코 이런 것에 마음 뺏기기를 원치 않으신다. 이처럼 물질적 은택을 복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지속적으로 그런 신앙의 패턴에 노출될 때, 우리는 탐심의 노예가 되며 이 세상 신이 군림하는 신전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자기 왕국 건설에 분주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하기에 바쁠 것이다. (40~41쪽)

나는 오늘날 유행하는 성전 신앙을 비판함으로써 교회당의 필요성을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교회당의 종교 심리적 요인을 긍정적으로―아니면 최소한 중립적으로―취급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 심리적 요인이 더욱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이 되려면 그리스도인 사이에 참된 의미의 성전 신앙이 강조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전 건축’은 본질상 그리스도인 각 개인의 신앙을 강화해 주는 일―‘덕 세움’(롬 14:19; 고전 8:1; 10:23; 14:3; 엡 4:29)―이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고전 14:4-5)과 연관해 사용해야 할 것이다. ‘덕을 세우다’라는 말은 흔히 생각하듯 개인의 체면이나 위신을 높여 준다는 뜻이 아니다. 이 단어의 명사형은 오이코도메(oijkodomhv)로, 집이나 권속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와 짓는다(to build)라는 의미의 데모(devmw)에서 유래한 단어다. 다시 말하면, 집이나 어떤 영적 건물을 세운다는 것이 ‘덕을 세움’의 원래 의미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개인을 세우는 일, 곧 개인의 신앙을 강화해 주는 일이 성전 건축이다. (61~62쪽)

지금까지의 내용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통점은 두 계층 모두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신분을 보유하고 있고, 제사·축복·중보 기도의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목회자에게는 말씀을 가르치는 기능과 신앙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기능이 있는 반면, 평신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목회자는 자신이 구약 시대의 제사장처럼 일반 그리스도인과 신분조차 다른 것처럼 잘못 생각하여 거들먹거려서는 안 된다. 또 자신만이 제사·축복·중보 기도를 할 수 있는 양 오해해서도 안 된다. 단지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신앙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면에서는 경험을 쌓고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여 일반 그리스도인과 차별되어야 하고, 이로써 다른 일반 그리스도인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85~86쪽)

20세기 후반 한국 교회의 성장과 발전이 교우들의 헌금 생활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과 그 헌금 명목 가운데 십일조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십일조에 대한 이러한 열심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이렇게 비관적 태도를 표명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과거 십일조의 헌납과 관련하여 강조된 캐치프레이즈, 즉 “십일조를 하면 복 받는다”는 것이 교우들에게 더 이상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십일조를 장려하기 위해 사용된 방식들, 예를 들어 주보에 헌금자 명단을 싣는다든지 예배 때 공개한다든지 하는 일이 전에 비해 점차 구속력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십일조의 성경적 근거에 대한 의문이나 도전이 공공연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십일조가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규례냐 하는 점에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87~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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