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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문학총서 제4권 戱曲·TV드라마ㆍ시나리오 황진이

16,200

발행일 2005.4.21.
상세정보 / 400page
ISBN 978-89-365-0684-6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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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표현을 넓혀 인간 실존을 그리는
구상 시인의 희곡 세계!

시적 표현의 세계를 넓혀 인간 실존에 내재된 인식을 형상화한 희곡, 시나리오 전집. 본업이 시인인 구상 선생은 1960년대 중반 일본에서 2차에 걸친 폐결핵 수술을 받은 뒤 2년여의 요양 기간 동안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세계희곡전집》을 독파하고 일본 시나리오작가협회 연구소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한 바 있다. 수록 작품 가운데 대표작인 《황진이》는 국내에서 뮤지컬로도 상연되어 주목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황진이를 문학적으로 그려 냈지만 구상 시인의 희곡은 극적 구성과 대사의 시적 서정성에서 가장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다.

크기 148 × 210 mm

저자

구상
동서양의 철학이나 종교에 조예(造詣)가 깊어 존재론적ㆍ형이상학적 인식에 기반한 독보적인 시 세계를 이룩한 시인. 현대사의 고비마다 강렬한 역사의식으로 사회 현실에 문필로 대응, 남북에서 필화(筆禍)를 입고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지조를 지켜 온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전인적 지성이다.
1919년 서울 이화동에서 출생. 본명은 구상준(具常浚). 원산 근교 덕원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 중등과 수료 후 일본으로 밀항, 1941년 일본 니혼 대학(日本大) 전문부 종교과 졸업. 1946년 원산에서 시집 《응향(凝香)》 필화사건으로 월남, <북선매일신문> 기자생활을 시작으로 20여 년 넘게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시와 사회평론을 씀. 영국, 프랑스, 스웨덴,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 시집 출간. 금성화랑무공훈장, 대한민국 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국민훈장 동백장 등 수상. 2004년 5월 11일 작고, 금관 문화훈장이 추서됨.

차례

제1부 희곡
수치羞恥
황진이黃眞伊
땅 밑을 흐르는 강

제2부 TV 드라마
자유로의 터널

제3부 시나리오
갈매기의 묘지墓地
단군檀君

책속에서

기억을 더듬으면 내가 희곡 창작에 손을 대게 된 것은 저 자유당정권 말기 반독재 투쟁에 나섰다가 옥고를 치르면서 옥중에서 주로 전후(戰後) 프랑스에 풍미하고 있는 무신적(無神的) 실존주의 작가들의 작품이나 이론을 집중적으로 읽다가 나는 홀연이랄까, 감득한 것이 “인간 실존에 내재된 것은 불안이 아니라 수치심이다”라는 깨달음이었다. 특히 나는 알베르 카뮈의 희곡 <오해>를 읽고 그 등장인물의 실존 속에 결해 있는 것이 바로 수치심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기만 하면 나의 이 거창한(?) 사상을 이론적으로 형성하려고 별렀다. 그런데 그렇듯 내 머리에 명료히 구성되어 있던 인식과 논리가 출옥하자 차차 둔화되고 겨우 그 상념의 편편들을 형상화하여 여기에 함께 수록하는 희곡 <수치> 한 편을 완성하였다. 이렇듯 나는 시로서는 형상화할 수 없는 자신의 사물에 대한 본질적 인식이나 그 논리, 즉 사상을 구상적(具象的)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써 보기로 한 것이다. -‘책머리에 몇 마디’에서

프롤로그
캄캄한 무대에 순백(純白) 차림의 황진이의 혼령이 스스로 빛을 발하며 나타나서 관중들을 향하여 대화하듯,

혼 령 나는 황진이올시다. (말의 어미는 연기자의 자연스러운 말씨대로)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 이 땅에 살던 속칭 송도 기생 명월의 혼령이올시다.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하지들은 마십시오. 혼령은 혼령이지만 흔히 전설에 나오는 피묻은 원한에 사무친 그런 악령이 아니라 불교의 말을 빌리면 왕생극락 직전, 기독교의 말을 빌리면 천당에 들기 직전, 즉 혼령이 이 세상 인업(因業)의 허물을 다 벗어 버리고 종국적 생명으로 완성되기 직전의 선한 혼령이니까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돌연 세상에 나타났냐구요? 그것은 구상(具常)이라는 오늘의 시인이 하도 나의 시나 삶에 애정을 갖고 때마다 추켜들고 나서기 때문에 거기에 마지막 보답을 하려구요. ……그때까지 외부 세상과의 오직 외가닥 줄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난 우리 모녀는 완전히 세상과 격리된 상태에서 3년상을 마치고 났을 때 당면한 문제는 나의 혼사였습니다. 어머니의 서두름으로 처음에는 그래도 매파가 심심찮게 들랑거렸습니다. 그러나 소위 반갓집에서들은 선을 볼 때엔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돌아가서는 번번이 딱지를 놓는 것이었죠. 되물어 볼 것도 없이 천첩의 소생을 양반집 체모에 며느리로 맞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올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이 내 죄다”라고 탄식을 하시곤 했죠. 하기야 더러는 청혼이 없는 것은 아니었죠. 양반 중에서도 대감 댁에서라면서 후실이나 작은집으로 달라고요. 그러나 이 경우 나의 어머니는 펄펄 뛰시며 “내 딸에게 내 신세를 되풀이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또 더러는 나를 이리저리 훔쳐본 동네 총각들에게서 청혼이 들어올라치면 이 역시 어머니는 길길이 뛰시면서 “황 진사의 딸을 상것〔常人〕에게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출생과 그 성장기에서 맛본 모멸적 환경이 나로 하여금 일찍이 인간의 계급적 신분에 대한 모순과 남자 중심의 사회규범에 대한 부조리에 심각한 회의와 반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나 할까요. 바로 이 무렵 그 운명의 상여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1부 희곡, ‘황진이’에서

서평

[해설]

“그의 일생은 진리의 모색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삶의 진정성이 공적인 발언과 사적인 행동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라면 이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진리, 즉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는 정태적인 교조(敎條)가 아니다. 구상의 일생은 진리의 모색으로 설명될 수 있고, 그래서 그의 시들은 그 길을 따라간 발자취의 기록이기도 하다.
-글/안선재, ‘해설’ 중에서

“실존적 전일성의 추구”
작품과 작가(인간)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비평적인 주장이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경우 그의 작품 뒤에 숨어 있는 인간 셰익스피어의 모습은 완벽에 가까운 수수께끼나 다름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셰익스피어 문학의 이해와 평가에 하등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T. S. 엘리어트 역시 작가 자신의 모습은 되도록 작품 뒤에 숨기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 온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구상 선생의 경우는 인간과 문학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보다 적극적인 이유가 있다. 구상의 삶의 본질적 양식(樣式)은 이를테면 ‘실존적 전일성(實存的 全一性)’이라 할 수 있는 것이어서, 구상의 문학을 삶에서, 삶을 문학에서 떼어낸다는 것은 어떤 ‘상(像)’의 전체적 통일성을 훼손하는 것이 된다. 이 말을 좀더 부연하자면, 구상 선생의 사상(思想)에는 논리성(論理性)과 윤리성(倫理性)과 심미성(審美性)을 하나로 조화시키려는 의지가 있어, 이것이 ‘삶[생활(生活)]’과 ‘형식[예술(藝術)]’의 경우에도 예외일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글/성찬경, ‘해설: 구상의 문학과 인간’중에서

[구상론]

“시인과 일상인과 신앙인의 비분리”
“그를 노의하는 좌표축은 실상은 종래 한국시를 논의하는 버릇에서 벗어난 곳에 놓여 있다. 그것은 시인과 일상인과 신앙인을 분리하지 않고 한꺼번에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전인적(全人的)실존으로서의 시인을 바라보는 좌표축을 필요로 한다. ……
시를 아마도 비시적(非詩的)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
그는 아마도 신현실주의가 주장하는 바 초현실주의가 치른 말초신경적 내부 이미지까지 채 도달해보지도 못했고 동시에 시회주의적 현실주의에까지 도달하지도 않은 자리에서 두 가지를 미리통합해 버린 형국으로 우리에겐 보이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일부러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철저히 기교를 거부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비시적이다’라는 외침이 도처에서 들려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겐 보인다. 마치 그것은 온갖 기교를 사용하여 비시적이고자 했던 이상의 경우만큼 장관이라면 장관이라고 할 것이다.”
-김윤식 ‘구상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