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일 목사의 가족사진과 학창시절, 장대현교회 시무 시절의 사진과 자료들을 한데 모아 엮은 사진집.
방지일 목사의 10대~100세 때 모습을 비롯하여
조부모, 부모와 후손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가족사진,
선천 신성중학교 시절(1924~1929년, 9컷),
평양 숭실학교 시절(1929~1933년, 50컷),
평양장로회신학교 시절(1933~1937년)의 사진,
장대현교회 시무 시절(1935~1936년, 24컷)의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방지일 목사가 목회자의 길로 접어들기까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며,
모교회에서 사역하던 발자취를 말해 주는 귀한 자료들이다.
700부 한정판으로, 양화진책방(02-333-5163)과 홍성사 홈페이지에서만 판매한다.
저자
방지일
1911년 평북 선천에서 방효원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7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27세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1937년 총회 파송으로 중국 산동 선교사로 떠나 21년간 선교 사역을 했다. 중국이 공산화되어 엄청난 종교적 탄압을 가하자 모든 외국 선교사가 철수했지만 중국에 혼자 남아 중국 교인들과 고락을 함께했다. 이 사실이 유엔에 알려지면서 결국 유엔의 중재로 홍콩으로 추방되어 1957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1958~1979년까지 영등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였고, 1979년 은퇴 이후 “닳아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는 평소 말씀처럼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을 다니며 활발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2014년 10월, 103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국민일보 주관 세계선교부문 대상(1996), 국민훈장 모란장(1998), 추양목회대상(2003), 언더우드 선교상(2003)을 받았으며, 《성도의 생활》, 《목회자의 생활》, 《허락의 원칙》, 《부르심의 원칙》, 《메시아》, 《나의 나 됨》, 《임마누엘》, 《눈물의 병》과 사진집 《나의 나 됨》, 《중국 선교를 회고하며》 등 1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책속에서
머리말_내 삶의 한 폭
다시금 사진집을 훑어본다. 내 삶의 체적으로도 볼 수 있으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아쉬움과 그리움이 엉키어 맴돈다. 한 번 보고 지나가질 않는다. 보고 또 보고 만지작거리게 된다. 회상하며 회고하게 된다. 내 역사를 돌아본다. 다시금 알게 된다. 이런 것들이 내 격(格)에 채워졌음이다. 내 말의 녹화됨도, 내 그림자의 한 폭도 나타나는 영상이 주루룩 보여지는 듯하기도 하다. 누운 자리 옆에 끼고 자고 싶기도 하다. 이러하게 애지중지 내게 버릴 수 없는 보화로구나. 이런 나의 기억들을 여러분의 수고로 모으고 편집하여 주시니 깊은 고마움을 드리게 된다.
내게는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소중하려니와, 우리 사회상을 비롯하여 일면의 인간상, 또 그 정(靜), 동(動), 고(高), 심(深), 장(長), 광(廣)도 엿보게 되니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겠다. 내 삶의 한 폭이 이렇게까지 이어지기도 함을 이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느껴 본다. 왔다 가는 보람이 담겨 있기도 하다는 자부심도 가져 본다. 그러나 내 자부심만으로 그친다면 주관적일 뿐, 내 나름이니 값이 나가지 않겠다. 객관적으로도 어떤 작은 의미라도 지니고 있을까?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거니와 내가 살던 그 당시의 시대상, 생활상, 인간상의 한 면을 엿볼 수 있음도 부인할 수 없음이니,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때를 상상하는 도움의 재료가 될 수도 있을 듯하여 약간의 보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수고하신 분들에게도 보람이 아닐 수 없음이리라. 이리하여 인간 역사의 문화상이 조금씩 쌓여질 것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