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사도신경의 고백이 무색하리만큼 한국 교회는 사귐에 목마르다. 세련되게 지은 건물에 앉아, 웅장한 음악과 잘 준비된 설교를 듣고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얻은 채 집으로 돌아가지만, 옆에 앉은 사람과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이고, 한 주간의 고충과 기쁨을 나눌 여유조차 찾기 어렵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주차장은 차량으로 하루 종일 인산인해를 이루는 교회에 성도의 사귐은 어디서 찾아 볼 수 있을까?
이 책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겉사귐이 아닌, 평화, 사랑, 형제애의 길을 걷는 교회 공동체의 새 삶을 제시한다. 한번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 티켓’을 확보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는가. 말씀은 이미 아는 지식을 확인해 주는 잠언집이 되고, 교회는 등록해 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녀가는 곳으로 전락해도 괜찮은가.
우리가 만드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반성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을 요구하는 이 책은 재물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매일의 삶을 형제자매와 함께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지도자 고(故) 하인리히 아놀드의 글과 편지를 발췌·편집한 것이다. 제자, 교회, 하나님나라라는 범주 아래 회심, 육적 본성, 용서, 사랑과 결혼, 가정생활, 선교, 십자가, 구원 등 32가지 주제를 다루었다. 평생을 공동체로 산 사람의 삶에서 나오는 힘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불의한 체제로 가득한 이 세상, 폭력과 공포와 소외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나와서 정의, 평화, 사랑과 형제애의 새 길을 갈 때, 즉 공동체로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때 주일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을 주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다.
공동체라는 말은 좋지만 함께 살면 이런저런 갈등이 생길까 싫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공동체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를 이야기한다. 제자도는 아주 중요한 주제이지만 같은 주제를 다룬 책들은 개인의 성숙과 영성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고, 제자도와 공동체를 연관시킨 책은 찾기 힘들다. 우리의 구원과 성숙에 교회공동체, 형제자매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고백 위에 쓰여진 이 책의 저자, 하인리히 아놀드는 공동체를 이루고 힘써 누리는 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가 고백한 제자도는 어떤 모습일까. 세상의 불의한 체제를 거부하고, 자신과의 싸움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용서의 은총이 필요하지만 치유가 있고 하나님나라의 현현이 있는 그런 공동체, 그런 제자도의 모습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