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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형성사

14,400 16,000

저자  G. H. 존스 (George Heber Jones)
역자 옥성득
발행일  2013.11.15
상세정보  무선 / 440page / 150×224(mm) / 623g
ISBN  9788936510060

카테고리:

품절

한국 개신교 초기 역사 전반에 대한 최초의 통사(通史)

100여 년 전 격동의 한반도에서 활동했던 선교사 조지 히버 존스(George Heber Jones, 1867~1919)가 귀국 후 선교 행정가, 역사가, 강사로서 당시를 회상하며 다양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한국 개신교 여명기의 발자취. 1884-1916년 무렵 한국의 사회상과 개신교 교회사를 담아 1916년에 썼고, 이듬해 수정, 보완했다.
토착 교회의 형성에 초점을 둔 ‘선교사관’의 입장에서 개신교의 한국 전래사를 신학적 언어로 서술했으며, 선교 현장에서 경험한 사건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1세대 선교사의 견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 개신교의 첫 통사로 알려진 백낙준(白樂濬, 1895∼1985)의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1973년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한국개신교사, 1832∼1910》로 번역 출간)보다 10년 앞서 쓴 것이지만, 저자의 사망으로 출간되지 못했다가 96년이 지난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다.
편역자 옥성득 UCLA 교수(한국교회사)는 미출간 상태로 보관된 존스의 원고를 번역하며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고 꼼꼼히 주석을 달았으며, 참고 사진도 곁들였다. 우리말 번역문 뒤에 영문 원문도 수록했다.
존스는 ‘선교사관’의 입장에서 개신교의 한국 ‘전래사’를 신학적 언어로 서술했지만 그의 선교사관은 ‘토착 교회의 형성’에 초점을 둔 선교사관이었다. 이 책은 신학교 강의를 바탕으로 미국의 일반 평신도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큰 그림을 보여 주면서 문학적인 이야기체로 쓴 것이어서, 쉽게 읽히며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된다.
존스는 이 책의 제목을 ‘The Rise of the Church in Korea’라고 하여, 떠오르는 교회가 한국의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는 부정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기독교가 이 땅에 소개되었을 때 환영받은 이유와 한국 사회를 변혁시킨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재발견하게 된다.

토착 종교와 기독교, 그 접촉점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이 책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세 장은 배경사지만 자칫 무미건조하게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나가는 존스의 문장력이 돋보인다.
1장에서는 한국에서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역사적 배경을 개관한다. 특히 1866년 평양에서 있었던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이후 전개된 개신교 선교와의 인과관계가 잘 설명되어 있다.
2장 한국인론과 3장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은 지금도 중요한 논쟁의 주제인데, 1910년 이후 초기 식민지 상황에 대한 존스의 평가는 당시 선교사계를 대변하는 공식적인 견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한국의 종교(유교, 불교, 샤머니즘)를 다룬 4장에 이어 5장에서는 기독교와 이들 전통 종교 간의 접촉점을 논하는 비교종교학, 곧 타종교에 대한 초기 한국 개신교의 메시지가 주제다. 내한(來韓) 선교사 가운데 일찍부터 한국 샤머니즘을 깊이 연구한 존스는 당시 종교학계와 선교학계의 이론을 수용하여 그것을 정령숭배/애니미즘/자연숭배로 정의하고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데 공헌했다.
5장은 이 책의 핵심 부분이며, 다른 역사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존스는 한국 종교와 기독교의 접촉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곧 신론에서 하나님, 유교와 불교가 가르치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 제사와 굿 등의 종교 의식에서 드러나는 신 공경과 숭배, 보편적인 기도, 그리고 영혼불멸과 제사 등의 접촉점을 통해 타종교가 기독교를 통해 더 완전하게 될 수 있다고 전도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선교가 성공했다고 본다. 유(儒), 불(佛), 무(巫) 세 종교는 한국인의 조상과 당대인의 삶 속에 녹아 있다. 이 종교들을 아는 것은 한국인을 아는 첫 걸음이었고, 그 접촉점을 완성해 가면서 기독교를 발전시켜 토착적인 한국 개신교를 형성했다는 것이 존스의 주장이다.
6장은 한국 선교의 기초를 놓은 선구적 선교사 편으로, 이 장에서는 1884~1886년에 내한한 알렌, 언더우드, 헤론 등 첫 선교사 집단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평양과 북한 지역을 개척한 홀, 마페트, 노블 등을 다루었다. 영국계로서는 호주장로회의 데이비스, 성공회의 코르프, 터너, 트롤로프 주교, 캐나다의 게일, 하디, 맥켄지를 언급한다. 정부의 육영공원 교사로 활동한 벙커, 헐버트, 길모어 등의 교육 선교와 YMCA, 구세군의 사역을 설명하고, 초기 활동에서 간과할 수 없는 연합 사업인 성경 번역과 문서 사역을 강조했다. 선교사와 외국인을 위한 유니언교회도 거론했다.
7장에서는 초기 선교사들이 여러 장애물과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다루었다. 선교의 자유 문제에서 시작하여, 거주지 매입과 정착 문제, 반외국인 감정과 반기독교 정서, 전통 종교와 기독교 교리의 괴리, 한국어를 익히는 문제, 한글의 재발견, 한국인의 이해, 음식 문화의 차이, 한국의 역사, 철학, 과학, 종교, 법과 관습 이해 등을 차례로 설명했다. 한국과 한국인 연구에 대한 결과 《Korean Repository》와 《Korea Review》같은 잡지가 발간되고 ‘한국학’ 연구가 시작된 것은 선교사들의 공헌이다.
8장에서는 ‘토착적인 한국 교회의 형성’ 과정을 다루었다. 존스는 1884~1916년을 3기로 나누어 선교사 중심의 제1기 서울 개척기(1884~1894), 제2기 지방 개척기(1894~1906), 제3기 토착교회 형성기(1907~1916)로 구분한다. 이것은 존스가 초대 교회사를 서술하면서 선교 확장사와 토착교회 형성사 관점을 종합했음을 보여준다.
제1기 부분에서는 서울에서 감리교와 장로교의 초기 역사를 상세히 기록했다. 특히 1886년 10월 9일 첫 공중예배를 드린 벧엘 예배당(정동제일교회의 전신)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 정보를 알려 준다. 곧 벧엘 예배당은 작은 초가집이었으며, 정동에서 남쪽 방향으로 정동 선교사 구역과 일본인 거주지인 진고개의 중간 지점(상동교회 부근)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초기 신자 가운데 발생한 이른바 ‘쌀 신자’ 문제에 대해 존스는 그 수가 과장되었으며, 대부분의 한국인은 신실한 신자들이었다고 증언한다.(한국에서 쌀 신자가 극소수였다는 것은 여러 선교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최병헌과 김창식의 개종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존스의 목격담으로서 중요하다.
제2기와 제3기는 상술되어 있지 않은데, 이 부분을 완성하지 못하고 원고를 마감한 듯하다.
존스는 토착적인 한국 교회의 형성사를 쓰면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한국 민족의 밝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믿었고, 그 미래가 토착적인 한국 교회에 달려 있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물에 잠겨 사라질 뻔했던 최초의 한국 개신교 통사

그동안 이 원고는 존스의 다른 자료와 출판물들과 함께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유니언신학교의 버크도서관 고문서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편역자 옥성득 교수는 이 원고와 다른 존스 자료를 1999년 박사논문 자료 수집 과정에서 복사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옥 교수는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유니언신학교에서 이 책의 출간을 허락받았지만 존스의 원고가 실종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2004년 5월에 도서관 건물 화장실에서 한 어린아이가 크게 틀어 놓은 수돗물로 아래층 도서관 서고에 홍수가 나면서 이 원고를 포함한 많은 자료가 물에 잠겨 버렸으며, 자료가 제대로 복원될지 불확실해진 것이다.
옥 교수는 10년 전에 복사해둔 자료들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파일을 보냈으며, 이 책의 출판을 서두르게 되었다. 홍수 이전에 복사한 학자로서의 책임의식과 함께, 원고 완성 100주년(2017)이 되기 전에 책으로 출판하여 한국 교회와 한국 학계에 알려야겠다는 부채 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저자

G. H. 존스
미국 북감리회의 개척 선교사. 1888년 5월 한국에 와서 20년간 서울과 인천, 강화 지역에서 활동했다. 1891년까지 배재학당 교사와 교장으로 봉직했으며, 1890년 집사목사로, 1891년 장로목사로 안수 받은 뒤 1892년 제물포 선교 관리 책임자로 부임하여 내리교회의 제2대 담임목사가 되었다.
이후 부인 마가렛 벵겔과 1892년 4월 인천 영화학교를 세웠으며, 서해안 선교에 심혈을 기울였다. 1901년 12월 인천 최초의 서구식 개신교 예배당인 제물포웨슬리 예배당을 신축했으며, 1903년까지 44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3천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1893년 제물포에서 신학반을 열어 한국 목회자 교육을 시작했으며, 첫 한글 찬송가 《찬미가》(1892), 첫 잡지 《The Korean Repository》, 첫 신학 잡지 《신학월보》(1900〜1909) 등을 편집, 발행했다. 1902년 12월, 미국 하와이로 떠난 최초의 한인 이민자들을 주선하고 지원하는 일에도 앞장서, 초기 이민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국 역사와 종교, 문화, 풍속에 두루 정통한 학자로서 많은 한국학 자료들을 저술하여 해외에 소개했다.
1909년 귀국하여 보스턴대학교와 디포우대학교에서 선교학과 비교종교학을 가르쳤고, 한국 교회와 종교, 역사, 문화에 대한 저술 활동을 했다. 뉴욕 북감리회 선교부 총무로 임명된 후에도 한국 선교를 직·간접적으로 계속 지원했으며, 한국 선교 25주년 기금 모금 운동을 펼쳤다.

역자

옥성득
한국 개신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1984년에 한국 기독교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93년 미국에 유학 가서 프린스턴신학교(신학석사)와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신학박사)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 문리대학 아시아학과에서 한국 기독교사, 한국 종교사, 한국 근대사상사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2007년 한국 기독교 임동순 임미자 석좌 조교수, 2011년에 석좌 부교수로 임명받았다.
해방 이전 한국 개신교 역사를 한국 종교사, 동아시아 종교사, 세계 기독교사라는 틀 속에서 비교 검토하고, 한반도에 들어온 서구 기독교, 중국 기독교, 일본 기독교가 한국의 종교 문화와 정치, 사회 상황과 만났을 때 발생한 기독교의 근대성과 토착성, 식민성을 연구하고 있다. 관심 주제는 한글 성경 번역, 내한 선교사, 의료 선교, 개신교와 타종교의 관계, 북한 교회 역사 등이다.
저서/편역서로는 《대한성서공회사》 1, 2권(1993, 1995), 《북한교회사》(1997), 《대한성서공회사 자료집》 전3권(2004, 2006, 2011), 《언더우드 자료집》 전5권(2005-2009), 《Sources of Korean Christianity》(2004), 《한반도 대부흥》(2009), 《한국간호역사 자료집》 1권(2011), 《마포삼열 서한집》1권(2011), 《한국근대간호역사 화보집》 (2012), 《The Making of Korean Christianity》(2013: <Books and Culture>의 ‘올해의 책’ 수상) 등이 있다.

차례

발간사_ 김흥규
서문_ 옥성득

1. 한국 선교의 시작
2. 한국인
3. 한국의 지리
4. 한국의 종교 생활
(1) 유교
(2) 불교
(3) 무교
5. 기독교와 한국 토착 종교의 접촉점
(1) 하나님
(2) 인간의 도덕적 책임
(3) 예배
(4) 기도
(5) 영혼불멸
6. 선구적 선교사들
7. 장애물의 극복
8. 한국 토착 교회의 형성

존스의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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