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장편 추리소설. 항암 치료를 받으며 사경을 헤매는 아내의 침상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필한 작품이다. 소설 속 이세원 부장의 갑작스런 실종과 그의 부재가, 실종된 우리 자신의 믿음을 거울처럼 드러내 준다. 추리소설다운 긴박감과 치밀한 구성으로 기독교 소설의 새 장을 연 김성일의 대표작.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임준호다. 인생을 즐기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는 리진물산의 동경지사에서 근무한다. 그러나 어느 날 파리를 떠나 동경으로 출장오기로 한 이세원이 실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임준호와 이세원은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경쟁상대다. 유년시절부터 시작하여 성장해서는 연적 관계로까지 악연은 계속된다. 이 소설은 임준호가 이세원 부장이 남긴 암호문으로 가득 찬 텔렉스의 의미를 풀어 가는 과정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임준호가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보조 인물에는 임준호의 연모의 대상이었으나 이세원의 아내가 된 문영실과 동경의 정부인 일본인 여자 스미에가 있다.
소설 속에서는 성경이 큰 비중 있는 소재로 등장한다. 이세원의 여행가방에 들어있던 낡은 관주 성경은 임준호에 의해 이세원의 행적과 텔렉스의 암호문을 풀어나가는 열쇠가 된다. 처음엔 평생 경쟁자였던 이세원의 소지품이라는 이유로 임준호에게 호기심을 끌었지만 성경을 탐독하는 과정에서 점점 임준호의 의식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위기 때마다 그 성경은 임준호를 구해내는 역할을 한다. 성경은 실종된 이세원을 찾아내기 위한 키워드이지만, 실은 임준호를 구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세원의 마지막 메시지를 따라 두로의 실로암에서 히스기야 시대에 완성된 1,750피트의 수로를 탐험해 들어간다. 그 곳에서 뜻밖에 스미에를 만나게 되고, 터널 안에 만들어진 비밀공간에서 이세원의 편지를 읽게 된다.
그는 이 편지에 그간의 모든 일을 적고 있다. 동서양의 미로 건설에 대한 이세원의 논문을 읽은 이스라엘의 정보부 모사드의 부탁으로 실로암 터널 안에 신무기를 숨겨둘 지하창고 건설을 시작했다는 것, 이 사실을 알게된 PLO가 북한에 이 무기를 탈취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북한 공작원으로 오게 된 사람이 다름 아닌 이세원의 친형인 최기원이었다는 것, 그리고 최기원은 이세원에 의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 등. 편지는 그간의 복잡했던 사건의 실체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세원은 편지에서 자신의 교만함으로 인해 친구들과 멀어졌음을 고백하고,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아내 문영실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고아로 자라면서 하나님께 서원했던 일들을 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해왔던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임준호와 화해를 요청한다.
한편 임준호는 실로암까지 찾아온 스미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피상적으로 스미에의 육체만을 탐하던 임준호는 비로소 스미에의 전부를 사랑하게 된다.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형장을 답사하던 임준호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장소에서 꿇어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주여…땅끝에서 왔습니다…당신의 부르심을 받아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