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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의 잔_소설 본회퍼

17,820 19,800

발행일 2006.1.25.
상세정보 / 640page
ISBN 978-89-365-02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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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에 저항하다가 39세의 나이에 순교한 천재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앙과 사랑, 교회, 투옥, 죽음, 가족…… 이야기!
“하나님의 진노가 독일에 임할 것이야. 언젠가 우리는 이 진노의 잔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셔야만 할 거야!”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된 폴란드 전쟁의 참상을 지켜본 본회퍼의 어머니 파울라의 눈에는, 독일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그대로 그려졌다. 히틀러가 벌여 놓은 잔혹한 전쟁터에서 독일 청년들이 목숨을 잃는 동안, 독일 교회는 히틀러를 옹호하는 ‘독일적 교회’(본문에서는 나치 친위대원들의 갈색 제복을 상징하는 ‘갈색 교회’로도 표현됨)와 하나님 중심을 부르짖는 ‘고백교회’로 나뉜다. 하지만 고백교회는 ‘아리안법령’에 따라 무참히 죽어 가는 유대인들을 보고도 그저 침묵하고, 본회퍼는 고백교회의 목회자로서 이런 교회의 행동에 너무나 고통스러워한다.
“히틀러 암살만이 유일한 길이라 할지라도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마태복음의 진리는 여전히 유효해. 그러나 이 시대는 비상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고, 매형과 같이 힘든 결단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필요해. 비록 그것이 ‘죄’라 할지라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필요한 건 사실이야. 그 짐을 스스로 지는 사람 말이야. 결과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문제야.”
본회퍼는 마침내 ‘죄’의 짐을 지기로 결심하고 ‘히틀러 암살 계획’에 투신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암살 시도는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본회퍼를 포함한 저항 동지들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고 만다. 그리고 종전을 목전에 둔 1945년 4월 9일, 히틀러의 특별 명령에 의해 그들의 사형이 집행된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디트리히 본회퍼는 젊은 나이에 벌써 명망 있는 신학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본회퍼의 학자적 면모를 높이 산 베를린 대학장 테오도르 헤켈 교수는 그를 ‘독일적 교인’으로 포섭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본회퍼는 그렇게 나치 정권의 특혜를 누리며 얼마든지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신앙의 양심을 지켰다. 그의 도움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스위스 국경을 넘어 새 삶을 시작했고,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에큐메니컬 활동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독일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세계에 알렸다. 그는 듣는 데서만 그치는 교회의 설교나 대학 강단에서만 오가는 신학이 아닌, 주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일어나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두말이 필요 없으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아니십니까?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만이 법을 재해석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 마지막 판단을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교수형 틀 아래 무릎을 꿇는 순간에도 본회퍼는 ‘멀리 철조망 너머 어둠이 가신 땅에 밝아오는 하나님 나라의 여명’을 보았다.

《진노의 잔》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을 사랑하고, 기독교 신학과 교회를 지키려는
젊은 하나님의 사람 디트리히 본회퍼의 뜨거운 열정의 시간들을 참으로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1906. 02. 04. – 1945. 04. 09.)
: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칼 본회퍼와 파울라 본회퍼 사이에서 팔남매 중 여섯째로 출생. 아버지가 베를린 대학교 정신의학 및 신경의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베를린 대학교의 학문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 1923년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여 1927년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1930년 베를린 대학교 신학부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공부. 1931년 독일로 돌아와 베를린 대학교 조직신학 강사 및 세계교회협의회 유럽 청년부 간사로 임명받아 활동, 같은 해 목사안수 받음.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을 때부터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에 가담. 1938년 변호사인 매형 한스 폰 도나니의 소개로 히틀러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단체를 알게 되면서부터 더욱 치열한 저항운동을 벌임. 1943년 1월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와 약혼, 같은 해 4월 매형 부부와 함께 나치 정부에 체포되어 테겔 육군 형무소에 수감. 이후 부헨발트 수용소를 거쳐 플로센뷔르크로 이감되어 1945년 4월 9일 옷이 벗겨진 채 교수형 당함. 사후 에버하르트 베트게에 의해《윤리학》(Ethik, 1949), 《옥중서신》(Widerstand und Ergebung, 1951) 등 출간.

무게 693 g
크기 135 × 196 mm

차례

저자의 말

제1부 피할 수 없는 특권

제2부 광야의 대변자

제3부 폭풍우 한가운데서

제4부 영광의 길, 순교자의 길

저자 후기

디트리히 본회퍼 연보

책속에서

1.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말하길/ 내가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 마치 성에서 걸어 나오는 영주처럼/여유롭고 환하며 당당하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말하길/ 내가 간수들과 말을 나눌 때/ 마치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주저함 없고 친절하며 분명하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말하길/ 내가 불행의 날에도/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처럼/ 태연하고 미소 지으며 떳떳하다는데.

진정 나는 남들이 말하는 그런 인물일까?/ 아니면 단지 내 자신이 스스로 알고 있는 그런 인간에 불과할까?/ 불안해하고, 그리워하며, 새장의 병든 새처럼/ 누군가에게 목이 죄인 채 마지막 한순간의 호흡을 위해 헐떡이는 자처럼/ 화려한 색깔과 꽃들과 새들의 노랫소리에 굶주린 채/ 다정한 말들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목말라 하고/ 멋대로 돌아가는 횡포와 사소한 모욕에 분을 내어 떨면서/ 마치지 못할 큰일에 매달리며/ 한없이 먼 곳에 있는 친구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며/ 기도하기도, 생각하기도, 그 무엇을 하기에도 기진맥진하고 허탈한 채/ 이 모든 것으로부터 이별하고 싶은지?

나는 누구인가? / 이런 사람인가, 아니면 저런 사람인가?/ 오늘은 이런 사람이었다가 내일은 또 다른 저런 사람인가?/ 아니면 내 안에 두 사람이 들어 있는가?/ 남들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혼자 있을 때는 하찮고 가련한 약골인가?/ 아직도 내 속에는 이미 주어진 승리를 앞둔 채 허둥지둥 흩어지는 패잔 군단 같은 것이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조롱하지만/ 내가 누구이든지 간에 당신은 나를 아시나이다./ 오 하나님!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516~517쪽

2.
만약 사람이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마음을 철저히 포기한다면, 결국은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부딪치는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품 안에 던지게 된다. 그렇게 될 때, 거기서 자신의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오히려 이 세상의 고난을 짊어지고 세상과 함께 고통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진실로 만나게 된다. 그때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있게 된다. 생각하건대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회개이며, 이렇게 하여 참 인간이요 참 그리스도인이 된다. 사람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고난을 당하며 동참하다 보면, 어찌 성공했다고 교만해지고, 실패했다고 좌절할 수 있겠는가? -527쪽

3.
“버림받은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외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언젠가 한번 자신의 생애 가운데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모든 일이 거꾸로만 돌아가고 있을 때, 이 땅의 모든 소망이 사라질 때, 저항할 힘도 없이 원수의 손에 넘겨질 때. 누구나 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만난 자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기한 방법으로 이 세상 한가운데 숨어 계시며, 이 세상에서 걸어 나와 십자가로 향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씀하신 대로 ‘한시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고 우리에게도 경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나누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개인적인 필요, 개인적인 문제, 죄와 걱정, 자기 중심적인 사유와 관심을 벗어나서 예수님의 길에 동행하도록 부르십니다. 낮아짐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기는 하지만 사랑과 용서의 길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는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권력도 세력도 하나님의 뜻이 없이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위험과 환난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깝게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요구할 수는 없으나, 모든 것을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고난 속에 기쁨이 숨어 있고, 죽음 속에 생명이 숨어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 안에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 가는 연합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향하여 ‘예 그리고 아멘’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 그리고 아멘이 우리가 서 있는 든든한 기초입니다.” -604쪽 “본회퍼의 마지막 설교에서”

서평

“깊은 관심과 호기심으로 메리 글래즈너 여사의 방대하고도 힘든 집필 작업을 지켜봤다. 그의 소설은 남아 있는 가장 믿을 만한 문서들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생생하게 인물들을 살려내, 마치 그들의 삶의 한 장면 한 장면과 당시 있었던 대화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듯하다.”
-에버하르트 베트게(《옥중서신》 편자, 본회퍼 목사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제자)

“《진노의 잔》은 나에게 매우 흥미로웠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내 영웅 중에 한 분이었는데, 글래즈너 여사의 책을 통해 그를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경이로운 첫 번째 작품을 쓰신 여사님께 존경과 축하를 보낸다.”
-힐러리 로댐 클린턴(미국 상원의원)

“디트리히 본회퍼의 일생을 다룬 《진노의 잔》은 격동의 나치 시대에 고백교회의 태동과 성장, 히틀러에 대한 저항운동에 이르기까지 독일 역사의 현장과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디트리히 본회퍼를 가까이 경험하게 하고, 그가 시대에 미친 영향력과 역사적 위치를 밝혀 준다.”
-아마존 서평

“소설 《진노의 잔》은 나치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끝까지 순교의 길을 간 인간 디트리히에 대한 소설로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넘어서서 흥미와 함께 우리에게 영적 교훈을 준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신자와 교회들에게 도전을 던지고 있다. 겉으로는 용감하고 의연하게 죽음의 길을 간 그의 침묵의 내면에 들어 있는 의심 갈등과 참담함을 통해 한 인간의 고뇌를 밝히 보여 준다.”
-아마존 독자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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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피플
[이태환] 본 회퍼의 일생을 재미있게 재구성한 소설.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가 압권이다.

-예전에 본 회퍼에 관련된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가졌던 느낌은 분량이 너무 적어 아쉬웠다는 점. 그만큼 본 회퍼는 나에게 있어서 흥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소설로 그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 나와 기분좋게 구입하였다. 일단 분량이 마음에 든다. 632페이지니 말이다.

본회퍼는 1906년 쌍둥이 누이 자비네와 함께 독일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의 가족은 대가족이었으며 본회퍼의 부모는 모두 독일의 저명한 가문 출신이었다. 아버지 칼 본회퍼는 튀빙겐의 의과대학에서 공부했고 여러 병원에서 근무했으며 나중에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정신의학 및 신경병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기도 하였다. 본회퍼의 양친은 자녀들이 음악을 사랑하고 지적인 토론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그러한 환경탓에 본회퍼는 음악을 사랑했으며 피아노 연주를 즐겼고 다른 이들과 함께 지적인 토론을 하는 것을 즐겼다.

아마 한국인들에게 본회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친 운전사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떤 미친 사람이 무고한 행인들에게 차를 몰고 돌진하는 것을 본다면, 그리스도인으서 나는 그저 그 끔찍한 재앙을 지켜보다가 부상 당한 사람들을 돌보고 죽은 사람들을 장사 지내는 일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운전자의 손에서 억지로라도 운전대를 빼앗아야 할 것 입니다.’

미친 운전자는 유대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하였으며 세계의 평화를 위협한 히틀러였다. 본회퍼는 무고한 시민들의 자유와 평화를 빼앗는 히틀러의 암살계획에 가담하게 되어진다. 그러나 암살 계획이 들통나버려 1945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강제 수용소에서 나치에 의해 처형당하게 된다.

이 책은 소설이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다. 술술 읽히는 맛이 나로하여금 손에서 놓지 못하도록 하였다. 소설이라고 해서 허구가 많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저자가 10년간 독일을 오가며 본 회퍼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을 일일히 인터뷰하면서 쓴 저서이기 때문에 사실성이 있는 소설이다.

나는 ‘진노의 잔’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본 회퍼는 얼마든지 독일을 떠날 수 있었으며 또한 감옥에서도 탈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들을 모두 거부하였다. 그가 미국에 있을 때 그냥 거기에 머물렀다면 분명 그는 나치의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국 교회의 암담한 현실을 묵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감옥에서도 자신이 탈옥할 시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까봐 그것 역시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생각해 본 것은 단순히 그의 삶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신학사상과 관련이 있다.

본회퍼는 현대 사회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신 지식이 없는 사회로 인식한 것이다. 인간이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종교는 인간 본성 자체의 결과가 아니라 의지의 결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현 사회를 무 종교의 사회로 보았다. 무 종교의 사회에서 인간이 사회가 너무나 악하여 의지적으로 스스로 종교를 만든것이다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회퍼의 신학사상을 조심하여야 한다. 만약 이러한 지식 없이 본회퍼의 자서전을 접한다면 그를 단순히 위대한 신앙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본받을 만한 인물이지만…

그런데 나로 하여금 고민하게 한 것은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나도 포함된다. 본 회퍼의 신학은 조금 망가진 신학이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많은 그리스도인들 뿐 아니라 자연인들에게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가? 한국의 개신교는 신학이 건강하다. 종교를 의지의 문제가 아닌 본성의 문제로 보기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종교를 만들었다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왜 이럴까? 언제부터인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었다. 더이상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부패할 때 함께 부패해서는 안되는데 같이 부패해져 가기만 한 것 같다. 다들 어둠을 좋아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을 싫어해야 하는 데 같이 어둠을 좋아하는 것만 같다. 왜 이럴까?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한다. 그런데 빛이 어둠을 좋아하고 소금이 썩어지는 것을 좋아하니 이 일을 어찌하여야 좋을까. 비록 신학이 조금 망가지기는 하였지만 본 회퍼의 순교자적 정신을 조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배웠으면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을 볼 때 ‘바로 저렇게 사는 거야’라는 말들을 들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진노의 잔’을 이 민족에 부으시기 전에 정신차려야 하지 않을까. ‘본 회퍼!’ 그의 삶을 통해 조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부패한 삶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진정한 제자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저자

[역자 후기]

디트리히 본회퍼의 삶을 다룬 전기소설 《진노의 잔》(The Cup of Wrath)은 그 제목부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이 세상에 대해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의 잔인함, 교만과 비정함에 대해 또 감사하지 않는 불경건에 대해 진노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진노의 잔을 당신의 아들 예수께 다 부으시고 인류에게 용서와 자유를 선물하셨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원칙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도 적용되는 것 아닐까? 히틀러의 제3제국이 받아야 할 진노의 잔을 하나님의 사람 디트리히 본회퍼와 그의 가족, 동료들이 받아 마신 결과,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나마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일제 시절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신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과 수많은 옥중성도들, 북한과 중국의 지하 가정교회에서 목숨을 걸고 예수를 증거하는 수많은 우리의 형제들, 지금도 우리의 지구촌에서 핍박받고 순교를 각오한 이슬람 지역의 평신도 선교사들의 희생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 아닐까? 이 순교자의 수가 다 찰 때 하늘에서는 온전한 예배가 이루어질 것을 요한계시록은 증거한다.

나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삶과 죽음에서 역시 이러한 예수의 제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몇 번 죽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가 미국의 슬럼가에서 이론이 아닌 고난 속에 있는 참된 신앙을 배우고 있을 때, 또 군대의 징집을 피하기 위하여 잠시 피해 있을 때, 미국에 있는 친구들은 그가 미국에 머물도록 권했다. 그러나 그는 고통당하는 조국과 조국의 교회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는 유능한 천재 신학자로서 베를린 대학교의 교수로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본회퍼는 자원하여 소위 무인가 신학원(고백교회 목회자 학교)의 선생이 되었다. 그는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기꺼이 말 못하는 자들을 위한 대변자가 되었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다. 그는 차에 치여 죽은 신자들의 장례만 치르는 목사가 되지 않고 미친 운전자의 운전대를 빼앗아 차를 세우기 위한 일에 참여하다가 결국 자기도 이 차에 치여 죽게 된다. 또 감옥에서도 그의 탈출을 돕는 손길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의 안정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만약 그가 죽지 않고 살아서 현재 미완성의 신학으로 남아 있는 그의 신학을 정립했다 한들, 그가 오늘까지 사회에 미친 영향력보다 더 클까? 신자는 죽음으로 오히려 말하는 것이다.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내 조국의 교회들을 위해 나는 상하고 아픈 마음으로 기도한다. 조국의 교회들이 이 비싼 은혜를 정말 비싸게 그러나 또 진정한 감사와 기쁨으로 은혜답게 영접하고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생애를 그린 이 책 《진노의 잔》은 ‘값비싼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얼마나 ‘값비싼’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도전하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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