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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마흔아홉

11,700 13,000

저자  장해주
발행일  2014.6.10
상세정보  무선 / 384page / 128×288(mm) / 381g
ISBN  9788936510299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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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아홉,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 * *

인생의 ‘오후 네 시’에 떠나온 무모한 여행
평생을 사모로 살아온 마흔아홉 살 여자의 일탈
그녀의 진(眞)한 ‘자아 찾기’가 시작된다!

□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다
어느 날부터인가 예전의 나와 다른 나는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솟고 지금까지 대체 누굴 위해 산 것인지, 제대로 살기나 한 것인지 혼란스럽다. 성장기에 겪는 사춘기처럼 나이 들며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기엔 중년에 겪는 방황은 저마다 다르고 그 후폭풍의 편차도 크다. 딸, 동생, 언니, 아내, 사모, 엄마 등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저자 역시 중년에 들어서자 불쑥 끼어든 불청객의 방문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고립감, 사춘기 여학생 마음 같은 혼란스러움을 어쩌지 못하고 방황하던 중,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잃어버린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인지 몰라. 정말 원하던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인지도 몰라.’ 나보다 우선이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어도 이내 가족 등 그간의 우선순위에 대한 걱정이 몰려드는 이곳이 아닌, 지구 저편 어딘가로 떠나기로 한다. 내가 누구인지 찾아보기 위해, 내 안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 위해.

□ 프라하부터 프랑크푸르트까지
행선지는 동유럽. 이전의 해외여행과는 조금은 다른 여정이다. 원인 모를 무력감과 허무함의 원인을 찾기 위한, 눈보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선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체코 프라하부터 폴란드 오시비엥침과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헝가리 부다페스트,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슬로베이나 블레드, 오스트리아 비엔나, 잘츠부르크, 잘츠카머구트, 장크트 길겐 다시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 독일 퓌센, 로텐부르크, 프랑크푸르트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쉬이 접하기 힘든 다채로운 풍광은, 피로하던 눈에 신선한 자극을 주며 여정을 함께하는 독자들에게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하루에도 수차례 기분이 달라지는 이 마흔아홉의 여성은 비슷한 듯 서로 조금씩 다른 동유럽 나라들을 돌아보면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 다시 나로 돌아오다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에서도 갈등은 일었고 크고 작은 사건도 연일 이어졌지만, 일상에 치이며 다른 이를 먼저 챙기느라 외면해 왔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며 화를 내기보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잃어버린 채 살아왔던 자아와 화해가 이뤄진 것이다.
꿈 많던 소녀 시절처럼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더 넓은 세상을 소망하고 있지만 그런 나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의 형상을 닮은 귀한 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중년이라는 낯선 언덕을 힘겹게 넘고 있다면 호흡을 가다듬고 한번 자문해 보길 권한다. 다시 나로 돌아오려면 우선 나와 만나야 할 것이기에.

저자

장해주
스무 살 차이 나는 아들에게 이모라고 부르라고 강요하고, 약국 봉투에 적힌 나이를 좋아하는 철이 덜 든 여자다. 겉으로 보기엔 씩씩한 것 같지만 겁이 많고, 대범한 거 같지만 소심하고, 강한 것 같지만 여리다. 어린 시절부터 ‘못됐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라 자신이 정말 못된 사람인 줄 아는 나이브한 사람이다.
스무 살, 손 한번 잡아 준 일곱 살 많은 아저씨 같은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결혼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살다 목회자 아내의 삶이 시작됐다. 순수한 열정으로 경남 통영 땅끝 마을로 컨테이너를 끌고 내려가 청소년 쉼터를 만들고, 폐자재로 장학관을 지어 지역 청소년들과 7년간 함께 생활했다.
결혼에 대해 이해하기 전에 아이를 낳았고,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전에 사모가 되었다. ‘사모는 어떻게 하는 거지?’ 하는 사이에 개척교회 주역이 되어 몸으로 부딪치며 아이들과 교회와 문화센터를 지어 낸 억척대장이다.
스물일곱 살부터 정신분석을 공부했으며 사람의 마음과 가족관계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논문으로 <부부 갈등과 대안>이 있고, 해주가족관계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차례

프롤로그

part I 프라하
낭만은 호흡 조절이 중요해

part II 오시비엥침-비엘리츠카
드디어 그를 만나다

part III 부다페스트-플리트비체
8시간 30분을 달리다

part IV 블레드
영감을 일깨워 준 뱃사공

part V 비엔나-체스키 크룸로프
왈츠 접고 멜랑쥐 한 잔

part VI 잘츠부르크-잘츠카머구트-장크트 길겐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니?

part VII 퓌센
공감

part VIII 로텐부르크
공주와 랑데부

part IX 프랑크푸르트
행복은 선택이다

에필로그

책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내 역할에 대해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벌써 내 나이 마흔아홉이라니! 누군가의 힘이 되고, 자긍심이 되어 보려고 무던히도 발버둥을 쳤건만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거라는 믿음은 근거 없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것인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멈추지 않는 혼란, 원인 모를 무기력, 제어할 수 없는 분노,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함. 그리고 이 모두를 덮고 있는 불안.
_6쪽, 프롤로그에서

8년 전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아들이 이곳 수용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전했지만, 적당히 귀를 막고 눈을 감고 흘려들었다. 믿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남편과의 사별로 인한 고통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기에 들을 여유가 그땐 없었다. 상처와 직면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치는 끌려온 사람들에게 죄수복을 입히고 나서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사진 속 눈빛은 공포를 가득 담고 있었다.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사진도 제대로 볼 수 없는데 그들의 머리카락, 의족, 안경, 인형 그리고 화장터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세월이 제법 흘러 이제는 어느 정도 아픔을 직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관람실을 몇 곳 돌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가슴이 콱 막히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알 수 없는 쿵쾅거림이 몰려왔다. 그만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수용소를 돌아보기도 벅찰 만큼 아직도 내 마음은 아팠다. 괜히 왔다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가슴에서 눈물이 차올라 행렬을 이탈해 한참을 울었다. ‘신이시여! 그때 당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_46쪽 오시비엥침—비엘리츠카 ‘드디어 그를 만나다’에서

눈으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마음도 달라지듯 플리트비체의 품에서 마음이 넉넉해지고 있었다. 내가 아닌 나 외의 타자에게 처음으로 마음이 열리면서 배려하고 싶어졌다. 마음이 풍요로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선한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나뿐만은 아닌 듯했다. 다른 이들도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길을 비켜 주고, 좋은 풍경을 만나면 먼저 찍으라며 양보하기 시작했고 서로 사진도 찍어 주기 시작했다. 제한된 시간을 갖고 하는 여행에서 좋은 풍경을 만났을 때 누군가에게 먼저 양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뷰 포인트view point’를 잡아서 사진도 찍어야 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일행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외길이거나 좁은 길에서 양보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자연은 여행객들을 넉넉하게 만들었고 상대의 마음을 보게 해주었으며,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해주었고, 서로 소통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연을 경험한다는 것은 원래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욕심 없던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서로 줄을 지어 걷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 각자 떠나온 곳은 다르더라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 평화로웠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하나가 되고 있었다. 자연은 여유 없던 마음에 공간을 만들어 내는 위대한 힘이 있다. _71쪽 부다페스트—플리트비체 ‘8시간 30분을 달리다’에서

‘성에 간다고? 그럼 그 성에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겠군. 시폰 원피스가 어떨까’ 거울 앞에서 소풍 떠나기 전 소녀처럼 신이 나서 포즈를 취하며 행복해했다. ‘아이쿠! 이러다 늦겠다!’
나는 내가 그렇게 소심한 사람인지 정말 몰랐었다. 시폰 원피스 하나 입는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무척이나 입고 싶었지만 평범하게 입고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튀어 보일 용기가 없었다. 계속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원피스를 입을까 말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른 사람들도 좀 분위기와 장소에 맞는 옷을 입으면 좋으련만!’ 나 자신으로 주체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미처 몰랐다. 단체여행이란 게 그랬다. 버스에는 유난히 눈치를 보게 만드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누가 들으면 뭘 그런 걸 다 고민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정말 고민스러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은 성에 가보는 날이니 만큼 내심 기대가 컸고 설레었다. 공주처럼 거닐고 싶다는 조그만 소망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거의 매일 비슷한 옷을 입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이래저래 다른 옷을 입으면서 적잖이 눈치가 보였다.
_82쪽 블레드 ‘영감을 일깨워 준 뱃사공’에서

의미 깊은 날이었다. 서로가 한 공간에 존재하지만 각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둘이 서로 화해하고 수용하고 용납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힘이 솟기 시작했다. 열망이었다. 내가 꿈꾸며 실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면서 살면 더 행복하겠는가? 인생을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부터라도 헤아리면서 살고 싶어졌다. ‘늦더라도 한 번에 하나씩만이라도 꺼내봐 주자.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지 말자.’ 한 번 더 다짐했다. 내면에 집중할수록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고 편안해졌다.
‘아! 이렇게 큰 위안이 되는 것을.’ 놀라웠다.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깨우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랑해 주지 않았던 그 부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면서 화해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참 자유로움 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얼마나 소중한 순간이었는가. 살면서 이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을 것이다.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려 오랫동안 여운을 느껴 보았다.
_151-153쪽, 잘츠부르크—잘츠카머구트—장크트 길겐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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