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십대 청소년 문제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부모, 교사, 사역자들에게 아주 적절한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저자는 세계적인 영성신학자이자 목회자인 동시에, 세 자녀를 조각가와 목회자, 작가로 키운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십대 청소년을 거북한 포장에 싸인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대부분의 책이나 자료가 청소년을 해결해야 할 ‘문제’나 교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유진 피터슨은 인생의 중년에 접어들면서 생기를 잃고 진부해져 가는 부모 세대가 청소년 세대와 함께 성장을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십대 청소년과 함께하는 성장’이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펼쳐 나가는 저자의 영성 깊은 통찰력과 문체에 매료 될 것이다. 게다가 ‘부모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안내가 책 말미에 부록으로 소개되어 있어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십대 청소년’은 부모 세대에게는 일종의 ‘카나리아 새’와 같다. 카나리아는 현대 기술이 생겨나기 전, 광부들이 탄광에 들어갈 때 새장에 넣어서 들고 가는 ‘경보 신호용’이었다. 막장 안에 독가스가 새어나오거나 공기가 악화될 때, 그 상황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 새장 안의 카나리아였다. 카나리아의 연약한 생리기능이 인간에 비해 훨씬 신속히 무너졌던 것이다. 그 카나리아 역할을 하는 것이 곧 청소년들인 셈이다.
최근 ‘학교 붕괴’니 ‘왕따 증후군’이니 하는 사회 문제는 곧바로 그들 ‘십대 청소년’과 직결되어 있다. TV나 신문 등 매체는 ‘십대들의 반란’ 또는 ‘집을 나온 아이들’ 따위의 제목으로 기획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십대와 관련한 책들도 해마다 적잖은 양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검색어 ‘십대’ 또는 ‘청소년’을 찾으면, 모두 460여건의 자료가 뜬다.
문제는 언론이건 책이건 그 대부분이 청소년을 해결해야 할 ‘문제’나 교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접근한다는 점이다. 아니면 청소년을 부모 세대의 욕망을 투사하여 사회적 성공의 표상이 되게 하는 ‘비결’을 제시하거나, 가르치고 이끌어 주어야 하는 ‘미숙아’로 보아 무슨 교육 방법이니 양육 기술 등을 전수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의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Like Dew Your Youth)는 색다른 관점으로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 세대만이 성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중년에 접어들면서 생기를 잃고 진부해져 가는 부모 세대가 그들과 함께 성장을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는 바로 그 기쁨을 두 세대가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부모 세대를 초청하고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