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학’의 범위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기독교 신앙을 모든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을 고정 독자로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김성일은 단연 기독교계의 대표적 작가이다. 《땅끝에서 오다》를 비롯하여 기독교 신앙을 소재로 한 탄탄한 추리적 구성의 작품들을 선보였던 그는 지금까지 30권에 가까운 소설을 썼다. 이번에 출간한 《동방》(전5권)은 기독교계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대하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1990년에 낸 소설 《홍수 이후》에서 노아 홍수 이후 동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경로를 추적하면서 한민족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거니와, 《동방》은 그 이후의 역사를 작가의 독특한 사관과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낸 후속편이라 할 만하다.
가야 시대 때 아유타국의 공주를 통해 기독교가 이미 유입되었다는 것은 심심치 않게 지면에 오르내리는 설(說)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가야를 동방 기독교 신앙의 맹주로 보면서 삼국 시대의 역사를 신앙적 갈등의 문제로 풀어 나간다. 기독교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사관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방대한 사료와 치밀한 연대기적 구성, 미스테리의 긴장 등을 동원하여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간다.
[강연회 스케치]
“그들은 ‘동방’의 기억을 찾으러 모였다”
-《동방》 강연회 성황리에 끝나
“오늘 여기 무슨 일 있어요?”
“여기가 ‘동방’ 강연회 하는 곳 맞나요?”
지난 2월 18일 금요일 오후 2시 10분 전. 종로5가에 있는 한국 교회 100주년기념관 1층에는 때 아닌 인파로 북적거렸다. 행사 시작 시간 30분 전부터 속속 당도하기 시작한 참석자들은 2시에 강연회가 시작될 무렵엔 이미 빈 자리를 거의 다 메우고 있었다.
민족이동설에서 시작한 김성일 선생의 강연은 열을 더해 갔고, 강연장은 달아 올랐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50분을 더 넘겨 강연은 끝났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리를 지킨 청중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 참석자들이 저자의 강연을 들으며 메모한 질문지를 수거하여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곧 이어 참석자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사은품 추첨-이 있었고, 모두 다섯 명의 참석자에게 김성일 선생의 《동방》 1질씩이 사은품으로 돌아갔다. 강연회 순서가 다 끝난 후, 강연회장 입구에서는 저자 사인회가 있었고 저마다 《동방》을 손에 든 참석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 날 강연회는 ‘작품 설명회’의 성격을 띠고 열린 자리였다. 따라서 저자가 《동방》을 구상한 계기와 집필 과정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동방》의 바탕이 되는 한반도 고대사를 저자 특유의 상상력과 신앙으로 추적한 결과에 대한 방대한 강의가 펼쳐졌다. 강연은 OHP와 슬라이드를 동원한 사진 및 사료들을 제시해 가며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은 저자의 강연을 들으며,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자의 강연에 탄성을 쏟아내곤 했다. 다만 강연이 길어져 3시간이 가까워지자, 몇몇 참석자들은 자리를 뜨거나 지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이 날 강연을 듣고 질문지에 남긴 참석자들의 반응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저자의 강연에 대한 찬사다. 즉 저자의 자료 준비와 해박한 설명에 크게 도전받았으며 무척이나 흥미로운 자리였다는 반응이다.
“저자의 방대하고 해박한 설득력 있는 내용과 추리에 대단히 감동받았습니다.” (김순철/성동구 하왕2동)
“폐쇄된 공간에 사는 동두천 학생들(젊은이들)을 위해 (강의하러) 오실 계획은 없는지요?” (유평숙/동두천시 생연동)
“역사를 성경적 시각으로 쓴 것에 대해 깊은 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반종윤/춘천시 석사동)
둘째, 이와는 달리 저자의 강연에 의문과 문제제기를 한 반응도 있었다.
“공자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말씀은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김성구/강동구 길2동)
“단일 민족의 구성과정이 모호합니다.” (신영철/마포구 망원동)
“동이족의 역사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구영선/대구시 동구 용계동)
참석자들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군산, 충남 홍성, 대구, 대전, 평택, 동두천, 춘천 등 지방에서 일부러 올라온 열혈 독자들도 적잖아 ‘김성일 마니아’층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날 강연회에는 모두 225명이 참석하여 100주년 기념관 1층 소강당을 꽉 메웠고, 저자의 저서를 다양하게 시각적 전시물로 꾸며 놓아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전체 진행 시간이 길어져 질의응답 시간이 너무 짧아 참석자들과 저자의 충분한 질의응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글/옥명호(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