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실존하심을 증명하는 공동체,
<라 브 리>
허무주의에 빠진 이 시대의 마지막 쉼터, 라브리
쉐퍼 부부가 미국에서 스위스로 간 이유는 제2차 대전 후의 폐허 속에서 사상적 혼란에 빠진 유럽인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며 주일학교를 열고 성경을 강의하는 사역을 계속했지만, 하나님이 유럽으로 부르신 또 다른 목적이 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방문객들에게 ‘집을 개방한’ 쉐퍼 가정의 이야기를 입소문을 통해 듣고 영적인 도움을 얻으려 줄지어 찾아오는 이들을 돕는 일이 사명임을 깨달은 것이다. 쉐퍼 부부는 자신들의 집을 ‘라브리’(L’Abri, 쉼터, 피난처)라고 짓고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라브리에 찾아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 공간이 부족하여 집을 한 채 두 채 늘리다 보니 한 마을을 이루어 헬퍼와 간사와 멤버가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이에 필요한 재정은 후원 요청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쉐퍼 부부는 라브리 사역의 목적을 “우리의 삶과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정했으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다.
라브리, 하나님이 실존하심의 증거가 되다
절대 진리는 없다는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인생의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라브리에 왔다. 그들이 자라난 환경과 관심사, 전공과 직업, 국적과 나이대도 다양했다. 이들 대부분은 입소문을 듣고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왔는데, 라브리에서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은 보내 주시고 다른 사람들은 다 막아 달라고 한 기도가 늘 응답됐다고 고백한다. 라브리에 찾아온 이들은 강의, 토론, 성경공부에 참여하고 식사와 숙박을 위해 필요한 집안일을 돕는다. 이 사역에 필요한 모든 물질이 채워지고, 수많은 불신자가 이곳에서 대화하다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회심은 ‘우연처럼’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우연’으로 돌릴 수 없음을 이들은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 계심을 증명하는 통로로 사용되기를 원하는 이들의 기도와 열망에 대한 응답이었다.
식주인 이디스 쉐퍼가 들려주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프랜시스 쉐퍼는 20세기의 정신적 폐허 속에서 기독교를 건져낸 변증가로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랜시스 쉐퍼의 사역은 동반자요, 가이오처럼 라브리의 식주인(롬 16:23) 역할을 해낸 이디스 쉐퍼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프랜시스 쉐퍼의 주된 사역이 방문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라면, 끊임없이 식사와 차를 제공하고 잠자리를 준비하는 일은 고스란히 이디스 쉐퍼의 일이었다.
프랜시스 쉐퍼의 기독교 세계관을 다룬 책들을 보면 그를 철저한 이론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디스 쉐퍼의 라브리 이야기≫를 읽으면 쉐퍼의 사상은 학문적인 연구만이 아니라 지적 방황을 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돕기 위한 살아 있는 대화의 장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타임>은 라브리가 ‘지성인들에게 선교하는 곳’이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라브리는 한 번도 상아탑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이디스는 고백한다. 라브리는 무엇보다 ‘기도의 집’이었고 ‘자유 토론과 가사노동’의 현장이었다. “때로는 먹을 틈도 없이 상을 두 번 차려야 하고, 쏟거나 깨진 것들을 치우고, 산더미 같은 쓰레기들을 비우고, 스토브에 끓어 넘친 음식 자국이나 오븐 속에서 넘쳐서 까맣게 타 버린 딱딱한 찌꺼기들을 긁어내는 일은 도무지 극적이지도 않고 영광스럽지도 않았다.”
이디스 쉐퍼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대로 사람들이 오가고 놀라운 일들이 생겨났지만, 기도의 응답에는 그 응답의 기쁨을 더욱 크게 하는 고난과 고통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필요했다고 고백한다.