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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발전사

23,400 26,000

전택부
2018. 5. 3
무선 / 488 Pages 
978893651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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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전택부가 쓴 한국 교회의 통사

한국 기독교, 어떻게 생겨나서 어떤 길을 걸어왔나?
‘동방의 고요한 나라’. ‘은자의 나라’(서양인의 부정적인 시각이 들어있는 말이다) 조선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것은 나라가 외세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암흑세계나 다름없는 당시, 박해와 고난의 요인이 크고 많았을 뿐더러 전통문화의 부정적인 영향력도 강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선교의 양상과 교회의 성장·발전 모습은 세계 교회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아시아의 여느 나라들과 달리 한국 영토 안에서는 개신교·천주교를 막론하고 한국인 자신에 의해 선교가 시작되었으며, 기독교가 시대의 질곡을 헤쳐 가며 근대 사회로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도 그 뿌리에는 한국 토박이 신자들의 풀뿌리 신앙이 있었다.
한국 현대사와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이 맞물려 온 한국 기독교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여 오늘에 이르렀을까?

토박이 신앙사관으로 서술한 한국 개신교 100년의 역사
이 책은 1980년대 중반 한국 개신교 100년을 기념하면서 ‘한국 기독교 100년사 대계’의 첫 책으로 기획·준비된 것으로,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6·25전란 이후 약 100년에 이르는 개신교의 통사(通史)로 쓰였다. 개신교 100년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천주교 역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개신교의 배경사와 관련사 차원에서 다루어져 한국 기독교 200년을 아우르는 의미가 있다.
전4부로 된 이 책에서 1부는 한국 개신교 창설 이전의 시대배경에서 한국 천주교회를 다루면서 초기 교회의 모습과 박해 속에서도 성장해간 과정을 담았는데, 본격적인 개신교의 역사를 다룬 2~4부에서도 한국 천주교의 변천 과정과 시대의 흐름에 대처해간 모습을 기술했다. 조선말(2부)-일제강점기(3부)-해방 후(4부)로 크게 구분되는 이후의 교회사는 선교활동-외세에 대한 저항과 연합·분열-재건 및 토착화와 다변화 등을 중심으로 하는데, 4부 마지막에서는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인 사회에서 개신교 교회의 변천 과정도 알 수 있다.
‘발전사’라는 책 제목에서 보듯 저자는 한국 개신교의 영적·질적 성장과 양적·수적인 면을 상호 관련되며 보완적인 것으로 보고,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많은 국내외 자료들을 충실하게 활용하며 고증에 힘썼다.
저자 전택부 선생은 서울 YMCA에서 총무 등 여러 중책을 맡아 온 ‘Y맨’으로, 〈전택부 선집〉제4권 《한국 기독교청년회 운동사》와 제5권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사》를 통해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의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역사’에 유념하면서 한국 개신교 역사의 중요한 단면들을 엮어냈다. 이 두 책과 《한국 교회 발전사》는 그의 ‘한국 교회사 3부작’이라 할 만한 노작으로, 그의 뚜렷한 사관(史觀)을 바탕으로 한 혼과 열정이 녹아 있다.

 

※우리 시대의 ‘어른 소리’, 그 두 번째
―전택부 선생의 저작물을 하나로 엮다

어른의 경륜과 지혜가 필요하지만 실상은 그리 주목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으려는 시대, 홍성사는 이런 세태를 바로잡고 그분들의 소리를 담아 간직하고자 그 첫 기획으로 2002~2010년 시인 구상 선생(1919~2004)의 전집 〈구상 문학 총서〉(전10권)를 간행한 바 있다.
두 번째로, 2015년부터 전택부 선생이 남긴 저작물 가운데 17종을 선별하여 〈전택부 선집〉(전16권)을 내고 있다.(2017년 5권까지 출간, 아래 사진, 가운데) 〈전택부 선집〉으로 간행되는 전택부 선생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토박이 신앙산맥》(전3권, 2015~2016년 출간),《한국 기독교청년회 운동사》(2017년 3월 출간),《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사》(2017년 12월 출간),《한국 교회 발전사》,《양화진 선교사 열전》,《강아지의 항변》,《인간 신흥우》,《월남 이상재의 생애와 사상》,《고희 기념 논문집》,《Y맨의 세계일주기》,《무슨 재미로 사나》,《세상은 달라진다》,《달을 쏘는 아이》,《부부의 십계명》,《자화상을 그리듯이》(전3권·합본), 《남기고 싶은 종로 이야기》,《Y새끼다리들이여》.

 

크기 163 × 228 mm

저자

전택부(全澤鳧, 1915∼2008)
호는 오리(吾里). 함경남도 문천 출생. 1940년 도쿄 일본신학교 예과를 졸업하고 1941년 같은 신학교 본과를 중퇴했다. 〈월간 새벗〉과 〈사상계〉의 주간을 지냈으며, 소천 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서울 YMCA 총무 및 명예총무, 한글전용국민실천회 회장, 한글인터넷추진 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이후 〈한국 기독교회사 만필〉, 〈토박이 신앙산맥〉, 〈양화진 외인 열전〉 등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사건 현장을 중심으로 한 교회사 연구에 정진했고, 한국 기독교의 수용과 성장을 토박이 신앙인의 신앙역사로 보려는 ‘토박이 사관’을 새롭게 시도했다. 한글 운동을 한 공로로 1978년 문교부 장관 표창, 1980년 외솔상을 수상했다.

차례

간행사/ 성갑식
머리말/ 전택부
서론: 성장 발전을 향한 기독교의 의지

제1부 한국 천주교회
1. 한국 천주교회창설과 그 과정
2. 초대교회의 모습
3. 박해 속의 교회 성장
4. 쇄국과 개국의 사이

제2부 조선조 말기의 한국 개신교
1. 한국 개신교 창설 이전의 선교활동(~1884)
2. 교회 창설과 선교활동(1884~1890)
3. 19세기말의 선교활동(1890~1900)
4. 20세기초의 선교활동(1900~1910)

제3부 일제 치하의 한국 교회
1. 무단정치하의 수난과 투쟁(1910~1919)
2. 문화정치하의 선교활동(1919~1934)
3. 동화정치하의 한국 교회(1936~1945)

제4부 8⋅15해방 후의 한국 교회
1. 6⋅25 직후까지의 교회의 모습(1945~1950)
2. 6⋅25와 4⋅19 전후 사이의 교회의 모습(1950~1964)
3. 해외 한인사회와 그 현황

결론: 한국 기독교 100년을 앞둔 교회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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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전국재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표기하지만, 〈전택부 선집〉에서는 저자의 원래 표기대로 ‘하느님’이라 표기했다.

책속에서

한국 개신교의 초대 선교사들은 결국 한국에 복음의 씨를 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이미 뿌려진 씨의 열매를 거두러 온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특징을 지닌 한국 기독교사 연구에서 무엇보다 큰 관심거리가 되는 것은 복음의 씨를 먼저 뿌린 우리 토박이 신자들이 아닐 수 없다. 이 토박이 신자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으며, 그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도직 전승이 와 닿았으며, 그것이 어떻게 이 나라 국토와 전통문화 속에서 성장 발전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우선적인 연구과제다.
_‘서론’에서

한국 개신교는 천주교와 달리 선교할 때 하층계급에서 출발했다. 이를테면 천주교의 복음의 씨는 문전옥답에, 개신교의 복음의 씨는 버려진 땅에 뿌려졌다. 그리하여 문전옥답에 뿌려진 복음의 씨는 곧 싹이 나와서 무럭무럭 자랐으나 자꾸 뽑혔고, 버려진 땅에 뿌려진 복음의 씨는 땅 임자가 업신여기는 사이에 땅 속 깊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초대 천주교 신자들은 대개 양반 출신인데 비해 초대 개신교 신자들은 노비나 서민 출신이다.
_제2부, ‘조선조 말기의 한국 개신교-2. 교회 창설과 선교활동’에서

1903년에 일어난 부흥운동은 선교사들만의 공로인 것처럼 이해되어 왔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아니, 그보다 이 부흥운동은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한국인 교인들에 의해 심화되고 토착화되었다. 왜냐하면 하디가 “3년간 열심히 전도했으나 사사건건 실패하였다”고 고백한 것은, 그가 한국인의 종교적·문화적 배경을 무시하고 우월감을 가지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원산 창전예배당의 전계은 같은 초대 교인의 힐책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편 럽 선교사는 “한국 사람들, 남녀노소가 다수 모여 흐느껴 울면서 죄를 통회하고 죄 사하여 주실 것을 호소했다”고 했는데, 이는 선교사들이 한국인 초대 교인들의 죄 고백과 통회기도에 크게 놀랐음을 의미한다.
_제2부, ‘조선조 말기의 한국 개신교-4. 20세기 초의 선교활동’에서

교회에 대한 비판의 소리는 이미 1917년 이광수의 〈금일 조선 야소교회의 결점〉이란 논문이 발표된 이래 노골화되었거니와, YMCA를 중심으로 교회 개혁운동에 앞장섰던 신흥우 박사는 “오늘날의 반기독교 운동은 현재 조직되어 있는 기독교단이나 개인에 대하여 절요(切要)한 반성제가 되는 동시에 사실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라고 했으며, 당시 교회 출신 작가인 전영택(田榮澤) 목사도 “교회가 생명이 없어지고 차차 타락하고 부패 가운데 들어갈 염려가 있습니다. 이에 오배(吾輩)는 조선에도 종교개혁의 급무(急務)를 절규합니다”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이 무렵 기성 교회는 ‘부흥’ 대신 ‘진흥’이란 새 말을 쓰기 시작했다. ‘진흥운동’ 역시 물량주의 개념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은 못 되지만 교회 개혁정신의 산물임은 틀림없다.
_제3부 ‘일제 치하의 한국 교회-2. 문화정치하의 선교활동’에서

6·25전란으로 한국 교회가 겪은 환란은 근대 세계 기독교사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비참했다. 수많은 신도들이 묶여서 끌려갔고, 교회당이 불타버리는 아픔도 컸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민중의 심정 속에 얼룩진 비탄과 허탈감, 자포자기였다. 이 때문에 극단적인 신비주의 신앙이나 일시적 위안, 신앙의 이질화 현상이나 무속화의 물결에 휘말리게 되었으며, 기성 교회는 자선과 구제, 외적 시련과 내적 아픔을 아울러 경험하면서 피난민으로 구성된 교회 성장을 자위 거리로 삼았다.
4·19혁명 이후에는 기성 교회 내에서 자성의 기미가 나타나면서 평신도운동, 민족복음화운동, 한국적 신학의 의식화 경향이 돋보이게 되었으며, 한국 개신교 80주년을 맞이하는 천주교회에서는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이 나옴으로써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처음으로 서로 만남의 장을 펴기 시작했다.
_제4부 ‘8·15해방 후의 한국 교회-2. ‘6·25와 4·19 전후 사이의 교회의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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