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를 통해
‘영상 텍스트가 말하는 진리’에 다가가다
영상에 담긴 기호,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청년 시절, 영화란 ‘영상을 통해 헛된 세계를 가공하는’ 속(俗)된 것이라며 모든 영화 관람을 금기시하던 저자는, 언젠가 찾아온 긴 슬럼프와 방황의 시기를 거치면서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 주신 완전히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세상(세계)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와 개념들이 어떻게 기호화되고 다시 풀어서 읽어낼 수 있는지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그 새로운 시각을 바탕으로 ‘영화에 기호로 담긴 진리’를 밝혀내려는 시도의 한 부분을 모아 엮은 것으로, 비교적 최근(대부분 2016년) 개봉된 영화들을 소재로 했다.
<레버넌트>, <아노말리사>, <아가씨>, <부산행> 등 14편(우리 영화 6편 외국 영화 8편)의 영화를 다룬 이 책에서 저자는 해당 영화의 행간에 스민 중요한 기호들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그것들을 어떻게 읽어낼지에 초점을 맞추어 논지를 전개해 간다. 그 기호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신·구약 성경에서 제시하는 주제들과 맞닿아 있으며(<검은 사제들>-악령의 실체, <갓 오브 이집트>-고대인에게 부활의 문제, <벤허>-‘현전現前’의 의미 등),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인간과 사회의 제문제(동성애, 정의, 좀비 등)와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무엇보다 저자가 ‘영상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진폭―그 폭은 주제 및 구현 방식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해석 대상인 작품이 지닌 중요한 기호(또는 상징)에 대해 작품 스스로 우리에게 말하거나 보여 주게 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따라서 이 책은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론서와는 매우 다르며, 단순한 ‘영화 해석’을 넘어선다).
로고스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몽타주’ 작업
영화를 소재로 한 점에서는 같지만 이 책은 2015년 홍성사에서 펴낸 저자의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와 대비된다. 근현대 서구 사상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철학자들이 이해한 신 개념을 살펴보며 서구 철학사를 통해 현현한 ‘로고스의 실체’를 밝히는《철학과 신학의 몽타주》에 소개된 영화들―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명작들이다―은 저자의 논지를 입체적으로 뒷받침하며 꼭지마다 제기되는 문제를 풀어가는 촉매 역할로 쓰인 바 있다. 이번 책에서는 영화 자체를 주체로 놓고 전혀 상이한 배경과 감독의 제작 의도 가운데 흩어져 있는 로고스를 맞추어(‘몽타주’) 보임으로써 그 해석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레버넌트>에서 ‘복수의 주체’를 명확하게 짚어 내거나 <국제시장>에서 ‘독생자’의 참의미를 풀어가는 과정 등은 영화에 담긴 핵심적인 기호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단연 돋보이는 예다.
한편, 책 말미에 실린 부록 ‘기호와 해석에 관한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영화 <곡성>을 예로 들어 영화가 지닌 상징화의 문제, 기독교(인)와 관련된 문제 등을 이야기하면서, 기독교인이 어떤 시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향유해야 할지 총체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한다. 특히 평론가나 영화감독을 꿈꾸는 기독교인에 대해 조언하면서 성경의 중요성을 다시금 역설하는데, 성경에 담긴 기호와 해석의 문제를 과소평가할 뿐 아니라 관심조차 두지 않는 세태를 꼬집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서 언급하듯, 저자가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몽타주’ 작업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지만 어디에나 있는’ 하나님의 본성 곧 ‘로고스’를 규명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