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pping Cart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세일!

화해와 평화의 좁은 길

13,500 15,000

저자 홍정길 외 6인
발행일 2013.12.26
상세정보 무선 / 320page / 145×215(mm) / 416g
ISBN 9788936510145

카테고리:
* 회원구매 시 정가의 5% 포인트 적립.
  3만원 이상 주문 시 배송비 무료
* 해외 주문/배송은 불가합니다.

통일의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서
새로운 통일운동을 이끌어 갈 여호수아 세대에 전하는
사람 나눔, 생명 나눔

“남북나누미는 참 독특합네다. 공화국 지원을 해도
육아원이나 탁아소같이 낮은 쪽부터 하디요.”

남북 교류의 좁은 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발표 이후, 그간 경색되었던 남북 간 정치 환경에 훈풍이 일기 시작했다. 이듬해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권호경 목사가 박경서 박사와 북한을 방문했다. 이는 정부의 승인을 받은, 공식적인 첫 민간인 방북이었다. 남북한 교회의 교류 활성화를 협의하기 위해 평양에 갔던 권 목사는 실무자와의 대화에서 진전이 없자,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남북이 평화통일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남과 북 교회 사이에 나눔과 교류가 이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귀한 것을 나누고 교류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리고 서로가 하나 되어 통일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면 먼저 조그련 목사님들이 남한을 방문하고, 그 후 남북 교회 지도자들이 서로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 목사의 말에 김 주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북 민간 교류의 물꼬가 트이는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북한 교회 지도자의 남한 방문은 무산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교계에는 통일운동의 불이 번져 나갔다. 그리고 1993년,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통일에 뜻있는 이들이 모여 ‘통일만큼은 교회가 통일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당위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나눔운동’이 시작되었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북나눔은 굶주리다 못해 영양 부족으로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등 육체적·정신적 장애를 안게 되는 아이들, 낡은 집에서 추위와 비바람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농촌 주민 등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직접 돕고 찾아가는 사역을 묵묵히 해왔다. 대부분의 사업이 대북 지원이지만, ‘남북나눔’이라는 이름처럼 남과 북이 물자와 마음을 나누는 가운데 단단한 하나가 될 날을 소망하며 걸어온 남북 교류의 좁은 길 20년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가장 낮은 곳을 섬긴 그분처럼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에 기여하고자 설립한 국내 최초의 대북 지원 민간단체, 한국 기독교 보수와 진보 교단이 통일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힘과 뜻을 모아 시작한 나눔운동, 정부 차원의 공식 대북 창구가 마련되기도 전에 굶주리는 북녘 동포를 위해 60톤의 쌀을 트럭에 실어 북한 국경 안으로 들여보낸 뚝심, 북한 동포 스스로 자립해 나갈 수 있도록 농촌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마을 공동체를 지원하는 주민 중심의 사업……. 대외적으로 그간의 사업을 자랑하며 더욱 손쉽게 후원금을 모으고 더 화려한 사업을 해나갈 수도 있겠지만 남북나눔은 ‘최소 대답의 원칙’을 지켜 왔다. 정말 감당할 수 있는 일만 북에 약속했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대로 언론에 떠벌리는 일도 거의 없다. 그저 주시는 만큼 지원하되,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려 애썼다. 덕분에 남북나눔은 북측 실무자들의 공고한 신뢰를 토대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관계를 유지해 올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절대 원칙 ‘현금 지원 불가’ 역시 일관되게 고수해 왔기에 북측 정부 관계자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도움이 절실한 당사자들이 수혜를 입는 원조를 실현할 수 있었다. 분유나 아스피린을 보낸다고 군사 물품으로 전용할 수 없을 것이며, 겨울에 보내는 감자도 썩기 전에 먹어야 하니 쟁여 두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다 말할 수 없지만
고사하려 했으나 안기부 협박 전화를 받고 오기로 남북나눔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나눔운동 최일선을 지켜 온 홍정길 목사부터 거의 모든 실무에 참여해 온 남북나눔의 산증인 신명철 본부장까지 7인의 남북나눔 인사가 들려주는 20년 남북나눔사史는 사업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을 나누고 생명을 나눠 온 발자취다. 실향민인 신 본부장이 남북 교류를 위해 개성에 방문했다가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 마을을 마주했을 때의 감격, 황장엽 비서가 망명하기 직전 영문도 모르고 만남을 가졌던 일, 김일성 주석과 마주 섰을 때 권호경 목사의 감회 등 생생한 에피소드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정부보다 앞서 북과의 민간 교류를 자력으로 해온 남북나눔의 20년은 단순히 한 단체만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북을 이해하고 남북 관계를 모색해 나가며 통일을 준비해 나가는 데 참고해야 할 필수 자료라 할 수 있다. 뒤따라 통일운동에 참여할 이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장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한편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밝힐 수 없는 이야기들도 여전히 남아 있다. 두 번째 《화해와 평화의 좁은 길》을 펴낼 통일 한국의 날을 기대하며 남북나눔이 다음 발걸음을 재촉하는 까닭이다.

저자

홍정길 외 6인

홍정길 남서울교회를 개척해 목회하던 중 진보와 보수 양 교단의 권유로 사단법인 남북나눔 사무총장으로 선임되었다. 대북 지원이 허가되지 않은 시대 상황에서 북한 동포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특히 자라나는 북한 아이들에게 우유 보내는 일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작했다. 그 후 남북나눔 회장으로 섬기면서 황해북도 봉산군 천덕리를 자립하여 잘사는 시범마을로 만들고자 농민 주택 400채와 유치원, 탁아소, 병원 등을 건축했다. 또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 재임 시 북한 수재 복구사업에 열과 성을 다하였다. 정부에서 국민훈장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에서 민족화해상을 수여했다.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 밀알복지재단 이사장, 전주대학교 운영법인(신동아학원) 이사장,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한 역사학자로 특히 한국 기독교 역사에 관한 강의와 저술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남북나눔 설립 초기, 북한을 연구하는 22명의 학자로 구성된 ‘남북나눔 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통일 관련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연구 결과를 매달 발표하여 통일이론 정립에 기여했다. 북한에 방문해서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정론을 펼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숙명여대 명예교수 및 연세대 석좌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권호경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CBS기독교방송 사장을 거쳐 지금은 국제구호단체 월드쉐어 회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 목사 가운데 최초로 김일성을 만나 남북한 교회의 나눔운동을 제안하여 남북나눔운동의 설립 동기를 마련하였고,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으나 북한 교역자의 남한 방문 약속을 받아 냈다. 아울러 남북나눔이 진보 교단과 보수 교단의 연합체로 설립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했으며, CBS방송에 재직하면서 남북나눔의 역할 증대를 위해 힘썼다.

강경민 남북나눔운동 설립 당시 남서울교회 부교역자로, 홍정길 목사를 도와 1992년에 열린 남북나눔운동 발기인대회를 준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1년에는 남북나눔운동 사무처장으로 재직하며 조직을 재정비하고 각종 규정을 개정하여 사무국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힘썼다. 통일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사단법인 여명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인연대 공동운영위원장, 성서한국 교회이사, 일산은혜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일치협력국장과 남북나눔 초대 사무국장을 겸임하며 남북나눔 초기에 조직을 정립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97년 14개 교단과 8개 단체를 모아 ‘한국기독교북한동포후원연합회’를 조직하여 이를 기독교 대북 지원 창구로 정부에 공식적으로 허가받았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한 대북 지원만 가능하던 시절, 기독교 후원연합회 이름으로 대북 지원의 길을 연 것이다. 지금은 NCCK 총무로 섬기고 있다.

이문식 남북나눔 초대 기획실장으로, 대북사업의 터를 다지고 사업의 방향을 설정했다. 해외 기독단체 모임에 여러 차례 참여하여 북한 교역자들을 만나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교류의 싹을 틔웠다.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하던 1994년에 최초로 식량(쌀) 지원의 길을 열었으며, 매년 6·25를 앞두고 ‘세이레 기도’ 책자를 편찬하여 북한을 알아 가도록 돕고 있다. 광교산울교회를 담임하며 희년선교회와 남북나눔 사무처장으로 섬기고 있다.

신명철 홍정길 목사의 권유로 남북나눔 초기에 자원봉사자로 남북나눔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문식 목사와 초기 식량 지원의 물꼬를 텄으며, 남북나눔 본부장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기업 CEO를 역임하는 등 다양한 실무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남북나눔 운영에 역량을 발휘해 왔다. 70-80여 차례의 방북 경험과 북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북한과 대북사업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으며, 발기인대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남북나눔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차례

서문 마음과 마음으로 쌓은 20년에 감사하며

가슴 벅찬 내 인생의 황금기_신명철 본부장
“같이하시는 겁니다”/ 자원봉사자의 눈물/ 아, 장홍을 화백!/ 환상의 복식조/ 일곱 평 사무실, 분단 조국을 품다/ 신덕샘물, 수성천 모래, 쌀 회담/ 역사적인 망명의 현장에서/ 자원봉사자에서 실무 책임자로/ 개성의 ‘잠 못 드는 밤’/ 진짜일까, 가짜일까?/ 왜 평양이 아닌 천덕리인가?/ 천덕리 사업과 청사 건축/ ‘천덕’리가 의미하는 것/ 남-북-연해주, 나눔의 트라이앵글/ 통일과 ‘선한 사마리아인’/ 쌀 보내면 군량미 된다?/ 일관성이 신뢰를 낳는다/ ‘눈높이’로 소통하기/ ‘남북 관계 발전에 기여’한 20년/ 순결한 제물이었기를 바랄 뿐

주어진 숙제를 감당하는 마음으로_홍정길 목사
한 통의 전화/ 정주보다 변화를 추구한 삶/ 복음화 이후 만난 ‘숙제’/ 진보와 보수 두 바퀴로 가는 남북 교류/ 최초의 ‘비공식’ 대북 식량 지원/ 그녀의 눈물이 주님의 눈물처럼/ 내가 만난 북한, 북한 사람/ “선생님들이 지은 집은 비도 안 샙니다”/ 주체사상 대부와 벌인 논쟁/ 미워할 권리는 없다/ 연해주 사업 이야기/ 북한미술 수집가(?)가 된 사연/ 남북나눔과 함께한 동역자들/ 통일을 준비하는 세 가지 자세/ “홍보해야 돈이 모이지요”/ 좌파 일을 하는 우파 목사?/ 마지막 남은 숙제

인도주의에는 조건이 없다_이문식 목사
뿌리 깊은 레드 콤플렉스/ 통일운동에 ‘징집’되다/ 외국인 노동자 사역에서 통일운동으로/ 해외 교포를 통한 대북 루트/ 연변 동포와 함께한 대북 물물교환/ ‘보리떡 다섯’ 같았던 첫 식량 지원/ 분유 지원 사업에 주력한 이유/ 북한판 ‘새마을 운동’ 모델/ 모금 활동과 기부의 선순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하나님 외에는 우상숭배입네다!”/ ‘통일 비즈니스’ 하는 장사꾼들/ 실용주의 통일운동가가 된 사연/ 통일을 주도하기 위한 전제 조건/ 인도주의에는 조건이 없다/ 서로에게 무지한 사회/ 통일의 가나안을 향하여

학자들, 작은 힘을 보태다_이만열 교수
남북나눔운동의 역사적 배경/ 진보와 보수 양 날개로 날다/ 선도적이었던 통일연구위원회 활동/ 보수 신앙인의 진보적 활동 배경/ 내가 만난 북한 기독교 인사들/ 소통하거나 논쟁하거나/ 배앓이 사건과 몇몇 에피소드/ 일개 역사학도의 통일 전망/ 남북나눔, 마음과 마음의 만남 20년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일_권호경 목사
통일운동의 ‘심부름꾼’/ ‘대타 총무’로 뛰어다니다/ 첫 공식 북한 방문/ 김일성 주석을 만나다/ 아쉽고도 아쉬운 남북 교류 무산/ 진짜 목사, 가짜 목사?/ 홍정길 목사에게 진 빚/ 홍정길 목사와 황장엽 비서/ 남북 나눔은 ‘생명 나눔’이다

평화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_김영주 목사
“백두・한라의 나무로 십자가를 만듭시다”/ ‘NCCK 통일 선언’이 낳은 변화들/ 고신파 배경의 NCCK 총무/ 독일 통일에서 배운 것들/ 남북나눔운동의 시작/ 왜 무력감이 없었으랴/ 대북 민간 지원의 최일선 20년/ 개성공단과 제주해군기지/ 여전히 못다 한 숙제를 위하여

통일운동의 말석에 앉은 은혜_강경민 목사
호텔 ‘부흥회’의 추억?/ 남북나눔을 세운 사람들/ 가슴에 새겨진 첫 방북의 기억/ 역사의 비전을 세워야 할 한국 교회/ 여명학교와 통일 공부/ 마음을 움직이는 통일 방안/ 다시 ‘출발점’에 서는 마음으로

부록 남북나눔 연표 사진으로 보는 남북나눔

책속에서

영양이 결핍된 채로 자라는 그 아이들이 “남북 관계가 좋아질 때까지 성장을 좀 멈추고 기다릴게요. 나중에 좋아지면 그때 가서 도와주세요”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성장 시계는 지금 이 시간에도 결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그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 채 내버려 두어야 하는 어떤 명분이나 이유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이 일이 설령 한강에 돌 몇 개 던져 넣는, 남는 흔적이 없는 일이라 해도 계속해야 할 일이다. 그걸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고 나를 책망하시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_82쪽, 가슴 벅찬 내 인생의 황금기(신명철)에서

북의 실상을 알고서도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저들을 껴안고 10년, 20년 씨름하면 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저들을 껴안는 것이 중요하다. 통일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네 가지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북한 동포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둘째, 북의 어린아이들을 위한 투자를 계속 해나가야 한다. 셋째, 남북 교류를 계속 이어 가야 한다. 넷째, 중립지대로서 피난처가 마련되어야 한다. _114쪽, 주어진 숙제를 감당하는 마음으로(홍정길)에서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우리에게는 그들을 사랑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든 잘못된 어그러진 길로 가든, 결국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을 중단할 수 없듯이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저들을 미워할 어떠한 권리도 없다. 주님이 그런 권리를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_116쪽, 주어진 숙제를 감당하는 마음으로(홍정길)에서

통일에는 여러 분야에서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정치권뿐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동시 진행해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남북나눔운동이 지니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남북나눔운동은 민간 차원에서는 최초로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대북 지원을 시작했을 뿐 아니라, 분열되어 있던 보수와 진보 기독교 진영이 힘을 합쳤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남다르다. 남북나눔 이후에 나온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이 남북나눔을 모델로 삼아 따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그만큼 남북나눔이 대북 지원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다는 방증이 아닌가 한다. _208쪽, 학자들, 작은 힘을 보태다(이만열)에서

현실이 이러하니 북이든 남이든 더더욱 민간 차원의 교류와 만남이 절실하다. 그래야 서로를 알게 되고, 왜곡된 생각과 편견이 깨어지고 바뀌기 시작한다. 남북나눔 일을 해보니, 가장 중요한 게 ‘사람 나눔’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 나눔’이라는 건 결국 사람 사이의 ‘만남’을 의미한다. 종교든 문화든 스포츠든 교류를 통해 서로 만나고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는 것, 이런 만남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통합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_177쪽, 학자들, 작은 힘을 보태다(이문식)에서

“남북이 평화통일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남과 북 교회 사이에 나눔과 교류가 이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귀한 것을 나누고 교류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리고 서로가 하나 되어 통일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면 먼저 조그련 목사님들이 남한을 방문하고, 그 후 남북 교회 지도자들이 서로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얘기를 듣더니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 교회 지도자들의 남한 방문 승인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_225쪽,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일(권호경)에서

겨레붙이가 식량난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전 세계가 도와야 한다고 얘기할 때, 정작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잠잠하다. 아프리카 오지의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면 눈물 흘리면서 자매결연을 맺고,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달려가서 사진도 찍고 눈물도 흘리고 아이도 부둥켜안으면서 정작 북녘 동포들의 어려움에는 눈물은커녕 잘됐다는 적개심을 내보이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러니 통일이 되면 과거의 원수를 갚으려고 나서지 않는다 할 수 있겠는가? 이에 예수의 십자가 사랑, 기독교의 ‘자기희생적 사랑’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남북 관계에서 화해의 사도, 사랑의 사도가 되는 것이 어찌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향한 부르심이 아니겠는가.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려워도, 아니 어렵기에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게 기독교다. _267쪽, 평화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김영주)에서

우리 근대사에서 기독교를 빼고서는 일제강점기 3・1운동을 이야기할 수 없다. 통일을 이야기할 때도 한국 교회를 무시할 수 없는 역사를 우리가 일구어 간다면, 이 땅의 복음화에 얼마나 큰 자양분이 되겠는가. 이런 입장을 두고, 복음화 도구로 통일을 사용한다고 비난할 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다. 그러나 선은 항상 열매를 맺는다. 기독인들의 선한 행위가 복음의 진정성을 높여 준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_280쪽, 통일운동의 말석에 앉은 은혜(강경민)에서

추천글

네 명의 저자가 쓴 사복음서가 그리스도의 행적을 다양하게 알려주듯, 다양한 20년의 기록이 담겨 있다. _크리스천투데이 2014.2.5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