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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질투

7,200 8,000

발행일  2006.3.29
상세정보  무선 / 204page
ISBN  9788936507169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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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감각으로 읽는 선지자 엘리사 이야기

구약의 수수께끼 같은 선지자 엘리사의 삶과 고민을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의 감각으로 추리하여 풀어 가는 장편소설. 종교를 다루었지만 일방적인 기독교 예찬이 아니라 신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신에게 반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엘리사는 젊어서부터 대선지자가 되고자 힘써 공부하며 여호와의 부름을 기다린다. 그러나 엘리야라는 인물이 대선지자로 지명되었음을 듣고 실망과 질투에 사로잡힌다. 엘리사는, 자기를 제치고 신의 부름을 받은 엘리야와 겨루기 위해 순례의 길을 떠나는데, 막상 엘리야를 만나 보니 그는 전혀 강인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겁쟁이에 가까웠다. 이런 엘리야를 보면서 엘리사는 나약한 그를 대선지자로 택한 하나님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게 된다. 겁쟁이 엘리야는 구차한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광야로 도망을 가는데 이러한 모습은 바로 우리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한다. 절대자와의 관계가 없으면 한없이 초라하고 나약해지는 게 인간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인생 광야’를 경험하게 되는데 신앙은 인생 광야를 통과하는 힘이 된다. 또한 인생 광야에서의 고난을 통해 강인해지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도 하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 다시 영성을 회복한 엘리야는 많은 기적을 행하고 엘리사를 후계자로 임명한 후 하늘로 오른다. 죽음의 고통을 맛보지 않고 하늘에 오르는 엘리야를 붙잡고 마지막 소원을 말하면서까지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에 대한 시기심으로 말미암아 슬픔에 빠진 인류의 구원보다는 스승보다 두 배나 많은 영감을 구한다. 엘리사의 소원이 이뤄지긴 하지만 이것이 바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라는 게 인간에 대한 작가의 진단이다. 그래서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보다 갑절의 능력이 있음에도 끝내 죽음을 맛볼 수밖에 없는 범인(凡人)인 것이다. 스승 엘리야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스승이여, 당신이 가진 영감(靈感)의 갑절을 내게 주소서.” 하지만 그때 ‘눈물’이라고 대답했어야 옳았나? 꼭 그래야 했을까? – 프롤로그에서

무게 239 g
크기 128 × 188 mm

저자

이연철
“입버릇처럼 ‘글은 마흔 넘어서 써야 제맛’이라고 했는데 
마흔 넘어서도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뱅뱅 돌았다. 
좋은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피우지도 못하고 이대로 마는가 했을 때, 내게 찾아오신 주님.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기도했고, 써질 때까지 기다렸다. 
쓰다가 지우기를 여러 번, 꼬박 5년 걸렸다. 
소설을 다 쓰고 난 지금 
이제 기독 작가로서 첫발을 성큼 내딛는다는 기쁨 하나만큼은 충만하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는 믿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 1955년 충북 충주 출생. 1979년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그리운 꿈’ 당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주요 저서로 단편집 《투모로우》, 《안녕 지하철》, 장편소설 《배교일기》, 《2002월드컵 유치 비화》 등이 있다.

차례

프롤로그 1. 순례 / 2. 만남 / 3. 결투 / 4. 도망자 / 5. 광야 / 6. 후계자 에필로그 저자 후기

서평

*갓피플
[박주헌] 이 시대를 향한 외침 

-기독교 소설이라는 것을 거의 보지 않았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나 목사님 설교가 아주 신선해졌어요 
또는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만든 소설을 읽은 적이 있지만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가지고 소설을 읽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무래도 이런 소설을 읽지 않은데에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나에게 
무오한 성경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입히고 
허구의 틀로 채색한다는 것에 대한 마음의 거리낌이 그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첨가시켜 만든 기독교 소설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신선함이었다.
무엇보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지만 
더 기발한 것은 내가 성경을 보는 시각과는 다른 시각을 접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엘리야를 가깝게 지켜본 엘리사의 마음을 담은 소설이다.
다시말해 엘리사는 자신의 모든면이 엘리야보다 낫다고 생각을 하는 구도자라고 생각을 한다.
도대체 엘리야라는 사람이 어떤사람이길래 하나님이 쓰시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수소문하면서 엘리야를 찾아나서고 가장 가까이에서 엘리야를 지켜본다.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첫대면은 
사실 소설에서는 이미 그 두명은 오랜기간 같이하고 있었다는 기발한 작가의 상상력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엘리야의 사람됨, 연약함, 그리고 자기비움을 알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는 왜 하나님께서 능력없는 엘리야를 쓰시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능력이 아니라 자기비움이라는 사실이다.

비를 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7번째에서야 기도의 응답이 온 이유가 
하나님께 불을 내려달라고 해서 내려줄 때 생긴 자기를 돋보이고자 한 엘리야의 교만함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은 철저한 자기비움을 가진 자를 통해서 쓰신다는 것을 말한다.
즉, 불을 내리고 비를 뿌리게 한 엘리야의 자신감이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못듣게 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누구나 다 볼수 있는 큰 구름이 표적이 아니라
손바닥만한 구름을 표적으로 볼수 있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한국적인 정서와 현대적인 감각을 가득채웠다.
티비와 모텔, 버스와 청국장 등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현실적인 요소가 가득 하다.
그리고 구약에서의 사건을 그저 옛날이야기로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현실속에 나타나는 이야기임을 말하고자 이런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바알과 아세라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향한 엘리야의 외침은
지금 우리 마음으로 생각하는 풍요와 무엇이 다른가?
혹시 우리도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번 본문을 보자.
‘그래 너희가 원하는 풍요가 무엇이냐? 
부모 유산받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것이냐?
나이 쉰이 되도록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고, 
회삿돈으로 저녁먹고 술마시고 룸살롱에 가서 젊은 아가씨 허벅지 주무르는 일이냐? 
틈나는대로 여기저기 따라붙어 골프장에 나가는 거냐? 
옳도다! 자식을 팔 할국에 넣고 비싼 과외 시켜 좋은 대학, 돈 잘버는 학과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냐? 
아이의 내신 성적을 위해서 선생님에게 상품권 몇장 보내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냐? 
저녁마다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 누가 무슨옷을 입고 나왔나 
누가 성형수술을 했고 보톡스를 맞았나 눈여겨보는 것이냐? 
쿠션 좋은 침대에서 비아그라 힘을 빌려서라도 서로의 살갗을 즐기고 아 그래!
가끔 배고픈이웃을 위해 성금을 눈곱만큼 내고 
그러다 외국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그새 아파트 깞이 또 올랐다며 랍스터를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흐흐 웃는 것, 이게 너희의 풍요냐? 
실토하라! 너희가 원하는 풍요가 이것이더냐? 
이것이 언희가 생각하는 행복이냐? 가증하다’

사월초파일을 앞두고 기독교의 진보단체들이 
불교계에게 화합의 제스추어를 취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카톨릭의 새로운 추기경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지금도 끊임없는 분쟁, 증오와 대립, 다양한 종류의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면서 “따라서 우리에게 무한한 선의와 자비심을 베푸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더욱 더 필요하다” 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분명 엘리야는 바알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악하다고 하면서 
갈멜산에서 목숨을 걸고 그들과 대결하는데
지금 우리 세대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분명하게 기독교의 진리와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하나님의 눈에서’라는 시각을 자꾸 인간의 시선에만 좋게 비춰지기를 원하고,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탐욕으로 가득채우고 있다.

분명 이 시대는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악한 시대임에도 
화합과 하나됨만을 강조하며 
‘회개하라’고 외치는 선지자는 없게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운 세대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엘리야의 외침’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 인터뷰

[저자 인터뷰] 저자의 말 
“입버릇처럼 ‘글은 마흔 넘어서 써야 제맛’이라고 했는데 마흔 넘어서도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뱅뱅 돌았다. 좋은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피우지도 못하고 이대로 마는가 했을 때, 내게 찾아오신 주님.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기도했고, 써질 때까지 기다렸다. 쓰다가 지우기를 여러 번, 꼬박 5년 걸렸다. 소설을 다 쓰고 난 지금, 이제 기독 작가로서 첫발을 성큼 내딛는다는 기쁨 하나만은 충만하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는 믿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이 소설을 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 예수를 믿다 보니까, 아 이분 얘기를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책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했어요. 경건 서적이나 우리나라 종교 소설을 많이 봤지만―기존 작가들에게 죄송하지만―그들만의, 우리 기독교인만의 소설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반인들도 같이 접할 수 있는 주제를 잡아 보기로 했는데, 엘리야와 엘리사라는 인물이 하도 마음에 들어서 하나하나 구성해서 쓰다 보니 5년이 걸렸습니다. 

○구약 시대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의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느닷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이 나오는 등 시공을 초월하는 색다른 점이 눈에 띄는데, 이렇게 구성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 우리는 하나님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렇다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거죠. 우리가 성경에 있는 아브라함, 야곱 등의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현재 우리와 같이 호흡하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가 옛날 얘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들이 과연 이 시대에 뭘 얘기하는가? 그래서 저는 이 시대 얘기를 같이 할 수밖에 없었어요. 

○스승 엘리야를 존경하고 신뢰해야 할 엘리사가 남몰래 스승을 질투하고 있었을 거라는 설정은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요? 
– 누구나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일단 존경보다는 질투하게 되어 있어요. 더군다나 이 엘리사는 제가 성경을 참고하여 설정한 바에 따르면 굉장한 엘리트고, 엘리야는 두루뭉술하고 바보스럽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약한 면이 많죠. 엘리사가 자기보다 시원찮아 보이는 사람을 존경할 이유가 없죠. 그런데도 그는 왜 하늘로 올라가고 나는 죽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죠. 하나님한테 따져 봐야죠, 그럼. 질투가 나는 거죠. 

○개인적으로 엘리사와 엘리야라는 인물을 평가한다면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개인적으로는 엘리야가 확실히 더 멋있어요. 바보스럽고, 인간적인 면에서 강함도 약함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본다는 의미에서 그래요. 엘리야를 털북숭이고 살이 쪘다고 표현했는데, 정말 그랬을 것 같아요. 엘리사는 아주 샤프 했을 거예요. 약간 대머리에다 눈빛이 날카로웠을 거예요. 세상 살아가는 데 어느 쪽이 더 좋을지는 모르겠어요. 

○이 소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요? 
–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고, 사랑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개념이지만 요새 너무 흔한 표현인 것 같고, 그걸 다른 말로 표현하기 위해 긍휼이라고 했어요. 이 세상을 긍휼의 눈으로 보고 사랑의 포근함으로 봐라.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눈물입니다. 이 세대가 사실 눈물이 전혀 없는 세대는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 눈물이 때로는 너무 값없이 쏟아지고 있어요. 제대로 흘릴 줄을 몰라요. 저는 눈물을 흘린다는 것도 큰 은혜라고 봐요.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 같이 사랑이 편만하게 죽 강같이 흘러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제 메시지입니다. 

○선생님에게 하나님, 신은 어떤 존재인지요? 
– 하나님을 광대무변하시고 어디든지 계시고 빛이시고 사랑이시고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데 저는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 제일 정답다고 봐요. 왜냐하면 내가 어려웠을 때 내 손을 꼭 잡고 같이 가 주시고, 내가 좋은 일 할 때나 특히 나쁜 일 할 때도 그것을 용납해 주는 건 아니겠지만 이해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그런 하나님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사랑스럽고 그렇습니다. 

[저자 후기]
“구약 시대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 

성경에 보면 인간으로서 죽지 않고 하늘나라에 올라간 사람은 세 사람이 있다. 에녹과 엘리야 그리고 예수가 바로 그들이다. 에녹은 자세한 기록 없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라고 되어 있으나 그는 첫 인간인 아담의 손자요,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죽지 않을 이유가 있는 듯하다. 예수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죽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올라갔을까? 
엘리야의 행적을 묵상하다가 흥미로운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그의 제자 엘리사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구약 시대에 나타난 많은 선지자 가운데 특히 유명한 인물이다. 
엘리사는 영성에서나 기적을 행하는 데 있어서 스승 엘리야보다 두 배나 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엘리야와 달리 결국 이 땅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죽지 않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은 어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 묵상이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이천 년 전에 쓰인 성경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읽는 것은 성경 말씀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役事)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천 년 전 구약 시대의 인물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당시 그들이 세상을 향해 던졌던 메시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구약 시대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다. 이것을 상징으로 보여 주기 위해 구약 시대에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버스가 다니도록 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종교 소설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있는 것도 일방적인 하나님 찬양인 경우가 많아서 ‘그들끼리만’의 소설이 되고 말았다. 이 책에는 가급적 전문적인 종교 용어를 줄이고 성경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소설을 통해 믿는 사람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도 영성(靈性)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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