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어려울수록 더 채용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다이히만!
탄광촌 작은 신발수선집을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으로 만든
다이히만 사 최고경영자 하인츠-호르스트 다이히만의 나누는 부자 이야기
수십 년에 걸쳐 조용히 성장해 온 다이히만 사가 해마다 독일을 넘어 세계 20개국에 1억 켤레가 넘는 신발을 판매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독일 젊은이들은 왜 다이히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걸까? 신학과 의학을 공부한 정형외과 의사가 유행에 민감한 신발 사업에 매진하는 이유는? 그토록 많은 돈을 벌어 이 기업은 어디에 쓰는 걸까?
공적인 자리에서도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하는 다이히만 사의 최고경영자 하인츠-호르스트 다이히만은 그의 삶을 다룬 책 《다이히만 씨, 당신은 왜 부자입니까》(Warum sind Sie reich, Herr Deichmann?)를 통해 그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그는 단지 돈이 많기 때문에 부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부자인가? 이 책은 그것을 말해 준다!1.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 다이히만 신발 매장이 들어서 있다고 들었다. 다이히만 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1913년 독일의 에센 근처 보르벡에 아버지께서 연 신발 작업장이 우리 기업의 시초이다. 나는 신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정형외과 전문의로 일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업을 이어 신발 기업 경영에만 매달렸다. 독일 탄광촌의 작은 신발수선집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발을 위한 국민차’로 불리며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이자 독일 신발 시장의 2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다이히만 사는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내가 원해서 된 게 아니다. 나는 우리 기업이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2. 다이히만 사는 신발 기업으로 100년을 이어왔다. 다이히만 사만의 경영 원칙이 있다면?
나는 기독교인이다. 웨슬리 목사님의 말씀대로 벌 수 있는 한 최대로 벌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절약해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신발을 아주 싸게 판다고들 하지만 나는 받을 만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켤레에 몇 센트의 적은 이윤을 남기지만 많이 팔면 그 이윤이 상당하다. 박리다매薄利多賣라고 할까. 신고 싶은 신발이 비싸서 신지 못하는 경우는 없도록, 소비자도 타당하다고 여기는 선에서 가격 정책을 세우고 있다. 또한 이익은 사업에 재투자한다. 성장은 은행 부채 없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에서 단기 대출을 받는 것은 허용하지만 근본적으로 은행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3. 글로벌 기업이 되었는데도 주식 상장을 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왜 기업의 주가가 2천 명을 해고한 후 곧바로 오르는지. 해고 후에는 이전보다 비용이 적게 들므로 더 쉽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면 이 기업의 지분을 갖고 있는 자들이 이익을 얻는다. 우리는 주식을 상장하지 않은 가족-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보통의 주주들에게는 기업 자체가 가급적 단기간에 이득을 내야 하는 하나의 상품이 되는 반면, 우리는 우리 기업 자체가 하나의 가치이며 가족사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수익이 나면 그 이윤을 다시 회사로 돌릴 준비가 되어 있다. 회사가 곧 가족의 유산이기에 근검절약을 오히려 고수하게 된다. 우리는 제3자가 회사의 이해관계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회사를 존속시키고 창업자의 철학을 지켜가기 위한 장기적 전망이다.4. 인도의 한센병 환자 사역,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병원과 학교를 세워 지역 주민을 돕는 사역, 이스라엘 아랍인과 아프리카 모슬렘을 위한 사역, 독일의 노숙인과 청소년 사역 등을 펼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구호 단체 이름도 ‘말과 행동’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과 함께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이 꼭 필요하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내게 얼마나 많은 신발을 팔았느냐고 묻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는지, 복음을 전파했는지 물으실 것이다. 나는 그 일을 할 뿐이다.
5. 신학을 공부하고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했다. 차라리 의료 선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1945년 초, 전쟁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을 때, 의료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외과수술용 메스와 성경을 갖고 밀림 지역을 찾지 않았다. 신발을 들고 복음을 전한다. 에센, 인도, 아프리카에서도 나는 강단에 올라 예수님에 대해 선포한다. 내가 선교사가 아니라 기업인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가 수월할 때도 많다.
6.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 기업은 가족기업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야만 ‘인간에게 봉사하는’ 자유와 독립성을 지속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실무에서 물러났고 아들 하인리히 오토 다이히만에게 경영을 맡겼다. 그저 대외적으로 처리해야 할 큰일들을 감당할 뿐이다. 인생은 매우 짧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삶 속에 실현시킬 수 있을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 일을 해나갈 것이다.
하인츠-호르스트 다이히만(Heinz-Horst Deichmann):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 ‘다이히만’ 사(社) 최고경영자. 1926년 독일 에센 출생. 13세에 아버지를 여읜 뒤 아버지가 1913년 창업한 신발 가게 일을 도와주며 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하다가 서른 살이 되던 1956년 의사 직을 포기하고 경영에만 매진하여 다이히만을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발을 위한 국민차’로 불리는 다이히만 사는 고객이 원하는 신발을 최소 이윤만 남기고 공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벌 수 있는 한 최대로 벌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절약해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자”라는 신념 아래 수많은 지원 사역을 펼쳐 오고 있다. 인도에 나환자촌을 세워 물질적․정신적․의료적으로 지원하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는 병원과 학교를 건립해 지역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과는 사막을 농지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말과 행동’이라는 구호 단체를 설립하여 독일은 물론 제3세계의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 경영자의 나눔 정신을 이어받은 직원들은 자신의 월급의 일정액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2007년 독일의 일곱 번째 기부자로 이름을 올린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내게 얼마나 많은 신발을 팔았느냐고 묻지 않으실 겁니다. 그분은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는지, 복음을 전파했는지 물으실 겁니다.”
다이히만 사이트 www.deichmann.com/ www.deichman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