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표현된 고흐의 신앙고백과 글로 표현된 저자의 신앙고백
흔히 ‘광기(狂氣)의 천재 화가’로 통하는 고흐. 그는 화가의 한 사람을 넘어서서 동서양을 넘나들며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된 지 오래다. 그의 삶과 그림은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논의의 프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다시 읽히고 해석되어 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흐의 작품들에 투영된 기독교 신앙의 자취를 더듬으며, 그가 화폭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구현하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차근차근 짚어 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신화화된 고흐’가 아니라 우리네 일상의 모습에 훨씬 가까이 다가와 있는 고흐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고뇌하고 아파하며 상처입고 위안 받는, 혹은 위안을 주려는 그의 모습 가운데는 늘 하나님의 그림자가 투영되어 있다.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목회자가 될 수 없었던 고흐에게 그림이야말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하나님과 합일되기를 소망했던’ 그의 일상의 염원을 담아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네덜란드에서 7년간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고흐의 ‘상처받은 삶’에 특별히 주목했다. 고흐가 남긴 서신과 작품을 통해 그의 삶에 아로새겨진 상처와 고통의 흔적에 다가가면서 그는 ‘고통을 나누려는 마음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닫는다.
고흐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일반적으로 고흐의 작품은 서양미술사의 흐름 가운데 양식과 기법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그가 다룬 다양한 주제와 소재들도 ‘후기인상파’라는 틀 속에서 조명되어 오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개별 작품에 나타난 그런 특징들이 고흐의 삶의 단면들은 물론 그때그때의 정황과 맞물린 그의 심성을 어떻게 반영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연관관계를 확장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발흥하는 19세기 후반 서양 문화의 맥락에서 배태된 고흐의 삶과 작품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며,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와 우리 신앙의 현주소까지 조심스레 진단한다. 삶과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를 거창한 담론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접근하고 다루는 저자의 탐색은 150여 년의 시차와 동서양을 넘나들며 ‘가장 평범하면서 보편적인 것’이 갖는 진실에 맞닥뜨리게 한다.
책의 구성
고흐의 작품 가운데 80여 점을 주제별로 16꼭지로 묶고, 각각의 주제에 따른 그림들을 통해 그의 삶과 신앙의 궤적을 더듬어가면서 우리 삶의 보편적 문제로 접근해 간다.(각 꼭지 제목에서 쉼표 뒤의 말들이 그 문제들의 핵심을 집약하여 나타낸다.) 꼭지마다 맨 끝에 저자가 ‘누님’이라 부르는 지인 분께 보내는 편지글은, 각 꼭지에서 다룬 주제와 내용을 집약하면서 맺음말 구실을 하는 한편, 새로운 문제 제기를 통한 성찰과 묵상으로 다가서게 한다. 자세한 사연이 밝혀져 있진 않지만 편지글의 수신인인 ‘누님’(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기남 두레교회 권사)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온 분이다. 고흐의 삶과 작품을 통해 고통의 나눔과 위안의 문제에 다가가려 했던 저자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바람이 담긴 이 서신들을 읽다 보면, 마치 이 편지의 수신인이 우리 각자인 듯한 느낌이 든다. 결국 우리도 일상의 고통과 상처를 나누고 위안하며 위안 받아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